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6일 화요일, 9시에 건양대병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모처럼만에 타는 시내버스에 아직도 서툴러 지각을 하고, 겨우 함께 타고 나서야 마음이 놓인다.
202번 신도안행 버스를 타고 계룡시 두마면 두계역 앞을 지나 양정고개 마루에서 내린다.
(논산경찰서)계룡지구대 앞 마당의 산쪽에 서있는 빛 바랜 천마산-천호산- 황룡재 등산 안내도를 살핀다.
한번 지나가본 곳인데도 여전히 새롭다.
이쪽에서부터는 처음이라서인지. 전에는 계룡시청 뒷길로 난 곳으로 기점을 잡아서인지, 웬지 기분이 좋다.
나즈막한 산길을 따라 간다. 쌓인 낙엽을 뚫고 삐죽하게 나온 새싹들, 이름이 생각이 안 나서 한참 갸웃거리는데 옆에서 일러준다. 둥글레 싹이라고. 생명력의 신비함을 느끼게 해주는 봄날 산행이 상쾌하다.
큰 바위 틈에다 돌멩이를 얹어놓은 곳도 지나고, 드디어 전망 좋은 곳에 팔각정이 나타난다.
천마정(천마정)이다. 천마산에 있는 천마정, 새싹에 산벚꽃이 흐드러진 것이 별천지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마침 정자 앞에는 큰바위가 있다. 정자보다 더 자연스러운 곳에 올라 서서 동서남북으로 사방을 둘러본다.
북서쪽으로 계룡산 상봉과 신도안(신도내) 지금의 3군본부가 있고, 계룡시 엄사리쪽이 보인다. 신도안에는 궁궐을 짓다만 주초석들이 남아있고, 종로터니 하는 지명도 1:5만 지형도에도 뚜렷하게 남아 있었는데....
서쪽으로는 계룡산 줄기가 기도처로 유명한 향적산으로해서 남쪽 끝으로는 황산성으로 매듭짓는 곳, 용의 뒷덜미 같은 지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양정고개는 천호산으로 이어지는 계룡산의 본줄기 중의 모가지 부분에 해당되는 곳이다.
요충지 이다. 그래서 양정인가? 왜 양정인가하고 궁금해 했더니, 산지기 말, '두개의 정자가 있어서이지' 하고 힘도 안들이고 말한다. 그래? 하긴 옛날에는 군사 주둔지를 '정'이라는 말로 쓰긴 했지 하고, 금산의 살구정을 떠올리면서, 내나름다로 둘러 생각해본다.
진잠(현)에서 양정까지 오면 사실상 험한 지형은 다 넘어온 셈이니 곧바로 연산(황산)으로 들어가는 골짜기가 펼쳐지니까.
사람의 일이란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리 애써도 이룰 수 없는 것인가. 90:10 원칙이니 법이니 하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진훤?)과 최후의 결판에서 승리를 하고 항복을 받아내고서야 비로소 고려라는 왕국의 문호를 열게되었으니, 그 아니 하늘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세운 것이 개태사라는 절. 이름도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뜻으로 짓고, 하늘이 도와주셨다는 뜻으로 뒷산 이름도 천호산이라 바꾸고. 하늘에 감사하고, 싸우다 전사한 영령들, 적이든 아군이든 그들의 혼령을 위로하고 기념하고자 하여 팔관회를 거창하게 하였을 터. 태조 왕건의 진영을 모셔놓고 기렸을 테니, 자연히 사람이 모이매 큰 철솥이 필요했을 터이고, 높은 분이 개경에서 이곳까지 오려면 숙박할 행궁도 필요했을터이니. 이웃한 유성 도안동 원골에 행궁 유적으로 보이는 곳이 있단다 .고려 왕조가 들어서면서 어지러워하는 후백제 백성들의 민심을 다독거리고자 은진에 관촉사며 미륵불도 조성하고. 위무했을 법하기도 하다. 각 지방 호족들 딸을 왕비로 삼아 인척관계로 맺어두고 .
주변을 둘러보면서 온갖 생각을 하게된다.
그래, 세월은 가고 지금은 천마 대신 철마가 기적소리를 내면서 개태사역을 지나가지만, 산은 옛산이고, 계절은 변함없이 원회운세 춘하추동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천마산을 지나 천호산까지 줄곳 고만고만한 산 높이(300여 미터)의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황룡/령재쪽으로 향해 나아간다.
(계룡시 푯말에는 황룡재, 논산시 쪽에서는 황령재, 아마도 황령재가 맞을 듯 싶은데)
산 봉위리가 연이어서 있다해서 연산, 황산성에서 건너다 보면 그 산줄기의 특성이 잘 나타난다. 고려시대 때 지명이 조선을 거쳐 지금껏 연산으로 불리우지만, 그 전에는 황산이라는 한자식 이름이었고, 이는 우리말 '누르기, 누르메의 이두식 표기라고 백제어 전문학자는 말하는 데 '길게 느러져 있는산'이 '누렇다'로 훈역해서 ' 황산,' '황룡재/황령재도 사실은 이곳에서는 지금도 '누르기재'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본래 우리말 '산이 길게 늘어져 있다'해서 얻어진 이름이 맞다고 여겨진다. 늘메, 놀메,논산 , 연산, 황산이 다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산행 중에 행동식에 가까운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면서 걷는 길, 슬슬 다리도 힘들어지기 시작하고 해는 서쪽 연산천 너머로 기울면서 은빛 잔물결을 반사하기 시작한다. 오후 4시가 넘어가는데, 연산 소재지 아래 풋개(초포)로 배가 드나들면 계룡산에 정도령이라는 진인이 나타나서 새료운 세상이 열린다고 하는 믿음(개벽사상)을 갖게 했던 그 정감록 사상인지 신앙인지는 아직도 살아 민초들 마음에 남아있다. 지금이야 신도안이 사라지고 새로운 계룡시라는 군사도시로 바뀌었지만, 여기에 뿌리를 박은 사람들이 대전과 인근에 흩어져 살고 있지 않은가.
천호산 지나 한참만에 만난 이름없는 정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갈 길을 고민한다. 연산 산업단지쪽인가, 아니면 황룡재/황령재로 내려가서 택시든, 아니면 노선버스는 서지 않으니 (우리같이 버스 이용하는 사람을 위해 임시/ 간이 버스 정류소 정도 두어도 좋으련만)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할까. 망설여진다. 지쳐서 이제는 걷기도 힘들어지고, 대목리? 아니면 연산 방향으로?
이왕 내친 김이니 목적지 황령재까지 가기로하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드디어 황령재 주차장에 도착하니 막막하다.
걸어가기도 그렇고, 남의 차에 편승하기도 여의치 않고, 택시를 부르자니 어느 쪽(벌곡 쪽 대목리 방향이나 연산 방향이나. ) 대전행 버스 교통편과 연결해서 고민하는데 마침 봉고만한 SUV 한 대가 벌곡쪽으로 간단다. 기름값만 주면 탈 수 있을 것 같아서 부탁을 하니 흔쾌히 승낙한다. 하루 일과를 먼 보령에서 마치고 오는 길이라는데, 경북 예천이 고향이란다. 집이 가수원이니 가수원까지 아예 태워다 주겠단다.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수가!.
세상은,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이다. 아름다운 산하만큼이나. 이렇게 봄날은 간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2021.04.17)
('팥거리'라는 지명은 '밖(<바깥)거리(<-> 안거리)'를 잘못 이해한 것인데 그냥 통용되고 있다. )
- 계룡지구대 앞마당옆 게시판의 등산 안내도: 낡아서 금이 쩍쩍 가 있다.-
- 봄의 기운을 받고 나온 생명체들- 둥글레 새싹이란다.
- 천마산 가는 길에 만나는 천마정, 흔히 팔각정이라고도 한다.-
- 팔각정이라고도 하는 '천마정'에서 사방을 둘러보기-
- 천마정 동편의 바위 봉우리에서 서북쪽으로 향적산과 멀리 계룡산 상봉이 보인다.-
- 팔각정에서 : 향적산 남쪽 아래 줄기( 황산성이 있는 곳을 보려하니 잘 보이지 않는다)-
-천호산 정상에서(371.6m)-
- 참고로 개태사에서 천호산 줄기를 찍은 사진: 한국학 중앙연구원 자료에서 -
- 천호산 줄기의 뒷면 계곡 일대( 신라군들이 진격해왔을 곳이다. 송전철탑들이 황산성에 올라보면 마치 봉우리 마다에 설치된 것처럼 보였다..) -
< 아래 사진들은 황령재/황룡재 주차장에 설치된 안내판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
(2021.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