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 가게에서
옛날을 생각하며 호롱을 하나 샀다.
어느 초가의 안방이나 사랑채
한 모서리에
밤마다 소중히 모셔졌을 이 빛의 도구를
국수 한 그릇 값으로 나는 가져왔다
지금은 쓸모없는 퇴기처럼 버려진
골동 중에서도
대접이 서자 같은
아 고전의 기물을 바라보면서
그래도 마음 한가운데 보드라운
희열의 물살이 이는 것은,
아, 누군가
가물대는 이 호롱의 불빛을 이마에 쓰고
터진 식구들의 옷가지를 땀땀이 기웠을
그런 아낙과
이 호롱 아래서 조용히 책장 넘기며
불빛 따라 희미한 새벽의 여명 속으로 건너갔을
한 꿈의 소년과
이 호롱의 불빛으로 잠 못 이루는 해수(咳嗽)의 밤을
혼령처럼 앉아 지샜을 그런 노인과
이 호롱 아래서 잠든 아이들 얼굴 지켜보며
나즉이 두런대던 근심어린 대화의
한 부부와
이 호롱의 불빛에 부끄럼과 갈증을 느끼며
칠흑 어둠 속으로 자지러들던 초야의
한 신혼과......
아, 어쩌면 그들은 내 부모였고
할머니 할아버지 또는 증조부모
아니면 내 이웃들의 선친이었을 그런 가까운 사람들의
그립고 눈물겹고 간절한 사연들을
호롱,
이 침묵의 유물은
가만히 뿜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애송시 II, 청하]===
호롱불 아래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졸며 공부했던 초등시절이 있었습니다.
남포불은 더 밝았습니다.
석유를 사러 읍내에 가기도 했습니다.
달빛이 가로등이었으며
풀벌레 발자국소리에
울음을 그쳤습니다.
서낭당을 돌아설 때는
걸음이 빨라졌습니다.
무서웠습니다.
그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 만큼 왔습니다.
어제가 경칩이었습니다.
개구리 일어나 울겠지요.
풀벌레도 울어대겠지요.
마음 편한 오늘 되시고,
건강하세요.
=적토마 올림=
카페 게시글
좋은시모음방
호롱/이수익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