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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갈등을 넘어서 통일을 바란다(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스님) – 53선지식 시즌2 스물두 번째 법회 봉행
삼보에 귀의 하옵고 _()_
■.법회주제 : 남북의 갈등을 넘어서 통일을 바란다.
일 시 : 불기 2567년 1월 27일(금) 저녁7시~9시
장 소 : 조계사 대웅전
강 사 : (재)대한불교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스님
사 회 : 교육부장 성월 정승길님
참석자: 총동문회 제10대회장 보명화 도영숙 외 270명 참석
집 전 : 9대 신행부장 일심행 전지유님
■.법회식순 :
제 1부 : 화엄경 약찬게 –공지사항- 개회사 – 삼귀의 – 우리말 반야심경 – 감사패 전달 – 이임사( 제9대 총동문회장 혜월 권순석) -
취임사 (제10대회장 보명화 도영숙)- 격려사( 지도법사 남전스님) - 발원문 (고문 성해 장경태)-음성공양(사박 걸음으로 가오리다.
님을 따라 천리길)
제2부 : 청법가 – 입정 – 법문 – 사홍서원 – 폐회사 – 기념사진 촬영
( 조계사 불교대학총동문회 53선지수 합창단 )
□. 노래 : "사박 걸음으로 가오리다."
□. 지휘 : 경희대학교 박경태 교수
□. 반주 : 삼조 정진경
□. 포교부장 운정 나현숙님 외 단원 20명 일동
□.촬영 : 단원 관음수 최명수님
■.법회 이모저모-(53선지식-1월)
총동문회 불자님들! 2023년 토끼해엔 풍요와 번창을 상징 한다고 해요.
올 한해도 저희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운 대로 실천하고 정진해서 각 가정에는 행복이 삼라
만상에는 불향이 가득하길 함께 서원했으면 합니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봉사와 수행을 했는데요. 이번 이임식을
하신 제 9대 혜월 권순석 회장님을 중심으로 한 부회장님들,그리고 각 부장님들과 임원분들께서 성지순례, 기도법회, 봉사, 행사,
불사 등을 잘 이끌어 주셔서 “명품 신행단체로 거듭 재도약을 했습니다.
또 새로 취임한 제10대 집행부 회장 보명화 도영숙회장님 외 임원들께서도 총동회의 화합과 결집을 통해 도반은 가족이다. 라는
모토로 진리를 찾고 서로를 힘차게 응원하며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짓는 신행단체를 만들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혀 주셨습니다.
제9대 임원분들과 제10대 집행부 임원분들의 이.취임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환영합니다. 덕분에 총동문회의 앞날에 부처님
의 장엄이 함께 할 것 같습니다.
계묘년 새해 첫 법회는 현) 해인사 백련암 암주,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재)대한불교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이신 원택스
님을 초청해서 “ 남북의 갈등을 넘어서 통일을 바란다.” 란 주제로 법을 들었는데요. 이 자리에서 경봉스님의 상좌 명성스님께
통도사에서의 큰 스승스님의 다비식 과정에서의 경험담을 듣고, 성철 큰스님의 상좌 원택스님께서도 합천해인사에서의 큰 스
승 스님의 다비장을 수십만 인파가 운집했으나 좁은 위험한 길에서도 들어오는 길과 나가는 통로 길을 열어줌으로써 사고 없이
다비장행사를 무사히 마쳤다는 말씀을 25분간씩이나 해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태원 참사도 미리 준비가 되었다면 미연에 방지
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커서였을 것이고 저희 총동문회 소임자들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그동안 성철 큰스님께서 1982년 부처님 오신날 당시에 “자기를 바라봅시다.” 내려 주시려 했던 법어를 이번법회에서 특종
발표를 해주셨는데요. “눈부시게 밝은해 구슬같이 둥근 달이 부처님을 노래한다. 로 시작해서 크고 작은 이해를 다투지 않고 서로
를 돕고살면 욕심뭉치는 햇볕아래 눈 덩어리처럼 사라지고 마음이 형형할 수 없이 깨끗해집니다. 다 같이 부처님을 노래하고 춤
추며 살아갑시다.” 하시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대 종정 퇴옹당 성철대종사의 법어를 세상에 공표해 주셨습니다. 추위에도 먼 걸음
해주신 원택스님의 60분간의 법문은 오직 모든 이들의 행복입니다.
이날 법회에는 취임한 제10대회장 보명화 도영숙 회장님을 비롯한 상임고문 혜월 권순석님, 신도회 교육본부부회장 겸 고문 성
해 장경태님, 신도회 부회장 겸 장학회이사장 호연 김경숙님, 고문 대덕심 겸영숙님, 자문위원장 경담 이원굉님, 명선 박종화자
문,남미화자문, 영윤 김용규자문, 여천 김성우자문, 삼조정진경자문, 정진행 양순덕자문, 현진화 김정미자문, 평전 하용수자
문, 법연 이동엽자문, 도안심 이순화자문, 환희지 권종순자문, 월광지 임연선자문, 일심행 전지유자문, 명광월 권정숙자문, 문수
행 정은희자문, 대철 이학구자문, 정명화 허복미자문님 외 여러 동문임원 및 불자님들과 신년 53법석을 가득 채워 회향했습니다.
※【공지사항 】※
조계사 불교대학원 63학번 여러분과 불교대학 65학번 여러분들의 졸업을 축하합니다.
총동문회와 함께 수행 봉사하며 참불자로 나아가시길 기원합니다.
■.천수다라니기도법회 안내
1. 일 시 : 매월 첫째 주 금요일 저녁 7시
2. 장 소 : 조계사 극락전
■.2023년도 동문회 임원모집
-. 자격 : 불교대학 졸업예정자 및 졸업자
-. 신청서 ; 소정의 양식 작성 후 동문회제출 ( 신청서는 동문회 사무실 비치)
■. 연등모연 “1동문 1등 달기”
-. 부처님 오신날 연등모연은 총동문회로 접수바랍니다.
-. 문의 : 봉사부장 법연심 안영란 010-9410-6369
■.총동문회 합창단 연습
-. 일 시 : 매월 1,2,3째 주 (토) 12시 30분 ~2시
4째 주 (금) 오후 5~6시30분
-. 장 소 : 안심당 지하 합창단실
-. 문 의 : 포교부장 운정 나현숙,010-9491-9466
■.목탁습의
-. 일 시 : 매주 토요일 오후3시30분~5시
-. 장 소 : 관음전 지하어린이법당
-. 문 의 : 신행부장 법담 손영길님
■.동문회비 및 53선지식 구법여행 법회 보시구좌 안내
-.동문회비 : 연회비-5만원, 평생회비-50만원
-.하나은행 111-054579-03005. 예금주 대한불교조계종조계사
-.문의 재무부장 일향지 김영인 010-3209-7400
■. 장학기금 후원 (조계사불교대학총동문회 장학회)
-.조계사불교대학 동문이면 누구나 월1천 원 이상의 장학기금 후원가능
-.장학회 정회원 조건: 출자금10만원 월 1천 원 이상 후원하시는 분
-.후원계좌 : 신한은행 100-030-532200 (조계종조계사 불대총동문회)
-.문의: 장학회 총무 보현행 안영주 ,010-6272-2895
재무 신명덕 오혜식 ,010-9068-9049
■.불교신문 구독신청
-. 53선지식 구법여행을 함께 진행하고 있는 불교신문 구독 신청바랍니다.
-. 문 의 : 자문위원 법연 이동엽 010-6324-3200
■.[동안거 생명살림 방생법회 모연] 동안거 회향 생명살림 방생법회 동참안내
-.2023년2월12일(일)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
-.동참금 : 1인 50,000원
-. 조계사 불교대학총동문회 신한은행 100-030-532280,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문의 : 총무부장 도운 민영환 010-5309-9972
■.총동문회 행복 나눔터
-.참기름(12,000원) 들기름(13,000원) 볶음참께(5,000원)를 판매합니다.
-.문의 : 재무부장 일행지 김영인 010-3209-7400
■.53선지식 시즌2 구법여행 법사비 보시
-. 2023년 1월 53선지식 스물두 번째 법사비 : 보명화 도영숙 회장님이 보시해 주셨습니다.
■. 이임사
안녕하십니까?
조계사불교대학총동문회 제9대회장 혜월 권순석입니다.
많은 동문님들의 도움으로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제9대 회장직을 원만히 마치게 되었습니다. 주지 지현 큰스님과 부주지이시
며, 지도법사 이신 남전스님, 교육국장 홍재스님, 교육부국장 무진스님의 동문회에 대한 크신 관심과 사랑속에서 여러 가지로 도
움을 주신 성해 장경태 교육본부장님과 대덕심 김영숙 고문님, 자문위장님을 비롯한 고문,자문님,감사님,부회장님 ,각부장님 및
차장님, 그리고 여러 선후배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제9대 총동문회는 조계사불교대학총동문의 “명품신행단체”로 재 도약을 위하여 동문님들과 함께 한마음이 되어 코로나바이러스
등 녹녹치 않은 주변 환경속에서도 성지순례,기도, 법회,봉사,행사,불사등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총 동문회는 큰 원력과 깊은 신심을 겸비하신 보명화 도영숙 회장님을 제10대 회장님으로 모시게 되어 매우 기쁘고 마음
든든하게 생각합니다.
보명화 도영숙회장님을 중심으로 제10대 총동문활동에 임원님과 동문님들의 많은 관심과 능동적인 참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계묘년 한해 동문님과 가정에 불보살님 가피가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불기2567(2023)년 1월 27일(금)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제9대회장 혜월 권순석합장]
■. 취임사 (인사말)
반갑습니다.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제10대 회장으로 인사드리는 보명화 도영숙입니다. 먼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와주시니 진
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먼 길 오신 원택스님과 지도법사 남전 스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총동문회 제 9대를 잘 이끌어주신 혜월 권순석 회장님과 집행부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명품 신행 단체인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회장이라는 막중한 소임에 살짝 우려도 있지만 여러 동문님들께서 관심과 응원과 협조와 채찍도 드시
면서 함께해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조심스럽게 저의 포부를 말씀드리면 저는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가 내년 12월
에 실시하는 제36회 조계종 포교대상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을 것을 가슴 속에 품고 도전할 것입니다.
그 도전의 성공은 제가 생각하는 총동문들의 화합과 결집 그리고 동문님들이 동문회를 생각하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 지어지는 그
때 그것은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오롯이 동문 여러분들의 관심과 협조가 필요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봉사에 큰마음 내주신 10대 집행부 임원들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저희 10대 집행부는 동문님들과 총동문회
를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을 발원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 분들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불기 2567년 1월27일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제10회장 보명화 도영숙 합장 ]
■. 격려사 - (지도법사 남전스님)
오늘 춥죠 날씨 많이 춥죠.
그런데 혼자만 춥지 않죠. 다 같이 춥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다 보면 힘들죠 그런데 역시 혼자만 힘들지는 않아요. 다같이 힘든 것입니다. 그건 아마 다함께 하는 것이라
서 그럴 거예요. 그러니까 견딜 만하죠. 춥고 힘들어도 참아낼 수 있을 만큼 될 것 같으니까 새 회장님을 중심으로 해서 여러분들
총동문회가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좀 만드시면 좋겠다.
시간이 좀 허락되면 조금만 말씀을 좀 드려볼까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부처님의 열 분의 제자를 우리가 10대 제자 이렇게 표현을 하는데 사실은 경전에서 여러 가지로 10대 제
가 설명하고 있습니다마는 열 분의 십 대 제자 이야기는 그렇게 많이 등장하진 않아요.
춘경전에는 부처님께서 제 일 자의 칭호를 붙여준 제자들을 보면 80여 분의 스님들 부처님 제자들이 계세요. 80대 제자라고 해야
맞지 그중에 한 사십칠 분 정도가 비구스님이 계신 열 세분 정도는 비구니 스님들이 계시고요. 열 분은 재가 남자 불자들이세요.
우바새 한 열 분이 계시고요. 우바이 여자 보살님들 여자 신도분들도 한 열 분 정도 그래서 아마도 사부대중 중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부처님의 법을 어떤 뛰어난 분들이 많았음을 증명하는 신행을 하는 데 있어서 출가 재가의 부분이 그래서 따로 있는 것
은 아닙니다. 뭐든 열심히만 하면 참 좋겠는데 근데 이제 그중에 아주 덕망이 높은 스님들을 옛날 분들도 무슨 3대 제자 4대 제자
이런 걸 하여튼 좋아하셨나 봐요 그중에 경전을 쭉 좀 통 틀어보니까 제가 정확하게 통계를 내보지 않았습니다마는 제가 읽은 여
러 경전들에 나오는 가장 빈도수가 이렇게 부처님게 뛰어난 제자가 한 네 분 정도 이렇게 계셔요 수보리가 가장 많이 등장을 해
요. 금강경의 주인공이, 외모 논의 제일이라고 불리어지는 가전연 스님께서도 상당히 많은 등장을 했어요. 그리고 설법 제일인 부
루나 존자도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 다문 제일 아난존자가 많이 등장했습니다. 사실 부처님의 제자 중에 가장 부처님과 근접했던
깨달음을 어르신들이 바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네 분이에요. 수보리 가전연 부루나 아난존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높이 추앙
받는 분이지만 우리들 여러분 잘 알고 계시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루나존자 이야기인데요. 여러분 부루나 존
자가 부처님이 활동하시던 저 서쪽인도의 수로나(수나파란타국)라고 하는 지방에 포교하러 간다고 부처님께 청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분이 갖고 있는 교단에서의 어떤 집이나 상수 제자로서의 어떤 존경을 받으면서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세상 사람
들을 진리로 이끌기 위해서 큰 서원을 세우시고 수로나 라는 곳에 가셔서 포교하시기 전법하시겠다고 부처님이 이 수로나는 식인
국가였다고 그래요 식인 사람은 잡아먹는 흉폭하고 야만적인 곳이었죠. 부처님이 걱정이 되시니까 흉폭 하다는데 그대가 가서 욕
하면 어쩔렵니까 했더니 부루나 존자가 너무나도 착한 분들입니다.
때리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또 물어보시며 때리면 어쩔래요? 그분들이 참 착한 분들 이구나라고 생각할
칼로 찌르지 않는 게 어디입니까. 이렇게 질문을 다시 부처님께서 칼로 찌르면 어쩌려고? 했더니 죽이지 않는 것을 보면 그분들
참 착한 분들일 수 있겠습니다. 죽이면 어쩔래? 마지막으로 물었더니 부처님께서 말씀해 주셨듯이 어차피 사대로 돌아갈 이 몸
을 이 탐 진 치의 공상 그 근본이 이 몸을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그분들이 얼마나 훌륭한 분들이겠습니까. 이렇게 부처님께 그 얘
기를 듣고는 부처님께서 그만하면 됐다 하고 부루나에게 전도를 허락하시죠. 부루나존자가 실제로 수로나 지방에 가셔서 순교하
세요. 그분들의 죽임을 당하시는데 이 부르나 존자의 영향으로 부처님이 한 번도 가지 않은 수로나라고 하는 지역에 가장 많은 스
님들이 생겨나 가장 많은 불교교단이 생겨나 식인의 문화가 없어진 거면 이렇게 어떤 조직이든 서원이 큰 지도자 서원이 큰 불자
가 한 분 계시면 그 여파가 주변으로 가서 우리가 소속한 공동체나 그분이 같이 있는 그런 조직들은 너무 부처님 법대로 여법하게
진리대로 아마 신행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역할을 우리 9대 회장님이셨던 혜월 권순석 거사님께서 너무 잘 해주셨고 여러 임원들도 마찬가지이시고요. 또 이제 새로 회
장이 취임한 10대 회장님이신 보명화 도영숙 보살님께서도 너무나 그 일을 잘 해주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 서원
들을 가지면 안 되는 거 없는데 제가 지도 법사이니까 노파심에서 잔소리 같은데 딱 두 가지만 말씀을 드리는데 첫째는 기본이 아
주 중요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중심을 다 갖추면 뭘 해도 우리 불교에 기본은 뭘까요. 불교적 신행에는 기본이 되어
야 뭐 그래도 누가 뭐라고 하는 내분이 일어나면 어쩌고 그건 잘 모르겠고 불교적 신행이라고 하는 기본이 탁 서있으면 총동문회
는 계속 발전해 나가야 됩니다. 그걸 회장님하고 소임자들이 잘 하셔야 합니다.
첫 번째가 불교적 신행은 기본 충실하신 이거 한 가지 또 하나는 이왕의 소임을 맡았으니까 좀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남에게 보이
기 위해서 억지로 하지 마시고 어쩔 수 없이 소임을 받아서 그냥 힘들다 죽겠다 하면서 하지 마시고 이왕에 받은 거니까
재미나게 하면 좋지 않겠어요. 여러분 조금만 생각해 보면 몸과 마음이 아프면 어떻게 소임을 하겠어요. 어떻게 공부를 하겠어요.
수행을 하겠습니까 바라고 지금 소임을 맡고 일을 하는 것은 너무너무 좋은 거야 몸도 건강하고 버틸 만하고 참을 만하니까 되는
것이 즐겁게 하셔야 성공합니다. 재밌게 하셔야 이 조직이 훨씬 더 앞으로 많이 가요.
그 점만 명심해 주시면 새해가 시작됐는데 임기도 새로 시작하니까 딱 맞아 떨어져서 좋습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여러분 힘
차게 전임 회장님께도 감사드리고 신임 회장님께도 축하드립니다. 지도 법사의 격려사는 이만 이 정도 하겠습니다.
■.발 원 문
시방삼세 불. 보살님이시여!
부처님 전에 한줄기 등불을 밝히며...
어리석은 저희들은 지금 엎드려 지극한 마음으로 불. 보살님께 귀의하고 참회하옵니다.
세세생생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지은 죄업을 소멸하게 하옵소서.
저희 불교대학 총동문회원과 불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운 대로 실천하겠다’라는 발원과
함께 ‘봉사하고 포교하겠다’라는 서원을 세운 불제자로서. 53선지식 특별법회와 제10대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장 취임식을 맞아 기쁨과 희망이 가득 찬 가슴을 열고 일심으로
발원하옵니다.
불퇴전의 수행으로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
제10대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의 계획과 각 임원님과 동문님들이 세운 발원이 걸림 없이
이루어지도록 하옵소서....
보명화 총동문회장님을 비롯하여 자리를 같이한 동문님들의 가슴속에 항상 웃음꽃이 피어
막힘없는 나날이 되도록 신행활동에 정진하겠습니다.
저희들도 부처님과 같이 복덕과 지혜를 갖추고
문수보살의 밝은 지혜와 보현보살의 큰 신행과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심과 지장보살의 높은 원력을 본받아
자기 심성을 밝히며 불법을 널리 펼치고
모든 생명이 행복과 안락을 누리는 신행활동에
물러남이 없이 정진을 거듭할 것을
부처님 전에 두 손 모아 간절히 발원하옵니다.
복덕과 지혜를 다 갖추신 부처님!
언제나 진실함과 공평과 선한 뜻이 여기에서 이루어지며
모두가 보살의 길에 들어 서로 믿고 양보하고 참아내는 덕행을 배우게 하소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본받아
만나는 모든 이에게 행복을 전하는 청정한 신행을 하겠습니다.
오늘 53선지식 구법여행과 총동문회장 취임법회를 계기로...
경전에 인연 있는 자, 경전으로 눈을 뜨고
염불에 인연 있는 자, 염불 속에 안락을 얻으며
진언에 인연 있는 자, 진언 따라 부처님의 서광을 흠뻑 받기를 바라옵니다.
이 인연공덕을 법계에 회향하오니,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모든 사람 모든 생명에게 자비와 광명이 항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일체 중생이 다 함께 성불하여 지이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보니불!
불기 2567년 1월27일
(신도회 교육본부 부회장 겸 총동문회 고문 성해 장경태 합장)
■. 법 문 ( 원택스님)
제가 백련암으로 출가한 지가 올해 51년 쯤 됐는데 올해 같이 추운 겨울을 처음 봤습니다.
백련암에서 마이너스 20도가 그게 없는 게 그렇게 춥고 떨고 이렇게 하면서 오늘 여러분들을 뵙고 싶어서 오면서 서울은 얼마나
추울 텐데 오늘 이렇게 많이 나오셔서 이렇게 앉아 계시니 또 이 추운겨울 오셔서 정말 제가 그 마음을 따뜻하게 해드릴 수 있는
무언가를 드리고 가야 할 텐데 저도 떨고 여러분도 떨고 가면 어쩌나 하는 그런 심정입니다.
그러고 저도 오늘 이 자리에 앉아 보는 것도 한 20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제가 총무부장으로 있을 때는 한 달에 한 번씩 와서 이 자리에 올라와서 법문 했는데 그때는 불상들이 이렇게 크게 모셔지지 않으
셨을까 합니다. 삼존불이 크게 모셔진 자리에는 처음이 아닌가? 그럴 정도로 오랜만에 이 자리에 앉게 됐습니다.
먼저 바뀐 점부터 먼저 말씀드리면 1982년 7월 17일 날 경남 양산군 통도사 극락암에 출석하고 계셨던 경봉스님께서 “야반삼경
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고라.” 하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시고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때 경봉스님께서는 경봉스님 아시는 분 손 한
번 들어보세요. 그래도 이쪽이 훨씬 많네. 그래서 이제 그때 큰스님께서 세수는 91세 그 당시로도 오래 사셨죠. 91세로 법락은 75
세 인데요 그래서 일찍이 스님도 출가하신 분이 그래서 저는 큰 스님의 시자으로서 큰 스님께서 손수 써주신 추도사를 들고 이제
다비식에 참석하고 통도사 극락암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극락암에서 가면서 운구가 시작되어서 통도사 다비장으로 가는데 그
초삼일이지만 그 연도에 사람들이 얼마나 빡빡하게 왔던지 이제 조문하러 와 있는 그런 광경에 저는 이 시골에 웬 사람이 이렇게
많다요. 하고 아니 속으로 놀라고 또 그 옆에 이제 나무들 있는 이 여름이고 하니까 나무 잎이 무성한데도 여기에 이제 남정네들
은 다 가지가지마다 올라가 가지고 나무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과 매달릴 수 있는 그 허전한 일이 돼가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셔서 추모의 분위기를 표시하는지 정말 저는 속으로 놀라고 말았습니다.
나름 그 당시에 한 출가에서 10여 년 동안 스님 심부름으로 이절저절 그게 그 초상날 때 마다 가서 조사를 전해드리고 참 슬픔을
표시하고 오고했지만 그렇게 겁나고 큰스님이 가시는 것만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연도에 몰려나온 모습을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엄청 놀라고 큰스님께서 생전에 덕화가 많으시다 하더니만 정말 유풍이 이렇게 오늘 그렇게 많은 분들을 또 다시 당신 떠
나심을 슬퍼하게 조사하게 그렇게 만드셨구나 하는 그런 감격을 생각을 가지고 오게 됐습니다.
그 후로 이제 한 5~ 6년 세월이 지나서 이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 종단 행사가 경봉 큰스님의 맏상좌 되는 명정스님을 우리
마당 위에서 만나게 됐습니다 만나게 되니까 반갑게 또 인사를 하게 되고 명정스님이 먼저 한 말씀 제법합니다. 나나 원택스님이
나 큰스님을 모시는 시자로서 그 동병상련의 마음을 잘 알고 있지 당신 여러 큰스님 모시면서 고생 깨나 하셨다는 말씀 하고 있어
그래서 이제 잘 알고 있지 그래서 보시다가 나중에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당일만 오지 그래서 스님 모시
고 갔다가 진찰을 하든지 주사를 맞으시든지 이렇게만 하고 올 것이지 그 오랫동안 입원처럼 그렇게 평소에 오래도록 계시게 해
서는 안 된다는 그런 체험을 내가 하고 있다. 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지금 소문내는 성철 스님께서 경봉스님 보다는 12살밑이
시니까 건강하게 계신다고 듣고 있지만 또 세월이 가고 노인이 되시고 많이 편찮 그러니까 또 언제 오실지 모르니까 그때는 상좌
들이 잘한다고 막 병원 갑시다. 뭐 갑시다. 하면서 자꾸 주사 맞추고 하지 말고 될 수 있으면 병원은 멀리하고 또 병원에 가서 입
원하신 다든지 마지막에 있는 그런 이야기일은 피해라
꼭 당신의 체험이라고 그는 꼭 내가 부탁한다. 내 경험이 있으니까 그런 말씀을 다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또 하시는 말씀이
큰스님 계실 때는 우리 건강함이 신도로서 미어터졌다. 미어터지고 발 디딜 틈이 없는 그 나날이 위해서 계속되더니만 큰스님 떠
나시고 한 3년 지나면서 4~5년 되니까 그 많은 신도들이 어디로 가든지 참 자갈밭에 물 빠져 있듯이 그렇게 이렇게 해서 참 절이
큰스님 계실 때하고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마음이 참담한 경험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말을 잘 새겨 듣
고 큰 스님 이제 백련암에도 큰 스님 떠나신 뒤 백련암은 살아갈 준비를 잘 해두기 염려라 부탁합니다.
또 우리가 또 언제 만나겠어요. 원택스님을 만나면 이 말이 꼭 또 이야기했다가 곧 생각을 해서 오늘 만났으면 한다. 이렇게 이야
기를 하시니까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스님 말씀 감사한데 저도 토를 좀 달여야 되겠습니다. 무슨 토? 그래서 그런데 우리 스님
은 백련암은 찾아오는 신도들이 3천배를 해라해서 하는 사람은 겨우 법당에 가서 절하고 그 사람만 만나주셨지 3천배 못 하는 사
람은 문 앞에 선 채로 백련암에는 문전에 못 들어오고 돌아가야 돼 있습니다. 아무리 이제 멀리서도 백련암은 얼마나 산골입니까
어느 산골이 와도 재워주시는 것도 없고 제 절 못 하면 무조건 회방 시켜라 그렇게 해서 이렇게 오늘까지 살아 왔습니다. 그러니
까 온 중에 열에 아홉은 눈앞에서 섭섭한 게 없구나
돌아가는 것이 백련암의 일상 지금도 그렇고 일상입니다.
그러나 경봉 큰스님께서는 산 속으로 계시면서 지금도 그가 산속으로 있지 않습니까? 산속으로 계시면서 지나고 가는 신도 거사
처사 보살들이 당신 방문 앞을 이렇게 지나가면 손수 불로 들어서 꼭 오라고 하셔서 대담을 나누시고 또 붓글씨도 써주시고 또 붓
글씨 낙과도 크게 찍어가지고 아주 되죠 글씨 받는 사람도 감동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큰 자비로 이 모습을 보여주신다고
그걸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백련암은 거두고 드린거 보다도 쫓아낸 시대 9대 1로 훨씬 많으니까 백련암은 큰 스님께서 열반
에 드시는 그날도 문전을 꼭 한 문전을 안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렇게 잘해도 큰스님처럼 그렇게 잘해도 사원들 되면 그것도 참
자갈밭에 물 빠지듯이 아무도 안 오더라고 하시는 말씀하시고 비교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저도 걱정은 하지만 참 어떻게 큰스님
을 모시고 또 어떻게 살아야 만이 그런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는 그 방법이 뭔지는 도대체 생각도 나지 않고 어떻게 정할지도 모
르고 있습니다. 스님을 오직 이렇게 뵈오니까 오히려 큰 스님들이 경봉 큰스님 다비식 날 네 참 다비장 가는 길목 길목에 인산인
해를 이루던 통도사의 그날이 다시금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인사를 말로 이제 마치는데 스님께서 한 말씀 더 하십니다. 나나 우
리 스님들은 우리 상좌들 우리스님 상좌들은 물론이고 통도사 산중 대중 스님들께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밀려오는 거 아무
것도 짐작한 사람은 없었다. 그때가 여름철이었는데 오래도록 가뭄이 들어서 논에 벼가 다 말라가고 있었는데 그런데 큰스님의
거구에 거한 이제 화장한다고 불을 붙이고 나자 말자 갑자기 이제 비가 소낙비가 다 해가지고 그래서 오후 내내 비가 내리면서 국
민들이 웃고 지금 우리 도민들은 국민들이 스님께서 가뭄을 적셔주시고 가셨다고 얼마나 또 참 큰 스님의 덕을 칭송했는지 모른
다. 그러니까 큰 스님들이 어떡하면 우리가 알 수 없지 않느냐 그래서 우리 큰스님께서도 덕화가 크실 것이라 경봉스님이 덕화도
그렇게 잘 참 신도들을 잘해줬기 때문에 결과가 커질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문상으로 올 줄은 생각이나
했겠나? 우리는 생각도 못했다. 성철 큰스님께서도 지금은 오히려 원택스님 눈에는 다 보내는 듯이 보이는 이 모습이 또 어떤 역
할을 불러올지 어떻게 알어, 그러니까 앞으로 스님께서 다비장이 이제 여기는 어디에 다비장이 있는지 해인사 다비장이 어디 있
는지는 모르지만 큰 스님이 가시고 다비 준비를 할 때 스님 혼자 생각해서 이리저리 만들어 하지 말고 산중에 어른 스님들과 의논
을 잘 해서 만에 하나 우리가 모르는 성철 큰스님의 덕화로 우리 선 경봉스님처럼 인산인해로 문상이 밀려올 때를 대비를 해서 반
드시 출구를 하나 만들어 놓는 것이 큰 스님을 모시는 상좌의 참 원택스님 역할이다. 뭐 이렇게 당부를 하셨습니다. 그러면은 통
도사는 경전이 넓고 아주 잘 돼 있기 때문에 사방으로 들어왔다는 사방으로 사람이 나갈 수 있는데 우리 해인사는 저 밑에 길거리
에서부터 다비장까지 한 400m 올라오는데 저 밑에 경사가 이 끝에 경사가 한 80m 그러고 옆에서 보면 그 절벽이 이 중에는 도랑
이 어렵게 한 경전인데 이제 하여튼 스님의 어떤 그런 그 길만 있으면 그대로 나도 올라오는 사람 가는 사람 서너 명만 겹쳐도 서
로 올라가고 내려가서 길이 막히는 어떤 게 길이 아니 되겠습니까 그거를 이제 스님을 보시지도 못했는데 뻔히 제대로 보셨는지
하여튼 어려서 사람들이 그 길로 또한 외통스러운 나두지 말고 둘러가도록 그렇게 하는 비결을 만들어주는 연구를 해보는 것이
좋다. 하고 이제 헤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조계사 행사장에서 명정스님과 만나서 대화하고 나눈 후 한 5 ~6년 후에 이제 큰스님
께서 성철 큰스님께서도 열반에 드신게 그때가 1993년 11월 4일에 스님께서 열반에 드신게 되서 일주일 동안 다비식을 이제 칠
일장을 이제 치르게 됩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혹시 여기에 다비장에 오셨던 분들이 여기 혹시 계시는지 그래서 우리 해인사 다
비장은 해인사 삼문 일주문에서 한 3km 밖에 설치돼 언덕에 설치되어 있는데 가까이에는 큰길가에서 조문구가 끝나고 큰길가에
서 다비장까지 거리는 폭 4m에서 5m 한 400m 외길 언덕너머로 이어져 있어서 앞에 말씀드렸듯이 겨우 걷는 편에서 보면은 오만
한 저 끝 끝에는 한 10m 되는 끝은 언덕 빼기로 이렇게 돼 있어 있고 옆에는 아무 이제 난간이다.
보니까 거기 이제 설치가 없습니다. 그 밀면 그냥 이쪽에 떨어지게 되어 있는 그런 곳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스님 열반에 드셔서 이제 다비장 준비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니까 한 삼일 동안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 결
국은 이제 명정스님 이렇게 말씀을 해서 과연 통도사 큰스님처럼 우리 스님이 문상객이 많을 것인지 그러면 밥 주는 일부터 공양
준비 부터 온갖 것이 틀리지 않습니까 그래 하면서 처음에 천 명 온다고 몇 백 만 명 온다.
하다가 그 숫자가 이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명정스님 생각은 나고 우리끼리 이야기해서는 안 되고 명정스님의 경험이
있잖아 그게 이제 말을 따라야 겠다고 해서 이제 여기서부터 이렇게 개울을 따라서 이렇게 개울이 이렇게 둘러 흐르니까 이쪽으
로 올라왔다가 이쪽으로 개울 따라서 이제 또 내려가 가시니까 거기 이렇게 길을 찾아서 기억자로 비계를 하나 더 내게 되고 마지
막에는 징검다리 해서 아이돌로 개울을 건널 수 있도록 이렇게 이제 튼튼하게 비상 출구를 하나 만들어 두게 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스님이 이제 거화를 올리고 이렇게 하니까 약간 이제 이슬비가 보슬비가 같은 굵은 게 아니고 다른 이슬비가 부
슬부슬 이제 내려와서 금방 이 물방울이 되는 게 아니라 한 오 분 되면 물방울이 하나씩 생기는 그런 질척한 이제 날씨가 이제 되
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거화가 되니까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또 그렇게 바깥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 얼마
나 많은 우리가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둘러볼 것이라고 제가 옆에 올라오시는 분들을 이제 살피는 게 나오니까 마침 경찰 관계자
를 만나게 지금 어떻습니까? 주변이 스님 큰일 났습니다. 일대가 온통 난리입니다.
행사에서 어디 3km 밑에는 벌써 사람이 꽉 차가 10만 명 정도 되니 몇 만 명이 되니 그래 되고 해인사 인터체인지에서 행사까지
차들이 꽉 차가지고 차들이 움직일 수 없어서 사람들이 다 움직이고 10리 20리 지금 걸어오고 있고 또 이제 해인사인터체인지에
서 보령인터체인지까지 서울서 대구는 멀리서 오던 차들도 다 거기서 길이 막혀서 해인사까지 오지 못하고 고속도로 위에서 전부
다 정체되 있다는 옴싹달싹도 못하고 지금 길이 막혀서 야단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생각했던 스님들이 몇 분이 오겠나. 쫓겨나는 분들 뿐인데 뭐가 이렇게 큰스님의 떠나시니 마음의 감동이 있으셔
서 오겠나 하고 한 5천 명이나 이런 만 명도 안 온다. 그러면 만 명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가을에 한번 하루 종일 이제 단풍철
11월 첫째 주 토요일 일요일 날 행사에 만 2천 명이 왔다 간다 하면은 하루 종일 행사가 그것이 이제 만 명입니다 만 천 명인데 그
사람들이 그렇게 올 리가 있나 하고 이제 거기까지 왔다가 그래도 경계를 해놓자 했는데도 뜻밖에도 그렇게 이제 참 인파가 또 경
봉스님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인파가 전국적으로 이렇게 몰려들 또 그때는 그렇게 통도사처럼 고속도로가 그렇게 82년도에도
발달하지 않았지 않았습니다. 스님 가실 때 93년에는 전국적으로도 길도 많이 이제 좋아지고 또 텔레비도 이 발달 해가지고 소식
접하다가 보니까 이렇게 이제 많은 분들이 오시게 되지 않았나 하고 추리도 해봅니다. 그래서 큰 스님은 평생을 “산승은 산에 머
물러야지 산을 나가서는 안 된다.” 하시면 세상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시지 않으셨는데 큰스님께서 극락세계로 가시는 길에 해인
사 정말 창조 이래 최대 최고의 인파가 몰려와서 이렇게 거룩한 이들이 충고를 해주시려고 했다니 정말 알 수 없는 저들로서는 알
수 없는 기적 아니겠습니까? 이제 기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절로 보고 있는데 다비식을 멀리서 걸어오고 그랬던 노보살님들이 쭉 앉아 계시는 쪽으로 가게 됐는데 그런데 보살님들
중에 저의 얼굴 알아보시고는 원택스님이요. 오늘 우리가 6.25 전쟁 피난 가보고 길 걸었던 것보다도 더 걸어서 처음 다리가 아팠
기 때문에 이렇게 힘들 바에서 이렇게 스님 떠나시는 광경도 이렇게 참 보기가 힘들 다면은 큰 스님 살아계실 때 백련암에 가서
삼천배하고 정말 친견하고 있었으면 얼마나 원이 없었는데 오늘 친견 하지도 못하고 생고생을 하신다. 거꾸로 이제 노보살님들이
한탄을 하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이제 해인사 육조스님으로부터 계시는 보살님은 여러분 아실 거예요. 개사도 많이 하셨습니다.
정진 큰스님께서 우리 재적 사실 때도 스님들께 내가 출근한 후 불교 신도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애도를 표하고 해인사 들어오거
든 수 십 리 길이 그렇게 사방으로 인사인해를 이루었던 데에 이제 참 다비장을 찾아와서 애도를 표하는 모습 장엄함 그 자체였
다. 감동을 줬다. 비구니 스님들은 또 신심을 다해서 연일 며칠 걸려서 연꽃으로 장엄한 특종형 연꽃 봉오리 연화되는 조계종 큰
스님 다비장에서는 처음으로 장엄한 훌륭한 이 작품을 보였다. 그래서 보이실지 모르겠습니다. 이것들이 이 연봉이 대부분이 쓰
는 그 이자리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걸 이제 나중에 태우는 그 장면인데 그래서 이제 비구니 스님들이 작은 그런 연꽃 봉오리로
해서 큰스님 다비장으로서는 정말 처음 훌륭한 작품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는다. 큰 스님의 내가 평생 모아온 그 높은 다비
장에서도 보지 못한 훌륭하고 장엄하고 수승하게 그럼 다비장 모습이었다. 또 그 구름 같이 모인 조문객들과 연화대의 수승한 모
습 모든 사부대중들의 장엄한 염불소리에 맞춰서 종정 스님의 서방정토로 떠나시는 그러한 환송식의 모습이 정말 지금도 성스럽
고 자랑스럽고 가슴에 남는 다고 이렇게 치사를 들었다고 원충스님이 저한테 자랑을 해서 오늘 여기 한번 봤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스님 경봉스님과 우리 스님의 어떤 그런 다비장 이야기가 주주가 아니라
왜 이 이야기를 오늘 몇 번을 이제 얘기를 했냐면 이태원 참사 보십시오. 이태원 참사 그것도 그거는 짧은 길이고 이렇게 외통수
라서 충분히 사람이 다닐 수 있는데도 그거를 미리 생각 못하고 꽉 막혀버려가지고 밟혀 죽었다.
뭐 죽었다 하는데 나중에는 밟혀지고 사람보다 좁은 공간에서 저 사람의 지혜까지 숨이 막혀서 서서 죽은 사람이 더 많다 하는 이
야기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참 우리 이태원 참사 정말 참 비참한 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런 참사를 보면서 우리가 그때 해인사에서 그때 큰스님 사람이 얼마나 올지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있었으면 우리는 이것보다도
더 큰 일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말리지도 못하고 그 몇 십 리 길에 걸쳐진 사람 오지 마라 오라 소리를 어
떻게 할 수 있을 수 있습니까? 그래도 우리 명정스님 그 스님의 덕화는 우리가 아무 큰스님의 덕화든 성철 스님이든 경봉 스님이
든 어느 스님이시든 덕화는 우리 참 눈 못 보던 중생들로서 형형할 수 없는 그 역할을 가지고 계시는 어른 스님들을 이제 참 우리
가 준비를 잘해야 된다. 아무튼 그 말씀으로서 우리 참 해인사는 어떤 오류를 면할 수 있었다는 그런 어떤 참 고마운 생각이 명정
스님한테 이제 돌아가시고 안계시시지만 명정스님 그래서 감사하고 감사했다는 말씀을 전하면서 저로서도 이제 참 세상 살아오
면서 우리 여기 앉아 계시는 모든 분들도 인생살이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내가 열심히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항상 미치지
않으면 사람도 없고 이만 얻어먹는 일이 납니다. 아 내가 이거 실수하고 잘못되고 했다고 하는데 엉뚱하게 잘했다고 막 칭찬해 주
고 하면 어쩔 줄 참 세상이 뭐 어떤냐? 하면 우리가 감당을 못하는 그런 경험들이 있으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앞으로도 살아갈
일이 많고 하니까 어떠한 곳에서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어떤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이런 어떤 최후 맞다는 어떤 의미를 밝힐
데가 없겠지만 혹시 있으면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그런 생각을 담고 살면 우리가 세상에 무슨 참 무서운 일을 당하겠나 하는 이런
말씀을 전하고 싶은 대목이라서 오늘 경봉스님과 저희 스님의 그런 인연 담을 말씀 올려서 우리 살아가는 인생도 내가 실수해도
칭찬하는 게 일이고 내가 좋은 일을 해도 또 욕을 욕대로 들으면서 좀 억울한 일들을 많이 이렇게 겪으면서 살아가는 모습 그런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 우리 신행을 자꾸 참 선업을 닦아가는 그런 부처님 전에 기도 열심히 들으면서 우리가 살아갑시다. 하는 그
런 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오면서 큰 스님께서 남기신 여러 가지 책 어록들이 많이 있습니다마는 아직 밖으로 발표 안 된 발표 안 된 말씀이 어떤 법이
계시나 해서 한번 살펴보다가 마침 한 페이지 장에 그 곳이 있어서 올리면서
“눈부시게 밝은 해 구슬 같이 둥근 달이 부처님을 노래합니다.
가없이 푸른 허공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이 부처님을 노래합니다.
높은 산 위에 우뚝 솟은 험한 바위와 깊은 골짜기에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부처님을 노래합니다.
무성한 나무 활짝 핀 꽃이 나는 새 진 흙 벌레가 부처님을 노래한다
넓은 바다 긴 강물 속에서 헤엄치며 뛰어 노는 고기 떼가 부처님을 노래합니다.
법당의 목탁소리 교회의 종소리가 부처님을 노래합니다.
들판의 농부 공장의 아가씨가 술집의 주정꾼 거지의 섬개가 부처님을 노래합니다.
이처럼 부처님의 노래는 한계가 없습니다. 우주의 일체가 다 함께 입을 크게 열어 끄듯이 부처님을 노래합니다. 우리 모두 귀를
기울여 이 노래를 들읍시다. 극락과 천당은 꿈속의 잠꼬대일 뿐 우리는 본래의 영원하며 무한한 행복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허영에 가득 찬 욕심 덩이가 마음의 길을 막으면 이렇듯 신기하고 미묘한 노래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만을 위하는 욕
심을 버리고 힘을 다하여 남을 도웁시다.
크고 작은 이해를 다투지 않고 서로서로 돕고 살면 욕심 뭉치는 햇볕 아래 눈덩어리처럼 사라지고 마음이 형용할 수 없이 깨끗하
고 깨끗해집니다.
그리하여 마음의 귀가 훤하게 뚫려서 삼라만상이 함께 다 같이 부처님의 노래함을 우리가 듣습니다. 이때에 모순과 대립의 세계
는 없어져서 국가 민족의 한계와 종교 종파의 차별은 무너지고 모든 화목한 한 가족이 됩니다.
이 크나 큰 합창단의 노래 소리에 장단 맞춰서 영원에서 영원히 다하도록 다 같이 부처님을 노래하고 춤추며 살아갑시다. “
스님께서 저희들을 격려하는 말씀입니다. 참 정말 마음에 담아두신 오늘 이어서 여기 놓고 가겠습니다.
인쇄했어요. 돌려 보지요 또 큰 스님께서 남기신 글에서 이제 통일을 바라며 하는 시가 있습니다. 시가 있는데 큰 스님께서 열반
에 드시고 생가 스님의 생가를 복원을 하자는 국민들의 여론이 있어서 생가를 지어도 다른 현실도 많이 있는데 다 가보면 있는데
몇 십 년 흘러서 다 허물어지고 누가 관리도 못하는 그런 형태를 보는데 스님 가신 그 땅에 지금 뭐 집 없어진 지가 없는데 그 맨
땅에다가 다시 집만 펄떡 지워 놓으면 누가 유지 하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지금 저희는 스님 생가에 이제 앞에 절을 집으로 둬야
만 스님들이 있어야만 목탁 집전하면서 부처님께 절을 올리면서 생가도 유지 되지 않겠습니까? 해서 그렇게 해서 지금 산청군에
큰스님 생가도 복원해 놓고 또 법당도 절도 지어서 보면서 해놓고 성철스님 기념관을 지어서 석가모니불 천불, 지장 아미타불 천
불, 굴 안에는 석가모니불 금동1230불을 기념관을 모셔놓고 있습니다. 거기에 재작년 2021년 5월 초팔 초파일 날 이제 자연석에
스님께서 지으신 통일을 바라며 하는 시를 시비를 세우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제 민추본 본부장으로서 2018년 9월인가 대통령님이 남북정상회담 5차 정상회담을 하면서 평양에 가신 적이 있
는데 그때 마침 제가 민추본본부장으로서 조계종 대표는 그때 총무원장 스님 선거 중이라서 총무원장이 스님이 안 계셔서 제가
이제 대신 갖다 오라고 계속 그렇게 다녀옵니다. 가서 평양으로 가서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만났습니다. 거기 갔다.
오니까 보는 사람마다 김정은 그 사람이 어째 생겼나 그 묻습니다. 그거는 제가 뭐 어째 생겼다고 설명 제대로 조각가가 아닌데
어떻고 눈이 몇 센티 그런 걸 심사위원제 보고 왔는데 그날 이제 행사를 하는데 보통은 정면이 정문이 있으면 저쪽으로 통해서 이
제 vip들이 들어오고 우리들은 밑에 있고 하는데 그날은 우리들이 앉아 있는데 그런데 이제 경호를 철저히 한다고 해서 어디 가
모르는 그런 들어가는데 저쪽에서 문이 열리더만 그때 대통령님하고 김정은 부인 되는 또 들어가고 이에 들어옵니다.
마침 우리는 보통 때 저 앞에 앞으로 들어오면 우리한테 그분들이 오지도 않았는데 우리 옆으로 지나가게 되니까 대통령님이 카
돌릭이나 그러니까 이제 광주 대주교님 우리하고 같이 서 있으니까 대주교님 쪽으로 이쪽으로 같이 걸어 오셔가지고 문대통령님
이 김정은 국방위국무위원장에게 대주교님께서 남쪽에서 민주화 운동을 열심히 하시고 광주 대주교로 계십니다.
또 이제 그렇게 인사를 소개를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주교님 인사를 하니까 악수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저 앞으로 지나가
는 줄 주교님만 인사하고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또 문 대통령님이 저 옆에 서시더만은 이 스님은 남쪽에 성철 유명하셨던 성철 스
님 상자로서 원택 스님이고 오늘 일행으로 같이 왔습니다. 하니까 또 김정은 국무 위원장도 아침에 보고를 잘 받았습니다. 아침에
내가 보고 한 적도 없는데 어디서 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남쪽에서 이제 비행기를 탈 때 그게 다 북쪽으로 중계가 되는 것은 그
러니까 누구다 이렇게 설명을 해준 모양이죠. 그러니까 아침에 보고를 받아뒀다 반갑습니다. 하면서 손을 내니까 제가 악수를 하
고 있는데 악수하는 손의 감각이 우리 우리나라도 치면 이렇게 말씀을 올려서 되겠는가, 모르겠습니다마는 부잣집 맏아들 장남들
손이 두껍지 않습니까? 두둑하고 사람이 굉장히 차분하게 보였다는 그 말씀을 드리며 그냥 이제 가 가서 이제 하루 일정을 제대
로 안 밝혀줍니다.
어디 갔다가 어디 갔다. 그러면은 꼭 그 시간이 돼가지고 백두산 가는 날 백두산 가는 날도 간다. 안 간다. 뭐 이래 하는데 밤 10시
에 자고 있는데 문을 두드려가지고 내일 아침 5시 비행장으로 가니까 새벽 4시까지 호텔 프론트로 나오라고 그때 이야기했죠.
그런 식으로 해서 이제 백두산도 구경을 하고 우리는 보통 중국으로 다 다녀오시지 않습니까 이거는 이제 북쪽에서 가는데 가니
까 백두산이 본래 높은 곳이기도 하지만 우리하고 시선이 전혀 다릅니다. 아직까지 우리 백두산에 우리 다 가자 다 갈 수 없습니
다. 좁아서 백두산 이에 연못 있으면 꼭대기가 어떻게 시원하게 그러한 편의시설 관광시설이랄까 이런 것은 전혀 이렇게 되어 있
지 않겠느냐 통일대국이 남쪽에서 가는 물을 북쪽에서 당연히 낼 수 한참 없지 싶습니다. 그렇지만은 물이야 이런 거 차가운 것은
우리나라 한라산 물이나 다 차갑고 하고 한 것은 그도 이제 그래 남쪽에서 이제 오니까 텔레비에는 북쪽에서는 5대 종교의 대표
자들이 다 김정은 국무위원장하고 악수를 했습니다.
했는데 남쪽에는 불교 대표로서 저만 했다고 그때 문 대통령이 가서 영접받는 장면 거기 경기장이라는 어디 15만 명의 모인
모여서 환영회를 열고 통일 만세를 부를 때는 저것도 곧 통일 오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 정동영 씨 이런 정치인들도 같이 갔
는데 그분들이 하시는 이야기가 이렇게 북쪽에서 대접을 잘 받고 이렇게 계시는데 남쪽에서는 어떻게 보면 어떻게 우리 대통령
이 대접을 해내지 하면서 걱정들 하셨던 그 가족들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통일을 바라며 하는 스님 시비를 세웠다는
생가에 세웠다는 이 말씀을 드리고 그런데 가만히 읽기 전에 잠깐 짧게 설명을 드리면 스님께서 백두산에 서 이는 바람 천왕봉에
서 소리치고 천왕봉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천왕봉 지리산 있지 않습니까 스님의 생가터에서 천왕봉이 보였다고 하는데 지금
은 천왕봉이 안 보이는데 그래서 성철 스님의 길상은 천왕봉 길상을 타고 낫기 때문에 큰 스님이 되었다고 그렇게 이야기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백두산에서 이는 바람 천왕봉에서 소리 치고 한강에서 한강에서 노는 오리 대동강에서 헤엄치며 명사십리 기러기
떼 제주에서 춤을 추네. ~
신의주에서 아침 먹고 서귀포서 낮잠 자고 경포대에서 술 마시고 무병 전에 평양에 노래하세.
이 구절을 보면 마치 남북 교류가 활발해진 미래를 내다보는 듯 신비하게 느껴집니다.
남북의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고 하늘길이 연결되면 소위 신의주에서 제주까지 하루 안에 다녀올 수 있으니까요. 스님의 시 구절
마다 부처님의 연기가 서려 있고 남북이 화합하고 통일된 매개가 제시해 주는 민족의 번영과 기계가 곳곳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다시 봐도 놀라운 시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성철 스님의 시를 보면서 이때부터 저와 통일의 인연이 시작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이 듭니다. 이어서 이제 민추본 쪽으로 목표가 가겠습니다. 잘 들어주시고 성철스님의 시는 법문을 마치고 함께 합송하려고 합니
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우리의 통일은 전쟁을 막을 수 있는 평화가 핵심입니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과
대결이 깊어지는 지금이 바로 평화와 통일의 화해로 협력을 바라는 목소리를 낼 때라고 생각합니다.
남북 간에 찾아온 갈등과 위기를 극복하고 한반도의 평화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불교의 서원이 모아지기를 바래 봅니다. 그리고
그 간절한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민추본에서 2021년 만든 통일 평화통일 발원법이 있습니다.
제가 특별히 지원에 부탁했습니다. 유튜브 홈에서 민주공동체 추진본부 공식 홈을 하시거나 평화통일 발원문을 검색하시면 영상
도 보실 수 있습니다.
발원문을 한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불자 모두의 걸음걸음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연구 소리로 결의 모두에게 전해지기를 원하옵니다. 우리가 서원하고 행하는 이
길에 자비 광명으로서 함께 하소서 향후 남북의 불교도들이 다시 만나 화해와 협력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이끄는 날이 올 때
여러분들이 이 간절한 마음이 아주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저도 불자들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마음을 모으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에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실천과 노력 없이
평화는 오지 않습니다. 행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야 했고 행과 원은 일치되어야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오늘 평화와 통일의 서원을 올리며 남과 북이 다시 화해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남과 북 모두의 노력으로 남북 관계가 전환되고 우리 불자들도 평화의 실천행을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성
철 스님의 통일을 바라며 같이 합송하겠습니다.
통일을 바라며 – 1989년 3월1일 종교인연합회 법어 –(퇴옹 성철)
산 좋고 물 맑으며 무궁화 가득 핀 삼천리 강토에
둥근 해가 높이 떠서 칠천만 머리 위에 두루두루 비치니
백두산에서 이는 바람 천왕봉에서 소리치고
한강에서 노는 오리 대동강에서 헤엄치며
명사십리 기러기 떼 제주에서 춤을 추네.
만방의 자랑이며 구주의 영광인
배달의 성자신손이
천하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낙토에서
대대로 융성하여 천만년을 살아오며
한 핏줄의 따순 정을 오순도순 나누었거는
오늘 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섬을 조상들이 아실까 봐두렵고도 두렵구나
눈앞에 일시적인 이해를 훨훨 털어보세
신의주에서 아침먹고 서귀포에서 낮잠 자며
경포대에서 술 마시고 부벽루에서 놀이하세
삼천리 곳곳마다 조상들 자취 분명하고
금수강산 우리국토 조상 얼굴 뚜렷하구나
공장마다 들려오는 우렁찬 기계소리 세계의 자랑이요.
넓은 들의 황금물결 우리의 보고일세
감로수로 빛은 술을 오색 잔에 가득 부어 서로서로 권할 적에
흥겨워 노래하며 저절로 춤을 추니
도원의 옛 동산도 무색하기 짝이 없네.
한라산에 솟은 달이 천지에 비치우니
어허라 좋을시고
삼천리 한 땅이요 칠천만이 한 형제이니
한려수도 돌아보고 만물상을 구경 가세.
[대한불교조계종 6대종정 퇴옹당 성철 대종사 ]
다 함께 합송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저도 오늘 와서 여러분들을 이렇게 뵈어서 반갑고 이렇게 통일을 바라며 라는 큰스님의
통일 염원도 우리 가슴에 새겼습니다.
그런 염원을 담아서 큰스님을 그리면서 박수를 크게 한 번 칩시다.
감사합니다.
귀한 법문을 주신 원택스님 건강하세요._()_ (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일동 합장 )
( 사진자료를 보내주신 홍보부장 진공 이호진 부장님 외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보리심은 모든 상을 떠나야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상식과 지식 상념들을 완전히 벗어났을때 깨달음이 열리는 것입니다. - (금강경14분)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제10대 자문위원 법연 이동엽 합장 ]
첫댓글 늦은 밤 먼 길 오셔서 법문해 주신 원택스님 감로의 진리 잘 들었습니다.~
잘 내려 가셨는지요.
항상 옥체 건강하세요._()_
법문 정리 법보시에 무량공덕 지으셨습니다.🙏
혜월 상임고문님의 수정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공덕지으시고 계십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