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재발견은 한국관광공사와 공동으로
2011년 6월 18일 (토) 오후 3시에 한국관광공사 지하대강당에서 ‘조선 국왕 vs 중국 황제’라는 주제로 157회 우리문화사랑방을 개최한다.
한민족의 5천년 역사에서 나라 자체가 사라진 것은 1백 년 전에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패망한 게 처음이다. 최근 을사조약과 한일합방조약의 강제체결 사실을 근거로 무효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나 이는 사후약방문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냉혹한 제국주의 세계질서에서 볼 때 조선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일제의 식민지 백성으로만 존재할 수 있었을 뿐이다. 나라가 존재하지 않으면 지금도 천덕꾸러기로 살고 있는 서양의 집시와 하등 다를 바가 없게 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개인 차원의 자아실현 자체가 불가능하다. 국가의 존재가 이처럼 엄청난 것이다.
조선이 패망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왕권이 미약하고 신권이 강한 이른바 ‘군약신강:君弱臣强’의 왜곡된 통치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의 명청대가 성리학 이념에 입각한 붕당정치로 인해 이내 패망한 송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황권을 극도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과 대비된다. 선조 때 사림세력이 신권의 주축이었던 훈구세력을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하면서 처음으로 붕당이 출현했다. 조선조의 붕당정치는 극단적인 명분론에 휩싸인 점에서 심각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이념이든 이를 절대시할 경우 폐쇄적인 당파주의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말기에 공권:公權으로 포장된 사권:私權이 난무하는 이유다. 세도정치:勢道政治가 그 증거다.
중국이 세계 최빈국에서 문득 G2로 올라선 것은 기본적으로 ‘흑묘백묘’로 상징되는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의 산물이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배경이 있다. 바로 축적된 통치리더십이다. 흔히 제왕학으로 불린 통치리더십은 역사와 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중국의 역대 황제는 한족의 왕조이든 이민족의 왕조이든 상황에 따라 왕도와 패도를 적절히 섞어 사용하는 소위 왕패병용:王覇竝用의 이치를 통찰하고 있었다. 성리학에 함몰된 조선조의 역대 군왕과 대비된다.
모택동은 대장정 때는 물론 공화국 수립 이후에도 죽을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다. 그는 방대한 분량의 {자치통감}을 무려 17번이나 읽었다. 원자바오 총리를 비롯한 중국의 지도자들은 입만 열면 {논어}와 {장자} 등의 고전과 당시:唐詩 등에 나오는 명문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의 사상적 지도자인 게이오대의 창립자인 후쿠자와 유기치는 {춘추좌전}을 무려 13번이나 통독했다. 조선조에서는 오직 세종만이 죽을 때까지 {자치통감}을 열심히 읽었을 뿐이다. 그의 치세 때 북쪽으로 4군6진을 개척하고 남쪽으로 대마도를 정벌한 게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번 우리문화사랑방에서는 중국의 황제와 조선의 국왕을 비교해 봄으로써 조선과 중국의 리더십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