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1편~89편 ◉
1. 시편은 어떻게 읽어야 할지 서로의 생각을 나누어 봅시다.
✿ 시편의 원래 이름은 ‘세페르트 힐림’입니다.
이 말은 ‘찬양들의 책’이라는 뜻입니다.
찬양들의 책이라고 되어 있지만, 히브리인들은 ‘세페르’ 책이라는 말을 빼버리고, 그냥 ‘찬양들이다’ 라고 말합니다.
시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개개인의 깊은 체험과 깊은 묵상들을 복잡한 말을 줄이고 줄여서 생각의 알갱이만 영롱하게 엮어내는 문학의 형식이기 때문에, 같은 체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거의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시편 속에 들어있는 진리나 내용을 서술적으로 풀어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인들의 정서가 있고 또 영적이고 주관적인 체험들을 엮어낸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누가 본다 해서 그 진리가 완전히 다 드러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 사람의 시거나 시를 쓴 배경을 다 알 수 있다면 좀 더 접근할 수 있지만, 시편은 한두 사람의 작품이 아니고 모세로부터 고라자손, 아삽자손의 시까지 약 1,000년의 노래입니다.
시를 쓰려면 영혼이 맑아야 합니다.
영혼이 아주 투명하고 거룩하고 맑아서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뜻이 비추고 투영되어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을 읽을 때는 서술적으로 풀려고 애쓰지 말고 맑고 깨끗한 영으로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2. 시편 1편을 읽고 느낌을 서로 나누어 봅시다.
- 시편 1:1~6
✿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이라고 서술형이 아니고, 감탄사로 시작합니다.
“얼마나 복된 사람인가!” 그 복된 사람, 그렇게 감탄할 정도로 복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악한 사람들의 어떤 충동이나 세상의 어떤 충동에 넘어가지 않고 성실하게 정직하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이런 사람은 조금 더디게 성장하지만 흔들리지 않습니다.
또 두 가지 길이 있는데 그 길은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입니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면서 가는 길이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가는 길입니다.
악인의 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날아가 버리고 그 결국은 망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참된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의 길이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길입니다.
3. 시편 19편을 읽고 느낌을 서로 나누어 봅시다.
- 시편 19:1~14
✿ 큰 틀에서 살펴보면 1절부터 6절까지는 창조물을 통해 하나님이 스스로 드러내신 것을 찬양하고 있고, 7절부터 14절까지는 율법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학자들은 만물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을 일반계시라고 부르고 율법, 곧 말씀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 것을 특별계시라고 부릅니다.
창조물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사람이 특별 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요?
일생을 살아가면서 하늘을 보며, 계절을 보며, 신기한 현상들을 보고 느끼며 이런 질서가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분, 우주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어떤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이 만나주셨다고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정을 다 알 순 없지만 만물이 질서대로 움직이는 이 사실, 결과를 가지고 원인이 있다는 가정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약 3천 년 전에 이런 감각을 가지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는 감성적인 사람이었고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6절까지 일반계시라면 7절부터 특별계시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특별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 확실, 정직, 순결, 정결, 확실(진실), 의롭다는 것으로 일곱 가지로 표현합니다.
이런 말씀을 알기에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송이 꿀보다 더 달다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4. 시편 51편을 읽고 느낌을 서로 나누어 봅시다.
- 시편 51:1~19
✿ 시편 51편은 사무엘하 11장이 배경이 됩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한 일이 나오고 사무엘하 12장에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책망하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나단의 책망을 받은 다윗이 그의 심정을 노래한 것입니다.
밧세바와의 일이 생기고 거의 1년 가까이 마음 졸이고 있었는데, 책망을 받고 오히려 주님의 판결이 옳으시며 주님의 판결이 정당하다고 고백하고 있으며 자신의 죄와 모든 인간이 죄성을 지니고 있다는 표현을 합니다.
또한 그동안 다윗이 죄의 고통 속에서 구원의 즐거움이 사라졌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을 자기와 같은 죄에 빠지지 않도록 가르치겠다고 합니다.
우리를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살다보면 크고 작은 죄를 짓고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윗처럼 죄를 인정하고 다시는 같은 죄에 빠지지 않도록 교훈삼고, 다른 사람까지 가르칠 수 있는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5. 시편 84편을 읽고 느낌을 서로 나누어 봅시다.
- 시편 84:1~12
✿ 시편 84편은 고라 자손의 시입니다.
고라는 모세의 사촌으로 레위 사람입니다.
민수기 16장에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민족 지도자 250명을 선동해서 조직적으로 모세에게 덤벼들었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로 고라라는 사람은 땅이 입을 벌려 산채로 음부에 들어가 죽었는데 그렇게 반역을 했지만, 신명기 24장 16절 이하에 ‘아비의 죄로 인하여 아들을 죽이지 말 것이요, 아들의 죄로 인하여서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라’고 했으므로 그 아들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많은 나라에서는 반역을 했을 때 삼족을 멸하라 합니다.
후손이 다시 반역을 할 것을 염두에 두고 그러한 것인데 성경의 법은 다릅니다.
우리 아버지가 반역자인데도 내가 안 죽었으니 오히려 고마워서 반역을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법은 용서와 자비의 법이요 믿음이 법입니다.
그래서 고라자손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문이 됩니다.
42편과 44편, 45편, 46편, 47편, 48편, 49편, 84편, 85편, 87편, 88편 등 모두 11편의 노래가 고라 자손의 시입니다.
84편은 아름다운 시로 시편에서 최고의 성전 예찬가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 시를 쓸 때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 없어지자 옛날을 그리워하며 노래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 고라자손 중에서는 노래하는 자도 있고 성전 문지기도 있었을 텐데, 자신들이 직분을 박탈당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서 바벨론 장막에 있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모임,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 지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되면 절로 이런 고백이 나올 것입니다.
6. 시편은 어떻게 읽어야 할지 서로 나누어 봅시다.
✿ 우리가 보는 시편은 모세부터 에스라까지 천 년의 노래라고 불리며, 저자가 드러난 100여 편의 시와 저자가 드러나지 않은 시들을 합하여 총 150편의 시를 묶어놓은 책입니다.
시라는 문학 자체가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데, 약 3천 년 전의 시를 지금 우리가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만 어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경신학자들이 어려워합니다.
시편은 개개인의 깊은 체험과 묵상을 기록하되 최대한 말을 줄여 알갱이만 기록하였고 히브리인의 정서 가운데 기록한 것이기에 많이 묵상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자의 상황을 통해 그 시에 담고 싶은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면서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기도 나누기
서로의 기도 제목을 나누고, 말씀을 묵상하고 지키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감사를 갖게 하여 주시기를 위해, 또 한주간의 승리를 위해 함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