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를 설립한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의
손자며느리로도 잘 알려져 있는 호주인 선교사
원성희(Dorothy Underwood) 선교사가 지난 12일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HIGHLIGHTS
1960년 한국에 정착, 약 44년간 다양한 활동 펼쳐
한국기독학생회 총연맹 이사직 맡아 정신지체 아동시설, 자선학교, 고아원 등 취약계층 청소년들에게 사역
은퇴 이후인 2004년에 호주로 돌아와서 지역사회봉사활동도 이어나가…
나혜인 피디 : 네, 계속해서 Australia-Korea in World 함께 하고 계십니다.
조철규 리포터, 이번에는 조금 특별한 소식 준비하셨죠?
조철규 리포터 : 네, 그렇습니다. 지금의 한국을 떠올리면
호주와 함께 국제사회에서의 중견국가로서 활약을 펼치고 있는데요,
하지만 한국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정말 어려운 시절이 많았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지금의 대한민국이 되기까지 여러 가지 아픔을 딛고 성장해 왔습니다.
1880년대 일제 강점기 시대는 정말로 어려운 시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당시에 미국에서 최초로 한국에 선교활동을 하기 위해 정착한 언더우드 선교사를 많이들 기억하실 겁니다.
나혜인 피디 : 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라고도 알려져 있는 경신학교, 지금은 서울 혜화동에 있는
경신고등학교로 많이 알려져 있죠. 또 언더우드 선교사는 연세대학교의 설립자로도 잘 알려져 있죠.
조철규 리포터 : 맞습니다. 이런 언더우드 목사의 손자며느리인 호주 선교사,
원성희 선교사가 지난 12일에 향년 89세로 별세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 준비했습니다.
나혜인 피디 : 그렇군요. 원성희 선교사… 영어 이름은 Dorothy Underwood셨죠?
조철규 리포터 : 네, 맞습니다. 원성희 선교사는 호주연합교회 선교사로서 1960년에 한국에 온 후에
약 44년간 한국에 머물며 다양한 활동을 펼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교 초기에는 주로 부산에서 활동하며 한국기독학생회 총연맹 이사를 맡고 특히 정신지체 아동 시설과
자선학교 또 고아원 사역을 펼치는 등 선한 영향력을 펼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혜인 피디 : 네, 원성희 선교사는 특히 또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고 하죠?
조철규 리포터 : 맞습니다. 1968년부터 서울 장로회신대학교 기독교 교육과에서 음악을 가르쳤다고 하는데요, 원 선교사는 이후에 전문성을 위해 이화여대 성악과에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해 석사과정을 거쳐
1998년 2월에 명예교수가 되면서 정교수로 은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손자인 호레이스 언더우드 박사, 한국명으로 부르면 원일한 박사인데요,
이 원일한 박사와 1977년에 결혼한 뒤에도 교회음악 교육을 위해 힘을 썼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은퇴 이후에는 2004년에 호주로 돌아와서 지역사회 봉사를 이어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혜인 피디 : 1960년부터 2004년까지 44년간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펼치는데 이어
호주에 돌아와서도 끊임없이 봉사를 하며 선한 영향력을 펼쳤던 호주의 원성희 선교사,
정말 평생을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오늘 Australia-Korea in World, 고국 정부의 재외동포청 신설 소식과 한국 최초의 미국 국적 선교사인
언더우드 목사의 손자 며느리인 호주인 선교사 원성희 선교사의 별세 소식 살펴봤습니다.
조철규 리포터 고생하셨습니다.
조철규 리포터 :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