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수필문학 30년사
- 동백수필 시발과 융성, 그리고 르네상스 -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동백수필 동인은 모두 가슴이 따뜻한 사람입니다. 저도 동백의 밖에 있을 때, 동백수필과 동백수필 사람들이 좋아 동백수필문학회에 가입하고, 오늘은 회장이란 자리에서 권두언을 쓰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우리는 인연이 필연임을 믿습니다. 동백수필의 일원이라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이 책이 수필이 이런 것임을 보여주는 책이었으면 합니다.
<동백수필> 22집, 장미의 ‘권두언’ 중에서 -
I. 서론
1. 연구사 개관
현대문학사가 2008년 지금까지 100년을 웃돌아 왔지만 한국문학사에 현대수필은 다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신문학 초창기에 있어서도 수필을 제외한 여타 장르는 그 장르에 대한 개념 의식이 선명했다. 그런데 수필만은 그 장르명조차 감상, 상화, 수감, 단상, 만상, 기행 등 여러 명칭으로 혼동되어 사용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가 1930년대 들어서야 수필이란 명칭이 문학 양식으로 정착하게 된다. 수필에 대한 개념부터 창작이론까지 ‘이것이다’하고 내어놓을 이론이 없었다는 데서, 한국문학사에서 수필에 대한 언급이 왜 없었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다행히도 이런 한국문학사의 척박한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수필동인지 『隨筆』이 부산에서, 2년 뒤에 <윤좌>라는 비중 있는 수필동인지가 발간되었다는 점은 부산이 수필의 메카라는 것을 말해준다. 1980년대 발간된 <동백수필>은 이런 수필 개척이란 최초의 수필동인지『隨筆』정신을 이어받아 오늘날까지 30여 년의 역사를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우리나라 수필동인지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隨筆』은 1960년대 초기에 부산에서 그 기치를 올렸다. 처음 『隨筆』창간호는 『Essay』라는 표제로 수필에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수필문학동인회’를 만들어 그 첫 열매를 세상에 내놓았다. 동인은 김병규, 김일두, 박문하, 이남원, 오도환, 정신득, 장성만, 허천 8명이었다. 당시에는 회칙이나 회장이 없고, 편집위원으로 허천, 오도환이 회무를 맡아 ‘수필문학동인회’의 이름으로 1963년 7월 15일 발행되었다. 그러다가 제2호부터는 독자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해 표제를 『隨筆』이라 바꾸고 향파 이주홍의 산뜻한 표지그림과 장정으로 1964년 3월 10일 ‘수필동인회’라는 새 이름으로 발행되었다. 그리고 창간 동인이었던 오도환이 타계함으로써 김정한 김병태 박지홍이 새 동인으로 참여하여 동인은 10명이 되었고, 이 무렵 부산방송국을 통해 ‘수필 릴레이’를 하며 부산일보 국제신보 등 일간 신문지상에 많은 수필을 발표하여 독자의 저변을 넓혀나갔다.
초창기에 헌신적으로 동인지를 이끌어온 사람은 허천, 박문하였다. 허천은 국제신보 논설위원으로 재직하면서 문화계에 지인들이 많았고, 박문하는 동래 민중의원 원장으로 의사보다 수필가로 더 알려진 분으로서 두 분이 산파역을 했다. 지금 쓰고 있는 제호 『隨筆』은 운여 김광업의 휘호로서 제4호(1965)부터 써 오고 있다. 운여는 추사 이후 손꼽히는 선묵으로 평가받는 서예와 전각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隨筆』이 걸어온 길은 평탄하지만은 않다. 1969년1월 제14호까지 내고 재정난 등의 사정으로 3년간 휴간 상태에 있다가 1973년 4월에 제15호를 내 놓게 되었다. 이때의 집필동인은 김병규, 김소운, 김일두, 김정한, 구본룡, 박문하, 박태권, 박태을, 송정수, 이남원, 이덕오, 이종석, 이해주, 장성만, 정신득, 정화식, 차동석, 최해춘, 허천 19명이었다.
이와 같이 초창기의 『隨筆』은 회장을 두지 않고 편집인이 발행해 오다가 1979년 21호부터 모임의 이름을 ‘수필 부산동인회’로 고치고 정식 회장제를 채택하여 정신득을 초대회장으로 추대하였다. 그 후 1994년 4월 제2대 문인갑 회장 취임, 2003년5월 제3대 박홍길 회장이 취임하였으며, 2004년 젊은 수필가를 동인으로 맞이하기 위해 신인상 제도를 제정하고, 모임 이름을 ‘수필부산문학회’로 고쳤다.
그러다가 2005년 박홍길 회장이 부산수필문인협회 회장을 맡게 되자, 제4대 회장으로 이해주가 취임하였으며, 오랜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부산시에 연2회 정기간행물 등록(2006. 8. 30.)을 마쳤다. 현재 제69호에 참여한 동인은, 이해주, 문한규, 박송죽, 한영자, 김대상, 성낙구, 장광자, 이몽희, 이원우, 박홍길, 전희준, 안태경, 이기태, 송두성, 박희선, 이병수, 박우야전, 전정식, 허정, 하창식, 김상희, 강중구, 윤용흠, 윤옥자, 황다연, 장미, 허현숙, 손수영, 허정림, 박문자, 최홍석, 정재분, 황원준, 정철규, 이경자, 정인조, 정약수, 김훈, 김혜자, 심득순, 황선영, 오기환으로 모두 42명에 이르고 있다.
1973년 문원각에서 펴낸 한국문학대사전의 부록편 전국동인회 일람표에는 “ ‘Essay, 1963. 부산. 대표자: 박문하, 김병규, 이남원, 오도환, 김일두, 정신득, 장성만, 허천.”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1963년 이전의 수필동인지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Essay』는 한국 수필동인지의 효시라 하겠으며, 따라서 『隨筆』은 우리나라 최장수 동인지라 하겠다.물론 <동백수필>의 역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필동인지 <수필>보다 20여 년이 뒤진다. 그렇지만 수필이 문학장르로서 각광을 받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에 발간되어, 우리 수필을 질을 이끌어 오는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동백수필 회원 중에는 유난히 신춘문예 출신들이 많았다는 데서 그 역할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초창기 일 년에 네 번씩 동인지를 계간으로 발간했다는 사실도 주목받을 만하고, 특기할 만하다고 하겠다. 동백수필 회원이었던 신춘문예 출신 동인들은, 오승희, 김윤희, 윤자명, 강숙련, 남지은, 김원순, 김종희, 송명화, 문정희 등 거의 10여 명이나 된다. 신춘문예 출신은 아니지만 이를 능가하는 실력을 갖춘 안귀순, 송연희, 정태귀, 박양근 등이 동백수필 회원이거나 거쳐간 사람들이라는 데서 동백수필의 위상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겠다.
미래문학으로 각광받고 있는 수필이 당당히 문학의 자리에 서려면, 수필의 역사적 맥락을 찾아 수필을 바로 세워야 한다. 한국수필현대문학사는 정주환이 <한국근대수필문학사>란 책으로 정리한 것이 전부다. 부산수필문학사의 경우, 1990년대 와서 지역문학의 활성화를 기한다는 명분으로 부산문인협회 주관으로 <부산문학사>를 발간한 바 있다. 그 가운데 유병근이 <부산수필문학사>를 기술했고, 수필가 김상희가 2007년 <부산수필문학약사>를, 2009년 김상희, 박양근이 부산현대수필문학사를 공동 집필하였다. 2011년 권대근이 부산예총이 주도한 <부산예술50년사>의 한 파트로 <부산수필문학사>를 집필한 바 있다. 지역 수필문학사의 정리는 한국현대수필문학사의 본격적 정립에 도움이 될 것임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동백수필 30년사는 부산수필문학사의 한 부분으로써 80년대를 정점으로 부산수필문학사뿐만 아니라 한국수필문학상에서 갖는 위상이 남달랐기 때문에 수필문학사로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