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하운
고은
1940년대 다 저물어
중학교 2학년 때
저문 길 어둑어둑한 길
십리길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터벅터벅
미제 네 거리 다 들어올 무렵
어둔 길 한복판
눈에 번떡 뭣이 있었다.
가슴이 철렁
가슴이 설레어 주워 들었다.
책이었다.
시집이었다.
한하운 시집이었다.
가도 가도 황톳길……
집에 가서 밤새 읽고 또 읽었다.
조영암이라는 사람의
뒷글도 서너 번이나 읽었다.
최영해라는 사람의 것도 읽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한하운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문둥이로 떠돌았다.
그날 이후 나에게는 온 세상이 황톳길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시인이었다. 서러운 서러운 시인이 되었다.
우선 몇 년전에 있었던 고은 시인의 성 추문에 대한 것은 논외로 하겠다.
다만 그가 시에 대한 입문 계기가 한하운(韓何雲, 1919~1975)) 시인이었다는 점이 나와 같았기에 마음이 머무는 시로 골랐다.
나 또한 중학교 시절 쓰던 일기장 사이사이에 인쇄된 시 중 한하운의 대표시인「전라도길」에 유독 눈이 갔고 그때부터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찬란했던 사춘기의 방황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천형(天刑)의 시인, 불운(不運)의 시인.
시인 한하운 앞에 으레 붙는 수식어다. 문학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시인 한하운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그가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한센병(=나병,癩病. 요즘은 순화언어로 ‘한센병’으로 칭함)이라는 굴레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시작을 감상할 때 보이지 않는 연민을 더하여 감상하게 되며 그 과정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한하운이 활동하던 시기 그의 시작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냉혹했다.
한하운은 한국시단(韓國詩壇) 70년사에서 독보적(獨步的)인 나병시인이다. 그의 시가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자 평단(評壇)에는 이론(異論)이 분분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의 시는 천편일률적으로 신변 애화(哀話)를 시의 형식을 통해 읊었다는 것과 푸념을 시로써 대변하고 있는, 즉 웅변조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 김창직, 「가도가도 황톳길」, 지문사, 1982
물론 그의 시작(詩作) 상당 부분이 자신의 지병에서 오는 고통과 비애를 시로 승화시킨 것임에는 부인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시 전반이 시적 구성요소에 결격사유가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지는 의문이다. 그의 시 조차 결국 한센병이라는 굴레에 집어넣어 놓고 평가해야 하는 것일까?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시적 이해를 다른 방법으로 모색할 수는 없을 것인가? 노벨 문학상 후보에 거론될 정도로 자타가 위대한 시인이라고 일컫는 고은 시인이 중학 시절 길가에서 우연히 주운 한하운의 시집을 읽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하였다는 일화나 시인 김지하, 신경림, 박노해 등의 시도 한하운의 시와 유사하거나 연상되는 부분이 있어 무의식중에 한하운 시인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하는 의견이 있을 정도로 그의 시작에 대한 평가는 절하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하운을 알고 제일 먼저 습작을 한 것은 시가 아니라 스무 살 무렵에 썼던 소설이었다. 한센병에 걸린 남자의 사랑 이야기에 관한 것이었는데 초반을 쓰다가 홀로 소록도에 발을 들였던 이후로 더 쓰지 못했다. 상상 속의 한센병 환자와 현실의 한센병 환자와의 괴리가 너무 컸던 탓이었다. 그들의 한을 글로 표현하기엔 내 필력이 한없이 모자랐었다.
이후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여 늦깎이로 졸업한 방송통신대학교 졸업 논문을 「한하운의 시 변화 모습과 자기 치유의 열망」으로 선택하여 얼마 있지도 않은 각종 관련 서적과 논문을 탐독하며 그의 작품세계와 한의 승화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보기도 했다. 물론 논문은 만점이었다.
한하운의 본명은 한태영이다. 한센병 투병과 실연을 거듭하면서 스스로
이름을 ‘덧없는 구름’, ‘뜬구름’이라는 뜻의 ‘하운(何雲)’으로 바꾸었다.
나 하나 어쩔 줄 몰라 서둘리네
산도 언덕도 나뭇가지도
여기라 뜬 세상
죽음에 주인이 없어 허락이 없어
이처럼 어쩔 줄 몰라서 서둘리는가
매양 벌려둔 저 바다인들
풍덩실 내 자무러지면
수많은 어족들의 원망이 넘칠 것 같다.
썩은 육체 언저리에
네 헒과 균(菌)과 비(悲)와 애(哀)와 애(愛)를 엮어
뗏목처럼 창공으로 흘려 보고파……
아 구름 되고파
바람 되고파
어이 없는 창공에
섬이 되고파.
- 한하운, 「하운(何雲)」 전문
57세의 짧은 생을 구름처럼 살다가 간 시인.
나를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해준 시인.
그래서 내 아호(雅號)도 ‘하운(何雲)’이다.
첫댓글 하여 아호가 하운이군요
하운 선생님ᆢ시산의 기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