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기저기서 한자 그러니까 한문문맹에 대해서 따지고 있다. 신문에 따르면 부익부빈익빈이라는 한문을 사용하지 못하는게 요즘 추세라며 어렸을때부터 한문 공부를 제대로 시켜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조기 한문 교육을 슬그머니 들고 일어서고 있다. 이런 모습은 어쩐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모습 아닌가
왜 아니 그렇겠는가 한문의 중요성을 외치고 있는 지금 그 사람들의 주장하는 글을 잘 읽어보자. 그들의 의견은 어쩐지 조선시대의 관료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조선 시대 세종시대를 거쳐 지금까지도 저 콧대 높은 관료들은 아직도 한글을 우리나라의 글로 인정하고 있지 않은것이다.
만약 인정하고 있다면 왜 갑자기 새삼스럽게 한문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그거에 대해서 대답할 수 없단 말인가 신문 어디를 봐도 솔직히 주장하는 글은 보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봐라. 당신들은 중국이 점점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닌가 아마 아니라고는 말을 못할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의 가장 소중한 보물인 한글을 소중히 여길려고 노력하는게 아니라 남의 나라 말에 그렇게 공을 들이려고 하는가
어떤 나라든 자기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더이상 크지 못한다. 지금이 그리고 조선시대처럼 어떤 나라가 그 나라에 속해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지금은 말 그대로 글로벌 시대이다. 왜 우리는 프랑스 정부가 했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말을 소중히 여길려고 노력도 안하는가
외국의 한문같은 역할을 했던 라틴어는 이제 외국말 중에서 사라져가는 추세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을 볼때 왜 우리나라는 역사를 다시 발전이 아닌 과거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일까
가장 이해가 안되는 것은 정부가 한글날을 아무렇게 보내는 것이다. 한글은 외국에서도 인정해준 이 지구상에서 쓰이는 가장 위대한 과학적인 언어이며 점점 외국의 제 2외국어로도 사용된다. 그런데 정작 그 말을 쓰는 우리는 왜 한글의 중요성을 무시한체 엉뚱하게도 한문의 중요성을 내세우는 걸까
정부의 방책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지켜 볼 것이다.
p.s 1 나도 한문을 사용할 때가 있기는 하다. 허나 그건 이해를 도울 때만이다. 사실 이해를 도울때 쓴다고 하지만 그렇다쳐도 그 한문을 몰라 내 시를 이해 할 수 없는 건 없다. 글을 쓰는 사람도 한문이 필요 없다는데 도대체 얼마나 그렇게 한문이 실생활에서 필요가 있다는 것인가 이런 방책을 써 도대체 얼마나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는지 나는 모르겠다. 적어도 당신들은 한가지 간과한게 있음을 뒤늦게 또다시 뒤늦게야 깨달을 것임을 그거 하나만은 알고 있다.
p.s 2 이 기사글을의 문제는 비판의 글을 전혀 달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과연 어느정도로 한문을 달면 우리나라 말이 그토록 아름다워진다는 말인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외국에서는 우리가 쓰는 한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라틴어는 이제 사라져 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한문을 우리는 쓸 필요가 있을까 한글날도 아무렇게 보내는 민족이 한문을 쓰자고 주장하는 것부터가 웃기는 일이라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p.s 3 만약에 한문의 중요성을 내세우려거든 한글날을 공휴일로 하는 방책을 세우든가 아니면 그 한글날을 중시여기는 방책을 정부는 먼저 세워야 한다. 그게 먼저임을 유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한문의 중요성을 저렇게들 주장한다면 그건 어불성설임을 자신들의 행동으로 대신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 없음을 정부는 알았으면 좋겠다.
----------------------------------------------------------------------- 얼마 전 한나라당 박원홍 의원과 84명의 국회의원에 의해 한자교육진흥법이 입법 추진되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되자 젊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열띤 토론이 전개되었다. 이 법안에 반대하는 대다수 네티즌들은 한글로만 표기하면 그것이 바로 국어라는 주장을 폈다. 한글로만 표기하면 곧 국어라고 보는 이들의 주장은 올바른 것일까?
한글이 곧 국어라면 ‘한글 이즈 더 베스트 그래핌 인 더 월드(Hangeul is the best grapheme in the world)’라는 한글표기도 국어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 된다. 또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은 우리말에 있는 한자어들을 ‘文化的 情況’이라고 적으면 중국 글인 한자로 표기한 것이니까 중국어이지 한자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文化的 情況’이 중국어가 되려면 ‘웬흐어더 칭쾅’이라고 읽었을 때에 한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文化的 情況’을 ‘문화적 정황’이라고 읽는 사람은 지구상 어디를 뒤져봐도 한국어 사용자밖에 없다. 따라서 ‘문화적 정황’을 한글로 표기하든, 한자로 표기하든, 또는 로마자로 ‘Munhwajeog Jeonghwang’이라고 표기하든 ‘문화적 정황’은 바로 우리말인 것이다.
-국적도 없는 신조어 범람-
우리 국어교육의 현실은 한자를 가르치지 않고도 한자어를 잘 익히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는 듯하다. ‘혁명(革命)’의 한자 훈(訓)은 ‘가죽’과 ‘목숨’인데, ‘혁명’의 의미에는 이들 한자의 훈이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한자어들이 국어에 상당수 있다는 그릇된 주장에 기초하여 국어시간에 한자교육을 하지 않은지 이미 오래다. 그나마 경서(經書) 중심의 한문시간마저도 7차 교육과정에서는 선택으로 바뀌어 경우에 따라서는 한자를 한번도 교육받지 못한 채 졸업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런 교육제도로 인해 한자문맹이 되어버린 젊은 세대들이 사용하는 국어의 실상을 들여다볼 때, 어쩌면 외래어와 국적없는 신조어가 범람하는 우리 국어의 현주소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념이 흐려진 채,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사용하는 말들로 우리말은 멍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말은 한자어와 토박이말이 어우러질 때 아름다울 수 있다. 우리말에서 개념들을 세분할 수 있는 것도 한자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이는 한자의 조어력(造語力)에 바탕한 것이다. 국어시간에 한자를 가르치지 않고 한자어를 가르치는 것은 이러한 조어력을 무사한 채 한자어를 박제(剝製)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박제된 한자어를 비집고 들어오는 말들은 국적 없는 신조어와 외래어, 외국어이다. 전문분야에서 무분별하게 외래어와 외국어를 사용하는 현상은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북한의 한자교육은 경서와 고문 중심의 한문교육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한자어 중심으로 한자교육을 철저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보다 앞서고 있다고 하겠다. 1966년 김일성 주석의 교시에 따라 68년부터 한자교육을 인민학교에서부터 부활한 후에 교육 내용은 한자어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노동신문을 분석해 보면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상당수의 한자어와 그 높은 수준에 놀라게 된다. 이는 한자어 중심의 한자교육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다.
일찍이 우리말을 한글로만 표기할 것을 주장한 선각자들도 대개가 한자에 대단한 식견을 지녔을 뿐 아니라 어릴 때부터 한문교육을 깊이 받았던 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