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사원 재단사 K
김예강
잘린 천조각들이 수생식물의 잎 같다
바닥에 떠다닌다.
그는 자르면서
잘라내면서 소매를 단다
가윗날이 스치자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달아난다
잘려나간 천조각들이
재생된 꼬리를 흔들며 풀밭으로 숨어든다
날개가 될 지도 모르는
추락이 시작할 지도 모르는 커버
여기 한 점에서 길들은 끝나고 시작한다
그가 요청받은 상의가 완성되어 간다 이 바닥은 처음이다
옷감을 커다란 탁자 위에 반듯하게 펴서 올려놓으면
도마뱀은 정체를 숨기고 가만히 기다린다
덥석 손이가고 재빠르게 달아나는 도마뱀
연못 속으로 도마뱀은 사라졌을까
그는 검은 옷을 입고 출근한다
빨주노초파남보 색들이 잠자고 있는 검은 색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지켜주는 검은 옷은
평안하다 빛들이 쉬고 있는 검은 옷
3개월 수습사원인 K
파산했고 혼밥하는 원룸창가에 초록화분이 자란다
수생식물을 배 위에 올려놓고 연못이 키우고 있다
바깥은 춥고 안보다 따스하다.
그는 그림을 그리다 잠이 든다
어느새 머리에 5cm 돋아난 새싹이 자란다
입을 벌려 본다 기뻐하는 사람처럼,
다리는 얼굴에 붙어서 작아지고
두 팔도 얼굴에 붙어 작아진다,
무엇에 경이를 드리는 듯
무릎을 구부리고 식물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다른 무엇이 되려고 한다
시읽기 - 마경덕
「수습사원 재단사 K」에서 김예강 시인이 보여주는 공간에는 각박한 현실에 노출된 수생식물 같은 사내가 살고 있다.
수생식물 중에서도 ‘개구리밥’처럼 물에 떠다니는 부유식물(浮遊植物)이 있다. 재단사가 잘라낸 천은 수생식물의 잎처럼 바닥에 떠 있다. 뿌리가 없는 수습사원의 미래도 ‘부유식물’ 같은 처지이다. 자르거나 잘려나가는 것, 가위 속에 “두 개의 힘”이 맞물려있다. 위기의 가윗날이 스치면 그도 재빨리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야 한다. 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제 손으로 꼬리를 자르는 것이다. 꼬리가 다시 재생되기까지 어딘가로 숨어들어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3개월 수습사원인 K는 검은 옷을 입고 출근한다. 그는 왜 검은 옷을 선호할까. 파랑과 주황, 빨강과 초록, 노랑과 보라와 같은 보색을 섞어서 만들 수 있는 검은 색은 단순한 색으로 보이지만 여러 가지 색이 들어있다. 감추기 좋은 검은색에는 그가 숨겨둔 ‘무지갯빛 꿈’이 있다. 수습기간을 마치고 반드시 재단사가 되어야만 한다.
원룸 창가에 초록의 수생식물을 키우는 작은 연못은 얼마큼의 크기일까. 어쩌면 작은 유리그릇에 떠 있는 부레옥잠 한 포기일지도 모른다. 창가를 드나드는 햇살이 그 한 포기의 꿈을 붙잡고 있지만 K가 기거하는 원룸은 바깥보다 더 춥다. 원룸 역시 불안한 장소이다. 정서적 기반이 사라진 물리적인 기반은 다만 ‘공간’일 뿐이지 쉼을 주는 ‘장소’는 아니다.
누군가의 가위질에도 단번에 잘려나갈 수습사원 K, 그가 날마다 재단하는 것은 절망에 찌든 “자신의 꼬리”를 자르는 일일 줄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