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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7일(금) 예산수정교회 새벽설교 마태복음 16:13~20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새찬송가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몽용목사
오늘은 마태복음 16:13~20절 말씀을 중심으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하는지를 물으십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을 하는데, 그 중 수제자인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 고백을 하는 베드로를 예수님은 축복하시며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두가지 질문을 하십니다. 13절에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그리고 15절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먼저 우리는 13절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13,14절). 예수님은 빌립보 가이샤라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입니다. 그 질문에 제자들은 14절에 “이르되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이미 예수님 당시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헤롯왕’이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바로 ‘엘리야 선지자나 예레미야나 아니면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했습니다. 일부 유대인들은 엘리야와 마찬가지로 예레미야도 마지막 때에 다시 세상에 올 선지자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을 바로 그 같은 부류의 선지자 중 하나로 오해했던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예수님을 잘못 믿고 예수님에 대한 온갖 해석들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이었음을 제자들의 답변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기적을 베푸셨어도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하늘로부터오는 표적만 구했습니다. 제자 중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선지자와 같은 역사적 인물로 여겼는데, 이는 예수님을 가까이 모시고 있어도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직 제대로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듣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특히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곳인 아주 조용한 빌립보 가이샤라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신앙고백을 요구하십니다. 오늘 15~17절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인데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인 15절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의 질문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정확하게 대답합니다. 이 베드로의 신앙고백 속에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그 첫째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시러 이 땅에 오셨는지를 분명히 알고 믿고서 하는 고백입니다. ‘그리스도’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구약에서 기름부음 받는 직분은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보하는 제사장, 하나님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선지자,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인간 사회에 실현시키는 왕이었습니다. 장차 오실 구세주는 바로 그 같은 세 직분을 한꺼번에 다 감당하실 분이었기 때문에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즉 구약에서는 메시아,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는 그리스도시요”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로 오신 구세주이심을 고백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의 두 번째 요소는, 바로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말 속에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본성’에 대한 그의 믿음을 고백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를 기다리고는 있었지만, 성자 하나님께서 친히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훌륭한 왕이나 아니면 위대한 선지자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그들의 구세주가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로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자기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이 엄청난 사실을 고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또한 하나님이시다.’라고, 이 두 가지 신앙의 요소가 한 번에 모아져서 고백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구약에서 예언된 대로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구속자와 중보자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오신 구세주일 뿐 아니라, 동시에 그 구세주가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이 베드로의 신앙고백 안에서 합하여진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위대한 고백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위대하여 사실 사람으로서는 스스로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17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이런 엄청난 고백을 했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지만, 에수님은 베드로의 이 고백을 받으셨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롬 10:10)로 말씀하고 있끼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이나 죄 고백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고난의 메시야를 모르고 고백할지라도 주님은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받으십니다. 적용해보세요 나는 주님께 사랑과 믿음의 고백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고백을 했지만, 베드로처럼 주님을 부인하는 죄를 지은 적은 없습니까? 계속해서 18~20절에 예수께서는 만족할만한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십니다. 비록 음부의 권세가 강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는 교회공동체를 주심으로 음부의 권세를 이기게 하십니다. 여기서 ‘천국의 열쇠’(19절)는 ‘맬 권세’와 ‘풀 권세’를 말합니다. 땅에 있는 믿음의 교회공동체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교회공동체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게 됩니다. 우리는 음부의 권세를 이긴 약재료를 가지고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사람하는 ‘푸는 권세’를 이 땅에서 행해야 할 것입니다.
‘천국열쇠’라는 한 자매님의 큐티인 간증입니다. 공동체에서 긴 시간을 보내며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세상에서 남과 비교하느라 지옥을 살아갈 저를 주님은 말씀과 공동체를 통해 제 속의 피해의식과 자기 연민, 우울증을 쫓아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초중고시절에 아이의 ADHD라는 광풍을 지나게 하셨습니다. 또한 남편과 함께 시아버지의 회사를 이어받아 우리 손으로 억대의 어음 빚을 갚게 하시더니, 마침내 남편이 새로 세운 법인 회사의 운영으로 안정을 찾게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주님이 베푸신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이었습니다. 이렇게 긴 터널을 지나 저는 ‘이제부터 고난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자녀고난으로 제가 찾아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절)고 질문하십니다. 딸은 재수를 하면서 압박감과 부담감을 느끼며 힘들어했는데, 결국 수능 달일 3교시에 시험을 포기하고 나왔습니다. 그 후 시험에 대한 두려움으로 대학 포기 선언을 했고, 지금까지 대인기피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들은 대학3학년으로 편입하고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예기치 못한 공황장애 발작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복무를 중단하고 치료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저는 공동체에서 저의 뿌리 깊은 세상 가치관을 말씀으로 돌이켜 살아났습니다. 그럼에도 100% 죄인인 저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는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고자 영적인 후사인 자녀들에게도 질병과 실패의 아픔으로 천국 열쇠를 허락하셨음을 믿습니다(18-19절).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라는 저의 믿음의 고백이 자녀들에게도 이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적용) 교회 소그룹 지체의 자녀들과 주일학교 아이들도 내 자녀로 여기며 기도하겠습니다. 매번 새책으로 남을지라도 자녀들의 큐티책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겠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주님의 질문은 제자들에게 만이 아니라 저희들에게 주시는 질문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우리는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으며,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이 두 가지 사실에 대하여 정확한 신앙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 어느 쪽 하나라도 잘못되거나 결핍되어서는 완전한 신앙고백이 될 수 없습니다. 완전무결한 신앙고백은 “예수님은 내 생명을 구원해 주시는 구세주이시며, 이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예수 해석’들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오직 베드로처럼 ‘정확한 신앙고백’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신앙고백만이 성도가 소유하고 있는, 또한 성도가 세상 앞에서 자랑할 수 있는 최대의 보화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이 주님의 ‘신앙고백문답’ 앞에서, 비록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더라도 어디까지나 당당하게,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무엇이라고 대답하더라도 끝까지 정확하게, 오로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신앙의 고백을 함으로써, 튼튼한 교회를 함께 세우고 자신의 구원을 이루며 천국열쇠를 소유하는 그런 은혜가 넘치는 성도님들의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