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내가 활동하는 작은도서관에 학교에서 3일간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고등학생이 연계되었다. 학교 안에서 어떤 학생이 스프레이에 불을 붙인 사건이 있었는데 목격하고도 방임했다는 게 처벌 이유였다. 본인은 아무 생각 없이 화장실에서 나오던 중이었는데 그렇게 되었다며 억울하다 했다. 학생은 도서관 바닥 청소도 하고 유리도 닦고 오래된 책을 골라서 표시하는 일을 했다.
이튿날 점심시간, 학생이 오늘은 밖에 나가지 않고 도서관에 머물겠다고 한다. 덕분에 마주 앉아 김밥을 먹었다. 이야기를 들으니,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모아 DAW라는 프로그램으로 친구와 함께 힙합 프로듀싱을 한단다. 음악 플랫폼인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린 곡을 들려주는데 실력이 제법이다. 비록 사회봉사명령을 수행 중이지만 생각이 성숙하고 부모님들도 아이를 믿어주고 적극 응원하고 있는 듯하다. 학교 안에서 학업 성취도 괜찮은 편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요즘 아이들, 요즘 학교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요즘엔 담배를 피우는지 물어보는 게 아니라 안 피우는지 물어봐야 해요. 그만큼 많아요.”
요즘 아이들 흡연율이 매우 높은데 전자 담배를 이용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거란다. 미성년자가 신분증을 위조하는 방법까지 알려줬는데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손에서 달콤한 냄새가 나면 10중 8, 9 전담(전지 담배)이라고 한다. 흥미로워진 나는 마치 인터뷰라도 하는 양 노트북을 열어 질문을 이어갔다.
“왜 그렇게 담배 피우는 애들이 늘어난 것 같아?”
“세 보이려고 그러는 거예요. 약한 모습 보이면 찐따로 낙인돼 괴롭힘 당하니까요.“
이후 질문과 답을 오가며 나눈 이야기는 꽤 충격적이었다. 일단, 학폭 처벌제도가 무용지물이라고 한다. 학폭 신고를 하면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와 그 주변 아이들이 집단으로 인스타 DM 폭탄을 보낸다. 그뿐 아니라 신고한 아이가 얼마나 찌질한지 알리며, 가해자로 지목된 것이 도리어 억울한 일이라고 몰아간다. 절차에 따라 처벌을 받더라도 이후 더욱 교묘하고 집요하게 괴롭히기에 차라리 신고하지 않는단다. 톰 브라운 같은 고가의 의류를 입고 여학생들이 진한 화장을 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었다. 여학생들은 일단 예쁘면 아무도 무시하거나 건드리지 않는단다.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이 더 동그래졌다.
“너는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일단, 학교에서 애들이 각자 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그런 꿈을 펼치는 건 일부 선택된 아이들만 가능해요.”
좌절을 경험한 아이들은 의욕이 꺾이고 무기력해진다. 공부도 그중 하나지만 그 안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실에서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는 선생도 고생하고 있으니 들어는 준다는 정도라고 덧붙였다. 이해도 못 할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것도 힘든데 집에 와서 공부하라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폭발한다고.
학생은 자기 사례도 들려줬다. 중학교 3학년 때는 1학년 아이가 자꾸 시비를 걸어 폭력 사태로 번질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1학년 아이의 새아버지가 전에도 만만해 보이는 학생에게 시비를 걸어 애가 맞고 오면 합의금을 뜯어낸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전직 경찰인 학생의 아버지가 놓은 덫에 딱 걸린 것이다. 웹드라마나 웹툰에서 그리는 장면들이 과장된 게 아니란다.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들에 슬픈 마음이 들었다. 무시당하지 않으려 세 보이기 위해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까. 실제로 무시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요즘 아이들이 돈에 집착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돈이 있어야 하는 이유도 이것으로 설명되었다.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비싼 옷을 입고 치장을 하고 과시해야 한다. 이 학생에게 학교는 교육의 공간이 아닌 살아남아야 하는 정글이다. 사회가 정글이니 미리 경험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으나 촘촘한 차별로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 뿐이다. 누가 나쁘고 누가 착한 아이들일까? 사회봉사명령 받은 아이들도 일대일로 만나면 대부분 순한 양인데 말이다.
학교가 비교하고 무시하고 방어하느라 병드는 공간으로 느껴진다. 집단으로 묶어 그 안에서 우열을 가리는 교육 시스템의 종말을 목격하는 듯하다. 교육만의 문제일까? 과열된 경쟁사회는 교육 자체의 폐해뿐 아니라 다음 세대 아이들의 인간관까지 병들게 하고 있다. 지금의 10대 20대가 얼마나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는지 잘 살펴보라. 돈이 있어야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듣고 보고 자라니 당연하지 않겠는가? 지금의 현상은 나를 포함한 누군가가 뿌린 씨앗의 결과이고 다음 세대들은 그 안에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게다.
“아이를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이 아이만의 것을 찾아야 해. 공부만이 답은 아니야. 다 자기 살 길 찾더라고.”
자녀들을 장성하게 키워낸 윗세대 어른들이 종종 이런 말을 한다. 경험에서 비롯된 지혜일 것이다. 지난주 사회봉사 학생도 무기력해지는 이유가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연은 손바닥 뒤집듯 바뀌지 않고 그라데이션을 이룬다. 아이들도 자연을 닮아 흑백이 아니라 점진적이고 다양하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평가받고 분류된다. 줄 세우기와 분류하기를 멈추고 아이를 바라보아야 한다. 아이의 속도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교육으로 변화하려면 무엇을 해야할까? 일단, 상대평가 줄 세우기부터 폐지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정글이 아닌 진정한 배움이 있는 '학교'로 회복하기 위한 첫 단추이다.
첫댓글 우리 모두는 이렇게 안타까운 세상에 살고 있다...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란 어떤 곳일까..참으로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