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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어원(ㅇ자 어원)
이름의 어원
이름을 부르다...
과연 <이름>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세소토어를 참조하자.
세소토어 ithuta는 배우다 (to learn)의 뜻이며, mo는 목적격 조사 (there)이다.
<이름>의 15세기 고어는 <일홈 (석보상절)>, <일훔 (용비어천가)>이다.
한국어 <이름(name)>은 세소토어 <ithuta (to learn) + mo>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배움> 즉, <배운 호칭>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원적으로, 세소토어 ithuta (to learn)의 끝음인 ta는 한국어 동사어미 <~다>의 영향으로 탈락하여, ithu를 거쳐서, 한국어에서 <잍후다- 일후다>로 변하고 명사형 어미 <~ㅁ (mo)>이 붙어서, <일훔- 일흠-이름>으로 변화된 것으로 추정한다.
결국, <이름>은 세소토어 <ithuta (to learn) + mo>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아무거나 붙여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배워서 부르는 호칭>을 의미하는 것이다.
움직이다의 어원
마음이 움직이다...
과연 <움직>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umiza는 놀라게 하다 (to astonish, astound)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umije이며, gira는 가지다 (to have)의 뜻이다.
한국어 <움직이다>는 르완다어 <umije + gira>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놀람을 갖는 것, 즉 <놀라서 움찔거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움직이다>의 훈민정음 시기인 15세기 고어는 <움즈기다>이므로, 원래는 표준어인 <움직+이다>가 아니라 <움지+기다>인 것이니, 맟춤법 표준어는 틀린 것이 너무 많아서 전면적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 놀라거나 감동되어서 움찔거리는 것을 의미한다
인도의 어원
인도는 힌두교의 나라이다.
과연 <인도>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와 유라시아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살펴보자.
<인도(印度)>는 영어 India의 한역이며, 브라만교의 주신인 Indra에서 유래한 것이며,<환인>의 별칭이기도 한 Indra는 르완다어 hinda (thunder)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천둥 번개의 신이다.
인도의 별칭인 힌두스탄 (hindustan)의 어원을 보자.
르완다어 hindura는 바꾸다 (to change, alter)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hinduze이다.
<힌두(hindu)>는 르완다어 hindura (to chang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윤회와 업을 의미하는 것이다.
<스탄(stan)>의 어원은 르완다어 <si (earth, the world) + taha (to go home) + nyura (to go via)>로서 <땅(si + taha)의 누리>를 의미한다.
결국, 힌두스탄(hindustan)은 윤회와 업장에서의 <해탈의 땅>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인도(印度)>는 제석천인 인드라(Indra)의 나라인 것이며, 그들은 환웅(桓雄)의 웅녀족(熊女族)에게 쫓겨나 내몽골 지역에서 북인도로 이주한 호랑이족인 환인(桓因)의 나라인 것이다.
그러므로 고대 인도의 역사와 종교 및 철학이 세계 최고의 수준인 것이다.
이틀의 어원
이튿날 그녀는 떠났다...
과연 <이틀>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itura는 상환하다, 갚다 (to repay, put down by oneself)의 뜻이다.
한국어 <이틀>은 르완다어 itura (to repay)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빌린 것을 상환하는 것 즉, <반대 급부나 왕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틀>은 하루와 똑같은 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튿날>은 하루와 짝이 되는 다음날을 의미하는 것이다.
엿새의 어원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과연 <엿새>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yereka는 열병하다 (to parade)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yeretse이며, saba는 퍼지다, 관통하다(to spread, penetrate)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sabye이다.
한국어 <여섯>은 르완다어 yeretse + sesa (to spread)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사냥한 짐승을 여러 조각으로 <해체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사냥의 제 6단계로서 숫자 6를 뜻한다.
한국어 <엿새>는 르완다어 <yeretse + sab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여럿이 퍼지는 것, 즉 <많은 사람이 담너머 마당을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엿새>는 하루는 마당 안에서 종일을 지내고 이틀은 반대로 반복한 것이며, 사흘은 마당을 벗어난 것이고, 나흘은 다시 붙잡혀 마당에 들어온 것이며, 닷새는 다시 마당을 벗어난 것이다.
그런데, <엿새>는 선발대가 아니라 본 대열이 마당 밖으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것은 <6일째 벌어진 것>, 즉 제6 마당을 뜻하는 것이다.
이레의 어원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과연 <이레>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ira 는 자격을 주다 (to deserve)의 뜻이고, gobotora 는 잡아채다 (to snatch, save)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gobotoye이다.
한국어 <일곱>은 르완다어 <ira + goboto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사냥한 짐승의 정육을 <잡아챌 자격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사냥의 제 7단계로서 숫자 7을 뜻한다.
르완다어 rara는 밤을 지내다 (to spend the night)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raye이다.
한국어 <이레>는 르완다어 <ira + ra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밤을 지낼 자격 부여하는 것, 즉 <경계 서지 않고 밤잠을 잘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엿새>는 선발대가 아니라 본 대열이 마당 밖으로 벗어나는 것이며, <이레>는 그들이 야영지 캠프에서 잠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것은 <7일째 벌어진 것>, 즉 제7 마당을 뜻하는 것이다.
여드레의 어원
하루 이틀...이레 여드레...
과연 <여드레>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yereka는 열병하다 (to parade)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yeretse이며, tora는 고르다 (to choose, pick)의 뜻이며, 르완다어 va는 오다 (to come)의 뜻이다.
한국어 <여덟>은 르완다어 <yeretse + tora + va>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여럿에서 골라 갖다는 뜻이며, <사냥한 짐승의 정육을 골라서 갖는다>는 의미로서 사냥의 제8단계인 배분을 의미하며 숫자 8을 의미하는 것이다.
르완다어 rara는 밤을 지내다 (to spend the night)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raye이다.
한국어 <여드레>는 르완다어 <yeretse + tora + ra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여럿에서 골라 밤을 지낸다는 뜻이니, <짝짓는 밤>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여드레>는 원나잇 스탠드로서 원시인의 가장 큰 행복의 날밤인 것이며, 10일간의 10단계 행사 중에서 클라이막스인 것이다.
아흐레의 어원
하루 이틀...이레 여드레 아흐레...
과연 <아흐레>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ngaho는 안녕 (farewell, goodbye)의 뜻이니, 작별의 인사인 것이며, va는 오다 (to come from)의 뜻이다.
한국어 <아홉>은 르완다어 <ngaho + va>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작별을 고하다>는 뜻인 것이니, 사냥이 끝나고 서로 작별인사를 하는 것으로서 사냥의 9단계이며 숫자 9를 의미한다.
르완다어 rara는 밤을 지내다 (to spend the night)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raye이다.
한국어 <아흐레>는 르완다어 <ngaho + ra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작별의 밤을 지낸다는 뜻이니, <마지막 숙박>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아흐레>는 다음 날 마을 집으로 떠나기 위한 마지막 야양지의 숙박을 의미하며, 10일간의 행사중 마지막 밤인 것으로서 제9 마당인 것이다.
열흘의 어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열흘씩이나...
과연 <열흘>의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nyura 는 만족시키다, 지나가다 (to satisfy, go through)의 뜻이다.
한국어 <열>은 르완다어 nyura (to satisfy, go through)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만족하여 지내는 것 즉, <고깃덩어리를 먹고 자시며 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사냥의 마지막 단계이며 숫자 10을 뜻한다.
르완다어 ahura는 목장에 가다 (to herd to pasture)의 뜻이다.
한국어 <열흘>은 르완다어 <nyura + ahura>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10일간의 외유(ahura; to herd)를 마치고 돌아가는 (nyura; to go through)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열흘>은 10일간의 일정을 그치고 목적을 달성하여 집으로 만족하여 돌아가는 마지막 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르르의 어원
우르르 몰려가다...
과연 <우르르>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ururuka는 내려가다 (to descend, climb down)의 뜻이다.
한국어 <우르르>는 르완다어 ururuka (to descend)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높은 곳에서 요란하게 <몰려 내려오는 것>을 의미한다.
<우르르 몰려가는 것>은 내려갈 때는 중력 가속도가 붙으므로 요란하게 몰려서 가는 것이다.
참고로 <오르다>는 르완다어 urira (to ascend, climb up)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높은 곳으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안절부절의 어원
안절부절하며 어쩌지 못하다...
과연 <안절부절>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anda는 퍼지다 (to enlarge, expand, spread)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anze이며,zerera는 헤매다 (to wander about, walk about aimlessly)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zereye이다.
한국어 <안절>은 르완다어 <anze + zere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앉아서 헤매다>는 의미이다. (anda의 과거형 anze는 한국어 앉다의 어원이다)
르완다어 ubura는 세우다 (to turn something the right way up, right)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ubuye이다.
한국어 <부절>은 르완다어 <ubuye + zere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똑바로 세워져서 헤매다> 즉 <서서 헤매다>의 뜻이다. (르완다어 ubura의 과거형 ubuye는 한국어 위의 어원이다)
결국, <안절부절>은 르완다어 <anze + zereye + ubuye + zere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앉아서 헤매이고, 일어서서 헤매이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안절부절하다>라고 써야 하지만, 표준어는 반대로 <안절부절 못하다>를 권장하고 있으니 장차 이일을 어찌하리잇고...
열쇠의 어원
열쇠를 찾다...
과연 <열쇠>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iyuburura 는 허물 벗다 (to shed skin for snakes, clear for sky)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iyuburuye이다.
한국어 <열다(open)>는 르완다어 iyuburura (to shed skin)의 과거형 iyuburu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뱀이 허물 벗는 것이나 하늘이 맑아지는 것> 즉, <속에 있는 것이 노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르완다어 swera는 성교하다, 교접하다 (to have sexual intercourse)의 뜻이며, 형용사 및 명사형으로 쓰이는 과거형은 sweye이다.
한국어 <쇠>는 르완다어 swera의 과거형 swe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접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쇠>는 <쇠붙이>와 같은 뜻으로서, 도끼는 도끼 날인 <쇠>와 나무자루를 교접시킨 것이고, 칼은 칼날인 <쇠>에 나무 칼자루를 접합시킨 것이다.
따라서, 한국어 <쇠>는 철로 만든 강한 부분과 나무로 만든 자루 부분을 <교접>하여 쓰는 <철(iron, steel)이나 금속으로 만든 기물(utensil)>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먹쇠>나 <밤쇠> <돌쇠> 등은 양반 집에 교접하여 더부살이 하는 <머슴을 의미>하는 것이며, 쇠처럼 강건하다는 의미가 아니고, 쇤네는 소인네가 아니라 더부살이 여자 머슴인 것이다.
<설을 쇠다>는 말도 <설>이 절벽 또는 새해 벽두(selemo)를 뜻하므로, 지난해와 새해를 접합시킨다는 의미인 것이다.
결국, <열쇠>는 르완다어 <iyuburuye + swe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속에 있는 것을 노출시키는 금속 기물>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랴의 어원
이랴 어서 가자...
과연 <이랴>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iriya는 저너머 (that, those over there)의 뜻이다.
한국어 <이랴>는 르완다어 iriya (that, those over ther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저 너머 그곳으로 가자>는 의미인 것이다.
현대에는 차를 타면 <어디로 갑시다>라고 운전기사에게 말하지만, 고대에는 말에게 <저너머 거기에 가자 (iriya)>라고 주문하였던 것이다.
한편, 일본어 <이럇샤이>는 <저리로 안내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르완다어 irya는 저(기) (that, those)의 뜻으로서, 이럇사이의 <이랴>의 어원인 것이다.
결국, <이랴>는 르완다어 iriya (that, those over ther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저 너머 그곳으로 가자>는 행선지를 주문하는 것이다.
거처를 옮기다...
과연 <옮기다>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orama는 붕괴하다, 떨어지다 (to collapse, fall down)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oramye이며, gira는 갖다 (to have)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gize이다.
한국어 <옮기다>는 르완다어 <oramye + giz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붕괴한 것을 가져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옮다>는 르완다어 orama (to fall down)의 과거형 oram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에게 떨어진 것>, 즉 <전이된 것>을 의미한다.
아늑하다의 어원
아늑한 우리 집에...
과연 <아늑>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a는 떨어져 (off, apart)의 뜻이며, nuka는 악취가 나다 (to stink)의 뜻이다.
한국어 <아늑>은 르완다어 <a + nuka>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악취가 나지 않는 쾌적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다>는 르완다어 hata (to force, do efforts)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힘쓰다>는 의미인 것이다.
어림의 어원
어림 없는 소리를 하다...
과연 <어림>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arimu는 선생 (teacher)의 뜻이다.
한국어 <어림>은 르완다어 arimu (teacher)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가르침을 주는 숙달된 사람>을 의미한다.
<어림 없다>는 것은 선생이 없다는 것이니, 모두 학생들만 있는 것으로서,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참고로, <없다>는 르완다어 ubusa (zero, nill, meaninglessness)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무, 무의미를 의미하는 것이다.
어지럽다의 어원
여왕이 등극하니 나라가 어지럽다...
과연 <어지럽다>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다.
르완다어 ezi는 달 (moon)의 뜻이며, reba는 보다 (to watch, look at, see, view)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rebye이다.
한국어 <어지럽다>는 르완다어 <ezi + reb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달 빛에서 보이는 것> 즉, <희미한 달 빛아래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나라가 어지러운 것>은 지도자가 어두운 달밤에만 사물을 보는 것 처럼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의 어원
이미 나를 잊어버렸네...
과연 <이미>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imya는 사출하다 (to project, copulate)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imije이다.
한국어 <이미>의 16세기 고어 <이믜 (노걸대언해)>는 르완다어 imya (to project)의 과거형 imij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사출이 완료된 것> 즉, <기왕지사가 된 것>을 의미한다.
<이미 잊어버린 것>은 사출이 완료되어 퍼지고 잃어진 것을 의미한다.
어쩌다의 어원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나...
과연 <어쩌다>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세소토어를 참조하자.
세소토어 etsolla는 원상태로 돌리다, 해소하다 (to undo)의 뜻이다.
한국어 <어쩌다>는 세소토어 etsolla (to undo)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원상태로 복원하는 것> 즉, <잘못된 것을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쩔 수 없는 것>은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어때의 어원
반미 좀 하면 어때...
과연 <어때>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te는 어떻다 (how)의 뜻이며, u는 너 (you)의 뜻이다.
그런데 르완다어 형용사는 주어에 따라서 접두사가 추가로 붙는데, 2인칭에 대하여는 ute로 쓰인다.
한국어 <어때>는 르완다어 ut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2인칭에게 어떠한가?를 묻는 것>이다.
Umeze ute ? (How are you feeling?) <u = you, meze = feel, ute = how>
한국어 <어떠하다>는 르완다어 <ute + hata (to force)>에서 유래한 것이다.
을씨년스럽다의 어원
날씨가 을씨년스럽다...
과연 <을씨년>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urusyo는 맷돌 (grinding stone)의 뜻이며, nena는 찍어내다 (to generalize, stereotype)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nennye이다.
한국어 <을씨년>은 르완다어 <urusyo + nenn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맷돌로 갈아내는 것> 즉, <덜덜 떨리는 것>을 의미한다.
르완다어 sa는 비슷하다 (to be like, similar)의 뜻이며, reba는 보다 (to watch, view)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rebye이고, ta는 잃다, 소진하다 (to lose)의 뜻이다.
한국어 <스럽다>는 르완다어 <sa + reb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비슷하게 보인다>는 의미인 것이다. (ta는 힘을 쓰다는 의미로서, 동사어미 <다>의 어원이다)
결국, <을씨년스럽다>는 르완다어 <urusyo + nennye + sa + rebye + ta>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맷돌로 찍어내는 것 처럼 드륵드륵 덜덜덜 떨리는 것 같이 보인다>는 의미인 것이니, <음산하고 으스스 떨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1905년 을사년을 기념해서 을사년스럽다는 말이 을씨년스럽다로 변질된 것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은 것이고 갑씨년스럽다는 말도 없는 것이다.
참고로, 르완다어 nena (to generalize, stereotype)의 과거형 nennye는 한자어 년(年)의 어원이며, 한국어 이년 저년의 <년>의 어원이기도 하다.
옆의 어원
옆집 사는 앨리스...
과연 <옆>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hafi ya는 인근 (near, almost)의 뜻이다.
한국어 <옆>은 르완다어 ya hafi (near, almost)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인접한 것>을 의미한다.
르완다어 hafi ya는 전치사로서, 한국어는 전치사가 없으므로 ya hafi로 도치되어 부사가 된 것이다
<옆 집>은 near-by house 이지만, 한국어 옆집의 어순은 by-near house인 것이다.
아치의 어원
벼슬아치들이 양아치 같다...
과연 <아치>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aka는 빼앗아 가다, 수탈하다 (to take away, take from)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atse이다.
한국어 <아치>는 르완다어 aka (to take away, take from)의 과거형 ats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수탈하는 것 또는 사람>을 의미한다.
<벼슬아치>는 르완다어 <byutse + sura +ats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벼슬을 빙자로 수탈해가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다. <벼슬의 어원 참조>
<양아치>는 르완다어 <nya(person of) + anga(to hate) + ats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증오를 일으키며 수탈해가는 사람>을 의미한다.
즉, 벼슬아치들은 권력으로 수탈해가는 자들이고, 양아치는 협박으로 수탈해 가는 자들인 것이다.
암닭의 어원
암닭이 울다...
과연 <암닭>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tagaguza는 쇠잔하다, 불성실하다 (to waste, be careless)의 뜻이며, 과거형은 tagaguje이다.
한국어 <닭>은 르완다어 tagaguza (to waste)의 과거형 tagaguj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쇠잔해진 것> 즉, <잘 날지 못하는 새>를 의미하는 것이다.
르완다어 ambura는 옷을 벗다 (to take clothes off, undress)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ambuye이다.
한국어 <암(female)>은 르완다어 ambura (to undress)의 과거형 ambu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옷을 벗긴 것> 즉 <나체의 알몸>을 의미하는 것이다.
참고로, <수(male)>는 르완다어 suhuza (to greet)의 과거형 suhuj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암컷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암닭>은 르완다어 <ambuye + tagaguj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성기를 노출하는 날지 못하는 새를 의미하는 것이다.
아끼다의 어원
아끼고 절약하다...
과연 <아끼다>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akira는 손에 붙잡다 (to take hold of, accept, acquire, take in hands)의 뜻이며, aka는 빼앗다 (to take away)의 뜻이다.
한국어 <아끼다>는 르완다어 akira (to take hold of)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빼앗기지 않고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로, <아깝다>는 르완다어 <aka (to take away, be burning) + va (to come from)> 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남에게 <빼앗긴 것>을 의미한다.
이부자리의 어원
이부자리를 펴고 자다...
과연 <이부자리>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ivu는 재 (ashes)의 뜻이다.
한국어 <이부자리>의 <이부>는 르완다어 ivu (ashes)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이불이 아니라 <숯불>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소토어 jadile는 심어지다 (plante)의 뜻이다.
한국어 <자리>는 세소토어 jadile (planted)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심어진 곳> 즉, <위치한 장소>를 의미한다.
결국, <이부자리>는 <르완다어 ivu (ashes) + 세소토어 jadile (planted)>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화톳불을 지핀 따뜻하고 아늑한 곳>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만, 현대어에서는 온돌이나 난방이 발달하여 숯불을 피지 않으니, 단지 <이불과 요>를 펼치는 것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이불>은 세소토어 ripitla (to devastat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모든 것을 덮는 것>을 의미한다. (<이불>의 15세기 고어는 <니블 (석보상절)>이다)
또한, <요>는 르완다어 shoka (to go down)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아래로 가는 것> 즉, <밑에 까는 것>을 의미한다. (<요>의 15세기 고어는 <욯 - 숗 (월인천강지곡)>이다)
움트다의 어원
새싹이 움트다...
과연 <움트다>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umba는 방 (room, in the house)의 뜻이다.
한국어 <움>은 르완다어 umba (room)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집의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르완다어 tera는 퍼지다, 형성되다 (to spread, to be shaped, invade, infiltrate)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teye이다.
한국어 <트다>는 르완다어 tera (to spread, to be shaped)의 과거형 te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퍼져서 모양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움트다>는 르완다어 <umba + te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퍼져 나가서 집이나 방의 모양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싹트다는 싹이 움트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참고로, 한국어 동사어미 <~다>는 르완다어 ta (to los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힘의 소진 즉, 동작의 완료를 의미하는 것이다.
얌체의 어원
얌체 짓을 하고 다니다...
과연 <얌체>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ryama는 잠자러 가다 (to lie down, go to bed)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ryamye이며, uka는 분출하다 (to spray, squirt)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utse이다.
한국어 <얌체>는 르완다어 <ryamye + uts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잠자리에 가서 퍼져 버리는 것> 즉, 남들이 일하는 동안 <잠자리에 가서 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얌체 짓은 공동 작업에서 자기 할일은 안하고 뒤로 빠져서 남들이 대신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안달의 어원
놀지 못해서 안달이 나다...
과연 <안달>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andara는 쩔쩔 매며 걷다 (to walk with difficulty)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andaye이다.
한국어 <안달>은 르완다어 andara (to walk with difficulty)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쩔쩔 매며 이리저리 걷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안됐다>는 르완다어 andara (to walk with difficulty)의 과거형 anda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쩔쩔 매며 걷게 된 것>을 의미한다.
아롱지다의 어원
글라스에 아롱진 그 님의 얼굴...
과연 <아롱>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a 는 떨어져 (apart, of, off)의 뜻이며, rongora는 교접하다 (to marry, have sex)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rongoye이다.
한국어 <아롱>은 르완다어 <a + rongo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교접하지 않은 것> 즉, <섞이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르완다어 za는 가다, 되다 (to come to)의 뜻이며, 과거형은 je이다.
한국어 <~지다>는 르완다어 za (to come to)의 과거형 j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상태로 된 것>을 의미한다. <je= 지어('어'는 과거를 의미) - 지다 ('다'는 완료를 의미) >
결국, <아롱지다>는 르완다어 <a + rongoye + je + ta (los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섞이지 않고 그대로 살아있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라스에 아롱진 그 님의 얼굴>은 그라스에 비춰진 얼굴이 그대로 생생하게 흐려지지 않고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로, <다롱>은 르완다어 <daya (prostitute) + rongo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섹스를 갖는 것>을 의미하므로, 아롱이 섞이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에 비하여, <섞여서 혼탁하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롱다롱>은 보일 듯 말 듯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안개의 어원
안개 자욱한 밤거리...
과연 <안개>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angiza는 흐리게 하다, 녹슬다 (to tarnish)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angije이다.
한국어 <안개>는 르완다어 angiza (to tarnish, spoil)의 과거형 angij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흐리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로, <자욱하다>는 르완다어 <za (coming) + uka (to spray, sprinkl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와서 뿌려진 것>을 의미한다.
<~하다>는 르완다어 hata (to force, do efforts)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동작>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안개 자욱한> 것은 흐리게 하는 물질이 와서 퍼진 것을 의미한다.
아마의 어원
아마도 빗물이겠지...
과연 <아마>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세소토어를 참조하자.
세소토어 ama는 감동을 주다 (to affect, touch)의 뜻이다.
한국어 <아마>는 세소토어 ama (to affect, touch)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느낌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
즉, <아마>는 정확히 계산한 것이 아니라, 느낌상으로 추측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온돌의 어원
온돌방에서 살다...
과연 <온돌>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세소토어를 참조하자.
세소토어 onto는 화덕 (oven)의 뜻이며, la는 ~의 (of)의 뜻이다.
한국어 <온돌>은 세소토어 <onto + la>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화덕으로 난방하는 것>을 의미한다.
<온돌>이 한자로 溫突로 표시되지만, <온돌>이라는 말을 후대에 한자로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구들>은 세소토어 kgutla (to return)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온난 기류가 구들 통로를 왕복하며 순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들장>은 온난 기류의 통로인 구들을 덮는 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뢰다의 어원
사또께 아뢰오...
과연 <아뢰다>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세소토어를 참조하자.
세소토어 arola는 나누다 (to share, divide)의 뜻이다.
한국어 <아뢰다>는 세소토어 arola (to shar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정보(tip)를 나누어 전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참고로, <아뢰다>의 15세기 고어는 <알외다 (용비어천가)>이다.
아깝다의 어원
젊은 나이에 아깝게 죽다...
과연 <아깝다>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akabi는 불운, 사고사 (misfortune, misadventure, mishap)의 뜻이다.
한국어 <아깝다>는 르완다어 akabi (misfortun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불운으로 사고가 난 것>을 의미한다.
<아까비>라는 말도 쓰이는데, 르완다어 akabi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불운!>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루다의 어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과연 <이루다>의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iru는 여왕벌 (queen bee)의 뜻이다.
한국어 <이루다>는 르완다어 iru (queen be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여왕벌이 분봉하여 <가정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가정을 만들 수 없는 사랑인 것이다.
그런데, 이루다의 15세기 고어는 <일우다 (용비어천가)>이다.
따라서, 이루다는 <일다 + 우(사역)>로 볼 수 있다.
르완다어 ira는 낮이 밤으로 바뀌다 (to change from day to night)의 뜻이며, w는 동사 수동태를 의미한다.
한국어 <일다>는 르완다어 ira (to change from day to night)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변화하는 것> 즉, <작업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일우다>의 어원은 르완다어 <ira + w>로서, 수동태 w는 동사 어간 끝에 위치하므로 <irwa>가 되는 것이다.
결국, <이루다>는 르완다어 동사 irwa (to be changed) 및 명사 iru (queen bee) 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작업이 성사되어 큰 집단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의 어원
이것은 무엇일까요...
과연 <이>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를 참조하자.
르완다어 iyi는 이것 (this)의 뜻이다.
한국어 <이>는 르완다어 iyi (this)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근접한 것 (this)을 지칭하는 것이다.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는 명사가 10종류이며, 각 종류마다 지시사가 다르지만, 가장 많이 사용되고, 주요한 물체에 사용되는 것이 iyi인 것이다.
결국, <이>는 르완다어 iyi (this)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전형적이고 구체적인 사물에 대한 지시사로서 이것(this)을 가리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