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 가로수길이다. 11월 가을 분위기를 만끽하기에 좋은 곳이라 생각했다. 가로수길 나무는 '힘내라' 뜨개질로 모양을 낸 옷을 입고 있는데, 정작 몸통만 감싼 나무는 가지를 전부 잘라내어 몹시도 추워 보인다.
나무들이 뜨개질 옷을 입고 있는 이유는 2020년 가로수길 그래피티 니팅(knitting) 전시회 기간이기 때문이었다.
먼저 건축인 신사동 '예화랑(Gallery YEH)'을 살펴보고, 연이어 빛의 예술가 이경의 <천 개의 바람> 전시를 보았다. 동 건물은 운생동 건축사사무소에서 진행했는데, 설계만 1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이들은 건조물로 도시 캔버스를 만들고자 했다. 2006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수상작이다.
건물 외벽을 아래에서 올려다 보고 찍은 사진이다. 내가 드론이라면 맘에 들게 여러 컷 찍겠건만, 인간이라서 아쉽다^^ 파란색 하늘과 회색 건물은 세련된 정장 패션으로 좋은 배합이다.
건조물 외벽을 '캔버스'로 형상화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외벽에 창문을 설계하는데, 갤러리 건물이라는 특성을 살리고자 외벽을 물결 무늬로 덮었다. 건물 표면을 주름 형식으로 굴곡지게 설계하여, 주름과 펼침이 반복되면서 평면이 아닌 공간적인 외벽을 구성하였다.
아래 사진은 옥상같기도 하고, 어느 부분일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건물 아래에서 카메라를 위로 쳐들어 찍은 장면이다. 즉 사진 위쪽이 건물 외벽이다. 캔버스인 외벽과 본 건물 간에 공간을 두고, 건물 자체에 다층 공간을 만들었다. 2019년 '서울미래유산'에 지정되었다.
아래 모습이 신사동 예화랑 건물 정면이다. 건물 아래 왼쪽으로 걸어 올라가는 조각상이 붙어 있어, 어디가 땅이야 하고 또 혼동되게 한다^^
건물에 직각으로 붙어있는 조각상 얼굴에서 힘겨움이 느껴진다. 죽어라 뛰어도 제자리이다. 아니 현실에선 제자리 뛰기라도 하지 않으면 현상유지도 안 된다.
리경의 전시 <천 개의 바람>을 관람을 시작한다. 아래 판넬 위에 하얀 보자기를 둘러쓰고, 베낭을 맨 자가 뛰어가는 조각상도 눈에 띈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며 명확한 것을 알고싶어 하지만, 공부할수록 명확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혹자는 리경 작가의 <천 개의 바람>을 그림자만 보고 사는 인간에 대한 플라톤 '동굴의 우화'를 빗대 설명을 시도했다. 아래사진(예화랑 3층)에서 보듯이 그래도 커텐과 창 밖으로 희미하나마 가을의 무르익은 노란색이 보인다. 그림자와 달리 색깔이 있어 다행이다.
입장하면 아래와 같이 3군데에서의 빛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 땅에 비춘다. 3개의 기둥에서 내리꽂는빛줄기는 3개가 동시에 항상 켜져 있는 즉, 계속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였다가, 두개였다가, 세개였다가 바뀐다.
<more Light> Ligyung
그리고, 한 켠의 장치에서는 연기가 피어나온다. 그러면서 음악도 울려퍼진다. 전시와 잘어울리는 음악이자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선율이라서 꼭 이후 어떤 음악인지 물어보리라 생각하며 전시 관람을 이어갔다. 작가 리경 왈, "보이는 데로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라고 했다.
<more Light> Ligyung
3줄기의 빛과 연기와 음악을 듣고, 2층 계단으로 오른다. 음악은 계속 흐른다. 나중에 작곡가와 타이틀을 물어보니 음악은 중세시대 선율을 차용해 작품을 위해 편곡과 연주작업을 맡겨 작품과 하나되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2층으로 올라가니 1층 아래로 떨어뜨리는 빛의 원천이 보인다. 마치 리경 작가는 예화랑의 건축 구조를 염두해 두고 설치물을 구상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작품과 공간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more Light> Ligyung
3개의 빛 중에서 가운데가 꺼지는 경우도 있다. 어느 한 순간만 보면 그것이 다인 것으로, 그것이 본질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산다. 여기서 반전은 사람마다 동일하게 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more Light> Ligyung
실제 계단은 아래 사진에서 빨간색 3단 뿐이다. 그 위에 벽면 즉, 평면에 조성된 가상의 계단, 그리고 가상의 빛 계단으로 연출한 공간이다. 작가 리경의 '계단시리즈'이다.
방이 있다. 개인 서재인지, 작품인지 잠시 혼동되었는데, 벽에 층계가 그려져 있어서 작품 연계성을 보고 들어갔다.
서재 공간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벽의 계단은 화랑측에 물어보니 작가 리경의 Orange, Pink, Yellow, Green, Cocoa로 총 5가지의 색과 형태를 가진 계단 시리즈 작품 중 <more Light-Cocoa>라고 한다.
<more Light-Cocoa>에서 바라본 서재의 맞은편은 붉은 그림이 걸려 있다. 그것도 작가 리경의 작품이다. <more Light-Orange> 회화작품이다.
서재를 나왔다. 그 방에 비추는 계단 빛의 원천이 아래 사진의 프로젝터이다.
빛의 향연이다. 여기저기 얇은 계단, 두꺼운 계단, 잘려진 계단, 올라가다 평평해졌다가, 다시 올라가기도 한다. 삶의 여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빛으로 만들어진 굴곡 계단과 벽면에 붙어 있는 평면회화 같은 노랑 계단, 이 2가지의 가상의 계단과 진짜 계단이 동시에 존재한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3층에는 자개로 만든 정사각형 오브제가 벽에 걸려 있다. 금번 리경작가의 전시는 빛 설치에 더하여 회화와 조각이 더해졌다고 했다.
"2015년 유리 벽으로 둘러싸인 일본 도쿄 메종 에르메스 전시공간 바닥 150평을 자개로 깔았던 작업을 압축했다."고 한다. 작품설명을 읽어보니 재미있다.
자개 작품 본 전시보다, 자연광에 비춘 텅 빈 사무공간이 내 눈에는 더 작품 같았다. 커텐에 가려져 흐릿한 실루엣의 세상이다. 물어봐도 침묵하는세상이다.
오른쪽 창문에 비추는 자연 햇빛으로 바닥에 만들어진 그림자는 리경 작가가 인조빛으로 만들어진 계단과 어우러졌다.
3층까지 돌아보고 다시 2층으로 내려와서,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길목이다.
1층과 2층 계단이 한 앵글에 잡혔다. 1,2,3층 계단이 co-related되어 있다.
관람을 보고나서 전시명 '천 개의 바람'을 생각해 본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연기로 확인할 수는 있겠다. 그럼에도 그것은 바람 자체는 아니다. 작가는 굳이 바람을 숫자 1,000개로 표현했다. 그 숫자는 100,000개 될 수도 있고 혹은 85,537개가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전시 관람 이후 가로수길을 걷다가 일렬로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 무슨 일일까 했다. BTS POP-UP 2020.10.23(금) ~ 2021.01.24(일)이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보고, 듣고, 즐기는 곳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모두 비슷하면 그것도 문제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