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으로 산 사람 다윗(10) /사무엘상 25:2-42 / 나발과 아비가일
(삼상 25:2)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 털을 깎고 있었으니
(삼상 25:3)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삼상 25:4) 다윗이 나발이 자기 양 털을 깎는다 함을 광야에서 들은지라
(삼상 25:5) 다윗이 이에 소년 열 명을 보내며 그 소년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갈멜로 올라가 나발에게 이르러 내 이름으로 그에게 문안하고
(삼상 25:6) 그 부하게 사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지난 시간에 우리는 다윗이 다윗 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용서하고 선으로 악을 이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최후 승리자는 선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악은 결코 선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벧전 3:9절에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복 받는 비결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다윗 시대에 가장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과 가장 미련한 남자 나발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성경에서 지혜로운 여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여인입니다.
하지만 아비가일의 남편인 나발은 미련한 사람의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2-3절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 털을 깎고 있었으니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마온은 다윗이 그를 따르던 사람들과 함께 사울을 피해서 도망했던 곳입니다(삼상 23:24-25).
그곳에 아비가일의 남편인 나발이 살았으며(삼상 25:2), 갈멜에 큰 농장을 소유했습니다.
양 떼가 삼천 마리, 염소 떼가 천 마리였습니다.
그의 이름이 나발입니다. ‘나발’이라는 뜻은 ‘미련한 자’라는 뜻입니다.
나발은 부자였지만 미련한 자였습니다. 고집이 세고 행실이 포악하였습니다.
4-8절 지금 다윗과 그 일행이 그 근처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600명이 넘었습니다. 그러니 먹을 것도 엄청나게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나발이 양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양을 치는 목장에서 양털을 깎는 날은 마치 농부가 한 해 농사를 지어서 탈곡하는 날처럼 큰 즐거움이 있는 잔칫날이었습니다.
거기에 다윗이 부하들 가운데서 젊은이들 열 사람을 뽑아 나발에게 보내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음식을 구해 오라는 것입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다윗의 부하들이 갈멜에서 양을 치는 나발의 목동들을 해치지 않고 도리어 산적들이나 불량배들이 양치는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 지역을 지키는 방위부대와 같은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잔칫날이 되었으니 먹을 것 좀 받아오라고 한 것입니다.
청하는 과정도 아주 겸손하게 구하였습니다.
8절에 보면, “우리가 이 좋은 날에 왔으니, 제발 당신의 종과 같은 다윗과 그의 종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먹을 것을 좀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나발이 버럭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10-11절에, “다윗이 대체 누구냐?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요즘 자기 주인을 버리고 떠나는 종들이 많다는 얘길 들었다. 내가 왜 내 빵과 물과 양털 깎는 사람들을 위해 잡은 짐승의 고기를 가져다가 출신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겠느냐?” 하며 거절했습니다.
이 말은 다윗의 사람들이 ‘주인에게서 도망친 종들의 패거리’라는 모욕입니다.
그러니 그런 근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귀중한 고기를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돌아온 다윗의 부하들이 다윗에게 보고 들은 말들을 전하자, 다윗은 분노하여 부하 중 400명에게 “각기 칼을 차라”고 하면서, 자기도 칼을 차고 나발의 집으로, 그리고 나발의 생업이 있는 갈멜의 목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이는 그 집에 있는 모든 남자들은 다 칼로 죽여 이 모욕을 당한 일에 대한 보복을 하려 는 것입니다.
세상에 ‘미련한 나발’입니다. 지금 대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세상이 다 알고 있습니다. 왕인 사울도 알고, 왕의 아들 요나단도 알고,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윗이 왕이 될 것을 다 아는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1절에서 사무엘의 죽음을 기록해 놓은 겁니다.
사무엘의 사명은 왕을 세우는 데까지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웠고, 다시 다윗을 왕으로 세움으로 그의 사명은 다하는 것입니다.
아직 즉위식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다 아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미련한 사람, 나발만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동안 다윗의 군대를 통해서 안전하게 양을 치며 살았습니다.
잔치하는 날이니 일부러라도 초대하여 대접해야 합니다.
그런데 찾아온 손님들을 근본도 모르는 ‘주인에게서 도망친 종들의 패거리라’는 모욕을 하였습니다.
결국 다윗이 400명의 군사들에게 “각기 칼을 차라”고 하면서, 자기도 칼을 차고 나발의 목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12-13)
그런데 나발의 집에 총명한 종이 있었습니다. 14절~17절을 봅니다.
결국 나발의 가문이 몰살을 당할 위기에서 하인 하나 때문에 살아나는 겁니다.
아람 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이 나병으로 죽어갈 때 이스라엘에서 잡혀 온 여종 하나 때문에 살아난 것과 같은 겁니다.
애굽의 바로의 친위 장관 보디발의 집에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 요셉이 들어오니 그의 가문이 번창하고, 나라가 번창을 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복입니다. 이런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지혜로운 나발의 종이 한걸음에 안주인에게 달려가서 이 상황을 보고 드린 겁니다.
“큰일 났습니다. 마님, 지금 이러고 저러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편안하게 양을 칠 수 있었던 게 다윗이 우리에게 잘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들에서 양을 칠 때, 그들은 한 번도 우리를 괴롭힌 일도 없고, 양 떼를 훔쳐 간 일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밤이나 낮이나 우리를 성벽과 같이 잘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러니 다윗에게 사례를 하는 것은 하인들이 보아도 정당한 일인데 주인님이 그들을 한낱 ‘주인에게서 도망친 종들의 패거리라’는 모욕을 하여 보냈으니, 이제 주인님의 가문이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17절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마님께서 빨리 생각하셔야 합니다. 다윗은 주인님과 온 집안을 치러 올 것입니다. 주인님은 하도 성미가 불같아서 아무도 말도 못 붙입니다.”
하인들은 아비가일은 말이 통한다고 생각하여 아비가일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비가일은 참으로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그 한마디에 상황을 다 판단한 것입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청년들은, 이런 지혜로운 여인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집사님들은, 이런 지혜로운 여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여인 하나가 사람을 만들어 냅니다. 이런 여인 하나가 가문을 세웁니다.
이런 여인이 있어야 교회도 부흥이 됩니다.
아비가일은, 우리나라의 호동 왕자에게 “낙랑공주”와 같은 여인이었습니다.
아비가일이 서둘러 빵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이미 요리하여 놓은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뭉치 백 개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여러 마리의 나귀에 싣고, 자기의 일꾼들에게 “나는 뒤 따라갈 터이니, 너희가 앞장서라”고 말합니다.
아비가일은 남편 나발에게는 알리지 않고 급히 서둘렀습니다.
자기 남편은 말이 통하지 않는 이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풍성한 선물로 다윗의 마음을 풀었습니다.
선물은 사람의 마음을 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야곱도 에서의 마음을 풀기 위해서 풍성한 선물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때에 맞는 선물을 잘할 줄 알아야 합니다.
20-22절
벌써 다윗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그 여인의 맞은편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나귀를 타고 산굽이를 돌아내려 가는 아비가일이 그들과 마주쳤습니다.
다윗은 나발에 대해서 복수하고자 단단히 벼르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나발을 공격하러 오기 전에 이미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자신이 저 광야에서 그에게 속한 것은 무엇이든지 지켜주어, 그의 모든 재산 가운데서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보호하였으나, 그것이 모두 헛일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나발이 다윗에게 “선을 악으로 갚았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까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남자들을 하나라도 남겨 둔다면, 나 다윗은 하나님께 무슨 벌이라도 받겠다.”며 복수를 다짐하고 오는 길입니다.
그렇게 오는 길에 아비가일을 만난 것입니다.
23-25절
아비가일이 다윗을 만나자마자 급히 나귀에서 내려서, 다윗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에, 아비가일이 다윗의 발 앞에 엎드려 애원하였습니다.
그는 먼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였습니다.
죄는 바로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 자신에게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종이 말씀드리는 것을 허락해 주시고, 이 종의 말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장군께서는 나의 몹쓸 남편 나발에게 조금도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그 사람은 정말 미련한 자라는 뜻의 나발이라는 이름 그대로, 못된 사람입니다”라고 합니다.
“이름도 나발인데, 하는 일도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다가 “장군께서 보내신 젊은이들이 왔을 때는, 자신이 거기에 있지 않아서, 그들을 만나지도 못하였다”라고 사과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이 잘못했을 때 잘못을 인정하는 자입니다.
진실하고 겸손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자입니다.
26-28절
아비가일은 “다윗 장군께서 사람을 죽이시거나 몸소 원수를 갚지 못하도록 여호와 주님이 막아 주셨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장군님의 원수들과 장군께 해를 끼치려고 하는 자들이, 모두 나발과 같이 되기를 망하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그녀는 하나님이 나발을 심판하실 것이니 다윗 스스로 복수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다윗과 같이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니 다윗에게 원수에 대해서 복수하시는 하나님을 믿도록 믿음을 심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선물들은 장군님을 따르는 젊은이들에게 나누어 주시라고, 내가 가져온 것이니 이 종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기 바란다”라고 하며, “장군께서는 언제나 하나님을 위한 전쟁만을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장군님의 집안을 영구히 세워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장군께서는 사시는 동안, 평생토록 아무런 재난도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최고의 칭찬을 하는 겁니다.
29-31절
“사울 같은 자가 일어나서 장군님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일이 있더라도, 장군님의 생명은 장군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이 생명 보자기에 싸서 보존하실 것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나발은 심판 하지만 다윗은 보호하실 것이라”는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장군님을 거역하는 원수들의 생명은, 주께서, 돌팔매로 던지듯이 팽개쳐 버리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사울이나 나발은 반드시 멸망 당하고 장군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주실 것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아비가일은 참으로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현실을 보고, 미래를 볼 줄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을 알아보는 믿음의 눈이 있었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녹이는 지혜로운 말을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다윗이 들으니 ‘세상에 어떻게 이런 여인이 있을까?’하는 겁니다. 다윗이 이 지혜로운 여인의 말을 듣고 마음을 돌이킵니다.
32,33절
다윗은 지혜로운 아비가일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미련한 남편 나발은 아비가일의 말을 받아들일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지혜로웠기 때문에 아비가일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원수를 갚지 말라고 한 말은 맞는 말입니다.
다윗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오늘 그대를 보내어 이렇게 만나게 하여 주셨다고 합니다. 다윗은 좋은 동역자를 주신 주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비가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둘의 마음은 통하였고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마음은 서로 통합니다.
다윗은 내가 오늘 사람을 죽이거나 나의 손으로 직접 원수를 갚지 않도록, 아비가일이 나를 지켜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슬기롭게 권면하여 준 아비가일에게도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대에게 복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보았습니다. 그는 아비가일의 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은 왕이 되게 하시며 나발은 복수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 편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합니다.
마리아는 처녀가 임신하여 메시야를 낳는다는 수태고지를 듣고 갈등할 때, 그의 사촌 엘리사벳이 하나님 편에서 이 사실을 바라보도록 마리아를 도왔습니다.
나중에 메시야의 어머니가 되었을 때를 중심으로 지금을 보도록 도왔습니다.
이렇게 믿음을 갖고 하나님 편에서 보도록 돕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잠 25:11) “경우에 맞는 말은 쟁반 위에 금사과 같이 아름답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비가일은 쟁반 위에 금 사과 같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결국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그 선물을 받고, 나발을 용서하였습니다.
34~35절
다윗은 아비가엘에게, 무죄한 자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못하도록 자신을 막아 주신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만약 아비가일이 급히 와서 이렇게 나를 맞이하지 않았더라면, 나발의 집안에는 내일 아침이 밝을 때까지 남자는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 뻔, 하였다고 하며 가져온 것들을 받고서, 아비가일에게 평안히 집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대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건이 여기서 끝나지를 않습니다.
36-38절
아비가일이 돌아와 보니, 나발은 왕이나 차릴 만한 술잔치를 베풀고, 취할 대로 취하여서, 흥겨운 기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발은 죽을 줄 모르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미련한 돼지 같은 자였습니다.
보통 여자 같았으면 “이게 무슨 짓이냐?” 삿대질을 하고 난리를 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은, 술에 취한 남편을 상대하지 않고, 다음 날 아침이 밝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이 되어 나발이 술에서 깨었을 때,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모두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나발이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심장이 멎고, 몸이 돌처럼 굳어졌습니다. 그리고 열흘쯤 지났을 때, “주님께서 나발을 치시니” 그가 죽었습니다.
아비가일의 말대로 주의 종을 홀대한 나발을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 소식이 다윗에게 들어갔습니다.
39절 나발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다윗이 주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나발이 나를 모욕하였으나, 주님께서 그 원수를 갚아 주셨다고 합니다.
다윗이 직접 무슨 악을 행하지 않게 막아 주셨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나발이 저지른 죄악을 나발의 머리로 돌려보내 주셨습니다.
다윗은 나발의 죽음을 통하여 아비가일에 대한 감사가 있었습니다. 아비가일이 말할 때 이미 다윗은 아비가일과 마음이 통하였습니다. 다윗은 즉시 아비가일을 자기의 아내로 삼으려고, 그 여인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기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아비가일은 남편이 죽었으므로 다윗의 아내가 되는 것은 합법적입니다.
40-42절
다윗의 종들이 갈멜로 아비가일을 찾아가서 다윗이 아내 삼고자 하는 그 뜻을 전하였습니다. 아비가일도 지혜로운 왕 다윗을 사모하였습니다.
아비가일이 일어나, 얼굴이 땅에 닿도록 절을 한 다음에 말하였습니다.
자신은 기꺼이 그분의 종이 되어, 그를 섬기는 종들의 발을 씻겠다고 합니다.
아비가일이 일어나서, 서둘러 나귀를 타고 길을 떠나니, 그 뒤로 그 여인의 몸종 다섯이 따라나섰습니다.
아비가일은 이렇게 다윗의 시종들을 따라가서, 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같은 사람들이 서로 만나게 하십니다.
우리가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면 지혜로운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아비가일과 같은 지혜로운 사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런 아비가일과 같은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서 왕이신 주님께 복되게 쓰임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지혜로운 한 사람의 말이 400명의 군사보다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비가일과 같은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지혜로운 말을 해야 합니다.
때에 맞는 선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상황을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게 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현재와 미래를 정확히 바라보게 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게 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주님은 반드시 아비가일과 같이 사용하실 줄 믿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