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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PD수첩의 한학수PD가 지방의 비제작부서로 강제 인사발령되었다고 합니다.
한학수 PD는 작년에 '아프리카의 눈물'을 연출했고 최근에는 '7일간의 기적'을 연출했습니다.
아래는 황우석과 한학수의 1차 대결 장면
소설보다 더 재미 있습니다.
이거 올렸다가 제가 저작권법 위반으로 붙들려 갈 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궁금하면 책을 사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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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대 한학수
10월 28일 저녁 9시경에 전화가 왔다. 누구냐고 했더니 황우석이란다. 황교수로부터 처음 받는 전화였다. 그는 우리를 빈정거렸다.
“한학수, 김보슬 PD가 동분서주 하더구만요”
그가 던진 말이었다. 우리가 걸어온 행적을 죄다 알고 있다는 말이며 아울러 너희들이 아무리 뛰어도 내 손안에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나는 이 ‘노회한 정치가’에게 공손하게 대꾸했으며, 정식으로 인터뷰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황교수는 <PD수첩>팀이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이것을 해명하고 싶다고 했다. 그것은 우리도 원하는 바니, 제기된 의혹에 대해 충실하게 해명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 해명의 자리에 강성근 교수와 권대기 줄기세포 팀장을 배석시켜서 구체적인 사항은 현장에서 자문을 받아도 좋다고 내가 제안했고, 황교수는 이들을 배석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 다시 이뤄진 통화에서 황교수는 ‘카메라는 절대 들고 올 수 없다’고 했다.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면 녹음기로 녹취하는 것만이라도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고, 황교수는 거기까지는 인정하겠다고 했다. 이틀 뒤 월요일 저녁 9시에 서울대 수의대에서 만나기로 했다.
제보를 받고 취재한 지 꼭 150일 만에 상대편 수뇌가 우리에게 직접 접촉해 온 것이다. 우리를 ‘직접 진압’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판단한 것이며, 역으로 말하면 그동안 간접적으로 진행해온 로비와 압력이 <PD수첩>팀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황교수를 멀찌감치 지켜본 적은 있으나, 가까이에서 만나본 적은 없었다. 피차 서로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 끝난 셈이다. 한 번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게 마지막 인터뷰가 될 공산이 컸다. 그가 인터뷰를 위해 두 번 만나주지는 않을 것이다. 황교수가 자기 진영에 상대편 장수를 불러들여 방어하기로 한 이상, 뭔가 작전은 있을 것이다.
황교수를 만나 인터뷰하기로 한 것에 대해 팀장에게 보고했고, 나는 주말 동안 황교수 인터뷰 질문지를 만들었다. 난자 관련해서 이미 확인된 것을 중심으로 묻고, 기관심사위원회(IRB) 문제를 물으면서 상대를 탐색한다. 그 뒤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각론을 집중적으로 묻고 마지막으로 영롱이에 대한 문제를 묻는 것으로 마감한다. 몇 가지 잔 가지들은 매 뒤에 시간을 봐가면서 조절한다. 이것이 개략적인 질문 순서였다.
10월 31일 오후 4시에 제작진이 모여서 질문에 대한 도상 연습을 했다. 내가 황교수 역할을 했으며, 김현기 PD가 나에게 질문하는 형식이었다. 나는 내가 만든 질문에 대해 황교수의 입장에서 답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질문이 보강되었다. 아울러 당시까지는 김현기 PD가 상대에게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황교수와 우리가 만나는 장면을 6mm 카메라로 찍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밤 8시경에 서울대로 출발했다. 나와 김보슬 조연출 그리고 카메라맨으로 위장한 김현기 PD 이렇게 세 명이었다. 인터뷰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스틸 카메라도 가져갔다.
밤 9시에 서울대 수의대에 들어서니 복도에서 강성근 교수가 맞았다. 회의실로 우리를 안내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황교수와 만나 악수하는 장면까지만 카메라로 찍자고 했으나 황교수는 거절했고, 김현기 ‘카메라맨’은 지체 없이 쫓겨났다. 조연출이 스틸 카메라로 사진 몇 장 찍는 것도 절대 허용되지 않았다.
근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지? 황교수는 대형 회의실에 스크린까지 설치해놓고 강의 준비를 마쳤다. 좌우에 포진된 교수들은 아는 얼굴도 있었고, 처음 본 사람도 있었다. 교수들은 약간 어색해하는 표정이었으나, 황교수는 좌중을 제압해 나갔다. 좌석의 중앙에 앉아서 회의실 인원들에게 착석하라고 한 뒤, 자신도 이 모든 대화를 녹취하겠다며 먼저 녹음을 시작했다. 내가 먼저 일어나 인사를 하고 소개를 했으며, 황교수는 직접 교수들을 소개했다. 교수들은 일어나서 목례로 답했다. 이때 참석한 교수들은 이병천, 강성근, 안규리, 윤현수, 김계성, 박예수, 황정혜, 정규원, 이정렬, 김대용 교수였다. 월요일 저녁 9시, 야심한 시각에 교수만해도 11명이 모여 있게 되었는데, 이것은 한눈에 보아도 황교수 스타일의 작품이었다. 자신의 사단을 나름대로 동원한 것인데, 분위기와 힘으로 나를 제압하려는 의도가 읽혔다. 한편으로는 <PD수첩>의 취재로 약간 동요하는 내부 세력들 앞에서, 황교수 자신이 당당하게 <PD수첩>에 답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안심을 시키려는 의도도 엿보였다.
권대기 줄기세포 팀장은 왜 배석하지 않았냐고 하니까, ‘연구원들은 배우는 처지니 이런 자리에 나오지 않는 게, 장래를 위해서나 교육을 위해서나 바람직하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태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황교수는 자신의 실험실 연구원들을 사과 기자회견에 도열시키기도 하고, ‘인간 병풍’처럼 둘러 세우는 비교육적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아무튼 이때는 그만큼 다급하지는 않았나보다.
황교수가 소개하지 않은 남자가 구석에 있길래 누구냐고 물었더니, 이 남자가 쭈뼛쭈뼛 일어나서 자신을 소개하려고 했다. 나는 ‘(국정원) 기관원이면 굳이 실명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고, 이 남자는 수긍하겠다는 듯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가 기관원이라고 생각했는데, 훗날 이 사람은 ‘빈주’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는 윤태일씨로 밝혀졌다. <미디어 오늘>의 민임동기 기자와 이수강 기자의 취재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윤태일씨는 ‘아이러브 황우석’이라는 카페의 운영자였다. 그는 논문조작이 밝혀진 뒤에도 황교수 지지 집회를 이끌고 행동지침을 내리면서 황우석 지지모임을 실제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대학시절 민족주의 계열의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했으며, <YTN> 기획조정실장으로 지내기도 했다. 그가 어떻게 황교수와 친분을 가지고 ‘황교수의 책사’로 활동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황교수는 내가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이라는 것을 언급했다. 나에 대해 조사할 만큼은 했다는 것을 은근히 드러내는 것이며, 아울러 넓게 보면 너도 내 ‘제자’고 ‘동창’이며 ‘선후배’ 사이라는 것을 잊지말라는 암시였다. 상대가 두는 한수 한수가 보통 이상의 심오한 의미가 있었다.
“저희 방송하는 업(業)이라는 것이 어떻게 놓고 보면 제보가 있게 마련이고 또 확인을 해야 되는 게 저희 업이다 보니까, 이런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널리 귀엽게 좀 봐주십시오.
그럼요. 우선 말이죠. 공중파 방송이 저희로 인해서 귀한 시간까지 쓰면서 이렇게 애쓰시는 데 대해서 한편으로는 제가 죄송도 하고 한편으로는 제가 주변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까지 왔는지에 대해서 매우 자괴감까지 느낍니다. 선생님들께도 정말로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못 드리겠습니다.” (황교수와의 인터뷰 녹취록에서)
본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나와 황교수는 서로 인사치레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상대에 대한 예의를 잃으면, 아무리 좋은 명분도 퇴색되기 마련이다. 이미 나는 이 인터뷰 과정에서 가능하면 황교수가 많은 ‘해명’을 하도록 들어주기로 했으며, 최대한 공손하게 질문하면서 평정심을 잃지 않기로 작정한 터였다.
황교수는 스크린을 켜서 강의를 시작했다. 대중 강연 때마다 틀어주던 <사이언스> 논문 해설 강의였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그런 내용을 20여분이나 쭉 설명해 나갔다. 어쩌나 보자하고 지켜보는데, 윤현수 교수가 안쓰러웠나보다. 두 번씩이나 ‘한 PD도 다 아는 내용 같습니다’하고 끼어들었다. 강의를 들으러 온 게 아니라고 내가 의견을 내자 그때서야 황교수가 강의를 마쳤다.
갑자기 황교수가 6층의 줄기세포 실험실로 가자고 했다. 둘러보며 설명을 해주겠다고 하자, 교수들은 모두 수군수군하며 앉아있을 태세다. 황교수가 교수님들도 모두 함께 가자고 한마디 하자 모두들 두말없이 따라 나섰다. 실험실 입구에서 황교수가 큰 소리로 한 마디 했다. 아무 것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그런 태도였다.
“미안한데요. 이게 워낙 보안을 위한 시설이라서, 우리팀...... 전체를 보시죠.
저희는 안 들어가고 외경만 봐도 괜찮습니다.
일단 다 안에 들어갑시다.
오염이나 되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요.
어차피 재료 채취할 때 그 때는 카메라 가지고 들어가서 다 찍게 할 테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해드릴 건 다 해드려요. 어떤 경우도. 그리고 어쩌면 원하시는 것 이상을 내가 다 드리려고 하니까. 뭐든 해보시고 그래도 뭐 의구심이 있으면 그거 가지고 방송을 하시든가 아니면 우리한테 다시 질문을 하시든가.” (황교수와의 인터뷰 녹취록에서)
우리 때문에 오염이 되었다고 변명할까봐 나는 미리 쐐기를 박아놓았다. 실험실 안으로는 물론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복도에 있는 화면을 통해서 실험실을 보여주었다. 실험실 안에 있는 연구원 한 명이 실험실 내부의 현미경 렌즈 앞에 줄기세포를 갖다 놓으면 복도에 있는 화면에 그 모습이 보여지는 구조였다.
“저희 내부에 실험실 구조가 이렇습니다. 우선 여기로 들어가서 1차 옷을 갈아입습니다. 그리고 에어샤워(air shower)를 거쳐서 완전히 프로텍션(protection)을 한 다음에 장갑까지 다 끼고 이쪽으로 나와서 여기가 장비실하고 컬쳐룸(culture room)이고 여기가 마이크로매니퓰레이터(micro manipulator) 달아있고 기본이 진행되는 인큐베이터(incubator)들이 쭉 있습니다. 여기는 이제 보관하는 보관시설들이 있습니다. 저기......우리 컬쳐룸(culture room)에 있는 엠브리오(embryo)를 좀 보자.
지금 보시는 것은 지금부터 6일 전 체세포 핵이식을 한 겁니다. 오케이. 포커스 좀 맞춰라. 자 어제 2개의 해치드 비엘(hatched blastocyst), 배반포 2개가 나와서 어제 아침 9시에 2개를 시딩(seeding)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딩(seeding) 결과를 아직 볼 수가 없어서 지금 보려고 합니다. 우리도 지금 처음 보는 거고 지금 이게 막 해치드(hatched) 되고 있습니다. 어제 2개하고 오늘 하나하고 전체 6개 중에서 3개의 클론 블라(clon blastocyst)가 나온 겁니다. 50%의 블라(blastocyst) 비율이 지금 나오는 겁니다. 거의 예전에 비하면 상상을 못할 정도고 요것이 이제 내부 세포덩어리가 있게 되고, 요걸 바로 5분 이내에 시딩(seeding)을 하게 할 겁니다.” (황교수와의 인터뷰 녹취록에서)
황교수가 모니터 앞에서 화면상의 줄기세포를 설명하며 각종 실험실 용어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과학을 모르거나 줄기세포 분야를 연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용어들이지만, 이미 나는 이 정도의 용어는 어려운 축에 들지도 않을 정도로 내공이 쌓여있었다. 이해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내용인데, 무척 대단한 것처럼 실험실 용어를 더군다나 영어로 막 섞어쓰기 시작했다. 이것 또한 나를 기죽이거나 혹은 자신이 대단한 학자인양 포장하기위한 방편이라는 것이 대번에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이미 황교수가 실험실의 현미경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증언을 들은 바 있었다.
강성근 교수가 테라토마를 가지고 내 앞에서 연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당시 진정으로 대가를 만나고 있었다. 마치 황교수는 아주 노련한 연기학원의 원장처럼 내 앞에서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과 표정 그리고 손짓을 보자면 도저히 줄기세포가 거짓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기 힘들었다. 모니터 화면에 뜨는 줄기세포를 마치 친자식이나 되는 것처럼 바라보며, 그 모든 줄기세포를 자신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통제하는 것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 6일 전 것 보자. 일단 이것도 어태칭이 된 겁니다. 그런데 세포 수는 아까 것에 비해서 상당히 적은 거죠. 이건 6일 전에 우리가 시딩을 한 겁니다. 앞으로 한 1주일 더 있다가 계대를 시킬 겁니다. 얘야, 아까 그 페이션트가 뭐니, 병명이? 지금 이 환자는 DM입니다. 둘 다 소아당뇨입니다.
그러면 지금 아웃 그로스 되기 전 거 컬쳐하고 있는 거 몇 개만 보자. 다 볼 필요는 없고. 좋아. 여기다 고정시켜. 요거는 무슨 페이션트지? 척수손상...... 다음. 이건 저 상태를 조금 지나서 2~3번 계대 배양을 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건 누구냐? 그래. 루프스 좀 보자.이건 여러 개 라서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까 루프스 환자, 우리가 받은 환자, 기본 정보로는 16살 짜리 루프스 환자라고.
오케이. 그러면 우리 그 수립돼서 패시지 계속 되는 ES라인을 몇 개만 보자. 내가 정해준 그 환자들 폼만 좀 보자. 이게 아까 보셨던 콜로니 부분입니다. 이게 데이 며칠이니? 아까 조각내서 기른 지 이틀 만에 이렇게 자랍니다. 이것은 8살짜리 척수손상 환자 겁니다.
2번 줄기세포 라인인가요?
그렇습니다. 이게 2번입니다. 다음. 이건 나이는 자세히는 모르겠고 아마 10대 소아당뇨 환자 줄기세포입니다. 다음. 이건 소아당뇨. 이건 선천성면역결핍 환자인데 2살 반짜리입니다. 다음. 이것도 소아당뇨 환자 겁니다. 다음.
(논문에는 소아당뇨가 한 명인데) 소아당뇨 환자 2명의 줄기세포가 만들어졌습니까?
아니오. 그 뒤에 또...... 발표 이후에 된 것도 여러 개가 있어요. 지금 총 숫자는 말씀 못 드리겠고요. 이건 스파이너리 환자인데 33살짜리입니다. 다음. 국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건 31살짜리 스파나코 메이저리 페이션트. 다음. 이건 56살짜리 스파나코 메이저리...... 다음. 하나만 더 보자. 이것 도 스파나코 메이저리 환자입니다. 수고했다. 대기하고 있어라. 이따 샘플링 해야 될 지도 모르니까.” (황교수와의 인터뷰 녹취록에서)
줄기세포의 상태에 따라 이게 어떤 단계인지 그리고 얼마나 배양된 것인지 정확히 알아내며, 심지어는 줄기세포의 주인공이 어떤 병명인지를 식별하는 그런 정도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은 깜빡 속을 수 있는 귀신같은 연기였다. 윤현수 교수는 줄기세포 화면을 간간히 들여다보며, 줄기세포의 상태에 대해서 부연하는 역할을 빼먹지 않았다. 강성근 교수의 연기가 본 데 없이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명장면이었다. 그리고 강교수의 연기는 연기 축에도 못드는 것이라고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가히 2005년 대한민국 최고 연기대상을 줘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연기를 너무 의식해서 잘하려고 하면 그것이 연기라는 것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내 눈에는 그 연기의 ‘인위적인 측면’이 느껴졌다. 더구나 줄기세포의 현미경 사진만 보고 환자의 병명을 귀신같이 맞춰내는 것은 도저히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었다. 그것은 실험을 안 해본 사람이 ‘머릿속에서 그려낸 실험’을 외워서 연기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황교수는 논문에 발표한 11개 환자 줄기세포 외에도 그 후에 여러 개의 줄기세포를 만들었으며, 이제 줄기세포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쯤하면 어느 정도는 통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황교수는 모니터 앞에서 또 한번의 강의를 마친 후 회의실로 가자고 했다.
여기까지가 본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황교수가 따로이 준비한 이벤트였다. 밤 10시를 넘어섰고, 서울대 수의대는 적막했다. <PD수첩>팀을 이렇게 밤늦게 부른 것은 수의대 다른 교수나 학생들이 눈치 못 채게 하려는 목적도 있는 듯했다.
다시 회의실로 모든 사람들이 내려왔다. 이제 인터뷰를 할 차례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주도해나가야 한다. 나는 준비된 대로 ‘난자’ 문제부터 물었다. 황교수의 목소리는 무게가 있었고, 약간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혹시 교수님께서는 난자 매매 중개업소인 ‘DNA 뱅크’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못 들어봤어요. 이번에 노성일 원장이 한선생님하고 인터뷰를 했다면서 저한테 인터뷰한 다음 날 전화를 해서 사실 미안하다고 하면서 저한테 얘기를 해주더라구요. 그때 이 양반이 그런 데하고 무슨 연계가 있었나보다 하고 알게 됐습니다.
당시 인터뷰에서 노성일 이사장님은 난자 매매를 이용해서 난자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얻어진 난자가 황교수님 연구에 사용되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혹시 교수님께서 알고 계셨나요?
아닙니다. ......(중략)......그러면서 차라리 그때 우리가 말이지 이렇게 어차피 우리는 전세계적인 피겨(figure, 인물)가 됐는데 어떤 경우에도 소위 에티컬리(ethically,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우리가 이제는 문제가 커진다. 그러면 차라리 그 때 그 얘기를 해줬으면 그 난자를 사용했겠느냐 그랬더니 자기는 그 때 법도 없었고 가이드라인도 없었고 그래서 정말로 순수한 마음에서 도우려고 했었는데 궁극적으로 한학수 피디님한테 황교수는 전혀 이런 사실을 몰랐다고 자기가 얘기를 했답니다. 그리고 저한테 넘겨준 것도 사실이었고 이렇게 된데 대해서 미안하다고 저한테 했습니다.” (황교수와의 인터뷰 녹취록에서)
기존의 입장에서 황교수가 한 걸음 후퇴했다. 매매된 난자는 연구에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엊그제까지의 입장이었지만, 이제 난자 매매 정도는 순순히 인정해버렸다. 이미 노성일 병원장이 인정한 뒤라서 더 이상 숨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그 책임은 온전히 노 병원장에게 미뤄졌다. 자신은 전혀 몰랐는데, 엊그제 노 병원장의 고백으로 알게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름대로 모종의 교감이 이뤄진 뒤에 만들어진 대책으로 보였다. 해외에서는 어떻게 반응할 지 모르지만, 국내에서는 이 정도 ‘난자 문제’는 충분히 돌파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였다.
노 병원장과 황교수가 이렇게 말을 맞추고 나오니, 더 이상 추궁하기가 힘들어졌다. 다만, 자리에 함께 있던 10여명의 교수들은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인터뷰 질문을 통해 이른바 ‘황사단’ 교수들에게 정보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면 알수록 내부의 동요는 심해지고 그 틈새에서 뭔가를 얻어낼 수도 있는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 황교수는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야 하고, 나는 내부의 동요를 일으키기 위해 우리가 취재한 사실을 적절하게 공개해야하는 처지였다.
황교수 실험실 연구원의 난자 제공에 대해 물었더니, 그 배경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했다. 그것이 강압에 의한 난자 제공이 아니라는 것을 강하게 주장했다.
“구00 연구원이 당시 K의대 교수를 겸할 때입니다. 그 때 그 자기 남편하고 충분히 상의를 했다고 하면서 이 연구에 자발적 난자 제공자들의 난자를 가지고 어떻게 하겠냐? 우리의 정성이 이렇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 나도 아이를 둘씩이나 낳은 사람이고 우리 남편한테 충분히 설명을 해서 남편도 동의를 했으니 내 난자를 우리부터 내 난자부터 사용해야만 실험자로서의 자세에 부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상의를 한 적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때 나는 속으로는 거기에 대해서 감동적이었어요. 허나 이것이 혹시나 오해의 소지가 있을 지도 몰라서 우리가 차라리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몇 번에 걸쳐서 제가 설득을 했던 건 사실이에요. 그 뒤에 이루어진 사안에 대해서는 제가 정확하게 본인을 불러서 확인을 해 본 사실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뒤의 것을 제가 언급하는 것은 합당치 않은 걸로 생각합니다.” (황교수와의 인터뷰 녹취록에서)
구00 연구원의 난자 제공을 말렸지만, 정확히 난자를 제공했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답변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2004년 5월 <네이처>의 시라노스키 기자가 구00 연구원을 인터뷰하고 난 뒤, 연구원 난자 제공 사실이 기사로 떠오르자 이것을 황급히 수습한 사람이 바로 황교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연구원 난자의 제공은 대단히 민감한 문제인데, 전문가 과학자 사회에서는 이런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피츠버그로 유학을 떠난 P 연구원의 난자 제공에 대해서도 물었다.
“마찬가지입니다. P 연구원도 역시 구00하고 같이 얘기를 했을 때 똑같이 이렇게 해서는 아니 되겠다고 제가 설득을 했습니다. 그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P 연구원은 난자채취수술만 하고 그 난자는 여기 제공되지 않았다는 뜻입니까?
그건 저는 모르겠어요. 정말로...... 난자 채취를 정말 했는지 그리고 그 난자가 우리한테 왔는지 그걸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황교수와의 인터뷰 녹취록에서)
황교수의 답변으로 미뤄보건대, P 연구원이 난자채취 수술 당일에 쓴 편지를 우리가 입수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매매에 의한 난자 제공은 노 병원장에게 미룰 수가 있지만, 연구원 난자 제공 문제는 황교수가 온전히 책임져야하는 문제였다. 이 부분에서 황교수는 대단히 장황해졌다. 자신이 직접 P 연구원을 미즈메디 병원에 데려가서 난자채취 수술을 시켜놓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거짓말을 해냈다. 저 정도의 거짓말 솜씨라면 거짓말 탐지기를 들이대도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해서 상대를 한번 흔들어 놓을 필요가 있었다. 너무나도 침착하게 그리고 낭랑하면서도 고른 성량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황교수는 준비된 답변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상대의 평정심을 흩뜨려야 내면적인 진솔함이 인터뷰에서 묻어 나온다. 진솔함까지야 바랄 건 없지만, 준비되지 않은 발언을 끄집어 내야했다.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테라토마에 대해서 물었다. 이 부분은 우리가 치밀하게 준비했는데, 왜냐하면 황교수가 어떻게 거짓말 할 것이라는 것을 추정하고 미리 관계자들에게 정식 인터뷰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2개는 아마 미즈메디 병원에서 했던 것 같고 나머지 일부가 생명공학연구원에서 지원을 받아서 했던 라인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머지는 우리 대학에서 해서 아마 김대용 교수가 그걸 다 섹션해서 봤던 것 같아요.......(중략)......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마 전체를 다 아는 사람은 강(성근)교수하고 나일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확인을 해봤더니 정확하게 테라토마는 다 만들어졌었고 그것을 정확하게 다 검증을 했더라구요. 그게 제 답입니다......(중략)......
생명공학연구원에서는 어떤 분이 스키드 마우스를 키우신 건가요?
거기 최양규 박사님하고 그 위에 실장님은 아마 김00 실장님.” (황교수와의 인터뷰 녹취록에서)
2005년 논문의 테라토마를 서울대 병리학과 정두현 교수가 했다고 논문에는 나와 있지만 '이것은 2004년 논문에 정교수 이름이 실수로 누락된 것에 대한 보상 차원'이라고 이미 변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정작 테라토마 실험을 한 사람은 최양규 박사와 김대용 교수라며 변명할 것이라고 우리는 예상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최박사와 김교수를 만나 그들이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테라토마 실험에 ‘자신들은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터뷰 해놓았다. 우리의 예상은 1%도 틀리지 않고 적중했다. 황교수와 강성근 교수는 우리 예상대로 거짓말을 늘어놓은 것이다. 세상에 노력 없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는 치밀하게 상대를 연구했고, 노력한 만큼 보답을 받은 셈이다.
우선 황교수의 변명을 충분히 들어주고 재차 확인한 다음, 우리의 취재내용을 알려주었다. 최양규 박사와 김대용 교수가 이미 우리에게 자신들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인터뷰한 사실을 전해주자 황교수팀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현장에는 김대용 교수가 참석해 있었다. 자신들의 거짓이 너무 명백해지자 이번에는 황교수 자신이 방금 전에 한 증언을 부정했다. 자신이 2004년 <사이언스> 논문과 착오가 있었다는 것이다. 녹음이 되는 상황에서도 저러니, 만약에 녹음도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말을 뒤집을지 모를 사람이었다.
강성근 교수가 증언했던 것과는 달리 서울대 수의대 동물 실험실에서는 스키드 마우스가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하자, 회의실은 더욱 술렁이기 시작했다. 황교수가 말을 약간 더듬거렸으며, 강교수는 기민하게 말을 바꿨다.
“(황우석 교수) : 가 가만있어봐, 가 강박사. 우리 지금 스키드(마우스) 어디서 길러요?
(강성근 교수) : ......우리 과 가건물. 저희 예전 실험실입니다.” (황교수와의 인터뷰 녹취록에서)
강교수는 서울대 수의대 동물실험실이 세계에서 가장 규칙이 까다로운 곳이라서 미처 거기에서는 동물 실험을 하지 못했다는 옹색한 상황 설명도 덧붙였다. 이어지는 질문이었던 HLA 면역적합성 검사에서는 안규리 교수가 나서서 해명을 했으나, 명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가 논문 조작에 대해서 얼마나 관여한 것인지 의문이었다.
황교수외에 강성근 교수가 적극적으로 답변했으며, 윤현수 교수와 안규리 교수 그리고 이병천 교수는 자신과 관계된 것에만 끼어들었다. 나머지 교수들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들은 이 게임이 처음에는 황당한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결코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서서히 체감해가고 있었다. 긴장은 높아갔고 회의실에는 황교수와 나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져갔다. 구석에 있는 윤태일씨는 의자에 깊이 앉아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 외관상 이날 인터뷰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은 사람은 윤태일씨 뿐이었다. 어쩌면 ‘황우석의 책사’ 윤태일씨는 이 다음 수순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계는 저녁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김선종 연구원의 피츠버그 증언을 확인해야할 차례다. 인터뷰는 서서히 절정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스테이닝 사진 관련해서 여쭤보겠습니다. 김선종 연구원은 저희에게 황우석, 강성근 교수님과 세분이 함께 한 자리에서, 황우석 교수님이 직접 김선종 연구원에게 두 개 라인의 많은 사진을 (조작해) 만들어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하하...... 자, 내가 여지껏 (여기까지) 옴에 있어서 그 정도의 에티칼 바운드(ethical bound) 가지고 어떻게 오겠습니까? 모르겠어요. 김선종 선생을 어떻게 위협했고 어떻게 이야기했길래 그렇게 답변했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도 스테이닝 사진이란 게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그다음에 두 번째, 스테이닝이란 건 콜로니 하나만 있으면 우리 석사과정 애들도 다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콜로니는 보시면 알겠지만 메카니컬 소시에이션(mechnical sociation) 하면 일주일에 15개씩 불어납니다. 그게 제 답변이에요.
그러면 김선종 연구원의 증언과는 달리, 그런 말씀 하신 적이 없다는 말씀인가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서 어떻게 제가 팀 리더가 되겠습니까? 그리고 이게 말입니다. 정말로 콜로니가 수 만개 있어야 스테이닝 사진이 된다면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의 콜로니만 있어도 스테이닝이 되는 건데, 왜 그게 필요한 거냐 이 말이죠......(중략)......
모르겠어요, 김선종 선생이 그렇게 했다는 것 자체를 나는 정말 믿을 수 없어요. 그리고 만약 그렇게 했다면 아마 김선종 선생이 나에 대해서 유00 이상의 무슨 악감정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대단히 제가 슬픕니다. 차라리 설득력 있는 걸 가지고 그렇게 했다면 제가 달리 얘기를 못하겠는데 하필이면 스테이닝(사진)을 가지고 그랬다니까 제가 참 서글프네요.” (황교수와의 인터뷰 녹취록에서)
이것 또한 준비된 답변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이미 김선종 연구원의 증언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황교수가 나름의 대응책을 만든 것이다. 그것은 ‘안면 몰수’ 전술이었다.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딱 잡아떼고, 도리어 김선종 연구원을 인격적인 하자가 있는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방법이었다. 이런 식의 안면 몰수는 가부장제 사회의 성폭력 남성들이 성추행 피해 여성들에게 고소당했을 때, 가장 자주 그리고 전형적으로 사용한다. 뻔뻔스런 방법이긴 하지만, 입증이 어렵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잘 통하는 전술이다.
김선종 연구원이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몰아붙인 뒤에는 나의 약점에 대한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김선종 선생에 대한 우리의 취재를 ‘위협’이라고 표현하며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역습을 당한 것인데, 여기서 멈추지는 않았다. 황교수는 이 문제를 인터뷰 말미에 다시 거론하며, ‘대단히 큰 문제’라고 경고했다. 나는 이 언급에 대해서 당시엔 너무 쉽게 생각했다. 상대는 ‘백전노장’이며 ‘자원이 막강’할 뿐만이 아니라 ‘암수(暗數)에 능한 무림의 고수’라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나는 줄기세포가 언제 누구에 의해 확립된 것인지 황교수에게 물었다. 차마 여기까지 거짓 답변을 준비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실제로 줄기세포가 만들어졌다면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기억을 못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것은 너무 엄청난 일이기에 과학자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 되는 것이다.
“올해 11개 만들어진 환자의 줄기세포가 배반포 단계에서 줄기세포로 확립, 즉 이스테블리싱(establishing) 된 건 언제인지 기억하는지요?
한 선생님, 다음부턴 내가 철두철미하게 할게요. 이젠 이 세상이 이렇게 무섭다는 걸 알았으니까 이젠 할게요. 예를 들면 루틴하게 되는 일이고 또 제가 하는 일이 이거 하나 뿐이 아니고 여러 가지가 있어요. 100여명의 공동연구진이 그러니까 몇 번 라인이 며칟날이고, 그건 이제 내가 할게요......(중략)......
혹시 이스테블리싱(establishing)을 한 사람, 연구원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지요?
이스테블리싱(establishing)...... 내가 했어요.
혼자서요?
아니죠, 다 같이. 우리 실험 요원들 같이. 왜 그런고 하니 아침에 그걸 볼 때 보통 6명이 봐요. 6명이 봐서 컨펌을...... ‘오케이, 이건 됐으니까 안심이 된다.’ 오늘 본 것처럼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황교수와의 인터뷰 녹취록에서)
이것은 실험실 상황이나 줄기세포 연구의 특성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통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전문가들에게든 씨알도 안 먹히는 변명이었다. 누군가가 줄기세포를 확립했다고 하는 순간 그 당사자에게 확인 작업이 들어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황교수는 ‘팀이 했다.’고 하며 어물쩍 넘어간 것이다. 황교수는 마치 내가 ‘철두철미한 어떤 심오한 것’을 요구한 것처럼, 나를 빈정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황교수도 우리 취재 내용이 방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다음부터 잘 할테니 이번에는 대충 넘어가 줄 없겠느냐고 은근슬쩍 탐색한 것이다.
“올해 만들어진 환자의 11개 줄기세포 라인 중에서 한 개 라도 전달된 곳이 국내나 해외 어디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다 말씀은 못 드립니다. 분명히 이게 리킹 아웃(leaking out) 된 데가 한군데 있죠. 서울 치대에 이0, 조00 박사 방에 라인 하나를 내보냈습니다. 근데 거기에 있는 모씨가 그걸 리킹(leaking) 한 것은 사실인 거 같고, 그 사람이 리킹(leaking) 할 때 미스를 저질렀던 거 같애요. 이 라인인 줄 알고 가져간 게 엉뚱한 다른 라인을 가져가서 우리 라인이라고 했던 거 같애요.......(중략)......
그중에 한 개 (줄기세포)가 뉴욕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에 있는 스투더 연구원에게 가 있습니까?
대답 못 하겠습니다.” (황교수와의 인터뷰 녹취록에서)
이제 황교수는 우리가 제보자 B를 통해 확인한 줄기세포 2번의 검증도 의미 없는 것으로 부정하기 시작했다. 제보자 B가 우리에게 줄기세포를 가져온 과정을 리킹(leaking) 즉, ‘누출’이라는 법률적 표현을 쓰면서 압박했다. 법률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니 그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게 되면 다칠 것’이라는 경고로 해석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그것은 2번 줄기세포가 아니라 잘못 가져간 ‘미스(miss)’니까 의미도 없는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용의주도한 엄중 경고였던 것이다.
뉴욕의 슬로안 케터링에 줄기세포가 분양되었다는 사실은 확인해주지 않았다. 여기에는 뭔가 ‘공작’의 냄새가 났다. 아닌게 아니라 11월중에 황교수팀은 이 부분에 대해서 확실한 조치를 했는데, 그것은 스투더 연구원을 한국에 열흘 정도 초청한 것이었다. 황교수팀은 열흘 정도 스투더 연구원을 관리하며 ‘뭔가’를 한 것이다. 강의 한번 한 것 외에는 사실상 아무 일정도 없이 스투더 연구원은 한국에 왔으며, 논문 조작 자체가 세상에 알려져 갈 무렵에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황교수의 줄기세포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유전자 지문검사 한번이면 이틀도 안 되어서 간단히 알아볼 수 있는 일이었다. 논문 조작의 가능성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는 황교수측을 신뢰해서 유전자 지문 검사를 하지 않았지만, 국제 과학계에 줄기세포 진위 자체가 이슈가 되었을 때에도 자신이 갖고 있는 줄기세포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것은 전혀 학자답지 못한 행동이었다.
2005년 12월말에 논문 조작이 확연히 드러난 뒤에야 슬로안 케터링 암센터는 한 마디 했다. 자신들이 갖고 있던 2, 3, 4, 5번 줄기세포가 ‘어떤 종류의 줄기세포인지 확인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곧 줄기세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이미 자신들은 유전자 지문검사를 통해 확인했지만, 공식적으로는 말해주지 않겠다는 비겁한 행동이었다. 도대체 황교수팀과 스투더 연구원 사이에는 어떤 거래가 있었던 것일까? 왜 스투더 연구원은 진실을 밝힐 결정적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저 방관만 했던 것일까?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다. 여전히 황교수는 목청이 높았고 자신감있는 표정이었다. 안규리 교수는 불안한 표정이었고 이병천, 강성근, 윤현수 교수는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이제 30분 정도의 시간이 남겨졌다고 생각했다. 줄기세포에 대한 인터뷰가 마무리되고 이제 복제소 영롱이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기선을 제압하려는 황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사실은 내가 걱정을 했어요. 영롱이를 만든 원래 세포가 없게 되면 나로서는 정말로 ‘입증을 할 방안이 없구나’ 해서. 사실 워낙 오래된 일이기 때문에 고민을 했었습니다. 당시에 분명히 DNA 핑거 프린팅을 맡겼었고, 그 당시에는 DNA 핑거 프린팅이라는 개념을 잘 모르던 때에 ‘이렇게 해서 이게 일치한다’ 라는 결과를 받아서 발표를 했는데 지금 찾아보니까 다행히 영롱이를 만들었을 때의 세포가 지금 남아 있답니다.
그래서 그것도 드리려고 합니다. 그것도 드리고 우리 영롱이가 지금 살아있어요. 얘도 죽었으면 내가 꼼짝없이 (뒤집어) 쓰는거야, 이걸. 그런데 영롱이도 살아있으니까 영롱이의 세포도 떼세요. 나는 안 갈 테니까, 우리 대학원생 하나를 보낼 테니까, 우리 세포를 드리고 영롱이의 세포를 떼고 해서 그것도 DNA 핑거 프린팅을 맞춰보세요.” (황교수와의 인터뷰 녹취록에서)
어떤 동물이 복제되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기법으로 미토콘드리아 검증이라는 것이 있다. 체세포 핵이식을 할 때는 당연히 핵을 이식하는 것이지 세포질을 이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핵을 통해 유전자가 99%가 결정되지만, 세포질에만 있는 고유한 성질은 이전되지 않는데 바로 그런 게 미토콘드리아다. 미토콘드리아는 핵에는 없고 세포질에만 존재하며, 대략 유전 형질의 1% 정도에 관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정리하자면, 복제 동물일 경우에는 유전자 검증에서는 체세포 제공자와 ‘동일하다’는 결과가 나와야 하지만, 미토콘드리아 검증에서는 체세포 제공자와는 ‘다르다’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랬을 때 우리는 그 동물이 수정란에 의해 태어난 ‘정상적인 새끼’가 아니라 핵이식에 의해 태어난 ‘복제 동물’이라고 인정하게 된다.
황교수는 다행히 영롱이의 ‘모체세포’ 즉, 영롱이가 태어날 수 있도록 체세포를 제공한 ‘아빠 소’의 세포를 가지고 있다고 한 것이다. 더군다나 영롱이가 살아있으니 이 모체세포와 비교하면 바로 복제 여부를 검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이론과 너무 일치하는 것이며, 우리가 이 모체세포와 영롱이의 혈액만 얻게 되면 바로 검증이 가능한 것이다. 더군다나 영롱이가 살아있기 망정이지 죽었더라면 자신이 완전히 뒤집어썼을 거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늉’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은 ‘연기와 말(言)’이 아니라 ‘데이터와 논문 그리고 재연 가능한 실험’으로 입증되는 것이다.
“당시에 영롱이가 복제소가 맞다는 건 누구에게, 어떻게 검증한 겁니까?
그걸 농대 한00 교수한테 영롱이의 혈액하고..... 지금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그래요. 영롱이의 혈액하고 세포 제공 모체의 세포를 제가 넘겼던 거 같애요. 그때는 내가 DNA 핑거 프린팅의 개념을 잘 모를 때에요. 이것이 정말 복제인가를 확인해 달라고 했더니 그땐 MS(마이크로 새털라이트, micro satellite)라고 하더라구요. MS를 해보면 안다면서 얼마 만에 ‘MS가 일치합니다’ 그 통보를 받았어요.
혹시 그때 발표된 영롱이나 진이의 마이크로새털라이트 검증 기록이 남아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번 찾아보면 있을지 모르겠는데, 분명하게 우리는 통보는 받았어요.
이병천 교수님, (확인해 주세요)?
(이병천 교수) : ......
(황우석 교수) : 워낙......
영롱이와 진이의 당시 마이크로 새털라이트 검증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건가요?
그건 이 선생님이 그때 주도적으로 실험한 게 아니고, 내가 했기 때문에 가지고 있으면 내가 가지고 있을 텐데. 보시다시피 우리가 그러고 나서 두어 번 이사를 했죠? 그리고 그 당시에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 줄 알았으면 그런 자료를 소중히 간직하는데, 이런 문제가 될 줄을 전혀 몰랐지요.
퍼블리쉬(publish) 말씀하셨지만 영롱이 관련해서 발표된 논문이 있습니까?
아니오, 그 당시엔 이미 외국에서 여러 군데서 나왔어요. 그래서 그걸 어디에 내봐야 퍼블리쉬 가능성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때 우리가 하자, 하자 그러다가 그냥 넘겼었죠? 그때 차라리 어디 낮은 데라도 했었으면 괜찮았는데.
그렇다면 이병천 교수님이 말씀하신대로 퍼블리쉬는 안 했구요.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마이크로 새털라이트 검증 기록이 영롱이도 없고 진이도 없다는 말씀인지요?
(이병천 교수) : 했는데, 지금 현재 그 자료가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찾아볼 수도.......” (황교수와의 인터뷰 녹취록에서)
이병천 교수는 말을 아꼈다. ‘황교수의 일’이니 황교수가 궁극적으로 책임져라는 인상이었다. 결국 황교수에게 공은 넘겨졌고, 황교수는 ‘두어 번 이사’라는 묘안(?)을 냈다. 국민들이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던 시절, 황교수를 과학계의 대스타로 데뷔시킨 것이 바로 영롱이였다. 그런데 자신의 데뷔 작품을 입증하는 기록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영롱이 검증 기록은 세상에 한 번도 발표한 적이 없어서 연구자 자신이 잃어버리면 그걸로 끝이니, 더 이상 따져 물을 수도 없다. 즉, 영롱이는 그것이 복제소임을 증명하는 결과가 단 한 번도 세상에 공표된 적이 없는데, 온 나라의 언론과 국민들만 믿어온 것이다. 황교수가 ‘이것이 복제소’라고 ‘말’하자 이것을 믿어준 꼴이다. 일이 이 지경이 된 데는 황교수가 1차적인 책임이 있겠지만, 과학기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과학기자들은 처음에는 황교수에게 속았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의아하게 생각했을 터인데 이미 그때에는 서로 쉬쉬하는 것이 하나의 ‘질서’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래서 영롱이에 대한 무수한 의혹과 풍문이 학계와 과학기자들에게 떠돌았건만 이때까지 단 한 줄의 의혹기사도 나가지 않은 이유다. 과학과 언론 그리고 정권의 삼각동맹이 어떤 것인가를 가장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 바로 영롱이다. 그것은 <사이언스> 논문 조작의 축소판이며, 말 그대로 ‘조작의 원형질’이 거기에 담겨있다.
“당시 실험 자료들, 예를 들면 최초에 체세포 핵이식(NT) 했을 때 사진이라든가 혹은 체세포 제공소에 대한 사진이라든가 이런 게 남아있는지요?
한 선생님, 지금 같은 이런 정말로 척박한 세상이라면 사진을 찍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엔 우리가 농가 다니면서 소똥과 싸우던 시절입니다. 이 소가 복제가 될 것인지를 그 당시엔 기대를 못했어요. 그리고 딱 한 마리를 선정해서 그걸 했다면 또 모르겠어요. 사진을 찍었을지도. 한 20여 마리를 추천받아서 그 중에서 어떤 건지도 모르고 했던 겁니다.
(이병천 교수) : 핵이식 할 때 사진은 안 찍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는 건...... 대부분 사진을 찍기 위해서......
(황우석 교수) : 사진 찍으면 그건 망가져요.
(이병천 교수) : 오늘 보신 것도...... 보여드렸지만 자라는 데 있어선 (사진을 찍으면) 상당한 손실입니다.” (황교수와의 인터뷰 녹취록에서)
당시 영롱이가 태어난 뒤에 한국에서 두 번째(?) 복제소의 주인공인 ‘새빛이’를 탄생시킨 임기순 박사의 경우, 모든 사진 자료들을 가지고 있다. 체세포 핵이식 사진을 비롯해서 모든 실험기록들이 사진으로 보관되어 있다. 그것은 과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기초적인 것이다. 그런데 황교수는 이제 와서 ‘사진 찍으면 망가진다’는 어설픈 주장을 하고 있다. 물론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을 준비하면서 황교수팀은 수많은 난자와 핵이식 사진, 배반포 사진 등을 촬영해 보관하고 있다. 왜 하필 영롱이 관련 실험사진만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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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ctrl + F'를 누르고 '스투더'를 입력하여 찾아보기 해 보세요. '스투더'라는 사람 이름이 나오는 대목을 읽어 보세요.
슬로언 캐터링 암 연구소의 스투더 연구원을 잘 구워 삶았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황박사의 법정 증언 중에도 스투더가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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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차 공판시 황박사 발언(일부)
황박사 : 셰튼 박사가 2005년도 논문으로 연구비를 신청하여 N I H로부터 새튼이 1620만 달러를 지원받았었고 작년에 주지사로부터 350만 달러를 추가 지원 받았습니다. 그 펀드의 최종 결정을 위한 미팅에서 당시 내가 그 연구에 참여하겠다고 보장을 해주었고 그로 인해 연구비를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하버드 논문의 공동저자들의 상당수가 바로 이 N I H의 연구비의 수혜자들입니다.
이번 논문이 발표되기 전인 2006년 10월 경 일본의 고베 릭켄 연구소의 니시카와 신이치 박사와 로렌스 스투더박사, 로저 피터슨 박사가 NT-1을 서울대 보고서를 근거로 처녀생식이라는 전제하에 논문을 쓰려고 한다는 긴급 전문을 받았습니다. 즉 처녀생식으로 결론을 내리기 위한 공동연구를 진행하자는 제의가 있었음을 확인 하였습니다. 정보기관도 국익을 위해 이러한 정보를 듣고 대책을 상의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로렌스 스투더 박사와 신이치 박사는 공동연구자의 리더인 황 박사의 참여없이, 더구나 황 박사가 지금 법적으로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논문을 쓰면 오해 받을 수도 있다고 하여 저자가 될 것을 거절해서 대신 말콤 무어 박사가 저자로 참여하였습니다.
로렌스 스투더 박사가 작년 말 한국을 방문하여 워커힐에서 저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고 이왕 이렇게 된 것이니 국제 검증 컨소시움을 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저는, 죠지 큐 델리박사가 새튼박사와 연구비를 나누어 쓰고 있기 때문에 로저 피더슨과 죠지 큐 델리를 공동연구자에서 빼고 국제적 컨소시움을 하겠다고 하였고, 대신 제가 추천하는 한 명의 국내 전문가와 한 명의 외국 전문가가 참여하여 공동 연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문신용의 NT-1은 그쪽에서 받아내고, 저는 노윤정의 혈액을 시료로 받기로 했고 난자 기증자에게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정보기관에 보고되었습니다.
(이때, 재판장이 제지한다)
재판장 : 지금 피고는 증인이 대답할 수 없는 사항을 질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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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박사의 법정 발언 중에 허위로 밝혀진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황박사가 스투더에 대해서는 자신 있어 하지요? 꽉 잡아 놓은 모양.
첫댓글 “저희 내부에 실험실 구조가 이렇습니다. 우선 여기로 들어가서 1차 옷을 갈아입습니다.
그리고 air shower를 거쳐서 완전히 protection을 한 다음에 장갑까지 다 끼고 이쪽으로 나와서
여기가 장비실하고 culture room이고 여기가 micro manipulator달아있고 기본이 진행되는 incubator들이 쭉 있습니다.
여기는 이제 보관하는 보관시설들이 있습니다. 저기......우리 culture room에 있는 embryo를 좀 보자.
지금 보시는 것은 지금부터 6일 전 체세포 핵이식을 한 겁니다. 오케이. 포커스 좀 맞춰라.
자 어제 2개의 hatched blastocyst, 배반포 2개가 나와서 어제 아침 9시에 2개를 seeding을 했습니다"
음훠~ 기죽어~ㅋㅋ
한학수 : 당시에 영롱이가 복제소가 맞다는건 누구에게 어떻게 검증한겁니까?
황우석 : 그걸 농대 한OO교수한테 했쓰요.영롱이의 혈액하고..
한학수 : 혹시 그때 발표된 영롱이나 진이의 초위성체 방법 검증기록이 남아있는지요?
황우석 : 모르겠습니다. 한번 찾아보면 있을지 모르겠는데 분명하게 우리는 통보를 받았어요
한학수 : 이병천 교수님 확인해줄수있나요?
이병천 : ...........
황우석 : 워낙.........
(308 페이지)
야심한 시각에 교수만해도 11명이 모여 있게 되었는데, 이것은 한눈에 보아도 황교수 스타일의 작품이었다.
ㅡ 여기서 교수님들이 많이 놀라게 되지여.
"자리에 함께 있던 10여명의 교수들은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인터뷰 질문을 통해 이른바 ‘황사단’ 교수들에게 정보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면 알수록 내부의 동요는 심해지고 그 틈새에서 뭔가를 얻어낼 수도 있는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 황교수는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야 하고,
나는 내부의 동요를 일으키기 위해 우리가 취재한 사실을 적절하게 공개해야하는 처지였다"
휴ㅡ,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이 생생히 기록된 것이군요.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ㅎㅎ
길게도 해 묵엇다 속은 우리들이 바보
복제소 '영롱이' 대목도 미스테리, 스너피(개)_도 미스테리. 스너피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본국 '방글라데시' 로 가버린 어느 연구원의 작품이라는 정보를 입수. 확인한 후 더 이상 황박을 지지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어느 지지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인상적인 말. " 진실은 빠르고 늦음일뿐, 시간이 가면 황박의 모든 거짓이 드러날 것이다."
저는....그저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왜.....
"아니오. 그 뒤에 또...... 발표 이후에 된 것도 여러 개가 있어요. 지금 총 숫자는 말씀 못 드리겠고요.
이건 스파이너리 환자인데 33살짜리입니다. 다음. 국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건 31살짜리 스파나코 메이저리 페이션트.
다음. 이건 56살짜리 스파나코 메이저리...... 다음. 하나만 더 보자. 이것 도 스파나코 메이저리 환자입니다.
수고했다. 대기하고 있어라. 이따 샘플링 해야 될 지도 모르니까.”
ㅡ 연구원이 가르쳐주는대로 달달외워서 한학수앞에서 설명한다고 욕보셨네.
ㅡ "줄기세포의 현미경 사진만 보고 환자의 병명을 귀신같이 맞춰내는 것은 도저히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었다" (한학수PD)
황우썩 : 저는 모르겠어요. 정말로...... 난자 채취를 정말 했는지 그리고 연구원 난자가 우리한테 왔는지 그걸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ㅡ 자신이 직접 P 연구원을 미즈메디 병원에 데려가서 난자채취 수술을 시켜놓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거짓말을 하는 황우석 (한학수PD).
무섭다 황수석
스튜더도 황우석 장학생인가 보아요~
2005년 11월 7일 : 황우석, 이병천, 강성근 뉴욕행
2005년 11월 ?일 : 스투더박사를 열흘정도 한국에 초청.
2005년 12월 : 논문문제가 불거졌을때 침묵.
그리고 논문조작이 본격적으로 수면에 떠오른 12월 말,
<뉴욕슬로언캐서링 암센타>의 입장 ㅡ "우리들이 갖고있는 2,3,4번 줄기세포가 어떤종류의 줄기세포인지 확인해줄수 없다"
한학수; 자신들의 거짓이 너무 명백해지자 이번에는 황교수 자신이 방금 전에 한 증언을 부정했다. 자신이 2004년 <사이언스> 논문과 착오가 있었다는 것이다. 녹음이 되는 상황에서도 저러니, 만약에 녹음도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말을 뒤집을지 모를 사람이었다.
황구라의 비양심적인 두리뭉실한 처세가 볼만하군요 ㅋ
한학수 ; 이미 김선종 연구원의 증언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황교수가 나름의 대응책을 만든 것이다. 그것은 ‘안면 몰수’ 전술이었다.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딱 잡아떼고, 도리어 김선종 연구원을 인격적인 하자가 있는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방법이었다. 이런 식의 안면 몰수는 가부장제 사회의 성폭력 남성들이 성추행 피해 여성들에게 고소당했을 때, 가장 자주 그리고 전형적으로 사용한다. 뻔뻔스런 방법이긴 하지만, 입증이 어렵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잘 통하는 전술이다.
황구라의 위선적인 이중인격 으로 황판에서 벌어지는 짓이 보이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