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3029]盧綸(노륜)5율-李端公(이단공)/送李端(송이단)
<원문출처>《唐詩三百首》 당시삼백수 권3 오언율시
李端公(이단공)/送李端(송이단)
盧綸(노륜)
故關衰草遍(고관쇠초편), 離別正堪悲(이별정감비).
路出寒雲外(노출한운외), 人歸暮雪時(인귀모설시).
少孤為客早(소고위객조), 多難識君遲(다난식군지).
掩淚空相向(엄루공상향), 風塵何處期(풍진하처기).
옛 관문에 시든 풀 널리 널려 있고
이별을 하자니 너무 슬프구나
길은 찬 구름 밖으로 나 있는데
나는 눈 내리는 저녁에야 돌아온다
어려서 아버지 잃고 일찍 떠돌아
어려운 일 많았는데 그대를 늦게 알게 되었지
얼굴 감싸 울며 그저 그대 떠난 곳 바라볼 뿐
풍진 세상 어느 곳에서 또 만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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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釋] 옛 관문은 시든 풀에 둘러싸여, 이별을 하는데 참으로 슬픈 마음이 든다.
그대는 차가운 구름 밖 먼 길로 떠나고, 나는 눈 내리는 저물녘이 되어서야 돌아온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일찌감치 고향을 떠나 나그네 신세가 된 후,
허다한 간난신고(艱難辛苦)를 몸소 겪었는데 그대와 같은 지음(知音)을
너무 늦게 안 것이 안타깝다. 그대 떠나니 나는 얼굴을 가린 채
하염없이 울다가 그저 그대가 떠난 길을 허망하게 바라본다.
이 풍진 세상 또 어느 곳에서 만나길 기약할 수 있단 말인가.
[解題] 이 시는 유별시(留別詩)이다. ≪全唐詩(전당시)≫에 이르길
“엄유(嚴維)의 시라는 설도 있는데, 제목이 송이단(送李端)으로 되어 있다.
[一作嚴維詩 題作送李端]”라 하였다. 시의 3·4구는 떠나는 자와 보내는 자를 묘사했다.
5·6구에서는 자신이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외롭게 나그네 신세가 되었다가
뒤늦게야 지음(知音)을 만났음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이 두 구절은 세간에 경구(警句)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 7·8구에서는 언제 다시 만날 줄 모르는 기약 없음에 대해 말하였다.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처량하고 침울하여 이별에 임하는 감회가
매우 애달픔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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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端(이단) : 자(字)는 정기(正己)이며,
조주(趙州: 지금의 하북성 조현) 사람이다.
대력(大曆) 5年(770)에 진사(進士)를 하였으며
‘大曆十才子(대력십재자)’의 한 사람이다.
○ 少孤(소고) : 이단이 어릴 때 부친을 잃은 것을 말한다.
○ 爲客早(위객조) : 이단이 일찌감치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 掩淚(엄루) :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말한다.
‘掩泣(엄읍)’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 風塵(풍진) : 바람과 티끌. 세상(世上)에 일어나는 어지러운 일.
본 자료의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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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綸(노륜) : 748?~800?. 자(字)는 윤신(允言)이며,
하중포(河中蒲:지금의 山西省 永濟縣) 사람이다.
일찍이 안사(安史)의 난(亂)을 피하여 파양(鄱陽)에서 나그네 생활을 했다.
대력(大曆) 초(初)에 여러 번 진사(進士)에 응시했으나 급제하지 못했다.
재상(宰相) 원재(元載)가 평소에 그의 재주를 아껴 문향위(閿鄕尉)에
보임(補任)되었고 이어 감찰어사(監察御史)로 옮겼으나,
오래지 않아 병으로 사직(辭職)하였다. 훗날 하중(河中)에서
혼감(渾瑊)의 막부(幕府)에 있는 동안 원수판관(元帥判官)에 임명되고
검교호부랑중(檢校戶部郎中) 등을 역임하였다.
‘大曆十才子(대력십재자)’의 한 사람이다.
변새시로 〈塞下曲(새하곡)〉이 유명하며,
시집으로 ≪盧戶部詩集(노호부시집)≫이 있다.
[출처] [당시삼백수]李端公(이단공:이단공에게)/送李端(송이단) - 盧綸(노륜)|작성자 swings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