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도 네곳을 들르는 강행군이다. 첫번째 장소인 장원봉유래비는 장흥문화예술회관 바로 옆이다. 14세까지 살았던 이곳은 6세 정승공의 아들 셋이 대과에 급제하고, 특히 장남과 차남은 장원급제하여 동동리 뒷산을 장원봉과 거말봉으로 불리게 했던 위씨들의 성지이다. 야운 연구위원의 설명을 듣고 난 뒤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장원봉유래비에서 500m 정도 걸어서 장흥향교로 향했다. 신발이 온통 젖을 정도로 빗방울이 굵어졌다. 전교인 승복 종친의 안내와 배려는 특별했다. 1시간에 걸친 명륜당에서의 설명도 좋았지만, 대성전 내부도 구경할 수 있었다. 마치 위씨들의 제각에 온 것처럼 편안하게 경내 곳곳을 둘러보며 비를 피해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향교를 벗어나 반대편으로 200여m 쯤 걷자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다음 행선지인 충령소공원의 존재공동상에 도착했을 땐 장대비로 변했다. 하는 수 없이 버스 안에서 동상을 바라보며 야운 연구위원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노벨문학상의 도시 정남진 장흥"이라는 플래카드도 조금 그랬는데, 폭우까지 장흥 대표 인물인 존재공의 위상을 흔드는 것 같아 씁쓸했다.
3시30분 보림사에 도착하였다. 미리 예약한 문화해설사의 안내로 가지산파의 성지인 보림사에 들어섰다. 일주문, 천왕문, 대적광전 앞 동서삼층석탑과 석등, 대웅보전, 조사전, 보조선사탑 등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편안하게 관광도 했지만, 우리 일행의 목적은 조사전에 걸린 원감국사 진영에 있었다. 국사의 고향 사찰에 걸린 진영을 위씨 후손들이 찾아뵌 것이다.
저녁은 장흥청년회서 준비한 토요시장 부근의 갈비탕이었다. 원래 야식을 준비하려다 식사로 바꿨다면서 청년회 집행부에서 찾아와 인사를 건넸다. 아마 대종회에서 그렇게 부탁한 것 같았다. 식당마다 위씨 종친들이 운영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리도 귀한 위씨가 장흥엔 도처에 널려있었다.
식사 후엔 뿌리공부가 세 강좌 준비되어 있었다. 운파 씨족문화연구위원의 자랑스런 선조, 성암 재경종친회 총무의 자랑스런 현대인물, 그리고 야운 씨족문화연구위원의 전통예절이다. 대종회에서 준비한 친교의 시간 때문에 강의를 줄이고 당겨서 분위기를 돋궈주었다. 역시 치맥파티는 젊은이들의 전유물이었다. 서로간의 어색하고 딱딱했던 분위기도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