책소개
과학자이자 휴머니스트,
사회개혁가이자 자유주의자였던 킨제이
그리고 20세기 성을 해방시킨 킨제이 리포트의 모든 것
20세기 성과학에 있어 다윈이자 코페르니쿠스에 비견할 만한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고 평가받는 킨제이의 일대기와 그의 연구 전반을 연대별로 세세히 살펴보고 있는 이 책은 킨제이의 연구 업적과 그를 둘러싼 논란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분석했을 뿐만 아니라, 20세기 당시의 성문화는 물론, 사회상을 생생히 담고 있다. 킨제이가 집필한 『남성 성행동 연구』와 『여성 성행동 연구』가 어떠한 토양을 바탕으로 성립되었는지, 그의 인터뷰 기술과 연구의 핵심 주제, 그리고 그의 연구를 지지했던 조력자와 반대자들의 견해에 이르기까지, 그와 연관된 다양한 정보의 고증을 통해 독자들은 보다 쉽고, 객관적으로 그의 연구에 접근할 수 있다. 아울러 폰 크라프트 에빙, 마그누스 히르시펠트, 헨리 해블록 엘리스와 같은 킨제이에 앞선 선배 성과학자들의 연구와 그들의 업적도 소개되어 있어 20세기의 성과학이 이룩한 업적이 무엇이었는지를 통찰할 수 있게 해준다.
책에서는 그의 연구뿐만 아니라 과학자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킨제이의 모습 역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냉철한 관찰과 객관적인 사실을 중시하는 과학자였으면서 한편으론 사회적 편견에 부당하게 희생당한 이들의 보호자이자 상담 역할을 자임했던 휴머니스트였고, 비논리적인 성적 억압을 타파하려 했던 사회개혁가이자 진정한 자유주의자이자였던 킨제이를 한마디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인물이었던 킨제이는 그의 연구업적 못지않게 생애 역시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 극단적으로는 동성애자이자 편견에 사로잡혀 과학적 연구 결과를 주관적으로 해석했다는 평가에서부터 20세기말 모더니즘 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자, 다가올 여성주의 혁명을 예견한 지성인이었으며, 성범죄자의 거세형에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성적 다양성과 개방성을 존중한 열린 좌파적 지식인으로서의 평가까지, 그처럼 생전에나 사후에나 다양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과학자도 드물다.
모든 성은 정상적이며 아름답다
그것이 억압과 강요, 폭력을 수반하지 않는 한
오늘날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성에 관한 많은 과학적 진실들이 밝혀진 것이 사실상 20세기 중반 이후였다고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현대인은 격세지감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만큼 20세기 말에 ‘혁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만한 큰 변화를 겪었다. 오늘날 임신을 위해서 병원에서 여성의 난자가 공급된다고 믿는 대학생이 얼마나 될 것이며, 자위행위라든가 피임이라든가 하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20세기 초만 해도 대중의 성적 무지는 놀라움을 넘어서 경악할 만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성이란 분야만큼 오랫동안 많은 부분이 가려지고 금기시되어온 영역도 드물다. 임신을 위한 성행동을 제외한 모든 성행위는 부정당할 만큼 성은 죄와 결부되는 영역이었다. 현대인이 다양한 성적 만족과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킨제이가 1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와 조사를 통해 두 권의 성보고서를 발표함으로써 그 모든 행위들이 ‘정상적’인 것임을 세상에 드러낸 뒤의 일이다. 혹벌을 연구하는 곤충학자였던 킨제이의 끈기와 일에 대한 진념, 그리고 자기 확신이 20세기 말 성 혁명의 단초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킨제이의 연구 결과와 그것이 사회에 미친 파장, 그리고 보수주의의 물결에 가로막혀 연구자금 지원이 중단되고 결국 미완의 성공으로 끝났던 마지막 순간까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서두부터 나오는 킨제이의 어린 시절과 대학교 시절, 그리고 곤충학자로서의 이야기는 뒤이은 그의 성 연구 과정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한 보충자료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지역과 사회 각계각층을 망라한 킨제이의 어마어마한 인터뷰 양과 그 꾸준하고 세심한 통계분류는 확실히 혹벌을 연구하던 시기의 킨제이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독자들은 그의 연구방법론을 보다 생생히 이해하고 느낄 수 있게 된다. 아울러‘킨제이의 잠수함’이라 불렸던 연구팀의 면면과 그들의 수많은 지지자들은 킨제이의 연구가 한 개인의 영역에서 벗어나서 수많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이루어져 갔던 시대적 부응의 산물이었음을 밝혀준다.
그동안 그의 연구 결과에 가려졌던 인간 킨제이의 모습을 다채롭게 그려내는 부분도 흥미롭다. 임종 직전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가는 순간까지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을 내뱉을 정도로 일벌레이자 ‘자상한 독재자’였던 한편 모든 성적 소수자들에게 격려의 편지를 일일이 보낼 정도로 다정다감한 면모에 이르기까지, 킨제이의 연구 업적뿐만 아니라 인간 킨제이를 만날 수 있다.
수많은 사회적 편견과 언론에 의해 가공되어져 왔던 킨제이와 그의 연구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20세기 말의 성적 시대상뿐만 아니라 21세기의 성적 다변화 시대를 맞아 그동안 성과학이 이룩했던 토양을 일목요연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감사의 말
1부 성을 외면하다
01 종교의 그늘
02 보이스카우트
03 인간 본연을 향하다
2부 성 연구를 향한 첫걸음
04 살아 숨 쉬는 과학으로
05 사회를 휩쓴 성적 히스테리
06 곤충의 변이와 인간의 성적 다양성
07 성경험 역사를 들려주실 분 없습니까?
08 킨제이 이전의 성 연구 계보
3부 인간 남성의 성행동 연구
09 오르가슴을 기준으로 삼다
10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금기가 많고, 가장 중요한 일
11 ‘킨제이의 잠수함’이라 불린 연구팀
12 꿈에서 시작한 정신분석학은 그저 꿈일 뿐
13 37퍼센트, 10퍼센트, 4퍼센트
14 성 연구의 다윈과 코페르니쿠스
4부 인간 여성의 성행동 연구
15 대영박물관 못지않은 킨제이 박물관
16 질 오르가슴 vs 음핵 오르가슴
17 성을 필름에 담다
18 킨제이를 둘러싼 의혹과 반론
19 반쪽짜리 여성 표본
20 이런 것이 미국 여성일 리 없다
5부 킨제이, 그리고 성 해방
21 성 연구, 보수의 물살에 좌초되다
22 유럽에서 성의 낙원을 보다
23 ‘성 연구를 할 권리’
24 불완전한 선구자
부록 A
부록 B
주
색인
저자소개
저자 조너선 개손 하디
1933년 런던에서 출생해서 브리스톤과 케임브리지에서 수학했다. 킨제이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영국 공립 교육 체계와 탁아 시스템을 사회 역사학적으로 다룬 연구로 유명하다. 2005년에는 J. R. 애커리 상을 수상했으며, 소설과 아동문학을 집필하기도 하는 전방위 작가다. 주요 작품으로는 『카멜레온』 『사랑, 성, 결혼과 이혼』 『제럴드 브레난의 삶』 『원자론』 『비행선 랜드십의 모험』 『제인의 책 밖의 충고』 『유인원 키릴로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