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14(금)~4. 18(화) 고향에서 봄 나들이
-진달래와 개나리와 벚꽃이 함께 피고 있다니-경상도의 최북단 산길을 마음껏 돌아다니다.
4월 14일 금요일 맑음, 대구로
오전까지 대구에서 한 제자가 보내어 주었던 [李商隱 시 비평문] 번역 초고를 겨우 한 차례 교열을 마친 뒤 가방에 집어 넣고서, 분주하게 점심을 먹은 뒤에 버스를 타고서 서울역으로 나갔다.
원래 매주 금요일 오전에는 퇴계학연구원에서 철학하는 친구들과 함께 《古鏡重磨方》을 읽는 날이고, 또 오늘 오후에는 성대에서 이 독회의 회원 한 사람이 [국제]퇴계학회의 월례 발표를 하기도 하는지라, 그런 것들을 다 듣지 않고서 어디로 나서기가 자못 아쉽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 경북대학교 교정에서 열린다는 대동한문학회에서도 이 《고경중마방》에 대한 발표가 하나 있어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매우 궁겁기도 하고, 또 이번에 반질할 이 학회의 학보에 내가 몇 달 전에 이 학회에 참석하여 읽었던 글[〈이퇴계의 家書와 언행록 내용의 비교 검토〉] 한편이 제대로 게제 되었는지 확인하여 보고 싶기도 하여, 훌쩍 서울을 떠났다.
오후에 동대구역에 내리니 그 동안 짓고 있던 신세계백화점이 장관이고, 택시를 타고 지산동에 마련된 숙사[지산동의 舞山齋]로 가면서 보니, 서울보다는 봄이 훨씬 더 무르익었으며, 또 서울시내에 비하여는 그래도 고층건물들이 적어서 한결 안정감이 있어 보여 마음이 편하다. 아마 내가 이곳에서 반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한결 더 정답게 보이는 지도 모르겠다. 작년 이때[4월 21일]에 대구에 내려 왔을 때 지었던 졸작 한 수가 다시 생각났다.
〈늦은 봄에 대구를 방문하고서晩春訪大邱〉
春雨霏霏訪故人
봄비 살살 내릴 때 옛날 친구들을 방문하였더니
相通意氣滌殘塵
의기가 서로 투합하여 잔 근심 말끔하게 씻어 냈구나.
半生有住有緣地
반평생 살기도 하고 인연도 많은 곳에
來去落英添一身
펄펄 나는 꽃 잎 조차도 내 몸에 와서 들어붙는 구나.
저녁 때 마침 몇몇 사람이 모인다는 한시 동호회의 월례모임 겸 회식이 한 여성 회원의 집에서 있다고 하여 가보았더니, 음식도 매우 푸짐하고 분위기도 참 좋았다. 무엇보다도 그 초대자가 이전에 내 강의를 들었고, 또 회원들도 대개는 얼굴을 아는 사이라서 좀 무관하게 생각되었다. 서울서 가지고 온 교정지도 그 집으로 초역한 사람을 불러서 넘겨 주었다.
4월 15일 토요일 맑음, 오랜만에 경대에
새벽 5시 반 경에 잠이 깨어, 숙사 근처에 있는 공중목욕탕(싸우나)에 가서 간단하게 목욕을 하고나니 얼마나 개운한지 모르겠다. 귓병을 앓고 난 뒤로는, 물기가 귀에 들어갈까 겁이나 이런 곳에 거의 다니지 않았는데, 오늘은 미리 탈지면을 좀 준비하여 와서 두 귀를 막고서 목욕을 하였다.
오전에 경대로 들어가면서 보니 벚꽃은 이미 졌지만, 철쭉 같은 꽃이 온 교정에 만발하였다. 바로 1주 전에 연대에 갔더니 역시 꽃이 만발하여, 뭐니 뭐니 해도 “대학이 참 아름다운 곳이 로구나” 싶었는데, 이 대학의 교정도 역시 참 아름답다.
그러나 학회에 갔더니, 기대하였던 발표는 발표자가 이 발표를 준비하다가 병이 나서 나오지 못하였다고 하여 자못 아쉬웠다. 그렇지만 여러 후배 교수들과 회원들을 만나보고, 새로 나온 학보도 받게 되어 반가웠다.
4월 16일 일요일 맑음. 영해 고향집으로
점심 때 집 사람과 재미 교포인 친구 이민용 씨 내외가 동대구역에 도착하였는데, 우리[동양고전] 모임의 임 이사장님이 알고서 나와서 신세계 백화점 5층 식당으로 안내하며, 점심을 사시고 환담을 나누었다. 조 원장의 소상 날이 지난 4월 5일이었다고 하니, 모르고 넘긴 게 죄송스러웠다.
백화점과 연결된 건물에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는데, 포항시내에 들리지 않고서 영덕까지 직행으로 가는 버스가 있어 탔더니, 2시간도 못되어 도착하였다. 하루에 8만원 한다는 자동차 한 대를 대절(렌트)하여, 해변 회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서 고향집에 들어가서 잤다.
4월 17일 월요일 종일 비. 월송정, 해월당, 불영사로
아침은 칠보산 뷔페식당에 가서 먹었다. 일출도 아울러 보고 싶었는데, 날이 흐려서 그것은 불가능하였다. 외국에 오래 산 그 친구에게 평해의 월송정을 먼저 구경시키고, 평해황씨들의 종택인 사동의 海月堂으로 갔으나, 비가 많이 내리고 다음 일정도 있어 찬찬히 살펴보지는 못하였으나 3면이 야산으로 둘러싸인 이 집 터는 참 절묘하였다. 절터로도 좋고, 묘터로도 아주 명기일 것 같았다.
이 해월당에 대하여서는 어릴 때부터 자주 들어왔고, 그 집안의 여러 사람들과도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이나, 직접 와보기는 처음이다. 주인을 찾아 인사를 하면, 일정에 차질이 있기도 하고, 또 폐도 될 것 같아서 그냥 차를 돌려나오니 매우 아쉽다. 이 집은 이 지역에서는 제일가는 명문가인데다가, 한 때는 경주의 최씨 가문과 비견될 정도로 부를 축적하기도 하였으며, 좋은 책도 많았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잘 보관하고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다. 우리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王郞返魂傳〉의 판본 중 이 집 수장본이 이름이 높다.
왕피천을 끼고서 경관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불영사 계곡”을 비를 맞아가면서 들어가서 그 절에서 점심 공양까지 대접을 받았다. 참 일진이 좋은 날이다. 나는 여기에 몇 차례나 와서 보았는데, 이전에 올 때보다도 길이 훨씬 더 잘 다듬어 지고, 못 보던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그래도 절 인심은 역시 소박하고, 산 기운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봄꽃에다 우뚝 우뚝한 바위틈으로 솟구쳐 오르는 안개들을 보니, 정말 넋을 잃을 것 같았다. 요즘 한시를 짓는다고 無病呻吟을 자주 하고 있는데, 이런 곳이야 말로 정말 시가 쏟아지고 그림이 쏟아질 것 같은 곳으로 생각된다.
서쪽 길로 이어 나가서 봉화읍까지 다 가 가다가, 동남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서 굽이굽이 돌고 또 돌아서 울진의 백암온천까지 내려 와서 한화콘도라는 집에 들어가서 잤다. 온천욕만 하고서 다시 고향집에 가서 잘지 어쩔지 미정이었으나, 내가 가진 사립교원연금수혜자 카드로도 객실 비용의 40%정도는 활인은 된다고 하여, 모텔에 들어가서 방을 2개 얻어 자는 것보다도 더 저렴한 것 같아서 그냥 여기서 자기로 하였다.
오늘 산골 길을 다니면서 보니, 평지에서는 이미 벗 꽃을 보기 어려우나, 이 산촌들에는 지금 진달래와 개나리 벗 꽃이 동시에 피고 있으니 정말 가관이다. 백암으로 오는 길에 영양의 명산 日月山에 오르지 못하니 아쉬웠다.
4월 18일 화요일 개임. 어제 오던 불영계곡 길을 다시 보다.
새벽 4시에 잠이 깨어 콘도 뒤로 난 산책 길을 따라 1시간 반쯤 산책하였다. 밤중에 산길을 걷는다는 일이 부질없는 장난 같지만, 어릴 때나 젊을 때에는 고향집에서 어디 먼 길을 떠난다고 하면 언제나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서 캄캄한데 길을 떠났으니, 나에게는 한번 그렇게 하여 보는 것이 옛 경험을 되살려 본다는 큰 의미가 있다고나 할가… 또 이 길은 이전에 더러 고향에 온 길에 여기 들려 온천을 하고 갈 때 한두 번 거닐어 본 길이기도 하여 좀 만용을 발휘하여 본들 큰 위험은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산으로 올라가는 산책로의 입구는 제법 넓었고, 나무 가지로 덮인 길을 어두웠지만, 반달과 별 빛이 가끔 비치어 들어,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면서 정말 온 세상이 모두 잠들었으나 나 홀로 깨어 있다는 오기를 만끽하였다.
이대로 계속하여 올라가면 날이 점점 밝아질 것이고, 바다도 차츰 시야에 들어올 것이고, 해돋이도 보게 될 것이고, 백암산 꼭대기도 점점 가까워질 것인데…금강송으로 아름다운 그 산을 느닷없이 한 숨에 올라가 본들 어떠리? 싶었으나 아래서 기다리는 일행들 생각이 나서 40분 쯤 올라가다가 되돌아 내려왔다.
아침에 민용 형이 어제 왔던 길을 다시 한번 더 보기 위하여 되돌아서 가보자고 하였다. 운전은 이 사람이 하니 “기사 마음대로 하라”고 하였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쾌청하다.
이 온천골 바로 북쪽, 영양 쪽으로 가는 산길 곁에 있는 “선신골”이라는 계곡이 최근에 개발된 것 같아서 잠시 들렸다. 고작 그 입구에서 800미터 정도까지 밖에 구경을 못하였지만 가위 절경이었다. 어제 종일 비가 온 뒤라서 더욱 그러하겠지만 계곡에 수량도 적지 않은데 바위들도 볼만하였다. 이 물길을 따라서 몇 시간을 올라가면 백암산 정상까지 이르게 된다고 하는 안내 지도를 보니 언제 한번 다시 와서 그렇게 하여 보고도 싶어진다. 전에 이 온천에 왔을 때 두어 번 “선시골이 아름다운데 아직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더러 들었는데, 아마 새롭게 계발하면서 이름을 “신선골”로 바꾼 것 같다. 좋은 온천 부근에 신선이 된다는 골짜기까지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더구나 고향 마을에서 차만 타고 오면 그렇게 멀지도 않는 곳에…
수비로 나와서 늦은 아침을 사서 먹고, 태백 가까이 올라가다가 다시 불영 계곡으로 들어 섰다가 울진에서 평해 쪽으로 난 고속도로를 따라 내려왔다. 후포항에 들어가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늦은 점심(회)을 사서 먹었다. 이어 영덕에 나와서 차를 반납하고서, 흥해까지 나와서 여기서는 처음으로 서울역행 ktx를 타고서 기껏 2시간 남짓하여 서울역까지 왔다. 영덕읍에서부터 서울 은평뉴타운에 있는 집까지 4시간 만에 온 것이다.
이전에 영해 우리 집안에서 봉화의 노루꼴(鹿洞)이라는 마을로 출가를 하셨던, “노리꼴 할메”라고 불렀던 한 할머니는 출가하신 뒤에, 평생 동안 한번밖에 친정인 영해에 오신 적이 없었다고 전한다. 아마 건장한 남자라도 거기서 영해까지 걸어오려면 몇 일이 걸리었을 것이다. 이번에 불영 계곡을 끼고 왔다가 갔다가 하면서 보니, 봉화에 “노루골 터널”이라는 곳을 하루에 한 차례씩 두 차례나 지나가게 되었다. 지금 차로 영해에서 그까지 간다면 2시간 남짓하면 곧 닿을 수 있을 것이다.
고향에 가서 2박 3일 동안에. 경상도의 최북단의 오지를 봄날을 마음껏 즐기면서 거침없이 돌아다녔다.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첫댓글 봄날 신선들의 고향방문에 동행한 것 같이 실감하며, 先祖 詩 ‘觀魚臺’를 떠올려 봅니다.
聞道群仙海上居 바닷가에 신선들이 산다는 말 들은지라
含情悵望倚觀魚 관어대에 기대어서 안타깝게 바라보네
三洲縹緲迷煙霧 아득한 삼신산은 연무로 어둑하고
萬頃蒼茫蘸碧虛 끝이 없는 바다는 하늘과 닿았어라
擬遊汗漫乘黃鶴 한가롭게 황학 타고 노닐어 보려다가
轉向巉巖策困驢 가파른 고개 향해 지친 나귀 재촉하네
回首天東無盡意 하늘 동쪽 돌아보니 생각이 한량없어
斜陽駐馬更班如 석양에 말 멈추고 다시 서성거리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