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여, 요한복음의 말씀으로 노래하라 진정성으로 믿음을 노래하는 시인 전홍구 전형철, 시인, 문학평론가, 본지 발행인
죽음! 죽음은 우리 인생길에서 피할 수 없는 길이지만 산 자 중에는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낯선 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죽음, 그러나 온 세상을 통 털어도 죽음씨 만큼 인간이 얘기를 많이 나누는 이가 또 있으랴. 시인은 아내의 항암치료 과정에서 죽음이라는 존재의 근원적이고 커다란 물음이 자신들 앞에 검은 아가리를 벌리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 죽음을 향해서 시인과 아내는 주춤주춤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아내에 대한 안쓰러움, 신음 소리를 시인의 위장이 먼저 알아차리고 뒤틀린다. 그동안 많은 죽음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왔고 늘 경험하고 있지만 한평생 같이 살면서 부딪겨 왔고 자식이라는 새로운 생명들을 함께 잉태해내고 길러온 아내와의 죽음을 향한 여정은 시인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직접적으로 죽음을 실감하게 한다. 아내를 통해서 자신의 죽음의 과정을 접하고 겪어가는 것이다. 아내의 슬픔과 절망, 막막함, 분노, 체념이 그대로 시인에게 스며온다. 본고는 시인의 죽음이라는 강물이 다다르는 허무의 바다에서 어떻게 자신이라는 한 존재를 골똘히 들여다보고 다시 삶 속에서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 부활로 이르게 되는가를 그의 시를 들여다봄으로써 파악해 가려 한다.
1. 아내와 자신과 죽음과의 동행
항암치료 중으로 건강하지도 못한 몸으로 때를 거르지 않고 봉사에 성가대에 전도대열에 함께하며 남았다던 6개월을 초월 21개월을 넘기며 전 교인의 기도와 사랑의 빚을 갚겠다고 노력하더니
끝내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역하지 못하고 나를 떠난 당신
아직도 여기저기에 흔적이 온기가 체취가 남아 있는데 주방에도 거실에도 큰방에도 화장대 앞에서도 당신을 찾을 수 없구려!
가슴에 마음에 눈 안에서 미소 짓던 얼굴을 지울 수 없어 다시 보고 싶어 찾아왔건만 이제는 그 함* 속에 있어 웃어주지도 쳐다보지도 않으니 나 혼자 당신 앞에 서 생각이 뜨거운 눈물로 앞을 가려 당신의 그 아름답던 모습을 볼 수가 없구려!
진정 사랑했었소.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하였소. 나를 향해 손짓 없어도 내 마음속에 당신이 꽉 차있기에 나는 절대로 외롭지 않다오. 이제는 앞으로는 천사의 호위 속에 건강하시구려! 안식하시구려. 사랑했었던 나의 오목씨여.
* 그 함 : 추모공원 하늘문. 소망관 VIP1-23룸 31~32열 3단에 안치된 납골함 -「사랑했던 당신이여」, 전문
전 시인의 시에는 진정성이 있다. 삶 속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이 그대로 꾸밈없이 드러나고 있다. 그 다큐적인 힘으로 감상자의 내면에서 조용한 울림으로 다가간다. 아내는 항암치료 중으로 건강하지도 못한 몸으로 때를 거르지 않고 봉사에 성가대에 전도대열에 함께한다. 남았다던 6개월을 초월 21개월을 넘기며 전 교인의 기도와 사랑의 빚을 갚겠다고 마지막 순간까지 노력한다. 이와 같은 아내의 삶은 한 생을 진지하게 살아온 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봉사를 통해서 남에게 베풀고 진리의 말씀을 성가대 활동을 통해서 남에게 전해주는 것은, 모든 종교와 사상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아내와의 사별은 전 시인에게, 한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한계와 운명을 실감하게 한다. 사별의 과정에서 생의 덧없음과 겸손과 욕망의 부질없음을 실감한다.
‘나를 향해 손짓 없어도 내 마음속에 당신이 꽉 차있기에/ 나는 절대로 외롭지 않다오.’
아내와 육체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마음 안에서는 늘 함께하고 있다는 전 시인의 신념은 만남과 이별을 정신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다른 생명들과는 달리 생각이라는 것을 발전시켜온 인간이 할 수 있는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최선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2. 비로소 죽음을 알았다고 할 수 있는 거울 속에 자신을 들여다 본다
한평생 살을 부딪겨 온 아내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은 시인이 자기 자신과 세상을 들여다보는 관점을 새롭게 구축하게 한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이파리처럼 개체로서의 한 인간은 나무라는 생명의 줄기에서 한 계절 피어났다가 떨어져 내리는 이파리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실감한다. 아내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도 수십 년 안에 한정된 삶을 살다가 반드시 죽을 것임을 실감한다. 죽음에 대한 이해의 단계에서 더 깊이 들어가 그것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증득’에 해당된다. 비로소 죽음을 보고 체험한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거울 속을 시인은 들여다본다.
맑은 마음으로 곱게 살고자 거울이란 새 옷에 기도의 단추를 답니다.
돌을 만나면 비켜가는 물처럼 양보를 미덕으로 살아가자고 웃으며 비켜갑니다.
아직도 설익은 모난 성품 맑은 거울에 비치도록 기도의 단추를 여밉니다.
말씀의 거울에 마음 비춰보면 은총 속에 살아온 날들 오늘도 감사로 깨우칩니다. -「거울 앞에서」, 전문
‘맑은 마음, 양보의 미덕, 기도의 단추, 은총과 감사’ 등이 시인의 삶에 대한 다짐들이다. 사나운 욕망과 얼룩, 어둠이 씻기고 닦여진 속에서 피어오르는 맑은 영혼의 향기가 느껴진다. 죽음이라는 화두를 움켜쥔 깊은 묵상의 터널을 지나서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삶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이 언제나 함께하고 있는 기독교 성경에 있어서 기독교의 내면과 영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요한복음>을 꿰뚫는 이미지는 빛과 어둠이다.
요 1:1) 태초에 1)말씀이 계시니라 이 1)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요1:2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2)깨닫지 못하더라 (요 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요 1: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요 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요1:20 (요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 1:11) 3)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4)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 곧 로고스가 가리키는 삶을 향해서, 빛을 향해서 나아가는 하루하루이기를 간구 하고 있다. 이러한 믿음과 소망을 구체적으로 실천해나가기 위해서 시인은 자신이 딛고 있는 현실을 들여다본다. 자신이 놓여 있는 상황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앞으로 자신이 지향해나갈 삶의 자세를 구체적으로 설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3. 빛으로 향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지나온 삶을 들여다 본다
시인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눈앞에 보이는 모습으로 서 있기까지의 지나온 여정을 떠올리게 된다. 시간 속에 그려온 자신의 족적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그를 뒤에서 보면 키가 작고 쩍 벌어지지 않아 별로 볼일이 없게 생각하지만 막상 앞에서 보면 훤한 얼굴에 흠잡을 때 없는 얼굴의 소유자.
국문학과와 거리가 먼 공과대학 금속공학과를 졸업하였고 30여 년 동안 기계 기름에 찌든 근무에 몰두하며 월급으로 사느라 시집 한 권 사지 못해 남의 시 한 편 읽지 못하고 살았지만 고학으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도 중학교 시절 학원 문예란에 공모 된 글이 등재되고 교지와 학보에 詩가 실렸던 과거가 있고 군 생활 중에도 투고를 즐겼으며, 한 손에 해머를 붙잡고 쓴 시로 등단하여 월간지에 간혹 이달의 작가로 얼굴을 내미는 형편으로 유명하지 못하여 그를 보고는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지만 詩를 보고는 그를 알아보는 詩人이다.
사실, 그는 15년 전 교통사고로 말미암아 크게 다쳐 지체 장애우로 살고 있지만 쾌활한 성격 때문에 모두가 몰라본다.
그의 삶은 신앙심으로 넘치며 그가 본 자연은 춤을 추듯 아름답고 그의 작품 속에 사회를 꾸짖는 회초리는 매섭지만 은밀한 찬송과 찬미가 넘쳐나고 있다고 말들 한다. -「자화상」, 전문
이 시에는 한 인간의 인생 역정과 그의 삶에 대한 자세가 정감 있게 드러나고 있다. 넉넉하지 못한 삶 속에서도 한 직업인으로서 성실하게 살아왔음을 읽을 수 있다. 시를 늘 가슴에 빛등불로 밝혀오면서 살아왔음을 읽을 수 있다.
‘유명하지 못하여 그를 보고는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지만 / 詩를 보고는 그를 알아보는 詩人이다.’
사실 그는 15년 전 교통사고로 말미암아 크게 다쳐 지체 장애우로 살고 있지만 쾌활한 성격 때문에 모두가 몰라본다. 그의 삶은 신앙심으로 넘치며 그가 본 자연은 춤을 추듯 아름답고 그의 작품 속에 사회를 꾸짖는 회초리는 매섭지만 은밀한 찬송과 찬미가 넘쳐나고 있다고 말들 한다. 교통사고라는 삶의 질곡 속에서도 쾌활한 성격을 잃지 않는 면, 깊은 신앙심, 자연을 아름다운 춤으로 보는 관점, 사회를 날카롭게 꿰뚫어 보면서도 찬송과 찬미의 마음을 잃지 않는 자세 등은 기독교적인 사랑이 몸과 마음에 배여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려 하고 스스로 빛등불로 세상에 빛이 되려는 마음 자세를 읽을 수 있다.
4. 빛을 향한 삶의 길을 찾기 위해서, 공간적인 면에서의 자아의 정체성 확인
필자는 이제까지 ‘사랑했던 당신이여’라는 아내의 죽음을 소재로 하는 시를 출발로 해서 ‘거울 앞에서’, ‘자화상’이라는 시까지 살펴봤다. 아내의 죽음을 통해서 시인은 죽음을 비로소 자신의 것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생의 종점이 가까이에 있다는, 자신의 삶이 한정되어 있다는 실감 속에서 시인은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본다. 그 모습은 아내의 죽음을 체험하기 이전의 자신과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생을 보는 관점, 세상을 보는 관점이 새롭게 구축되어야 함을 절감하게 되면서 시인은 거울 속에 스쳐오는 지난 세월들을 들여다보고 그동안의 인생의 여정을 꼼꼼히 묵상한다. 시 ‘자화상’이 담고 있는 내용이다. 세월의 여정 속에서 들여다본 자신을 이번에는 자신이 놓여 있는 공간이라는 현실 속에서 들여다본다.
개봉동 구로성모병원과 구로소방서 사이엔 이름이 다른 아파트가 다섯 개, 건널목이 네 개, 버스정거장이 세 개, 전신주가 길 양쪽으로 서른다섯 개가 있어, 821 미터로 걸어서 십삼 분, 자전거로 삼분 걸리는 거리는 기억 자로 굽은 길입니다.
거기에는 콜라텍이 하나 하이마트가 하나, LPG 충전소가 하나, 25시 체인점이 둘, 슈퍼마케터가 셋, 먹을 만한 유명 음식점 넷이 있으며 헤어숍이 셋, 줄지어 기다려야 사먹는 떡볶이집이 한 곳 있습니다만, 자전거포는 하나도 없는 기억 자로 굽은 길입니다. 또한, 남부순환도로가 옆에 있고 경인 국철이 있으며, 안양으로 일산으로 갈리는 곳인데다 다른 동네에는 없는 교도소와 구치소가 있어 특별한 지역입니다.
영등포교도소 담장이 끝나면 나무야 놀자 공예 방이 있고 올리브 의상실과 반디 의상실이 있고 슈즈 방이 있고 조개사냥 횟집이 있고 옛날 막창 집이 있고 칵테일 호프집, 오토바이 수리판매소가 있고 화로구이 집과 양념통닭집 옆에 안경점이 있고 반찬가게가 있고 행운 떡집 옆에는 풀무질로 화덕의 무쇠를 달구어 모루 위에 놓고 두들겨 호미와 낫과 부엌칼과 망치 등의 연장을 만드는 광주대장간이 마지막 집에 있습니다.
이런 개봉동 구로성모병원과 구로소방서 사이가 우리 동네입니다. -「특별 지역」, 전문
이 시는 문체에 있어서 매우 평이하다. 그의 시들이 대체로 보여주는 특성이기도 하다. 그 꾸밈없는 평이함에서 오는 진솔함과 진정성이 시의 힘이 되고 있다. 이 시는 특히 자신의 삶의 공간을 다큐적으로 묘사해내고 있다. 누구나 길로 나서면 만날 수 있는 이 시대의 가장 평이한 풍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삶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묘사해내는 시는 드물다는 면에서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5. 빛을 향한 삶의 길을 찾기 위해서 세상을 들여다본다
지나온 세월 속에서의 자신의 발자취를 들여다보는 작업, 자신이 현실적으로 놓여 있는 지리적인 상황을 들여다보는 작업, 곧 시공간적인 면에서 자신을 들여다본 시인이 이번에는 세상, 곧 사회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아 아 터져라 고개를 비틀어 외쳐 보아도
그냥 그 자리 멈추어 있는 세상
나뭇가지 끝에 걸린 하늘 가로등이 졸고 있는 밤
공원 그네에 몸 싣고 흔들어 보아도 세상은 멈추어 있다
소주 한 병 통째로 홀딱 마셔버리고 병든 세상 몽땅 담아 병마개를 꼭 잠근다.
멀리서 개가 짖는다. -「개소리-세상 때문에」, 전문
현대는 격류로 흐르고 있다. 정보화, 세계화, 시장경제의 세계화, 스마트폰, 핵무기, 우주선, 화학무기, 환경파괴 등 세상은 스스로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거센 격류로 휘달리고 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보할 겨를도 없이 떠밀려간다. 시인 자신도 어린 시절의 자연적인 삶에서 지금은 서울이라는 공룡도시의 콘크리트 문명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그러나 시인에게는 이러한 급격한 변화 속의 세상이 ‘그냥 그 자리/ 멈추어 있는 세상’으로 보인다.
‘소주 한 병 통째로 홀딱 마셔버리고/ 병든 세상 몽땅 담아/ 병마개를 꼭 잠근다.’
급격한 표면상의 변화들이 언제나 어둠 쪽을 향해서 질주하고 있다는 관점은 그의 기독교적 세계관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한복음 3장 19절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한복음 3장 20절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3장 21절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세상적인 삶을 시인은 병든 세상이라고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의 격류는 그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과 드라마를 이루면서 흘러간다. 매일 매일 뉴스를 채우는 사건들의 격류를 보라. 사회는 거대한 공룡으로 제 나름대로 거친 몸짓을 하고 있다. 그 속에 한 개체, 한 개인인 시인에게 사회는 친절하지도 큰 관심을 두지도 않는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한 때 그 격류 속에 휘말려 들어 사나운 욕망을 태우기도 했던 시인은 이제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생의 향기를 발견하고 더듬어가는 여유를 찾게 된다. 성스러운 삶의 상징이 되고 있는 절두산이라는 공간에서 세속적인 삶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를 발견하는 시인의 시선이 이런 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6. 일상의 삶 속에서도 종교적, 초월적 구원으로 향하는 창구를 발견
샌프란시스코에 가보셨나요? 그곳 언덕에 오르면 팔 벌리고 서 있는 노송이 반기고 배 드나드는 항구는 아니어도 찰랑거리는 물가로 이어지는 듯한 다리 아래로 잔잔히 흐르는 파란 물빛 어제같이 흐름은 유수의 면모를 유지하는 그 집이 거기 있기 때문 언제나 그곳에 가면 사랑에 빠진 환상의 연인처럼 기분 좋은 추억이 살아나 뚫린 창으로 찾아드는 강바람에 여름은 가슴이 시리도록 시원했고 투박한 주물난로에 토닥거리며 타는 장작불은 얼어붙은 가슴 녹여주던 아름답고 조용한 그곳이 순교자기념관으로 단장됐지만 오늘도 어제 같아 쉼 없이 모여드는 건 순례자가 아니어도 그날의 참맛 기억하기 때문.
샌프란시스코* = 절두산 에 있는 찻집. -「샌프란시스코」, 전문
샌프란시스코에는 온갖 세속적인 삶의 풍속들이 집합되어 있다. 파란 물빛이 있고 사랑에 빠진 환상의 연인이 있다. 토닥거리며 타는 낭만적인 장작불이 있고 얼어붙은 가슴을 녹여주는 부드러움이 있다. 세속적인 달콤함, 저버릴 수 없는 생의 속살들이 넘실대고 있다. 그러나 절두산에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는 달리 삶의 강렬한 유혹과 악마적인 욕망들이 정화되어서 부드럽게 녹아들고 흐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시인이 몸담고 있는 서울이라는 공룡도시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시인은 공룡도시의 세속적인 욕망의 격류에서 빠져나와 절두산에 있는 사색적인 샌프란시스코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조용히 차를 마시면서 자신이 방금 빠져나온 서울을 들여다본다. 기독교적인 신념과 사랑과 믿음으로 자신을 송두리째 바쳐버린 성인들의 마음으로, 시선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려 한다.
7. 종교적인 삶에 대한 진지한 묵상
시인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다. 요한복음 3장의 말씀이 들려온다.
[11]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 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중에서
어둠 속에 놓여 있는 세상을 구원하려는 빛의 기운이 그를 감싸고 있음을 시인은 느끼면서 기도의 손길을 쳐든다.
교회 앞 소공원에 세워진 십자가 나는 그 십자가에 기도를 하였네 오가는 사람들 그 십자가 보고서 주 예수 믿으라고 오갈 때 빌었네.
오늘 종일 빌었네 십자가 곁으로 지나는 안 믿는 자 돌아만 오라고 주 예수 믿으라고 오갈 때 빌었지 모두 다 이곳으로 발길을 돌려라.
교회가 잘 보이는 소공원 십자가 오가는 많은 사람 주 예수 믿으라 전하고 초청하여 찾아온 새 신자 복 받고 구원 얻어 기쁘게 섬기네. -「십자가」, 전문
요한복음의 말씀이 깊은 믿음을 일으키면서 시인의 내면의 빛등불을 훤히 밝히고 있다. 가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시인의 내면의 빛등불에서 비춰 나오는 밝은 믿음의 빛살은 사람들에게 초청의 말씀으로 번져나간다.
8.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실천하고 전하는 삶
[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중에서
아내의 죽음, 자신의 인생과 자신이 놓여 있는 시공간적인 상황, 자신이 발 디디고 있는 세상에 대한 성찰이 절두산 성지에서 만나는 성인들의 생애에 깊은 공감을 일으키고 그와 같은 삶을 자신도 실천하고자 하는 소망으로 진전되고 있음을 그의 시「십자가」는 보여주고 있다.
힘들고 지루한 인생 여정에 여기까지 잘 오셨습니다. 이번 내리실 역은 구원역입니다. 회개하실 분이나 용서받고 싶으신 분은 이번 역에 내리시고 다음 역은 영생역입니다. 편히 쉬고 싶은 분이나 영원히 살고 싶은 분은 다음 역에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자 배고픈 자 병들고 아프고 고달픈 자 모두 다음 역에 내려 7번 출구로 나가셔 구원받고 함께 복 받으시길 소망합니다. -「7번 출구」, 전문
시인은 이제 자신의 가슴에 믿음의 빛등불을 켜고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이러한 시인의 모습은 아내의 마지막 모습이기도 하다.
항암치료 중으로 건강하지도 못한 몸으로 때를 거르지 않고 봉사에 성가대에 전도대열에 함께하며 남았다던 6개월을 초월 21개월을 넘기며 전 교인의 기도와 사랑의 빚을 갚겠다고 노력하더니 끝내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역하지 못하고 나를 떠난 당신 -「사랑했던 당신이여」, 중에서
아내가 죽음과 정면으로 만났을 때 택한 삶은 봉사와 전도였다. 시인 역시 아내의 죽음이라는 터널을 통과해서 도달한 지점이 바로 봉사와 전도임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아내의 생전의 마음에 깊은 공명을 일으키면서 아내와 함께했던 지난 삶, 사소하게 보일 수도 있었던 지난 삶의 자취들을 소중한 눈길로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이 피워 올리는 향기를 음미하게 된다.
9. 믿음의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사소하고 평이한 삶이 자리하고 있다
어떻게 키웠는데 이제 제 밥벌이한다고 그것을 다 잃어버리고
제가 찾은 짝 맘에 들지 않아도 반대 없이 받아 성사시켜 주었건만 그래도 부족하다고
먹이고 입히고 키우고 가르친 결과 인제 와서 계산하자는 것도 아닌 대, 시대의 흐름이 핵가족화되었다고
늦어지면 걱정되어 전화하고 아무리 늦어도 들어오기 전까지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기다렸건만
아직 부모의 마음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제 다 컸다고 간섭받기 싫어하니
아무리 세태가 그런다 해도 자기를 양육시켜준 부모인데 자식 된 도리로 노후를 모른다 하다니
상대도 안 되는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 이겼던 사실을 지금도 부인하지 못하는 세상인데
하물며 혈육이요 피붙이 인대 자식이 부모를 몰라라 돈 있다고 자랑인지 실버타운에 맡겨
아직은 더 희생하려 잔소리는 안 한 지 오랜데, 함께 살려는 눈치 보이질 않으니
굴 껍데기같이 다닥다닥 엉겨 붙은 생각 굽이치는 파도에 씻어 버리고 싶어 고개를 힘 있게 흔듭니다.
자식, 부모, 그 관계를 어찌 말로 다 설명하겠느냐고. -「그래도 그래야지」, 전문
부모 자식 간에 사소한 갈등, 소소한 이야기들로 채워지는 평범한 삶, 그러한 삶의 모습들이 환한 빛살을 내면서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아름다움으로 삶의 보석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일상의 삶에서 묻어나오는 소소한 것에 대한 묵상이 맛깔스럽게 그려지고 있음을 이 시에서는 볼 수 있다. 한 평생 생의 동반자였던 아내도 떠나버린 지금 시인에게 남겨진 생의 날들은 많지 않다. 하루하루가 다시 돌려받을 수 없는 일회적인 삶이다. 그렇기에 부여받는 날들은 더없이 소중한 신의 은총으로 빚어진 신의 선물이다. 이런 삶의 순간순간들을 아름다움으로, 신에 대한 감사로 채워갈 수 있기를 시인은 간구한다.
10. 시는 종교이고, 종교는 시다
본디 가진 것도 준비한 것도 없지만 그러나 오래전부터 꼭 한 번 떠나보고 싶었다.
잉태의 기쁨도, 분만의 진통도 당장 손에 잡힌 것 없어도 약속의 정상에 오르지 못한다 해도 떠나보고 싶다.
꿈꾸던 세계에 포근한 둥지를 틀고 그곳에 십자가를 세우고 살아온 날들을 노래하고파
떠나야만 한다.
* 이상향(理想鄕)[명사] 이상으로 그리는, 완전하고 평화로운 상상(想像)의 세계. * 도원경(桃源境). 무릉도원처럼 속세를 떠난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 파라다이스(paradise) -「이상향 - 문학의 길로」, 전문
시인은 가슴에 십자가의 빛등불을 켜고 문학의 길로 시의 길로 떠나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을 노래하고 있다. 요한복음 제1장은 태초에 말씀이 있음을 밝히고, 이 말씀이 곧 하나님임을 말해주고 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은 곧 말씀으로 인간들에게 올 수 있고 오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 말씀의 화신이 곧 예수임을 또한 말해주고 있다. 시는 바로 이 말씀으로 빚어낸 가장 섬세하고 아름다운 형태다. 그래서 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아름답고 섬세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까지 전 시인이 아내의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실존과 진지하게 대면해왔고 그 실존의 터널을 지나서 신을 향한 기도와 감사 은총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살펴봤다. 이렇듯 인생과 믿음의 세계를 한 바퀴 휘돌아온 전 시인에게 자연스러운 바람이 생겨난다. 오늘날 바벨탑처럼 여겨지는 대형교회들처럼 세속과 결탁 되어 믿음의 본질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것만 같이 여겨지는 믿음의 세태들 속에서 종교 본연의 모습 진리의 말씀을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시들이 전홍구 시인의 가슴에서 싱그러운 샘으로 솟아나리라 믿고 소망한다.
詩여, 요한복음의 말씀으로 노래하라 진정성으로 믿음을 노래하는 시인 전홍구 전형철, 시인, 문학평론가, 본지 발행인
죽음! 죽음은 우리 인생길에서 피할 수 없는 길이지만 산 자 중에는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낯선 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죽음, 그러나 온 세상을 통 털어도 죽음씨 만큼 인간이 얘기를 많이 나누는 이가 또 있으랴. 시인은 아내의 항암치료 과정에서 죽음이라는 존재의 근원적이고 커다란 물음이 자신들 앞에 검은 아가리를 벌리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 죽음을 향해서 시인과 아내는 주춤주춤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아내에 대한 안쓰러움, 신음 소리를 시인의 위장이 먼저 알아차리고 뒤틀린다. 그동안 많은 죽음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왔고 늘 경험하고 있지만 한평생 같이 살면서 부딪겨 왔고 자식이라는 새로운 생명들을 함께 잉태해내고 길러온 아내와의 죽음을 향한 여정은 시인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직접적으로 죽음을 실감하게 한다. 아내를 통해서 자신의 죽음의 과정을 접하고 겪어가는 것이다. 아내의 슬픔과 절망, 막막함, 분노, 체념이 그대로 시인에게 스며온다. 본고는 시인의 죽음이라는 강물이 다다르는 허무의 바다에서 어떻게 자신이라는 한 존재를 골똘히 들여다보고 다시 삶 속에서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 부활로 이르게 되는가를 그의 시를 들여다봄으로써 파악해 가려 한다.
1. 아내와 자신과 죽음과의 동행
항암치료 중으로 건강하지도 못한 몸으로 때를 거르지 않고 봉사에 성가대에 전도대열에 함께하며 남았다던 6개월을 초월 21개월을 넘기며 전 교인의 기도와 사랑의 빚을 갚겠다고 노력하더니
끝내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역하지 못하고 나를 떠난 당신
아직도 여기저기에 흔적이 온기가 체취가 남아 있는데 주방에도 거실에도 큰방에도 화장대 앞에서도 당신을 찾을 수 없구려!
가슴에 마음에 눈 안에서 미소 짓던 얼굴을 지울 수 없어 다시 보고 싶어 찾아왔건만 이제는 그 함* 속에 있어 웃어주지도 쳐다보지도 않으니 나 혼자 당신 앞에 서 생각이 뜨거운 눈물로 앞을 가려 당신의 그 아름답던 모습을 볼 수가 없구려!
진정 사랑했었소.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하였소. 나를 향해 손짓 없어도 내 마음속에 당신이 꽉 차있기에 나는 절대로 외롭지 않다오. 이제는 앞으로는 천사의 호위 속에 건강하시구려! 안식하시구려. 사랑했었던 나의 오목씨여.
* 그 함 : 추모공원 하늘문. 소망관 VIP1-23룸 31~32열 3단에 안치된 납골함 -「사랑했던 당신이여」, 전문
전 시인의 시에는 진정성이 있다. 삶 속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이 그대로 꾸밈없이 드러나고 있다. 그 다큐적인 힘으로 감상자의 내면에서 조용한 울림으로 다가간다. 아내는 항암치료 중으로 건강하지도 못한 몸으로 때를 거르지 않고 봉사에 성가대에 전도대열에 함께한다. 남았다던 6개월을 초월 21개월을 넘기며 전 교인의 기도와 사랑의 빚을 갚겠다고 마지막 순간까지 노력한다. 이와 같은 아내의 삶은 한 생을 진지하게 살아온 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봉사를 통해서 남에게 베풀고 진리의 말씀을 성가대 활동을 통해서 남에게 전해주는 것은, 모든 종교와 사상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아내와의 사별은 전 시인에게, 한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한계와 운명을 실감하게 한다. 사별의 과정에서 생의 덧없음과 겸손과 욕망의 부질없음을 실감한다.
‘나를 향해 손짓 없어도 내 마음속에 당신이 꽉 차있기에/ 나는 절대로 외롭지 않다오.’
아내와 육체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마음 안에서는 늘 함께하고 있다는 전 시인의 신념은 만남과 이별을 정신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다른 생명들과는 달리 생각이라는 것을 발전시켜온 인간이 할 수 있는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최선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2. 비로소 죽음을 알았다고 할 수 있는 거울 속에 자신을 들여다 본다
한평생 살을 부딪겨 온 아내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은 시인이 자기 자신과 세상을 들여다보는 관점을 새롭게 구축하게 한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이파리처럼 개체로서의 한 인간은 나무라는 생명의 줄기에서 한 계절 피어났다가 떨어져 내리는 이파리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실감한다. 아내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도 수십 년 안에 한정된 삶을 살다가 반드시 죽을 것임을 실감한다. 죽음에 대한 이해의 단계에서 더 깊이 들어가 그것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증득’에 해당된다. 비로소 죽음을 보고 체험한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거울 속을 시인은 들여다본다.
맑은 마음으로 곱게 살고자 거울이란 새 옷에 기도의 단추를 답니다.
돌을 만나면 비켜가는 물처럼 양보를 미덕으로 살아가자고 웃으며 비켜갑니다.
아직도 설익은 모난 성품 맑은 거울에 비치도록 기도의 단추를 여밉니다.
말씀의 거울에 마음 비춰보면 은총 속에 살아온 날들 오늘도 감사로 깨우칩니다. -「거울 앞에서」, 전문
‘맑은 마음, 양보의 미덕, 기도의 단추, 은총과 감사’ 등이 시인의 삶에 대한 다짐들이다. 사나운 욕망과 얼룩, 어둠이 씻기고 닦여진 속에서 피어오르는 맑은 영혼의 향기가 느껴진다. 죽음이라는 화두를 움켜쥔 깊은 묵상의 터널을 지나서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삶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이 언제나 함께하고 있는 기독교 성경에 있어서 기독교의 내면과 영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요한복음>을 꿰뚫는 이미지는 빛과 어둠이다.
요 1:1) 태초에 1)말씀이 계시니라 이 1)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요1:2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2)깨닫지 못하더라 (요 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요 1: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요 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요1:20 (요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 1:11) 3)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4)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 곧 로고스가 가리키는 삶을 향해서, 빛을 향해서 나아가는 하루하루이기를 간구 하고 있다. 이러한 믿음과 소망을 구체적으로 실천해나가기 위해서 시인은 자신이 딛고 있는 현실을 들여다본다. 자신이 놓여 있는 상황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앞으로 자신이 지향해나갈 삶의 자세를 구체적으로 설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3. 빛으로 향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지나온 삶을 들여다 본다
시인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눈앞에 보이는 모습으로 서 있기까지의 지나온 여정을 떠올리게 된다. 시간 속에 그려온 자신의 족적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그를 뒤에서 보면 키가 작고 쩍 벌어지지 않아 별로 볼일이 없게 생각하지만 막상 앞에서 보면 훤한 얼굴에 흠잡을 때 없는 얼굴의 소유자.
국문학과와 거리가 먼 공과대학 금속공학과를 졸업하였고 30여 년 동안 기계 기름에 찌든 근무에 몰두하며 월급으로 사느라 시집 한 권 사지 못해 남의 시 한 편 읽지 못하고 살았지만 고학으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도 중학교 시절 학원 문예란에 공모 된 글이 등재되고 교지와 학보에 詩가 실렸던 과거가 있고 군 생활 중에도 투고를 즐겼으며, 한 손에 해머를 붙잡고 쓴 시로 등단하여 월간지에 간혹 이달의 작가로 얼굴을 내미는 형편으로 유명하지 못하여 그를 보고는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지만 詩를 보고는 그를 알아보는 詩人이다.
사실, 그는 15년 전 교통사고로 말미암아 크게 다쳐 지체 장애우로 살고 있지만 쾌활한 성격 때문에 모두가 몰라본다.
그의 삶은 신앙심으로 넘치며 그가 본 자연은 춤을 추듯 아름답고 그의 작품 속에 사회를 꾸짖는 회초리는 매섭지만 은밀한 찬송과 찬미가 넘쳐나고 있다고 말들 한다. -「자화상」, 전문
이 시에는 한 인간의 인생 역정과 그의 삶에 대한 자세가 정감 있게 드러나고 있다. 넉넉하지 못한 삶 속에서도 한 직업인으로서 성실하게 살아왔음을 읽을 수 있다. 시를 늘 가슴에 빛등불로 밝혀오면서 살아왔음을 읽을 수 있다.
‘유명하지 못하여 그를 보고는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지만 / 詩를 보고는 그를 알아보는 詩人이다.’
사실 그는 15년 전 교통사고로 말미암아 크게 다쳐 지체 장애우로 살고 있지만 쾌활한 성격 때문에 모두가 몰라본다. 그의 삶은 신앙심으로 넘치며 그가 본 자연은 춤을 추듯 아름답고 그의 작품 속에 사회를 꾸짖는 회초리는 매섭지만 은밀한 찬송과 찬미가 넘쳐나고 있다고 말들 한다. 교통사고라는 삶의 질곡 속에서도 쾌활한 성격을 잃지 않는 면, 깊은 신앙심, 자연을 아름다운 춤으로 보는 관점, 사회를 날카롭게 꿰뚫어 보면서도 찬송과 찬미의 마음을 잃지 않는 자세 등은 기독교적인 사랑이 몸과 마음에 배여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려 하고 스스로 빛등불로 세상에 빛이 되려는 마음 자세를 읽을 수 있다.
4. 빛을 향한 삶의 길을 찾기 위해서, 공간적인 면에서의 자아의 정체성 확인
필자는 이제까지 ‘사랑했던 당신이여’라는 아내의 죽음을 소재로 하는 시를 출발로 해서 ‘거울 앞에서’, ‘자화상’이라는 시까지 살펴봤다. 아내의 죽음을 통해서 시인은 죽음을 비로소 자신의 것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생의 종점이 가까이에 있다는, 자신의 삶이 한정되어 있다는 실감 속에서 시인은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본다. 그 모습은 아내의 죽음을 체험하기 이전의 자신과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생을 보는 관점, 세상을 보는 관점이 새롭게 구축되어야 함을 절감하게 되면서 시인은 거울 속에 스쳐오는 지난 세월들을 들여다보고 그동안의 인생의 여정을 꼼꼼히 묵상한다. 시 ‘자화상’이 담고 있는 내용이다. 세월의 여정 속에서 들여다본 자신을 이번에는 자신이 놓여 있는 공간이라는 현실 속에서 들여다본다.
개봉동 구로성모병원과 구로소방서 사이엔 이름이 다른 아파트가 다섯 개, 건널목이 네 개, 버스정거장이 세 개, 전신주가 길 양쪽으로 서른다섯 개가 있어, 821 미터로 걸어서 십삼 분, 자전거로 삼분 걸리는 거리는 기억 자로 굽은 길입니다.
거기에는 콜라텍이 하나 하이마트가 하나, LPG 충전소가 하나, 25시 체인점이 둘, 슈퍼마케터가 셋, 먹을 만한 유명 음식점 넷이 있으며 헤어숍이 셋, 줄지어 기다려야 사먹는 떡볶이집이 한 곳 있습니다만, 자전거포는 하나도 없는 기억 자로 굽은 길입니다. 또한, 남부순환도로가 옆에 있고 경인 국철이 있으며, 안양으로 일산으로 갈리는 곳인데다 다른 동네에는 없는 교도소와 구치소가 있어 특별한 지역입니다.
영등포교도소 담장이 끝나면 나무야 놀자 공예 방이 있고 올리브 의상실과 반디 의상실이 있고 슈즈 방이 있고 조개사냥 횟집이 있고 옛날 막창 집이 있고 칵테일 호프집, 오토바이 수리판매소가 있고 화로구이 집과 양념통닭집 옆에 안경점이 있고 반찬가게가 있고 행운 떡집 옆에는 풀무질로 화덕의 무쇠를 달구어 모루 위에 놓고 두들겨 호미와 낫과 부엌칼과 망치 등의 연장을 만드는 광주대장간이 마지막 집에 있습니다.
이런 개봉동 구로성모병원과 구로소방서 사이가 우리 동네입니다. -「특별 지역」, 전문
이 시는 문체에 있어서 매우 평이하다. 그의 시들이 대체로 보여주는 특성이기도 하다. 그 꾸밈없는 평이함에서 오는 진솔함과 진정성이 시의 힘이 되고 있다. 이 시는 특히 자신의 삶의 공간을 다큐적으로 묘사해내고 있다. 누구나 길로 나서면 만날 수 있는 이 시대의 가장 평이한 풍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삶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묘사해내는 시는 드물다는 면에서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5. 빛을 향한 삶의 길을 찾기 위해서 세상을 들여다본다
지나온 세월 속에서의 자신의 발자취를 들여다보는 작업, 자신이 현실적으로 놓여 있는 지리적인 상황을 들여다보는 작업, 곧 시공간적인 면에서 자신을 들여다본 시인이 이번에는 세상, 곧 사회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아 아 터져라 고개를 비틀어 외쳐 보아도
그냥 그 자리 멈추어 있는 세상
나뭇가지 끝에 걸린 하늘 가로등이 졸고 있는 밤
공원 그네에 몸 싣고 흔들어 보아도 세상은 멈추어 있다
소주 한 병 통째로 홀딱 마셔버리고 병든 세상 몽땅 담아 병마개를 꼭 잠근다.
멀리서 개가 짖는다. -「개소리-세상 때문에」, 전문
현대는 격류로 흐르고 있다. 정보화, 세계화, 시장경제의 세계화, 스마트폰, 핵무기, 우주선, 화학무기, 환경파괴 등 세상은 스스로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거센 격류로 휘달리고 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보할 겨를도 없이 떠밀려간다. 시인 자신도 어린 시절의 자연적인 삶에서 지금은 서울이라는 공룡도시의 콘크리트 문명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그러나 시인에게는 이러한 급격한 변화 속의 세상이 ‘그냥 그 자리/ 멈추어 있는 세상’으로 보인다.
‘소주 한 병 통째로 홀딱 마셔버리고/ 병든 세상 몽땅 담아/ 병마개를 꼭 잠근다.’
급격한 표면상의 변화들이 언제나 어둠 쪽을 향해서 질주하고 있다는 관점은 그의 기독교적 세계관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한복음 3장 19절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한복음 3장 20절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3장 21절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세상적인 삶을 시인은 병든 세상이라고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의 격류는 그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과 드라마를 이루면서 흘러간다. 매일 매일 뉴스를 채우는 사건들의 격류를 보라. 사회는 거대한 공룡으로 제 나름대로 거친 몸짓을 하고 있다. 그 속에 한 개체, 한 개인인 시인에게 사회는 친절하지도 큰 관심을 두지도 않는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한 때 그 격류 속에 휘말려 들어 사나운 욕망을 태우기도 했던 시인은 이제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생의 향기를 발견하고 더듬어가는 여유를 찾게 된다. 성스러운 삶의 상징이 되고 있는 절두산이라는 공간에서 세속적인 삶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를 발견하는 시인의 시선이 이런 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6. 일상의 삶 속에서도 종교적, 초월적 구원으로 향하는 창구를 발견
샌프란시스코에 가보셨나요? 그곳 언덕에 오르면 팔 벌리고 서 있는 노송이 반기고 배 드나드는 항구는 아니어도 찰랑거리는 물가로 이어지는 듯한 다리 아래로 잔잔히 흐르는 파란 물빛 어제같이 흐름은 유수의 면모를 유지하는 그 집이 거기 있기 때문 언제나 그곳에 가면 사랑에 빠진 환상의 연인처럼 기분 좋은 추억이 살아나 뚫린 창으로 찾아드는 강바람에 여름은 가슴이 시리도록 시원했고 투박한 주물난로에 토닥거리며 타는 장작불은 얼어붙은 가슴 녹여주던 아름답고 조용한 그곳이 순교자기념관으로 단장됐지만 오늘도 어제 같아 쉼 없이 모여드는 건 순례자가 아니어도 그날의 참맛 기억하기 때문.
샌프란시스코* = 절두산 에 있는 찻집. -「샌프란시스코」, 전문
샌프란시스코에는 온갖 세속적인 삶의 풍속들이 집합되어 있다. 파란 물빛이 있고 사랑에 빠진 환상의 연인이 있다. 토닥거리며 타는 낭만적인 장작불이 있고 얼어붙은 가슴을 녹여주는 부드러움이 있다. 세속적인 달콤함, 저버릴 수 없는 생의 속살들이 넘실대고 있다. 그러나 절두산에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는 달리 삶의 강렬한 유혹과 악마적인 욕망들이 정화되어서 부드럽게 녹아들고 흐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시인이 몸담고 있는 서울이라는 공룡도시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시인은 공룡도시의 세속적인 욕망의 격류에서 빠져나와 절두산에 있는 사색적인 샌프란시스코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조용히 차를 마시면서 자신이 방금 빠져나온 서울을 들여다본다. 기독교적인 신념과 사랑과 믿음으로 자신을 송두리째 바쳐버린 성인들의 마음으로, 시선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려 한다.
7. 종교적인 삶에 대한 진지한 묵상
시인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다. 요한복음 3장의 말씀이 들려온다.
[11]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 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중에서
어둠 속에 놓여 있는 세상을 구원하려는 빛의 기운이 그를 감싸고 있음을 시인은 느끼면서 기도의 손길을 쳐든다.
교회 앞 소공원에 세워진 십자가 나는 그 십자가에 기도를 하였네 오가는 사람들 그 십자가 보고서 주 예수 믿으라고 오갈 때 빌었네.
오늘 종일 빌었네 십자가 곁으로 지나는 안 믿는 자 돌아만 오라고 주 예수 믿으라고 오갈 때 빌었지 모두 다 이곳으로 발길을 돌려라.
교회가 잘 보이는 소공원 십자가 오가는 많은 사람 주 예수 믿으라 전하고 초청하여 찾아온 새 신자 복 받고 구원 얻어 기쁘게 섬기네. -「십자가」, 전문
요한복음의 말씀이 깊은 믿음을 일으키면서 시인의 내면의 빛등불을 훤히 밝히고 있다. 가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시인의 내면의 빛등불에서 비춰 나오는 밝은 믿음의 빛살은 사람들에게 초청의 말씀으로 번져나간다.
8.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실천하고 전하는 삶
[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중에서
아내의 죽음, 자신의 인생과 자신이 놓여 있는 시공간적인 상황, 자신이 발 디디고 있는 세상에 대한 성찰이 절두산 성지에서 만나는 성인들의 생애에 깊은 공감을 일으키고 그와 같은 삶을 자신도 실천하고자 하는 소망으로 진전되고 있음을 그의 시「십자가」는 보여주고 있다.
힘들고 지루한 인생 여정에 여기까지 잘 오셨습니다. 이번 내리실 역은 구원역입니다. 회개하실 분이나 용서받고 싶으신 분은 이번 역에 내리시고 다음 역은 영생역입니다. 편히 쉬고 싶은 분이나 영원히 살고 싶은 분은 다음 역에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자 배고픈 자 병들고 아프고 고달픈 자 모두 다음 역에 내려 7번 출구로 나가셔 구원받고 함께 복 받으시길 소망합니다. -「7번 출구」, 전문
시인은 이제 자신의 가슴에 믿음의 빛등불을 켜고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이러한 시인의 모습은 아내의 마지막 모습이기도 하다.
항암치료 중으로 건강하지도 못한 몸으로 때를 거르지 않고 봉사에 성가대에 전도대열에 함께하며 남았다던 6개월을 초월 21개월을 넘기며 전 교인의 기도와 사랑의 빚을 갚겠다고 노력하더니 끝내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역하지 못하고 나를 떠난 당신 -「사랑했던 당신이여」, 중에서
아내가 죽음과 정면으로 만났을 때 택한 삶은 봉사와 전도였다. 시인 역시 아내의 죽음이라는 터널을 통과해서 도달한 지점이 바로 봉사와 전도임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아내의 생전의 마음에 깊은 공명을 일으키면서 아내와 함께했던 지난 삶, 사소하게 보일 수도 있었던 지난 삶의 자취들을 소중한 눈길로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이 피워 올리는 향기를 음미하게 된다.
9. 믿음의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사소하고 평이한 삶이 자리하고 있다
어떻게 키웠는데 이제 제 밥벌이한다고 그것을 다 잃어버리고
제가 찾은 짝 맘에 들지 않아도 반대 없이 받아 성사시켜 주었건만 그래도 부족하다고
먹이고 입히고 키우고 가르친 결과 인제 와서 계산하자는 것도 아닌 대, 시대의 흐름이 핵가족화되었다고
늦어지면 걱정되어 전화하고 아무리 늦어도 들어오기 전까지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기다렸건만
아직 부모의 마음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제 다 컸다고 간섭받기 싫어하니
아무리 세태가 그런다 해도 자기를 양육시켜준 부모인데 자식 된 도리로 노후를 모른다 하다니
상대도 안 되는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 이겼던 사실을 지금도 부인하지 못하는 세상인데
하물며 혈육이요 피붙이 인대 자식이 부모를 몰라라 돈 있다고 자랑인지 실버타운에 맡겨
아직은 더 희생하려 잔소리는 안 한 지 오랜데, 함께 살려는 눈치 보이질 않으니
굴 껍데기같이 다닥다닥 엉겨 붙은 생각 굽이치는 파도에 씻어 버리고 싶어 고개를 힘 있게 흔듭니다.
자식, 부모, 그 관계를 어찌 말로 다 설명하겠느냐고. -「그래도 그래야지」, 전문
부모 자식 간에 사소한 갈등, 소소한 이야기들로 채워지는 평범한 삶, 그러한 삶의 모습들이 환한 빛살을 내면서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아름다움으로 삶의 보석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일상의 삶에서 묻어나오는 소소한 것에 대한 묵상이 맛깔스럽게 그려지고 있음을 이 시에서는 볼 수 있다. 한 평생 생의 동반자였던 아내도 떠나버린 지금 시인에게 남겨진 생의 날들은 많지 않다. 하루하루가 다시 돌려받을 수 없는 일회적인 삶이다. 그렇기에 부여받는 날들은 더없이 소중한 신의 은총으로 빚어진 신의 선물이다. 이런 삶의 순간순간들을 아름다움으로, 신에 대한 감사로 채워갈 수 있기를 시인은 간구한다.
10. 시는 종교이고, 종교는 시다
본디 가진 것도 준비한 것도 없지만 그러나 오래전부터 꼭 한 번 떠나보고 싶었다.
잉태의 기쁨도, 분만의 진통도 당장 손에 잡힌 것 없어도 약속의 정상에 오르지 못한다 해도 떠나보고 싶다.
꿈꾸던 세계에 포근한 둥지를 틀고 그곳에 십자가를 세우고 살아온 날들을 노래하고파
떠나야만 한다.
* 이상향(理想鄕)[명사] 이상으로 그리는, 완전하고 평화로운 상상(想像)의 세계. * 도원경(桃源境). 무릉도원처럼 속세를 떠난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 파라다이스(paradise) -「이상향 - 문학의 길로」, 전문
시인은 가슴에 십자가의 빛등불을 켜고 문학의 길로 시의 길로 떠나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을 노래하고 있다. 요한복음 제1장은 태초에 말씀이 있음을 밝히고, 이 말씀이 곧 하나님임을 말해주고 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은 곧 말씀으로 인간들에게 올 수 있고 오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 말씀의 화신이 곧 예수임을 또한 말해주고 있다. 시는 바로 이 말씀으로 빚어낸 가장 섬세하고 아름다운 형태다. 그래서 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아름답고 섬세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까지 전 시인이 아내의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실존과 진지하게 대면해왔고 그 실존의 터널을 지나서 신을 향한 기도와 감사 은총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살펴봤다. 이렇듯 인생과 믿음의 세계를 한 바퀴 휘돌아온 전 시인에게 자연스러운 바람이 생겨난다. 오늘날 바벨탑처럼 여겨지는 대형교회들처럼 세속과 결탁 되어 믿음의 본질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것만 같이 여겨지는 믿음의 세태들 속에서 종교 본연의 모습 진리의 말씀을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시들이 전홍구 시인의 가슴에서 싱그러운 샘으로 솟아나리라 믿고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