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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역사스폐셜 자료]한반도 첫 귀화인의 등장! |
2천 년 전,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가 가야국에 도착한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 문명과 문명 만남을 가능케 한 한국 최초의 국제결혼. 바로 가야국 김수로왕과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만남이었다. 남자의 성을 따르는 관습을 탈피해 10명의 아들 중 두 명에게 자기의 성을 따르게 했던 허황옥. 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떻게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될 수 있었을까? | |
▲ 가락국시조 왕비 보주태후 허황옥(許黃玉)영정 |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바다를 건너올 때 싣고 온 파사석탑(婆娑石塔) |
우리 역사 속에 스며든 베트남 출신의 ‘화산 이씨’ |
1010년 하노이를 수도로 세운 안남국(지금의 베트남) ‘리왕조’는 200년 동안 번성했던 최초의 독립 왕조였다. 하지만 진씨 왕조가 창립되자 리왕조는 멸망한다. 이 때 리왕조의 8대왕 혜종의 숙부이자 군총수였던 이용상은 배를 타고 3,600여km 떨어진 서해안 황해도 옹진반도의 화산으로 탈출한다. 그리고 1226년 고려로 귀화한 이용상은 몽골군의 잦은 침입에 맞서 전투를 지휘하게 되는데... 이에 고려 고종은 이용상의 공을 크게 인정해 본관을 화산으로 하는 이씨 성을 하사하고, 고려의 위기를 막아낸 명장 이용상은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 |
▲화산 이씨 종친회 모임 | ▲화산 이씨 중시조 이용상(李龍祥) |
일본군 선봉장 사야가, 조선 장군으로 변신하다 |
1592년 선조 25년 4월. 일본 장수 가토 기요마사의 좌선봉장으로 전투에 참가한 22살의 ‘사야가(沙也加)’. 그러나 그는 돌연 조선에 투항해 귀순의 의사를 밝힌다. 귀순한 ‘항왜’ 사야가는 경주, 울산 등지에서 일본군의 침공을 막아내고, 조총과 화약 제조법을 조선군에게 전수한다. 자원하여 조선 사람이 되고, 전장에서 자신의 조국 사람들과 싸웠던 일본인 사야가는 그렇게 조선인 ‘김충선’으로 다시 태어난다. 일본군 선봉장이었던 사야가. 그는 왜 조선이라는 적대국에 귀화하여 조국인 일본에 대항했던 것일까? |
▲조선인 김충선(金忠善, 1571~1642)으로 다시 태어난 사야가 |
한반도는 이미 다민족 국가였다! |
삼국시대 이전부터 정치적 망명, 피난, 정략결혼 등을 원인으로 한반도에 귀화인들이 등장했다. 중국과 접해 있어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성씨들이 많았고, 일본, 몽골, 베트남, 아랍 등 다양했다. 특히 귀화 정책이 가장 개방적이었던 고려 초, 100년 동안 무려 20만 명 가까이 귀화했다. 당시 고려 인구가 210만이었으니 10%에 달하는 적지 않은 숫자다. 고려는 문화적인 면과 사람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고려는 어떠한 이유로 이방인에 대한 적극적이고 호의적인 귀화 정책을 펼쳤던 것일까? |
첫댓글 ★(이 글 퍼왔는데 읽어들 보시지요)★☞ 정신 차려욧.. 나라가 아시아 범죄소굴로 가고있어욧!! 아시아 부랑아,빈민들만 벌떼 처럼 끌어와서 지원금 주고...그것도 부족해서 이제는 아이큐 70 이하의 외국의 정신 지체자들까지 귀화시험 면제시켜서 한국사람 만들자는 정책,,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가겠다는건지..선진국들이 나라 망치는 정책이라고 포기한 실패한 다민족 정책을,,외국에 수준있는 사람들은 안들어오고.. 이명박 정부.. 너무 한심해 죽겠어욧..지금은 초창기라 그렇지..10년 20년후 시골 농촌에 동남아 사람들이 들끓고 그 혼혈들도 도시로 또 나올려구 할테고...으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