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글은 오마이뉴스(ohmynews.com)에서 퍼왔습니다.
종묘에 관한 기사에 대한 소감을 쓰는 란에서 '관심있는 사람'이란 아이디로 쓰셨더군요.
종묘에 대해 정말 깊은 이해를 가지신 분 같습니다.
무엇보다 종묘 정전에 들어선 느낌과 감동은 모두가 비슷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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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종묘, 그곳의 의미는...
종묘에 대한 단상
적막, 고요함, 위엄, 엄숙함, 이런 것들이 내가 종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상이리라. 중학교 다닐 때일 것으로 기억되는데, 소풍이었던 것도 같고, 하여튼 자세한 것은 기억할 수 없고 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나 혼자서 창경원(지금은 창경궁이라 하지만 그 당시는 창경원이라고 했다. 이 명칭의 변화는 의미 있는 일이다.) 쪽에서 종묘로 건너간 일이 있다. 그 당시는 그곳이 종묘인지도 몰랐으니까 무엇 하는 곳인지는 더욱 모를 일이었다. 나중에 종묘에 대한 사진을 보고서야 그곳이 종묘 정전이라는 것을 알았다.
눈부신 오후의 하얀 햇살 아래 주위에 산 자는 아무도 없었고 간간이 도시의 소음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 때 내가 체감했던 광활한 공간의 놀라움, 아찔한 엄숙함,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만 슬며시 물러나고 말았다. 내게 종묘는 그런 곳이었다. 내가 종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상은 그날 오후의 하얀 햇살과 적막함, 그리고 범접할 수 없는 위엄 등으로 아주 깊이 기억 속에 새겨져 버렸다.
종묘의 의미를 좀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대학 다닐 때였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의 종묘와 사직의 위상에 대해서도 어렴풋이나마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고대 동아시아의 이상적인 도시의 공간구조 모델에서, 현 임금의 거처인 정전을 중앙으로 하여 남쪽인 전면에 행정을 담당하는 조정과 관청, 동쪽인 좌측에 역대 임금의 위패를 모신 종묘, 그리고 서쪽인 우측에 토지신(社)과 곡식의 신(稷)을 모신 사직이 자리를 잡는다. 조선 왕조의 도성 한성도 이 전범을 따라 공간이 나뉘어졌다. 현대 국가의 3요소가 국민, 영토, 주권이라고 한다면 이것을 중세의 의미로 해석하면 신민, 영토, 종묘사직이라 할 것이다. 이같이 종묘사직은 주권의 표상이었다. 따라서 독립국이 아니면 독자적인 종묘와 사직을 가질 수도 없었다.
종묘와 사직은 본격적으로 유교가 동아시아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기 훨씬 이전에, 즉 중국의 한(漢)대 이전에 확고히 자리잡은 국가의 원형 개념이었다. 그것이 국가의 통치 이념인 유교와 결부되어 국체의 상징으로 강화된 것이었다.
아방궁, 그리고 종묘
며칠 전에 종묘공원에서 '입김'이라는 전위 여성 예술인 그룹의 퍼포먼스가 있었다. 일의 전말이야 내가 목격한 바가 아니니 자세히 모르지만 단편 가십기사의 내용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먼저 퍼포먼스의 제목부터가 "아방궁 (아름답고 방자한 자궁) 종묘 점거 프로젝트" 라는 지극히 자극적이고 도발적이었다. 퍼포먼스의 내용은 종묘공원 여기저기를 분홍색 치마로 두르고
여성의 자궁 모양의 분홍 풍선들을 눈에 띄게 배치했다. 그리고 어떤 명화 속의 등장인물의 얼굴 부분을 잘라 버리고 대신 그들이 현대 한국사회의 보수주의자로 낙인 찍은 유명인사(전직 대통령 등, 사실 내게도 별로 밥맛 없는 사람들이기는 하지만)들의 얼굴 사진으로 대체한 패러디 그림을 전시한다는 것이었다.
그 목적이 남성 중심의 상징인 종묘를 대상으로 하여 퍼포먼스를
행함으로써 한국의 지독한 남성 위주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대를 잇는 도구로서만 인식되던 여성의 몸에 새로운 독자적 역할을 부여한다는 등의 것이었다. 결국 퍼포먼스는 전주 이씨 종친회와 성균관 유림들에 의해 훼손되고 저지되었다고 한다.
'입김'의 퍼포먼스의 실제를 접해보지 못했으니 그 작품에 대한 판단을 내릴 입장은 못되지만 내가 일반적으로 그러한 작품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은 이렇다.
행위 예술, 포스트 모더니즘 등에 대해서
나는 변기를 거꾸로 걸어놓은 전시물에서 아무런 예술적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요즘 유행하는 행위예술에 대해서도 호기심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더구나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에 대해서도 둔감하기조차 하다. 나를 속물이라고 비난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한 예술을 이해하도록 선천적인 심미안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딱히 기억에 남을 만큼 이해와 소양의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다.
포스트 모더니즘 류의 작품을 대할 때 혼돈스러움과 난망함은 어쩔 도리가 없다. 심하게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의미를 강요 받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때도 있다. 더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미술 평론가들의 장황한 해설이다. 처음에는 이해해 보려고, 미개성을 벗어보려고 더 나아가서 지적 허영을 충족하기 위해서라도 그 난해한 평론을 읽고 또 읽어 보았다. 그래도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접할 때의 전율, 르네상스 회화의 찬탄스러움, 추사의 세한도를 볼 때의 고적함 등등 어떠한 자연스런 감성의 움직임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오직 시각만이 카메라처럼 작동하면서 무슨 암호문을 해독하듯이 쫓기는 듯한 불편한 심정으로 대상인 객체의 의미를 이성적으로 해석하려는 버릇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적 호기심이 메말라 버려서 그런지, 내 게으름 탓인지 더 이상의 시도는 포기해 버렸다. 예술은 공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자기 합리화와 함께. 그래서 얼마 전부터 생각을 고쳐 먹었다.
변기는 변기일 뿐이고, 창호지에 퀭하게 뚫어 놓은 구멍은 그냥 구멍일 뿐이라고 생각하니 그냥 편해졌다.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억지로 이해하려 하지도 않게 되었다. 타인에게 무책임한 작가의 유희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는 오만도 생겼다.
요즘의 젊은 예술
요즘의 우리 주변의 문화 현상 중에 염려스러운 것은 지나치게 경박한 풍조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풍조는 고급, 대중 문화를 가릴 것 없이 너무나 일반화되어 예술이라고 예외적으로 비껴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의 객기가 성인이 되어서도 치기로 남아 예술 행위에 자기 목소리를 주장하는 느낌을 받는다. 문학, 미술, 음악 할 것 없이 대중에 영합하기 위해, 눈에 띄기 위해 점점 더 자극적이고 요란스럽게 그리고 경쟁적으로 천박해지고 있다고 하면 나만의 과민 반응일까?
가장 손쉽게 그리고 창조의 고통스런 열정 없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숱한 패러디 작품이 행해진다는 것 자체가 이 풍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인간과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평균 이상의 지능과 재치, 간단한 손재주만으로 만들어 낸 패러디 작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예술이라는 이름의 야만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수많은 민중의 피땀으로 건축된 권력의 상징이라 해서, 산 자 보다 죽은 자를 위한 집이라 해서, 오늘날 민주주의의 가치에 맞지 않는다 해서 파괴하자는 주장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백번 양보해서 꼭 물리적인 손상을 입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피라미드가 모욕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또한 들어 본 적이 없다. 베르사이유 궁전이 앙시엥 레짐의 상징이라고 그 위상이 거부된 적을 들어 본 적이 없다.그런데 기이하게도 그와 유사한 일이 예술의 자유를 가장한 야만에 의해 이 땅에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우리는 5000년 역사의 문화민족이 아니다. 5000년 동안 운이 좋아서, 또는 억척스러워서 멸종을 면한 야만족이다. 나는 이 상태에서 우리 사회가 문화를 논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중층을 현대의 가치관으로 해석해서 마구 유린하는 이런 사회를 문명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경부 고속전철 건설 계약시 이면 조건으로 우리가 제시했고 프랑스가 대여 형식으로 반환하기로 약속했던 고서들에 관한 건을 들어보자. 그 당시 프랑스측 관계자의 이야기, "한국보다 우리가 더 잘 보존할 수 있다"는 말이 억지스럽지 않게 들리는 요즘이다. 정말 그랬을 것이다. 만약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강화도 서고에서 그 고서들을 탈취해 가지 않았다면 조선말기의 혼란과 일제 지배의 침탈, 잇따른 전란과 그 이후 역사의 빈곤한 백성의 무지에 의해서 소실되고 말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가능하다면 종묘건 위례성 백제 유적이건 우리보다 더 문화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보존하는 외국으로 반출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니까 아예 외국의 문화재 관리당국에 우리 문화재의 관리 보존을 위탁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드는 지금이다.
왜 하필 종묘인가?
종묘가 아닐 수도 있었다. 왜 꼭 종묘이어야 했는지 그 당위성을 인정할 수가 없다. 남성 중심의 종교가 유교 뿐이고 남성 위주의 상징 건축물이 종묘 뿐인 것만도 아니다. 광범위한 저변을 가진 모든 종교는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지금도 사정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은 아니다. 알다시피 가톨릭에 여사제가 없다. 개신교에 가뭄에 콩 나듯이 여자 목사가 있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다.
우리나라 유교에 있어서 종묘는 성균관과 함께 가톨릭의 명동성당과 유사한 함의를 가진 공간이다. 그런데 굳이 종묘를 지목한 것에 대해 서구문화에 대한 맹목적 편향성과 우리 것에 대한 경시가 이런 행동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서글픔이 든다. 더구나 종묘에는 남자인 왕의 신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역대 왕은 물론 왕비의 위패도 모시고 있는 곳이다.
여성을 대를 잇는 도구로만 인식했던 조선 사회에 대한 반감이었다고 한다면 이 또한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그 시대 거의 모든 문명사회는 부계 사회였다. 다른 말로 하면 중세 한반도의 조선이라는 나라만 그랬던 것은 아니고 서구의 모든 나라가 여성에 대해서는 비슷한 태도를 갖고 있었다. 영국의 성공회가 어떻게 생겨났는가? 헨리8세가 아들을 낳지 못한 첫 왕비 캐서린과 이혼하고 왕자를 얻기 위해 시녀 앤 볼린과 결혼하는 과정에서 교황
청과의 알력 때문에 가톨릭으로부터 독립한 것이 영국의 성공회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는 헌법에서 예술과 창작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래도 그 자유는 보통 사람 대다수의 상식을 넘어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일반적인 상식 또한 우리 모두 인정하고 있는 일이다. 절대로 예술의 가치를 폄하해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예술이 사회의 최상위 규범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사회든지 그 사회의 존속 유지를 위한 장치를 최상위 규범으로 설정하고 있고 이것이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의 조절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다른 개방된 공간에서 자유롭게 아방궁 퍼포먼스를 행할 수 있었고 그것이 사회 구성원 사이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도 남은 말들
행사의 주최측에서는 아방궁 퍼포먼스가 행해진 공간이 종묘가 아니라 종묘 공원이었다고 주장한다. 시민에게 개방된 공간이었다고. 그래서 문화유적에 대한 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일까? 정말 그런 것일까. 우리가 종묘라 할 때는 위패가 모셔진 정전과 그 전면의 종묘공원까지 아우르는 확대된 공간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명동성당의 공간 범위를 통상적으로 설정할 때 어느 누가 미사가 행해지는 특정 건물 그 하나만으로 이해
하겠는가? 불국사가 어찌 대웅전과 그 주변 부속건물만을 의미할 것인가?
종묘공원은 관리 부재로 인해 노숙과 시위의 장소로, 환락의 슬럼으로, 그리고 한쪽 담장을 따라 쓰레기 집하장으로 사용되는 공간이었다는 동조 그룹의 주장도 있었다. 전혀 신성스럽지 않은 공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소중한 공간이라면 왜 종묘공원이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했느냐 하는 힐난이기도 할 것이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종묘 앞을 공원으로 조성한 우리나라 행정당국의 단견이 초래한 불행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정숙해야 할 공간에서 남이 떠들어서 소란스럽다고 나도 떠들어도 괜찮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애초에 종묘공원을 그러한 상태로 방치한 우리 문화재 관리당국의 무관심과 무능력이 먼저 질책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일이다.
그러면 또 말한다. 아방궁 퍼포먼스는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았고, 문화유적에 대한 물리적인 훼손도 전혀 없는 행사인데 여기에 대한 반대는 지나친 과민반응이라고, 예술의 허구적 상상력과 현실을 혼동하는 사회적 경직성 탓을 한다. 조성모의 뮤직 비디오, 영화 JSA 파동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의 이러한 경직성에 대한 개탄에는 나도 공감하는 바가 크다. 그렇지만 아방궁의 경우는 심했다, 아니 번지수가 틀렸다는 느낌이 앞선다. 앞에서 든 두 사례는 우리 사회가 충분히 감내할 수 있고 이해 당사자가 비교적 소수이며 잘만 처리하면 건설적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종묘의 해프닝 건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라는 점에서, 그것도 아주 경박한 방법을 동원한 부정이라는 점에서 상식적인 규범의 한계를 넘는 사안이라고 본다.
차라리 일시적이고 물리적인 훼손이라면 몰지각한 인사의 소행이라고 치부하고 보수하면 된다. 그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이 사회의 일정 부분의 지지를 얻고 있는 세력이 무형적으로 가하는 문화유산에 대한 위협이다. 이런 세력이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지지를 받을 때 그렇게 조롱 받는 유적을 누가 문화 유산이라 생각할 것이며 보존의 필요성을 느끼겠는가? 한 세대 뒤에 비좁은 율곡로의 차로를 확장하기 위해서 종묘를 헐어 버리자는 주장도 나
올 법한 일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사회적 공론과 합의의 과정은 대충 생략한 채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어느날 하루 아침에 중앙청을 철거할 수 있는 배짱을 가진 우리나라가 아닌가?
과거의 삶, 현재의 가치
현대에 이르러서는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 인간은 선천적인 조건 ? 성, 신분, 인종 등 - 에 의해서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식이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물론 이것도 사회가 인정한 규범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질적으로 전체 인류 사회는 교묘한 장치에 의해 불평등한 계급이 존재하고 그것이 더욱 고착화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이룬 진보가 있다면 이념으로서의 인간의 평등에 대해서만은 절대 다수의 합의가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한번 생각했으면 하는 것은 현대의 가치관을 가지고 역사의 발전단계를 되짚어 몇 백년전의 사건과 현상을 판단하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것들이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고 해서 과거 사람의 지성을 의심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속된 말로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 헤딩을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몇 백년간의 시행착오에 의해 축적된 지적 결과물의 학습 과정을 겪어서 현
재의 우리의 지식체계를 구축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과거사에 대해서 겸손해져야 할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우리 뿐만 아니라 서구 사회에서도 여성은 인격적 주체로서 대우를 받지 못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의식은 인류 역사상 아주 최근, 20세기에 생성된 것이다. 그런 서구사회에서 중세의 궁전, 종교 건축물이 남성중심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여성단체로부터 조롱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바가 없다.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양식이 현재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폄하하거나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 당시 사람들의 현재적 진실은 있는 그대로 존중되어야 한다. 오늘날 서구 사회는 거의 완전에 가까운 남녀 평등의 상태를 이루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과거의 유산인 유럽의 많은 왕실에서 - 기사도의 나라 영국도 포함해서 - 왕자는 공주에 비해서 왕위 계승에 우선권을 갖는다. 여기 대해서는 그 쪽 사회에서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관습, 특히 여성과 혈통에 대한 관습 중에 좋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은 동성동본 금혼제는 분명히 버려야 할 악습이다. 그리고 호주제와 불평등한 상속제도 등 많은 민법상의 독소조항도 개정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개혁 작업이 우리의 과거로부터의 전승을 통째로 거부하는 것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
이다. 우리의 옛날 것이라면 왜 그 가치를 모두 부정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래야 참 예술인이고 지성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비록 고리타분한 유림들이 때때로 다수의 상식에 반하는 밥맛 없는 소리를 해대기도 하지만, 현재 진행중인 그들의 제례의식을 경멸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과거 속에서 사는 그들의 삶이고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유림도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우리 이웃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유림이 우리 사회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현저히 줄어 들었다. 유림이 그렇게 지
키려고 하던 동성동본 금혼제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 하는 지금이다. 그만큼 소수파가 된 유림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이 건전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해악을 끼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유교주의자는 모두 위선자?
페미니스트 진영에서 '유교의 가치를 받드는 사람은 속된 말로 뒤로 호박씨 까는 사람'이라는 식의 주장을 많이 제기하였다. 한국 남성이 겉으로는 근엄한 척해도 여성 접대부에 대한 음행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 그 주장의 내용이었다. 여성을 저급 인류로 치부하는 유교의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느 집단이나 그런 부류는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성에 대한 한국 남성의 이중적 태도를
모두 유교문화 탓으로 치부하는 것은 논리의 억지일 뿐이다. 성에 대한 태도는 유교문화에 대한 가치관과는 별도의 것이다.
우리는 보았다. 세칭386 신세대 정치인들의 광주 술판을. 그들이 유교문화의 가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진영에서 여성문제에 대해 진보적인 입장을 취해 왔던 인사들이었다. 한국의 비뚤어진 성 접대 문화는 유교의 탓만은 아니라 복합적인 요인에 의한 것으로 판단되며 이에 대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한국사회의 왜곡된 성문화가 유교식 가부장제의 영향 뿐만 아니라, 일제 지배하의 군국주의, 유신 개발독재 시대의 하면 된다 식의 무력 지상주의(남자다움의 강조), 그리고 서구화와 더불어 우리가 잘못 받아 들인 천민 자본주의(돈이면 못할 것이 없다는 의식) 등의 복합적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성의 상품화는 유교 사회에서만 더 지독히 진전된 것도 아니다. 근엄한 서구의 기독교 국가에서도 성의 상품화는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다만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양성적으로 진행되었고 음습함이 훨씬 덜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는 매매춘의 합법화까지 논의되고 있지 아니한가.
그래도 한 걸음 더 나간다면
우리가 우리 것을 모두 부정하면 어떻게 하나. 남들은 그리이스의 파르테논 신전에 버금가는 귀중한 유적이라고 유네스코의 세계인류유산이라 등록하여 높이 평가하는 것을 우리가 부정하고 경시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가뜩이나 숱한 전란을 거치면서 많은 문화재가 소실되어 조선 중기 이전의 건축물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이 나라에서 그나마 명맥을 잇고 있는 역사적 유적들을 이렇게 핍박하면 어떻게 하나.
종묘는 과거의 공간이 아니다. 아직까지 현재적 의미를 잃지 않고 있는 공간이다. 외국의 관광지에서 보는 것처럼 관광객을 위한 가장의 의식이 아니고 정말 종묘제례가 그곳에서 행해지고 있어 보기 드물게 하드웨어인 건축물과 소프트웨어인 의식이 모두 살아 있는 공간이다. 서구식으로 말한다면 기독교의 중세 성당 건축에서 미사의례가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것과 같은 곳이다. 그러므로 종묘에서의 아방궁 프로젝트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보기 위해서라지만 그 대가로 예전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가치의 희생을 요구하는 일종의 반달리즘 테러 행위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나는 제안하고 싶다. 입김의 회원들이 자녀들과 함께 종묘에 가서 그 역사적 의미를 빈 마음으로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역사 앞에서 겸손해 졌으면 하는 것이다. 현재의 남녀평등의 가치관의 잣대를 들이대지 말고 중세에 살던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투영해서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일 것이고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상상력은 모든 예술 활동의 원천이 아니던가.
그게 꼭 고리타분한 시대착오적인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 더 바란다면 우리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비록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존재 자체를 아예 무시하는 그러한 발상은 자제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아이들과 함께 조만간 종묘를 찾아 볼 일이다. 그래서 잊고 지냈던 과거의 감흥을 되살려 볼 일이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우리 것이지만 쉽게 접하지 못했던 현장을 소개해 주는 것도 이 땅에 먼저 태어난 사람의 책무라고도 생각되는 것이다.
세계화의 길목에서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 당연히 거짓말이다. 유신시대에 날조된 거짓말이다.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나라에 발생한 적이 없었다. (군주에 의한)백성을 위한 정치, 즉 왕도 정치는 있었어도, 백성에 의한 정치, 민주주의는 우리나라 역사에 없었다. 민주주의는 분명히 서구에서 이룩된 인류 역사의 귀중한 자산이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것은 유신 독재의 합리화를 위
한 미명의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너무 뻔한 사실을 내세운 이유는 국수주의를 경계함이다. 우리 것이 제일이라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 판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IMF의 혼란 상황을 거치면서 우리 것에 대한 자신감이 극도로 엷어진 상황 또한 우려할 일이다. 솔직히 말을 하면, 글로벌 스탠다드, 세계화 등은 바로 미국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철저히 미국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고, 영어를 잘 하자는 것이 아닌가. 바로 팍스 아메리카나가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다. 급속하게 세계가 가까워지는 현실에서 이전에는 절실하지 않았던 국제기준이 분명히 필요해지고 있다. 특히 경제와 통상, 과학과 기술의 분야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인류의 전체 삶의 방식을 규율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NGO의 반세계화 시위가 단발적인 해프닝으로 끝날 것인가? 그렇지는 않으리라 본다. 동종교배는 열등종을 낳는 유전의 법칙도 있지 아니한가. 생활방식으로서의 문화의 다양성은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문화의 과거로부터의 전승도 존중되어야 한다. 우리가 동식물의 종의 다양성 보존을 위해 노력하듯이 전체 인류의 문화전승의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문화도, 오스트레일리아 애보리진의 문화도, 기타 다른 소수 민족의 문화도 오늘날 지배적인 서구 문화와 똑 같이 존중되고 그 가치가 인정되어야 한다.
이 땅의 페미니즘
사실 우리나라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만큼 상황이 열악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사회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유가 없어 보인다. 모든 것을 단기간에 싸워서 얻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우리나라 페미니즘의 큰 오류의 하나는 페미니스트조차 남성적 행위와 남성적 가치를 여성의 그것에 비해서 상위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해방을 남녀동등과 같은 의미로, 더 구체적으로는 남자가 하는 모든 일에 여성도 동등한 조건으로 참여해야 하고, 남성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남녀 평등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옛날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여학생이 남자 선배를 부를 때 '형'이라고
부른다든가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래서 이들 주장은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고 한다. 아직까지 이런 믿음 속에 살고 있다면 그야말로 그들이 좋아하는 서구 문명의 최근의 인간 행동학의 발견 성과에 대해서 무지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최근의 인간 행동학의 연구 결과로 남녀의 선천적 생리적 차이는 분명히 있다는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즉 남성은 수리 및 공간 지각력에서, 여성은 언어 및 감정의 표현력에서 타성에 비해서 우월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양성의 평등을 찾는 일이 각각의 뛰어난 능력의 분야를 상호 존중해주고 여성이 하는 일도 남성의 일 못지 않게 가치가 있다는 인식을 먼저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여성이 수행하는 직업과 가정에서 수행하고 있는 가사와 자녀양육도 남성의 바깥일 못지 않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서 내 딸들에게
이상의 모든 논의가 내 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하나의 해프닝처럼 들릴 것으로 짐작한다. 그리고 그때에는 페미니스트란 단어조차도 더 이상 쓰이지 않는 고어 취급을 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딸들에게 바라는 것은 모든 사유의 대상에 대해서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목적이 분명하면 수단에 대해서는 좀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어떤 신념을 위해서도 인간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식했으면 한다. 설사 그것이 민주주의건, 여성해방론이건 그 목적에 인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도그마에 빠지지 않는 유연한 사고가 불필요한 인간관계의 갈등을 많이 줄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보는 것이다.
이 글을 왜 썼나
내가 이 해프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느날 한겨레 신문의 칼럼을 보고서였다. 칼럼의 일부분을 전재한다.
[아침햇발] 종묘에 가 보셨나요
택시기사에게 종묘에 가자고 하면 `종묘공원이요? 오늘 무슨 시위가 있나요?' 물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장대한 건축물이고 세계적으로 파르테논 신전과 쌍벽을 이루는 의미 있는 건축물이라고 하는 종묘를 서울 시민들은 시위하는 곳으로 알고 있다. 종묘는 적요함과 유현함, 장엄미와 절제미가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극히 경건해야 할 종묘가 시위장소로, 노인들의 위락장소로, 잡상인들이 들끓는 유흥장소로 변한 것은 종묘 앞을 공원으로 치장하여 놓은 탓이다. 종로구의 쓰레기까지 담장을 따라 쌓여있어 소음과 악취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설명이 무색하다.
(중략)
하늘이 파란 10월, 아니면 비라도 촉촉히 오는 날 종묘에 가보자. 시끄럽고 눈에 거슬리는 여러 가지 풍경들을 뒤로 하고 폭이 101미터에 이르는 장대한 건축물 정전에 이르면 저도 모르게 옷깃이 여며질 정도의 신비감이 깃든다. 신축과 개축을 거듭한 건물인데도 우리 조상들은 세심하게 보수하여 한번에 건축한 것처럼 보인다. 옆에서 보며 맞배지붕의 아름다운 선과 간결한 장식이 소름 돋을 지경의 아름다움을 자아낸다.앞에서 보아도 뒤에서 보아도 오른쪽에서 보아도 왼쪽에서 보아도 전율을 느낄 정도의 아름다운 유산을 갖고 있다는 데 대한 자부심과 경외감에 절로 탄성이 나올 것이다.
(김선주 논설위원)
왜 난데 없는 종묘 얘기가 나왔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여러 신문사의 사이트를 종묘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보았지만 특별한 기사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부분 지난 날 있었던 종묘에서 있었던 문화행사에 대한 기사들이었다. 그러던 중에 심심풀이 삼아 가끔 들어가던 오마이뉴스 사이트에서 아주 자극적인 사진과 기사제목을 발견했다. 기사 내용이 마땅치는 않았지만 다 읽어 보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사에 뒤이어 게재된 양 진영의 열띤 논쟁에서 이 해프닝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글들의 성격이 대부분 그렇지만 처음에는 상호 점잖은 토론의 양상을 띠다가 계속 진행이 될수록 육두문자가 난무하는 욕설과 감정 배설의 장이 되고 말았다.
주제 자체는 이 땅에 사는 모든 보통 사람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었다. 전통과 현대의 갈등,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 여성 해방론 등등.. 딸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내 입장을 한번 논리적으로 정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뜻밖에도 시간을 오래 잡아 먹는 작업이 되고 예상 외로 긴 글이 되었다.
언론, 뒷 이야기
이 해프닝에 대해서 제도권 언론은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시간적 순서로 따져 이 난리 해프닝 이후에 이 사건과 관련하여 유일하게 종묘에 대해 쓴 글이 앞에 든 한겨레 신문의 칼럼이다. 나는 진보 진영과 통념상 사회적 약자인 페미니스트의 입장에 가까운 것으로 알았던 한겨레 신문에서 사건의 앞뒤 전말을 보도하지 않고 이 칼럼으로 대체한 것이 무척 현명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사건이 기사화 되었다면 다시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고 - 입김 측에서 제작한 자극적인 소품(자궁 모양의 풍선, 남성 성기 모형)이 준비되어 있었다.- 독자들은 냉정하게 생각할 여유도 없이 가치 판단을 강요 당하는 곤란한 입장에 처해졌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가십이든 기사든 자기 존재의 홍보를 위해서 관심의 확대재생산을 바란 입김의 의도가 인터넷 공간 상에서만 머물게 한 것은 한겨레의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본다.
입김의 퍼포먼스 예고 => 유림과 전주 이씨 종친회의 격렬한 반응 => 실제 퍼포먼스의 수행 => 유림과 전주 이씨 종친회의 물리력을 동원한 저지 => 비난 성명전 => 법정 고소 => 언론의 초점을 받으면서 입김 주장의 확산 등 일련의 이 모든 과정이 입김이 의도하고 연출한 퍼포먼스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다분히 드는 것이다. 실제로 반대 진영의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입김 측 예술가들은 이성은 물론 예술가로서의 기본 자질인 감성조차
의심 받을 일이다.
최초에는 그런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해프닝 이후에 입김 측에서 취한 행동은 결과적으로 그런 방향을 지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이 충돌 과정을 캠코더로 녹화해 한국 가부장제 사회의 후진성을 세계 만방에 알리고자 한다는 의도 또한 순수하게 받아 들여지진 않는다. 충돌에 이르게 된 문화적 배경은 생략한 채로 공격의 행위만 담은 이 다큐멘터리가 양측의 균형적인 입장에서 작성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현상에 대해서 한겨레 신문과 비슷한 시각을 유지하던 인터넷 신문인 오마이뉴스의 기사는 지나치게 입김의 의도를 노출하고 있고 입김측에 편향된 시각으로 오히려 기사보다는 입김측의 논설 대필을 읽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기자가 취재에 있어서 모든 가치관에서 자유롭고 객관적이기를 바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심지어 취재 대상의 선택에 있어서도 가치관의 개입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사건
의 양 당사자들을 취재하면서 한쪽은 일방적으로 두둔하고 다른 한쪽은 비난과 경멸에 가까운 문구로 일관한다면 그 기사의 진실성은 의심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신문사의 주장은 사설로 나타내야 하는 것이지 기사에서 기자가 판단해 버린다면 가장 기초적인 기자의 덕목을 잃어버린 것이다. 판단은 독자의 영역으로 맡겨 두어야 하는 것이다. 설사 독자가 현명하지 않다고 걱정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