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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해 아래의 인생, 해 위의 인생(김현정)
[전1:2-3]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지혜문학이라고 하면 _ 욥기, 잠언, 전도서 이렇게 3가지 책이다.
그중에서 이 욥기라고 하는 책은 우리가 지혜문학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어려워요. 욥기에서 지혜를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지혜를 찾으라고 가르쳐주는 말씀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욥기는 읽으면 그저 욥이 이렇게 고난당했다. 세 친구들이 와서 논쟁을 하는데 도저히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도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못 깨닫는, 어려운 책이 욥기라고 하는 책이다. 그런데 그 속에 하나님의 지혜가 가득하게 들어 있다는 것이다. 왜냐면, 욥기는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설명하고 있어요.
욥기 1장부터 보면 마귀란 놈이 하나님 앞에 나와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모여 있는 거기에 찾아와 가지고 욥을 헐뜯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럼 너 한번 욥을 시험해봐라 이렇게 해서 욥의 엄청난 고난이 찾아옵니다. 그렇게 해서 재산 다 잃어버리고 자녀들이 10남매가 다 죽고 이런 참 불행한 일들이 이렇게 생겼는데 욥은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거예요.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아무리 내가 생각해봐도 하나님 앞에 뭐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내가 이런 일이 생겼는가?
근데 욥의 세 친구들이 온다. 엘리바스라고 하는 친구가 <네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으니까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느냐, 세상에 죄 짓지 않고도 망한 사람이 어디가 있느냐> 그러니까 우리에게 이런 재난이 닥쳤다고 하는 거는 배후에 반드시 죄가 들어있다 말이죠. 빌닷이라고 하는 친구는 <네가 죄가 없다고 자꾸 그러는데 그러면 네 자식들이라도 죄를 짓지 않았겠느냐. 그러니까 자식들의 죄를 회개해야 된다. 자식을 잘못 가르친 것 이것도 얼마나 큰 죄냐> 하고서 회개하라고 촉구하라 한다. 그런데 그것도 욥이 생각해볼 때는 자기에게 합당치가 않은 얘기예요. 그래서 자기는 <죄가 없다. 나는 하나님 앞에 깨끗하다. 내가 얼마나 더 깨끗하냐?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뭘 잘못했다고 생각되는 게 하나도 없어. 그런데 이렇게 잘못됐다고 하는 나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오히려 나보다도 더 잘못된 것 아니겠느냐> 이런 지경까지 나가게 되는 거죠.
그리고 이제 둘째, 나오는 책이 잠언이라고 하는 책인데
잠언은 <우리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지혜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 인간이 가장 많이 유혹받는 게 무엇이냐? 먼저 부모의 그 교훈을 잘 새기고 지켜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라> 이런 말로 시작을 해가지고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지혜를 구하고 살아야 된다. 입술을 지켜야 된다. 말과 행동을 다 조심해야 된다. 이런 거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는데 이 책은 그런대로 이해하기가 쉬운 책입니다.
지혜문학의 마지막 결론 부분에 있는 책이 이 전도서라고 하는 책이에요. 근데 전도서는 솔로몬이 이거를 썼다 이렇게 자기 이름을 솔로몬이라고 가르치지 않고 전도자가 가로되 그렇게 설명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 전도자라는 게 뭐냐, 전도서라고 하는 건 뭐냐 솔로몬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이 인생의 지혜를 설명하고 있는 거라 말이죠. 킹제임스는 그렇게 설명하고 NIV 성경은 preache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설교자가 가로되 그러니까 이게 솔교자의 책이고 또 스승의 책이다. 지혜서의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이런 책이다.
그런데 책에서 중점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게 뭐냐? 이것이 오늘 읽은 2절과 3절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헛되다 라고 하는 말을 5번이나 반복해서 말합니다. 인생이라는 게 뭐냐? 허무한 거다. 그러니까 지혜는 뭐냐? 인생이 헛되다고 하는 것을 깨닫는 데에서 지혜가 출발한다고 하는 거죠. 그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지혜가 없는 사람이에요. 지혜의 문턱에도 들어서지 못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허무하지 않은 것이 뭐냐를 차지해야 될 거 아니에요. 이것이 지혜의 길인 것입니다.
이 전도서가 말하는 지혜라는 건 뭐냐? 지혜는 인생의 허물을 깨달아라.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출애굽기 3장 16절의 모세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하나님은 자연이잖아요. 하나님은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이 자연 만물이 돌아가는 걸 보면서 이것을 돌리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야 하나님은 우리 육신의 눈에는 볼 수도 없고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고 그랬으니까 보려고 생각하지도 말고 그래야 되는데 이 자연 만물을 보면서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통치하고 계신다 이런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복된 사람이라고 하는 거죠. 자 이것이 이제 전도서에서 가르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 것에 마음 뺏기지 말고 그런 것에 얽매이지 말고 그게 많으면 좋은 게 아니다. 그런 거 다 버려라. 솔로몬처럼 큰 부귀영화를 누리고 하고 싶은 걸 다 해본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말년이 되어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나니까 그 모든 것이 헛되다 말이죠. 그래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인생은 헛된거라 그래서 그거를 뭐라고 표현했느냐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가 헛된 것이다. 전도서의 결론입니다. 12장에 맨 끝에 가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그러므로 어떻게 해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이렇게 가르치거든요.
목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거죠. 목사가 설교하는 것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돼야 해요. 100% 하나님의 말씀이래야 돼. 거기에 단 1%라도 거짓이 섞여 있으면 안 된단 말이죠. 그러면 거짓 증인이 되는 거죠. 9계명을 어기는 거가 돼요. 거짓된 지식, 잘못된 지식, 심지어는 강단에서 노골적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떠드는 놈이 있지를 않나 동성애를 지지해야 된다고 가르치는 놈이 있지를 않나 여하간 별별 악인들이 오늘날 세상에 가득합니다. 저들이 하나님 앞에 가서 얼마나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인가?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이 된다고 하는 거는 사실은 굉장히 두려운 일이에요.
이 마지막 때에 우리 하나님 앞에 지혜롭고 충성된 종들이 되어야 하는데
예수님만이 오셔서 이 길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잖아요.
첫째는 위로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해라 이것이 헛되지 않은 세상이다 / 그리고 둘째계명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해라 이렇게 사랑하면 거기에는 헛되지 않은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거예요.
어떡하면 하나님과 동행하느냐? 그거는 하나님이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면 우리는 해 아래에서 사는 인생이 되지 아니하고 해 위에서 사는 인생이 된다. 우리는 보람이 없는 헛된 세상에 사는 인생이 아니고 우리는 보람이 있고 헛되지 않은 보람을 갖춘 그러한 사람으로 살게 된다. 이것이 이 전도서가 지혜서가 가르쳐주는 참 지혜의 내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지혜서의 마지막 책인 전도서를 통해서 헛되고 헛된 세상에서 우리는 헛되지 않은 길을 찾아가자. 영원한 행복을 찾고 참 생명을 찾고 잃어버렸던 낙원을 찾아가고 그래서 낙원보다 더 좋은 천국을 찾아서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 살아가는 이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하는 것입니다. 이 복을 다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인 소감 글 _ 지혜서가 말하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허무하고 길을 잃었다는 결론으로 내려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인생들을 구원하시고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고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오늘도 갈팡질팡하는 인생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계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욥과 같이 신실한 사람에게도 시험이 닥치는 모습을 볼 때 늘 깨어있어야겠다. 그리고 시험이 닥쳐와도 실망하고 낙마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공동체와 더불어 하나님을 신실히 붙잡고 서는 것이 삶의 지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있게 듣고 잘 배우고 갑니다.^^
10. 영의 세계를 보는 사람
[왕하 6:14-19]
14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15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18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19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그들을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선지자는 어떤 사람이라야 되느냐?
선지자는 영안이 열려진 사람입니다. 세상에 인간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적군들밖에는 안 보여요. 육신의 사람들밖에는 안 보입니다. 그렇지만 선지자는 영의 사람들을 봅니다. 영의 천사들을 봅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천사들이 지키고 있다고 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어요. 어린아이들에게는 그들의 천사들이 있어서 밤낮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느니라 어린이들에게는 천사들이 있대도. 그런데 그 천사가 어린이들의 눈에도 안 보이고, 부모의 눈에도 안 보이고 안 보이는 거죠. 부모가 의롭게 살고 경건하게 살고,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살아가면 천사들이 어린이를 떠나지 않고 지켜줍니다. 그래서 이 어린이를 안전하도록 만들고 혹시 어린이를 해하려고 하는 악한 무리가 있으면 이 천사들이 인도하고 역사해가지고 그들이 해하지 못하도록 막아줄 뿐 아니라 또는 부모나 누구 가까운 사람들에게 알게 하여서 미리미리 방비하도록 이렇게 지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라면서 죄를 짓고 하나님 떠나게 되면 천사들도 떠나고 보호막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되는데 우리도 내가 나도 어렸을 때에는 천사들이 지켜주고 있었다. 예수님을 믿었거나, 안 믿었거나, 천사들이 지켜주고 있었는데 내가 자라면서 죄를 지어 천사들이 떠나고 말았다. 이런 것을 우리가 깨닫고 돌이켜서 죄 짓는 생활을 하지 말고 주님께 은혜를 구해서 천사들이 다시 지켜주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며 보호를 받으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위대한 인물들은 첫째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이다.
또 하나님을 친히 본 사람이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너는 내가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명령하셨어요. 이삭에게도 마찬가지, 야곱에게도 마찬가지 야곱에게는 꿈속에까지 나타나셔서 이렇게 지시하시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요셉에게도 이렇게 어려서부터 꿈을 잘 꾸고 해몽도 잘하고 이렇게 하는 은사를 주시고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이렇게 했습니다. 모세는 호렙산에 올라가서 여호와의 사자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그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시고 인도하시고 또 하나님의 계명들을 내려주시고 이런 놀라운 일들을 다 이루시지 않았습니까?
이런 역사는 다윗에게도 나타나고 모든 선지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엘리야 물론 말할 것도 없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사의 이야기도 여기에서 한 치도 착오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참된 종들에게는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서 자신을 보여주기도 하시고 또 음성을 들려주기도 하시고 그래서 바른 길을 가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들인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눈이 열려야 할 것인가 첫째는 우리는 천국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돼요.
그래야 천국을 가르치고 지옥을 가르치죠. 지옥도 보면 좋겠는데 사실 지옥은 안 봐도 좋아요. 천국을 잘 보는 사람이 돼야지. 지옥만 보고 천국은 못 본다. 천국의 아름다움과 영광스러움을 보면 이 세상사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걸 알죠. 이 세상의 부귀영화도 아무것도 아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황금도 진주 보석도 끝까지 거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거에 다 마음 뺏기지 말고 정말 하나님 나라 저 천국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일에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이런 마음이 새롭게 들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는 하나님을 봐야 되겠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 또 하나님의 심판을 볼 수 있는 사람 이것이 지옥입니다. 그러니까 천국도 보고 지옥도 보고 하나님의 심판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리면 이 세상에서도 죄 짓는 사람이 어떻게 심판을 받는지 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신단 말이죠. 그래서 악을 행한 자들은 종말이 비참하고 불행해져요.
또 우리는 그리스도를 볼 줄 아는 사람 돼야죠.
더 나가서 우리가 성경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지금 마지막 때가 되니까요. 이제는 사람들이 책을 안 읽어요. 그래서 일반 책들도 보지 않는데 더구나 성경책을 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성경책은 세상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데 성경을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너무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여러분들의 눈이 열려서 성경을 열심히 읽으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또 봐야 되느냐? 자기 자신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돼야죠.
베드로도 처음에는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이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살던 사람이었지만, 고기잡이 이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이런 기적을 체험하게 되니까 드디어 자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폭 엎드리지 않았습니까?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으로소이다. 눈이 열렸습니다. 자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 사울이라고 이름 하던 젊은 때에는 그가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고 하는 일에 앞장서서 이렇게 정신없이 뛰어다녔지만, 다메색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이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살펴볼 줄 알고 자기를 보았더니 세상에 나 같은 죄인이 큰 죄인이 없구나. 그래서 내가 죄인 중에도 괴수로다 하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자기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돼야지 사람이 겸손해집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지 신령한 눈이 열려질 수 있을까?
옛날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살 때에는 하나님이 동산에 건이실 때 그의 음성만 들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직접 만나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됐습니까? 신명기 29장 4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을 하세요.
이 백성들이 보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은 아직 받지를 못했다.
타락했기 때문에 이것을 상실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의 눈도 소경이 되었고 우리의 귀도 막혀서 귀머거리가 되었고, 덩달아서 우리의 입도 이게 벙어리가 되어서 하나님 말씀은 전할 줄 모르고, 세상 마귀의 소리를 좋아하고, 마귀의 말은 잘하고 악한 말은 잘할 줄 알아도 하나님 말씀은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 진실한 회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해야 하겠습니다. 기도해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셋째로는 뭘 해야 되느냐 우리가 성경을 많이 읽어야죠. 성경을 읽으면서 그냥 읽지만 말고 하나님 깨닫게 해주세요. 이 말씀의 뜻을 알게 해 주시옵소서 간절히 사모하면서 기도하면서 이 말씀을 읽어나가는 가운데 우리의 눈이 열려져야지 하겠습니다.
듣고 적으며 느낀 개인 소감 글 _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미래를 내다보고 예측한다고 할 때 사람의 인식에는 하나님의 사람이 먼저 떠오르기보다는, 점쟁이, 박수, 무당 같은 귀신을 업은 사람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고정된 생각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이런 것을 추구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말씀을 듣고 작성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죄로 인해 떨어져 지내면서 참 많은 것을 잃었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히려 사탄의 무리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좋은 많은 것들을 자기들의 전술에 악용하여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게 쓰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성경에 많은 선지자들과 같이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삶을 더 간절히 붙잡게 됩니다. 진실한 회개를 동반하여 말씀과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우리의 소망이요 희망임을 고백합니다. 말씀으로 이끄셔서 도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김현정 전도사 드림.
의협심이 불타는 사람
오늘 말씀은 출애굽기 2장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의협심이 불타는 사람> 하나님이 쓰시는 선지자란 어떤 사람이냐? 출애굽기 2장 11절에서 20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모세에게 두 가지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첫째는 모세가 왕궁에서 이렇게 왕자로서 호화롭게 살아가다가 도망을 쳐가지고 멀리 위대한 땅까지 같습니다. 위대한 땅에 갔는데 목이 말라서 우물가에 앉아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여자 목자들이 와가지고서 이제 물을 길어서 이렇게 한 모금 얻어먹고 그러고 있었겠죠.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남자 목자 녀석들이 와가지고서 여자들을 밀쳐내고 지네들 먼저 해야 되겠다고 그러니까 이 목자들은 물을 길어가지고 양이나 뭐 이런 것도 먹이지만 특별히 낙타들 이렇게 해서들 물을 먹이고 있는데 남자들이 와가지고 여자를 밀어내고서 자기네들이 먼저 짐승들에게 먹이겠다고 하니까 여자들은 뭐 힘이 없으니까 어떡하겠어요?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데 모세가 이거를 보니까 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거예요. 이래가지고서는 남자들을 야단치고 이렇게 하고 여자들이 먼저 이렇게 짐승들에게 물을 먹일 수 있도록 하고 이렇게 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랬더니 여자들이 이 모세를 보고서 우리 집에 가십시다. 그래갖고 모시고 집에 왔더니 집에서 아버지가 있다가 <오늘은 너희들이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느냐> 그러니까는 그날 하루만 그런 일이 생긴 게 아니고 그전에도 계속해서 그런 일들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럴 때마다 여자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자들에게 당하고 꼼짝 못 하고 살았는데 이날은 모세가 와가지고 도와줬기 때문에 짐승들에게 물을 다 빨리 먹일 수 있었고 그래서 집으로 일찍 들어올 수가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두 가지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모세라고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그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특징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기 민족에 대한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애족심이죠. 이것이 큰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다. 이것을 우리가 첫째로 배우지만 둘째로 이 사람에게 나타나는 더 뚜렷한 특징은 불의한 일을 볼 때에 참지 못하고 막 분노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시느냐 할 때에 불의한 일을 볼 때에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을 쓰신다.
다윗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죠. 다윗은 골리앗이 쳐들어온 곳 블레셋이 이스라엘 나라를 쳐들어 왔을 때에 그 골리앗 장군 앞에서 사람 장군들이 다 벌벌 떨고 있고 사울 왕까지도 어떻게 될지를 몰라서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에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그때에 다윗의 나이를 한 15살 정도 되지 않았을까 이렇게 계산을 하는데, 8형제, 여덟 아들 중에 위로 3명만 군대에 나갔고요. 그 아래로 5명이 줄줄이 남아 있는데 다윗은 그중에도 제일 꼴찌예요. 그러니까 20세 이상으로 군대 나갔다 그러면 위에 셋은 20세 이상이고 아래로는 20세 아래로 친다고 그래도 1살씩 차이만 치더라도 19살부터 이렇게 치면 15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나이도 어린 사람이 골리앗이 쳐들어왔는데 백성들이 벌벌 떨고 있고 장군들도 감히 나서서 싸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왕이 이렇게 해야 될까 저렇게 해야 될까 그 용감하다고 하는 사울 왕도 벌벌 떨고 있는 때에 분연이 일어나서 <내가 그놈과 싸우겠습니다. 내가 저놈을 쳐 죽이겠습니다> 하고 나섰던 그것이 다윗이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은 누구를 쓰시느냐 불의한 일을 볼 때에 분노할 줄 아는 사람 목숨을 걸고 나는 죽어도 좋다. 불의한 것은 절대로 보지 못하겠다 하고 이렇게 싸움에 나설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가깝게 읽어 봐도요. 하나님께서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 우리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 그분은 새파란 청년 때에 20대 청년의 때에 바른 소리를 외쳤습니다.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우리도 이 민주주의를 해야 된다. 그래가지고 이 옛날 이 조선이 쭉 이렇게 해온 왕이 다스리고 양반들이 다스리는 이런 사회 백성들은 거의 다 노예가 되어 사는 이런 나라가 돼가지고는 안 된다. 이 서양의 미국이나 영국이나 이런 나라들처럼 우리도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고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된다> 이걸 외쳤어요. 이거를 외쳤다가 체포당해가지고서 감옥에 들어가서 사형 판결을 받고 감옥에서 무려 한 7년 동안을 감옥살이를 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되었다가 미국과 통상을 해야 될 일이 생겨가지고 영어 잘하는 사람을 사방에서 찾았는데 영어 잘하는 사람이 없었단 말이에요. 그러다가 이승만이라고 하는 청년이 영어를 잘한다. 그걸 알아가지고 감옥에 있는 사람을 사면을 해가지고 끌어내서 너 미국에 우리나라의 특사로 가라. 이래가지고서 미국에 보냈는데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야 이분이 하는 거는 그러니까 특사로 갔습니다. 그 정권이 미웠으면 절대로 안 갔을 거예요. 그렇지만 정권이 문제가 아니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이게 첫째고요. 둘째는 그래서 의로운 마음 이것은 우리가 정말 발전하려면 이런 나라를 만들어야 된다. 미국 같고 영국과 같은 민주주의 나라를 만들어야 되겠다. 이래가지고 나타났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쓰시더라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이라고 하는 이 복음서는 10장 45절이 요절이에요. 10장 45절이 두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오셨는가 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이 전반부에서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내가 너희를 섬기려고 왔다 말씀하시죠. 그리고 섬기려고 온 것만이 아니고 또 둘째로는 내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다. 또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 그래서 10장 45절을 중심으로 해서 그 앞부분 10장 44절까지는 섬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고, 10장 46절부터 끝까지는 자기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것을 보실 때에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불의 안 보고 꼴 보기 싫다고 나도 모르겠다고 피해서 어디로 도망가고 숨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것에 항거해서 싸웠습니다. 세례 요한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불의한 헤롯왕을 볼 때에 불리하다고 잘못됐다고 외쳤습니다. 우리 같으면 아무 소리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게 몸이 편한 거죠. 그런데 왜 괜히 잘못됐다고 외치고 싸워가지고서 감옥에 갇히고 심지어는 가장 비참하게 목베임을 받기까지 하면서 그렇게 죽어야 합니까? 아마 우리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사람 별로 많지 않을 거예요. 사실 별로 많지 않은 정도가 세례요한처럼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세례 요한 비슷하게라도 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별로 많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군병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예수님처럼 섬기는 사람으로서 살아야 되는 것이고 어떻게 죽어야 되느냐 의를 위해서 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으로 죽어야 한다. 이것이 오늘 이 제목 의심에 불타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된다고 하는 이 내용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의심이 불타는 사람이 될 것인가
우리를 가르치는 훌륭한 선생님들이 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걸 자꾸 가르쳐야 된다. 둘째로는 또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래서 우리가 어려서부터 위인전을 많이 읽어야 돼요. 우리 역사상에 나타난 훌륭한 분들, 한국에도 훌륭한 분들이 수없이 많고요. 외국에도 위대한 인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분들의 이야기책을 많이 읽으면서 우리 마음이 의로운 마음으로 불타오르도록 어린아이 마음에서부터 이렇게 하도록 우리가 지켜나가야 하고 그렇게 길러나가야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룻밤에 저절로 이루어진 게 아니죠.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아야 됩니다. 어려서부터 자꾸 주입시키고 이것이 훈련되면 나중에 성인이 돼서도 우리는 절대로 남의 것 탐하지 아니하고 남의 걸 훔치지 아니하고 길에 떨어졌다고 할지라도 그거 내가 가져가려고 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어려움 당한 사람, 잃어버린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도와줄 수 있는 이런 사람으로 변화 받아야 되는데, 이것이 한걸음 더 나아가서 불의한 것을 보면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의로운 것을 볼 때에 자기 몸을 바쳐서 이것을 지켜나갈 수 있는 이런 사람으로 우리가 장성해 나가야지만 하겠습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은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에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전부 이것이 내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처럼 <내가 나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이렇게 고백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순간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면서 살아가는 복된 백성들이 되어야지만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런 은혜가 충만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개인적인 소감 글 _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정의로 분노할 줄도, 타오를 수도 있는 존재다. 그런데 이런 거룩한 분노는 갑자기 어느 날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훈련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 같은 경우 가정에서부터 자녀들 앞에서 바로 살아야하고 타인의 모범이 되며 이 근원의 뿌리는 당연히 말씀과 기도에서,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비롯된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현정 드림.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탄생
이사야 11장1절~2절
1절: 이세의 줄기에서 한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절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이사야서에는 메시아가 장차 어떻게 탄생하실 것이냐 하는 것을 설명큰 특징은 아기로 오신다 아기로 태어나신다고 하는 거를 설명하고 있어요.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을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얼굴 뵙기를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니까 동산 나무 사이에 가서 숨었어요. 결국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이렇게 쫓겨난 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죠. 하나님을 만나볼 수가 없어요. 아담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피해 피해서 도망갔던 것처럼 아담 이후의 모든 후손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 도망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란 말이죠. 이렇게 했는데 이사야 7장 14절에 메시아가 오시므로 메시아의 이름이 임마누엘 곧 우리 사람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우리를 찾아오셨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마태복음 2장에서는 동방박사들이 또 동방이 어느 나라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지만, 하여튼 먼 나라에서부터 하늘의 별을 보고 유대 땅에 메시아가 나섰다 왕이 나셨다 하는 거를 알고 먼 길을 산 물 건너 그리고 많은 위험이 있을 텐데도 무릅쓰고 이 왕을 만나보기 위해서 유대 땅까지 찾아왔다.
구원의 확신을 가졌다 그게 뭡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체험하면서 사는 거예요.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를 지나면서 지금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해 주셨구나 오늘도 이렇게 함께해주셨구나 이거를 우리가 날마다 시간마다 느끼면서 살아야 돼요. 이 사람이 임마누엘이 이루어진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사실, 임마누엘이 나에게 이루어졌느냐 안 이루어졌느냐? 임마누엘이 되었으면 구원 받은 사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을 늘 느껴 거기에 대한 감격과 기쁨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사람 이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7장 14절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거예요.
둘째, 이 아기로 태어나실 것에 대해서 설명하는 말씀이 9장 6절이죠.
9장 6절에는 아기의 이름을 쭉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먼저 설명하는 게 이 아이가 이 아기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이 정사가 대간 절 뭐냐? 영어 성경으로 보니깐 정부를 어깨에다가 메고, 정치적인 일 나라 다스리는 일 그러니까 이 아기의 어깨에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매여 있다는 거예요. 다른 말로 얘기하면 이분이 통치하신다는 말이죠. 세상을 다스리신다 그래서 주께서 다스리신다 예수님이 다스리신다 이것이 중요한 겁니다. 네 가지로 설명했죠. 첫째, 기묘한 모사요 기묘한 모사라는 말은 지혜로 통치하신다 말이죠.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다
하나님은 엄청난 지혜를 가지고 일을 하시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야 그거 참 신기하다 찬양할 것 밖에는 없다고 하는 거예요.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마라
첫째, 방법은 지혜를 가지고 통치하신다. 둘째는 능력으로 통치하신다.
셋째,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원한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아버지의 통치예요.
넷째로, 마지막으로, 하는 거는 뭡니까? 평강을 우리에게 주시는 거죠.
그래서 평강의 왕이시라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통치 방법의 목표는 평강을 주시는 것이다. 환난이 많고 그리고 여러 가지 위험한 거 많고 하루도 맘 놓고 살 수 없는 이 극한 세상에서 우리에게 참 평화를 주시려고 평화의 왕으로 우리에게 오신분이시다
이것이 9장 6절에서 보여주는 거란 말이에요.
셋째로, 나타나는 것이 오늘 본문 말씀인 11장 1절과 2절입니다.
이세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새의 족보를 타고 한 아기로 태어나신다는 거를 얘기하는 거예요. 이새의 뿌리가 누구냐 이새의 뿌리가 아브라함입니까? 더 거슬러 올라가서 그러면 아담입니까? 그런 얘기가 아니죠. 이 세의 뿌리는 하나님이시죠. 그러니까는 이 뿌리에서 가지가 하나 나왔대요 예수님은 누구시냐? 싹으로 난 거는 이새에 이새의 가지에서 나와 이새에 이 족보를 타고 나오신 분이고 근본은 이새의 뿌리인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가지다 이 가지를 히브리말로 네제르라 그랬어요. 네제르 이거를 헬라말로 번역할 때 나사렛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장의 예수님 탄생하신 얘기를 설명하면서 애굽으로 피난 가셨다가 다시 돌아와서 나사렛 동네에서 사셨네 그래서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신 예언이 이루어졌다 하고 말씀하는데 구약 성경엔 다 뒤져봐도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는 말씀이 안 나와요. 그런데 나사렛이라고 하는 이름이 이사야서에만 이렇게 세 번 나오는데 대표적인 말씀이 오늘 11장 1절에 있는 이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지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보면은 이사야서뿐만이 아니라 그다음에 나오는 예레미야 에스겔 뒤에 나오는 스가랴서 이런 데에 특별히 한가지로 나온다 싹으로 나온다 또는 이제 숨으로 나온다 이런 말씀들이 많이 나오죠.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신다 한 순이 날것인데 하면서 그분이 바로 왕이시다 이런 예언들이 쭉 나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새의 뿌리에서 나온 한가지로 우리에게 오셨다고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분이 어떻게 통치하시느냐 하는 거를 설명하는 게 이 절입니다.
이 아기위에 여호와의 신이 임하신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신다 이렇게 설명하죠. 그러면서 그 영을 설명하는 말이 그다음에 쭉 나열됩니다.
어떻게 설명했습니까? 첫째,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둘째,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첫째는 지혜 그다음에 능력 이게 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셋째로, 나타나는게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다. 예수님의 일생은 당신의 맘대로 인간적인 생각으로 이렇게 움직이는 분이 아니고 이분 위에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셔가지고,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그분을 우리 마음에 모시게 되면 그분에게 임해 있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도 오시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 나가야 는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자 할 때에 이 세 가지가 나타난단 말이죠.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권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다. 이런 영이 우리에게도 임해야지 한다. 그래서 이것이 임한 사람이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에요.
예수님은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어요. 성령에 불을 던지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간절한 소원은 우리가 성령의 불을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교회 왔다갔다 건성으로 다니지 말고 성령의 불을 받아야 된다고 하는거죠.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는 성령을 받아라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라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이렇게 가르쳐 주셨잖아요. 이렇게 하시고 드디어 제자들이 말씀을 믿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열심히 날마다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더니, 주님 떠나신 후 열흘 동안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면서 약속하신 성령을 주시옵소서. 성령을 보내주시오. 우리에게 성령의 충분히 부어 주시옵소서.
둘째는 뭐예요? 예수님의 통치가 우리에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주께서 나를 다스리신다. 주님이 나를 인도 하신다 이 기쁨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야지 하겠습니다. 셋째로는 성령 충만해서 갖가지 은사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생명의 역사가 우리를 우리에게 임해서 우리의 걸음걸음을 인도하시므로 이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큰 역사가 이루어져야지만 하겠습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들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글을 정리하면서 느낀 개인적 소감 _ 성경을 덮어놓고 믿었구나! 물론 평소에 고백하는 구절들이고 무슨 의미인지 알지만, 새로운 눈으로 다시 성경구절들을 찾아보고 묵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성령의 불을 받는 사람을 누구나 사모해야함을 절절히 느끼고 갑니다. 김현정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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