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며칠동안은 아직 4월인데도 벌써 한 낮 기온이 30℃ 가까이 올라가면서 초여름 같은 날씨를 경험했습니다. 벌써 여름이 되었나 싶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여름철이 되려면 장마를 거쳐야 진짜 여름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여름이다 말하려면 일단 장마철이 지나야 여름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마치 여름이 시작되었다는 안내방송을 하듯 장마라는 것이 지나야 진짜 여름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장마철이 되면 우리나라 한반도지역은 몇날며칠동안 줄기차게 비가내리고 장마전선이 한반도 남쪽과 북쪽을 왔다갔다하며 거의 한 달간 비가 오는 날씨가 대부분인 기간을 접하게 됩니다. 이 때가 되면 우리나라 곳곳에서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물이 차고 넘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논과 밭에도 물이 차고 넘치고 하천도 물이 차고넘쳐 범람하기도 하고 심지어 큰 홍수로 인해 인명 피해와 재산피해를 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물이 많다못해 엄청나게 많은 물이 땅에 흘러넘칩니다. 이 장마철이 오기전 한반도 여러 곳에서는 가뭄으로 인해 고생하며 제발 비가 좀 왔으면 노래하지만 이 장마철이 되면 이제 더 이상 비가 오지 않았으면이라고 탄식을 합니다. 비가 소중하지만 이렇게 많은 비가 오면 정작 쓸 물도 없고 그 큰 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보다 극히 강수량이 적은 이스라엘은 많은 비가 오면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 비로 인해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듯 이스라엘에게 있어 큰 비는 대지를 흠뻑 적시는 생명의 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렇게 물을 소중히 여기는 이스라엘이라 할지라도 큰 비로 인해 피해를 보고 물이 많아졌지만 정작 쓸 물이 없어지는 상황이 되면 이 물로 인해 고통스러워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아모스 8장의 말씀은 바로 이런 큰 비가 가져다 주는 피해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가르쳐주시는 교훈은 바로 이런 큰 비로 인한 홍수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가뭄과 목마름을 가져다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은 많지만 마실 수 없는 물로만 가득해서 오히려 목마름이 심각하게 될 것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이 내용의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눈동자처럼 인도하시고 셀 수 없는 복을 받은 이스라엘이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버리는 삶을 살고 결국 멸망에 놓이게 될 것에 대한 경고를 듣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적 영적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깨닫고 영적 메마름이 아닌 영적 풍성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는 목마름, 첫째는 풍성한 물질속에서도 목마름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아모스 8장 2~3절입니다.
“그가 말씀하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이르되 여름 과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곳곳에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그 시체들을 내어버리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모스 7장과 8장에 선지자 아모스가 본 4가지 환상을 기록하고 있는데 오늘은 그 네 번째 환상 여름 과일 광주리 환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름 과일’이라는 말은 풍성한 과일로써 풍성함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한 광주리’라는 뜻은 가득하여 풍성함을 뜻합니다. ‘차고 넘치는 여름 과일’이라는 뜻입니다.
요즘은 비닐하우스 제배법으로 과일농사를 짓다보니 사시사철 과일을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름철 나오는 과일, 노지에서 때에 맞게 자연적인 기온에 맞춰 농사를 지어 생산한 과일만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이번에 동남아지역을 가보니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때에 과일들이 꽤 있었지만 맛이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온도는 꽤 높아 한 낮의 온도는 매일 30℃ 이상이었는데 그렇게 맛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물어보니 아무리 온도가 높아도 아무리 비가 제 때 와도 과일이 제대로 나오는 때는 항상 6월, 7월 여름철이 되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아무리 봄, 가을에 비슷한 온도가 되어도 한 여름철 과일이 최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런 과일을 풍성하게 거두게 되었다는 말씀으로 시작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풍성한 열매를 가득 얻고 물질의 풍성함을 얻게 되었지만 오히려 이것이 재앙이되었다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잘 먹고 잘 살 때 이게 복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저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엊그제 목사님 여러분과 화성직업교도소 예배를 위해 남양에서 모여 식사한 후에 교도소 방문 입장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 전까지 화성직업훈련교도소 앞에 있는 카페에서 잠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목회자의 생계이야기를 나누다가 언론에서 나온 우리나라 최고 연봉 직장인에 대한 이야기가 어느 분 입에서 나왔습니다. 그 분은 “우리나라에서 CJ그룹 회장직에 있는 분의 연봉이 200억원이 넘는다는데 연봉 200억원이 넘게 받으면 어떨까?”라는 말을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큰 연봉을 받는 대기업 회장들은 형제끼리는 재산싸움이 일어나고 부부는 갈등이 많아도 직책 때문에 그렇지 않은 척 쇼윈도부부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자녀들은 마약중독에 온갖 타락한 생활모습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렇게 돈은 많이 벌지만 오히려 살아가는 모습은 매일매일 골치아프고 어쩌면 살기 싫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겠냐?”라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 어쩌면 “재산이 많다는 것이 저주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고 제가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북 이스라엘이 바로 그렇게 나라살림이 잘되고 외교적인 수완이 좋아 대외관계가 좋고 군사력도 강한 나라가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은 저주받은 나라입니다. “왜 저주를 받았냐?” 갑자기 잘 먹고 잘 살게 되어 저주가 되었습니다. 풍성한 여름 과일 광주리가 저주가 되었습니다. 내가 잘해서 평안하고 잘 살게 되었다고 착각하면 인생에 영적 메마름이 찾아옵니다. 재산만 있으면 내가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품게 되면 영적 가뭄이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누가복음 12장에 한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부자는 한 해의 농사를 통해 엄청난 갑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풍요가 그를 메마르게 만든 것을 보게 됩니다.
누가복음 12장 19~21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로마제국은 콘스탄틴 황제때에 기독교를 공인했고 로마제국의 비호아래 이제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에서 박해받던 종교가 이제는 로마제국의 힘을 입고 전 세계를 호령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이 주변의 여러 나라를 점령하고 통치하게 되면서 여러 민족의 종교를 통치하고 관할하는 승정원장이라는 직책을 만들고 그 자리에 그레고리우스를 임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교황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교황이 된 그레고리우스는 이방종교들의 비유를 맞춰주며 그들의 교리도 인정해주며 기독교의 세계화를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의 좋은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받아들여 기독교의 예배형식과 신앙교육의 방식으로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방 종교의 양식이 기독교 문화라는 이름으로 전통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더 세월이 지나면서 기독교에 그런 전통으로 인해 점점 더 이교적인 사상과 형식이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고 중세기독교가 우상들로 가득차고 잡탕 종교의 모습으로 변질 되었습니다. 반면 엄청난 권력과 재물을 소유하여 전 유럽의 모든 왕조는 카톨릭 교황과 주교들에게 쩔쩔맬 정도로 기독교는 부와 권력이 대단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세상에는 오히려 이단도 많아지고 사이비 사설이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실 때의 기독교는 가난했고 억압과 핍박의 대상이었는데 이제 중세 기독교는 권력욕으로 싸우는 교회, 재물의 욕심으로 사람들을 착취하는 교회, 온갖 세상의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런 중세교회의 타락의 모습을 보며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루터와 칼빈을 중심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이제 좀 더 교회다운 교회가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세상의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은혜속에서 참 구원을 갈망하는 교회가 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크게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던 유럽지역에서 새로운 땅에서 본질적인 교회회복, 신앙회복을 추구하기 위해 미국으로 성도들이 건너갔습니다. 미국에 처음 도착한 정착신앙인들은 처음에는 힘든 상황, 먹고 살기 힘든 형편속에서 본질적인 신앙을 추구하며 초대교회같은 신앙생활을 만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이 미국도 점차 경제가 살아나고 형편이 좋아지면서 잘 먹고 잘 살게 되니 자유주의신학이 들어오고 혼합종교적인 색채의 기독교가 등장하고 교회내에도 다양한 죄악들을 옹호하고 인정하며 타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가 다시 변질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가 이 한반도에 들어 온 지 140년이 지나고 이제 교회가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소외되고 가장 세계에서 동떨어진 단절된 나라였습니다. 국제정세는 도무지 어떤 지 알지 못해 외세의 침략에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했던 무지한 국가, 무지했던 시대에 기독교가 들어왔습니다. 기독교는 이 땅에 들어와 백성들의 의식을 깨웠습니다. 교회설립과 함께 학문과 의료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초기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많은 청년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각종 학문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나라의 근대화를 이끌었습니다. 최신 문물을 배우고 세계적인 안목을 가진 그들이 돌아와 경제를 살리고 나라를 이끌면서 전도도 잘되고 교회도 성장했습니다. 이 나라는 폭발적인 교회부흥을 이룬 나라로 불릴 뿐 아니라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려질만큼 급격히 잘살게된 나라가 되었습니다. 나라가 잘 되기 위해 엄청난 기도모임도 있었고 말씀부흥회, 성경공부, 찬양집회등도 많았습니다. 영적인 갈급함속에는 또한 이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돈 많이 벌어 부자가 되었으면 하는 갈망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노력하였더니 이 나라가 이제 정말 잘 먹고 잘 사는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세계 무역 10위권안에 들고 각종 경제통계에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선포함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교회 성도수는 급격히 줄고 있습니다. 더구나 코로나로 인해 고통당한 최근 3,4년간은 아예 교회가 문을 닫는 경우도 많아지고 성도들의 숫자가 줄고 규모가 있는 교회에서 아이들이 모여 예배드리고 교육받는 주일학교는 아예 모임이 없어지게 된 것이 보편적이라고 합니다. 물질이 많아지고 잘 먹고 잘 살게 되면 그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더 큰 일을 할 것 같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 반대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물질적인 복을 주시면 더 잘 섬기겠습니다”라고 기도하지만 정작 물질적인 복을 받으면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는데 굳이 뭐 하나님을 찾고 예수님을 찾고 예배드리고 찬양하며 살아가냐?”라고 말하는 인간의 악한 모습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그게 저와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물질만능주의, 재물지상주의라는 사고는 선지자들이 경고한 바알숭배, 맘몬숭배와 같은 것입니다. 이 시대의 자본주의가 저와 여러분의 심령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이 가나안땅으로 들어가며 만나게 된 그 땅의 토착신 바알은 ‘풍요의 신’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섬겼던 신입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사고를 가르쳤던 신입니다. 최근에 부동산 개발 사업문제로 정치권이 시끄럽고 전세사기문제로 인천, 동탄 등에서 큰 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돈이면 다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돈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무너뜨리고 자살하게 만들고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돈이 최고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나만 잘 살면 된다’라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돈을 끌어모을 방법만 고민하고 있습니다. 돈이 행복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면 안 될텐데” 모두 생각하지만 해결방법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 환상에서 가르쳐주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잘 살 수 있는 풍성한 물질이 있음에도 기갈이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기갈은 나의 개인적 신앙마저 방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풍성한 물질이 나의 영적 기갈을 가져다주더라는 것입니다. 그 물질의 풍성함은 오히려 영적 기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편안하게 고상하게 믿으려 하는 데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재산의 부유함을 갈망하며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돈이 많으면 행복할텐데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쩌면 나의 부유한 삶을 목적으로 생각하며 하나님을 이용하고 우리 주 예수님을 이용하며 신앙생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 저주받을 신앙생활을 하지 마시고 이제 축복받을 신앙으로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축복받을 신앙은 물질이 신앙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통해 우리의 내면, 우리의 삶, 우리의 모든 생활이 풍요해지는 것입니다. 재산이 우리의 가치관을 지배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는 목마름,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도 목마름이 찾아옵니다.
아모스 8장 4~6절입니다.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세상의 사람들은 이 땅의 권세를 얻고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합니까?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도 동기들보다 좀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모함하고 얼마나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얼마나 사람들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는 지 모릅니다. 조금이라도 더 힘이 있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악착같이 싸워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간혹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인 장관들, 고위 공직자 위치에 임명받기 위해 청문회에 나와 검증받는 모습을 보면 정말 저렇게까지 하며 한 자리하고 싶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가족사를 까발리고 자녀들의 비리, 배우자의 실수까지 다 인정하기도 하고 정말 자신의 치부에 대한 질문에 핑계대거나 모른 척하며 어떻게든 무마시켜보려는 모습은 안타까울 지경입니다. 그들은 물질과 권력을 가졌지만 보통 사람들과의 생각이나 말과 행동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우리 인간적 기준으로 권력자들의 면면을 살펴볼 때 그들에게 우리나라를 맡기기 부끄러운 사람들밖에 없습니다. 거짓과 술수와 탐심이 가득한 모습을 보면 정말 이 나라를 맡긴 것이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의 고위공직자들은 거의 판검사출신, 일명 일류대라고 하는 SKY대 졸업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보면 어찌 그렇게 우습게 보이고 실망스럽게 느껴지는 지 권력이 뭐라고 저렇게까지 하는 지 참 서글픈 현실입니다.
오늘 본문 아모스 4절 말씀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아모스 8장 4절입니다.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오늘 본문에서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가 바로 불법을 행하며 권력을 찬탈하고 온갖 힘으로 압제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땅의 권력자들을 빗대어서 하나님께서 아모스를 통해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의 입을 통해 “너희가 아무리 권력과 능력이 있을지라도 그 능력으로 올바로 살아가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제멋대로 살아온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심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아모스 8장 7절을 보십시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두고 맹세하시되 내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절대로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아모스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내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절대로 잊지 아니하리라.”라는 이 표현은 마치 한 맺힌 어느 사람의 절규처럼 들립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이제 보복을 선포하면서 외치는 말처럼 들린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독일 나치정부시절에 히틀러가 자행한 유태인 학살을 잊지 못합니다. 우리는 아우슈비츠감옥의 참상만 기억하며 잔악한 나치독일을 비판하지만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점령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저질러졌던 유대인학살 일명 홀로코스트에 대해 유대인들은 절대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에 대한 감정은 시대가 지나고 지금 대부분이 사람들은 기억조차 없는 과거의 일이지만 우리 민족에게서 사라지지 않을 감정일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시대의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자행했던 온갖 학대와 인체실험, 강제징용과 위안부납치 징용 등의 일들은 절대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모스 선지자가 이렇게 절규하는 이유는 권력자들이 권력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강압통치하는 행위가 하나님 신앙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만물을 만드셨으며 특히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이 인간에게 있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며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본연의 품위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또한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천부인권으로 인정받고 대접받고 서로 본질적으로 동등한 인격적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부자로 사는 사람이나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나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점에서는 조금도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방금 읽은 아모스 8장 7절에서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라는 말은 “임금으로 신 한 켤레 값을 주며 일을 시킨다”는 말씀입니다. “한 달 뼈 빠지게 일해도 신발 한 켤레 값밖에 안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신발값이 얼마인지를 자세히 모르지만 고생해서 신발 하나 산다면 재산이 늘어날 리는 만무할 것입니다. 이렇게 신발 한 켤레 값으로 가난한 자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인간이 망쳐놓은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모스 8장 9,10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내가 해를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하게 하며 /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게 하며 모든 사람에게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가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애통하듯 하게 하며 결국은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이제 하나님께서는 권력자들에게 심판을 내리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은 정말 무시무시합니다. 8절 후반부부터 기록된 재앙들을 보면 땅이 흔들리고 솟아오른 땅, 꺼지는 땅이 생길 것입니다. 모든 주민에게 슬픔이 찾아옵니다. 홍수가 나게 될 것입니다. 해가 대낮에 사라지고 백주에 캄캄하게 될 것입니다.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다’는 말은 장례복장을 모두 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외아들 독자가 죽어서 슬퍼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곤고한 날 고통이 임하는 날이 찾아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아모스의 예언이 있은 후 약 50년 정도가 지나서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즉 세계사에 보면 ‘아시리아’라고 불리는 제국에 의해 멸망당하게 됩니다. 아모스가 그 전쟁을 예측하고 이런 심판을 선포한 것은 아닐 겁니다. 구약 선지자들은 미래를 예측하는 점쟁이나 주술사가 아닙니다. 그들이 선포하는 예언은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이지 자신의 지식이나 역사에 대한 통찰을 통해 예언했던 것도 아닙니다. 결국 지금 현실적으로 이스라엘이 강대국이고 군사력, 경제력으로 탄탄한 나라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악을 그냥 방관하시며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당시 수 많은 지식인들과 북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은 현실만 보니 잘 먹고 잘 사는 이스라엘에게 무슨 그런 심판이 있을 수 있겠냐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현실적으로 좋아보여도 하나님앞에서 악하면 결국은 심판과 멸망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저와 여러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권세가 있는 자들일지라도 하나님이 간섭하시면 세상의 권력자들의 권세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있게도 하시고 없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권력, 모든 재산, 모든 인간관계, 모든 지식, 모든 건강 모두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께서 관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요를 따라 나눠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런 것들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온전한 대상인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권력, 우리 주님의 권력만이 온전한 권위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가지신 통치권만이 완전한 권력인 것입니다. 나의 주인이신 주님만이 권세만이 영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권세들이 뭐가 있는 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보통사람인데 무슨 권력이 있겠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의 삶가운데 어느 누구는 힘을 가지고 권력으로 사람들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상황속에서 저와 여러분은 “내가 가지고 있는 적은 능력이라도, 내가 나의 삶의 현장에서 주어지는 적은 힘이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잘 사용해야되겠다”라고 생각하며 제대로 가진 힘을 쓰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들과의 관계속의 직책, 하나님께서 맡기신 교회속에서의 직분, 하나님께서 맡기신 나의 소질, 능력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오늘과 다음 주 2주간에 걸쳐 우리의 삶속에 찾아오는 영적 가뭄을 만드는 조건들을 살펴봅니다. 오늘 그 첫째로 두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물질과 권력”, 즉 재산과 권력이 우리를 세워주는 귀한 도구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영적인 메마름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물질이 많고 권력이 커지면 삶이 풍성해질 것 같은데 오히려 삶이 메마르고 삶속에서 갈증을 느끼게 되는 일이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모스는 여로보암 2세 때 예언 활동을 했는데 이 당시 이스라엘은 외형적으로 엄청난 강대국이었습니다. 주변 나라보다 경제력도 월등했고 군사력도 튼튼했고 주변 나라들이 벌벌 떨 정도로 위세가 등등했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보시기에는 이 나라는 완전히 썩었습니다. 윤리 도덕이 타락했고 불법과 비리가 난무했고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며 상도덕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안으로 썩은 것은 보지 못하고 외형적인 발전만 보면서 “아,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이렇게 잘 살고 있다” 라고 외쳤지만 결국 그 풍요속에 영적 가뭄, 영적 메마름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 영적 기갈, 영적 가뭄이 지속될 때 멸망은 이미 찾아와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장마철도 마실 물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추구하는 재물에 대한 욕심, 권력에 대한 욕심이 우리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말 참다운 해갈, 영적인 해갈을 위해 우리 주님안에서 바른 권력, 바른 재산을 찾고 유지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