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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부작(述而不作)
저술한 것이지 창작한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자신의 저술이나 창작을 두고 저자가 겸손의 뜻으로 하는 말이다.
述 : 지을 술(辶/5)
而 : 말 이을 이(而/0)
不 : 아닐 부(一/3)
作 : 지을 작(亻/5)
이 성어는 기술하기만 하고 창작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과거의 문헌을 토대로 말하는 것이지 하늘에서 떨어지듯 새로 창안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진정한 창작은 옛것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연속성에서 탄생하게 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원문의 述而不作 信而好古(술이부작 신이호고)는 기술하고 짓지 않으며, 신념으로 옛 것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술(述)은 저술(著述)이란 뜻이고, 작(作)은 창작(創作)이란 뜻이다.
저술은 예부터 내려오는 사상과 문화를 바탕으로 이것을 다시 정리하거나 서술하는 것을 말하고, 창작은 지금까지 일찍이 없었던 새로운 사상과 학설을 처음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씨족제 봉건사회의 한 사람이었던 공자는 “태초에 길이 있고, 길은 하늘과 더불어 있었다”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공자는 만약 태초에 있었던 길을 그대로 현사회실에 부활할 수가 있다면 이 세상은 바로 황금시대가 된다고 확신하여, 이 길의 모습을 알고저 하는데 전심하였던 것이다.
태초의 일이었기 때문에 길은 당연히 옛날에 찾지 않으면 아니된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낳으면서부터 이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옛 것을 좋아하여 열심히 구하였던 것이다.”라는 말이 그 간의 소식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以求之者也/論語 述而篇.
또한 공자가 말하기를 “옛 것을 배우고 거기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溫故知新) 사람 같으면, 선생으로 섬겨도 좋다(子曰, 溫故知新, 可以爲師矣/論語 爲政篇)”라고 있어, 공자가 여하히 태초에 있던 길을 충심으로 추구 하였던가가 상상된다.
공자는 이 성과를 제자들에게 강술하였을 뿐 아니라. 시경(詩經)이나 서경(書經)을 오늘의 형태로 정리하고 춘추(春秋)를 편찬하였으며, 예(禮)나 악(樂)을 제정하여 후세에 전했다고 되어 있지만 태초에 있었을 길을 있는 그대로 현실사회에 실현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거기에는 공자 자신의 개인적인 자의(恣意)는 가해지지 않았다.
공자는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오직 자기 자신이 “일찌기 실재하였다”라고 믿었던 그대로를 조술(祖述)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의 성품은 겸손하여 자신의 저술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공자가 말하기를 “자기는 있었던 것을 논술하고 있는 것이지 새로이 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옛 것을 믿고 옛 것을 좋아하지 때문이다. 마음 속 깊이 은(殷)나라의 현인 노팽(老彭)을 본 받고저 함이다(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此於我老彭/論語, 述而篇)”라는 말로도 그간의 사정을 추찰(推察)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같이 술이부작(述而不作)이란 자신의 저술이나 창작을 두고 저자가 겸손의 뜻으로 하는 말이다.
공자가 술(述)하고 지어내지 않은 것은 공자의 학문의 필연적인 귀결이었지만 중국사회가 오래도록 정체하였기 때문에 선철(先哲)의 말을 ‘술(述)하고’ 자설(自說)을 ‘지어내지 않는다’라는 것이 학자 일반의 태도가 되어, 이것이 또한 반대로 작용하여 중국 문화를 정체시키는 큰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다툴 수 없는 사실이다.
공자는 이 태도를 관철하여 그대 자신의 학문의 기본을 지어내었지만 후세의 아류들이 술(述)하기만 하고, 아무것도 지어내지 않는 것은 결국 자시가 좋아하는 권위에 배궤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공자와 같이 인간에 있어서의 진실을 사랑하려고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에 나오는 노팽이란 사람은 은(殷)나라의 어진 대신이라고 하는데, 술이부작이란 말 자체도 어디까지나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어서 한 말이었는데, 그것을 다시 노팽이란 사람에게 비교해 본다는 것은 남을 배운다는 똑같은 겸손한 태도에서 나온 말이다.
노팽은 상(商)나라의 현명한 대부로서 고사(故事)를 잘 정리하여 진술했다는 설이 있다. 노팽을 두 사람으로 보아 노(老)를 노자(老子)로 보고, 팽(彭)을 팽조(彭祖)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앞의 주장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스도교의 성경(聖經) 마태복음 제5장에 나오는 예수의 말 가운데 나오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한 것도 공자의 이 말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사실상 공자가 이 같은 말을 한 것은 창작을 부정하려는 뜻에서가 아니다. 옛것을 제대로 음미도 못한 채, 옛것의 테두리를 벗어나지도 못한 것을 마치 자기가 새로 창안해 낸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는 그런 젊은 후배들을 깨우쳐 주기 위해 한 말일 것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공자의 말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옛것을 완전히 내 것을 만듦으로써 새로운 것은 알게 되는 것이 온고지신인 것이다. 거기까지 미치지 않은 사람은 남의 스승이 될 수 없다고 공자는 덧붙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참다운 창작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옛것과 남의 것을 거름으로 해서 자연히 피어난 꽃과 맺어진 열매가 창작인 것이다.
논어(論語)의 술이편(述而篇)은 37장(三十七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공자의 뜻과 행동을 밝히면서 아울러 현자와 군자 그리고 인자(仁者)등이 덕을 어떻게 행하는지 살펴보게 한다.
이 편은 논어에서 꼭 새겨두어야 할 말씀들을 가장 많이 담고 있으며, 공자가 왜 성인인가를 살필 수 있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공자가 위정편(爲政篇) 제10장에서 말했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다시금 헤아려보게 한다. 그리고 공자의 호학(好學)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게 한다. 그 뜻은 곧 인문정신(人文精神)의 확대이며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선대의 문물제도를 본받아(述而) 현재에 알맞도록 하라는 것이 공자의 부작(不作)인 셈이다. 이는 곧 군자의 소명이요 사명이다. 군자는 인문정신의 확대와 그 실천을 몸소 하는 당사자이다.
왜 군자는 그렇게 하는가? 인도(仁道)룰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장(章)은 동양의 학문정신을 간명하게 드러내 준다고 보아도 된다.
술(述)은 속(續), 계(繼), 순(循), 진(陳) 등을 한데 묶은 회의(會意)로 새겨야 한다. 그래서 술이(述而)의 술(述)은 ‘이어서(繼) 좇아(續) 밝힌다(陳)’는 뜻으로 넓게 보아야 한다. 무엇을 이어서 쫓아 밝힌다 하는가?
공자가 왜 호학(好學)울 강조하는지 짐작해보면 도움이 되리라. 왜냐하면 호학의 학(學) 다음에 올 목적어와 술이(述而)의 술(述) 다음에 올 목적어의 내용은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목적어는 선대의 문물제도, 즉 문화유산으로서 전반적인 전통일 것이다.
부작(不作)의 작(作)은 조(造), 성(成), 시(始), 사(事), 흥(興), 위(爲) 등을 한데 묶은 회의(會意)로 새겨야 한다, 그러니 부작(不作)의 작(作)은 ‘짓고(造), 이루고(成), 비록하고(始), 일하고(事), 일어나고(興), 한다(爲)’는 뜻으로 넓게 새겨야 한다.
작(作)은 지을 작(作) 또는 만들 주(作)로 읽고, 주(做)와 같다. 따라서 부작(不作)의 작(作)을 주(做)와 같다고 보아도 된다. 내 멋대로 짓고 만들지 않았다(不作).
공자는 만년에 육경(六經)을 다듬고 고쳐 만들었다. 수찬(修撰), 서경(書經, 尙書)과 예기(禮記)를 서술했고, 시경(詩經)을 선집으로 폈으며, 악경(樂經)을 풀이했으며, 춘추(春秋)를 지었다.
그러니 공자의 호학은 곧 육경을 배우라는 당부로 볼 수 있다. 여기의 술이부작(述而不作)을 공자가 선대의 문물제도를 잘 살펴 본 받아(監) 육경을 이루어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된다. 동시에 생존의 흐름인 시공(時空)은 단절될 수 없다는 인문정신을 새겨보게 한다.
참고로 원문에서의 신이호고(信而好古)는 신고(信古)와 호고(好古)로 보면 된다. 고(古)는 선대의 문물제도 내지 육경의 정신이라고 보아도 좋고, 그냥 아언(雅言)의 세계라고 보아도 된다.
그러한 옛 것(古)을 믿고(信) 좋아했다(好)고 술회하는 공자는 요샛말로 전통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것을 그대로 물려받자고 하는 수구주의자(守舊主義者)는 결코 아니다. 신고(信古)는 호고(好古)이지 집고(執告)는 아니기 때문이다.
▶️ 述(펼 술)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朮(출, 술)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朮(출)은 차조, 짝 달라붙는 일, 발음이 관계가 깊은 循(순), 順(순)과 결부되어 뒤따라 간다는 뜻을 나타낸다. 述(술)은 예로부터의 습관에 따르는 일을 말한다. 그래서 述(술)은 ①펴다, (글을)짓다 ②서술(敍述)하다 ③말하다 ④따르다, 잇다, 계승(繼承)하다 ⑤닦다, 전술(傳述)하다 ⑥밝히다 ⑦기록(記錄) ⑧언설(言舌), 변설(辯舌) ⑨저술(著述) ⑩도(道), 정도(正道) ⑪관(冠)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재주 기(技), 지을 찬(撰)이다. 용례로는 글을 지어 책을 만듦을 술작(述作), 마음에 품은 생각을 말함을 술회(述懷), 구두로 자세히 말함을 진술(陳述), 어떤 내용을 차례로 좇아 말하거나 적음을 서술(敍述), 사물의 특질을 객관적 조직적 학문적으로 적음을 기술(記述), 어떤 사물을 논하여 말하거나 적음을 논술(論述), 논문이나 책 등 글을 써서 책을 만듦을 저술(著述), 말로써 베풀어 아룀을 구술(口述), 학문이나 문예 등에 관한 책이나 글을 씀을 찬술(撰述), 자세하게 진술함을 상술(詳述), 간략하게 논술함을 약술(略述), 시문이나 글을 지음을 제술(製述), 생각하는 바를 글로 나타냄을 필술(筆述), 대강의 진술이나 논술을 개술(槪述), 자세히 자기 의견을 말함을 누술(樓述), 성인의 말을 전하고 자기의 설을 지어내지 않는다는 말을 술이부작(述而不作), 문장의 잘되고 못 됨은 그 문장을 지은 사람의 능력에 딸렸다는 말로 일의 잘되고 못 되는 것은 그 사람의 수단이 좋고 나쁜 데에 달렸다는 말을 술자지능(述者之能), 선인의 뜻을 잘 계승하고 선대의 사업을 잘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이르는 말을 계지술사(繼志述事) 등에 쓰인다.
▶️ 而(말 이을 이, 능히 능)는 ❶상형문자로 턱 수염의 모양으로, 구레나룻 즉,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을 말한다. 음(音)을 빌어 어조사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而자는 ‘말을 잇다’나 ‘자네’, ‘~로서’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而자의 갑골문을 보면 턱 아래에 길게 드리워진 수염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而자는 본래 ‘턱수염’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지금의 而자는 ‘자네’나 ‘그대’처럼 인칭대명사로 쓰이거나 ‘~로써’나 ‘~하면서’와 같은 접속사로 가차(假借)되어 있다. 하지만 而자가 부수 역할을 할 때는 여전히 ‘턱수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而(이, 능)는 ①말을 잇다 ②같다 ③너, 자네, 그대 ④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 ⑤만약(萬若), 만일 ⑥뿐, 따름 ⑦그리고 ⑧~로서, ~에 ⑨~하면서 ⑩그러나, 그런데도, 그리고 ⓐ능(能)히(능) ⓑ재능(才能), 능력(能力)(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30세를 일컬는 이립(而立), 이제 와서를 이금(而今), 지금부터를 이후(而後), 그러나 또는 그러고 나서를 연이(然而), 이로부터 앞으로 차후라는 이금이후(而今以後), 온화한 낯빛을 이강지색(而康之色)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作(지을 작, 저주 저, 만들 주)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㑅(작)의 본자(本字), 做(주)는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乍(사, 작)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作자는 ‘짓다’나 ‘만들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作자는 人(사람 인)자와 乍(잠깐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乍자는 옷깃에 바느질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짓다’나 ‘만들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옷깃에 바느질하는 것은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작업하기가 쉬웠었는지 乍자는 후에 ‘잠깐’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다. 그래서 소전에서는 여기에 人자를 더한 作자가 ‘만들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作(작)은 (1)작품(作品) 제작(製作), 저작(著作)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작황(作況)이나 또는 농사(農事)의 뜻으로 나타내는 말 (3)작전(作戰) 등의 뜻으로 ①짓다, 만들다 ②창작(創作)하다 ③일하다, 노동(勞動)하다 ④행하다, 행동하다 ⑤부리다, ~하게 하다 ⑥일어나다 ⑦일으키다 ⑧이르다(어떤 정도나 범위에 미치다), 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⑨비롯하다 ⑩삼다, 임명하다 ⑪닮다 ⑫농사(農事) ⑬일, 사업(事業), 공사(工事) ⑭저작(著作), 작품(作品) 그리고 저주 저의 경우는 ⓐ저주(詛呪)(저) ⓑ저주하다(저) 그리고 만들 주의 경우는 ㉠만들다(=做)(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지을 찬(撰), 지을 조(造), 지을 제(製)이다. 용례로는 기계의 운동 부분의 움직임을 작동(作動), 사물 또는 사람의 이름을 지음을 작명(作名), 서로 헤어짐을 작별(作別), 만든 물품을 작품(作品), 문학이나 예술의 창작 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작가(作家), 일을 결정함을 작정(作定), 마음을 단단히 먹음을 작심(作心), 싸움을 진행하는 방법을 세움을 작전(作戰), 악곡을 창작함을 작곡(作曲), 글을 지음 또는 그 글을 작문(作文), 일터에서 연장이나 기계를 가지고 일을 함을 작업(作業), 농작의 잘 되고 잘못된 상황을 작황(作況), 움직이게 되는 힘을 작용(作用), 무리를 이룸을 작당(作黨), 처음으로 함을 시작(始作), 재료를 가지고 물건을 만듦을 제작(製作), 물건을 지어서 만듦이나 일부러 무엇과 비슷하게 만듦을 조작(造作), 기계 등을 움직이어 작업함을 조작(操作), 떨쳐서 일으킴 또는 일어남을 진작(振作),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몸을 움직이는 일 또는 그 움직임을 동작(動作), 토지를 갈아서 농작물을 심음을 경작(耕作), 썩 잘된 글이나 작품을 걸작(傑作), 처음으로 만듦을 창작(創作), 사람은 마음을 먹기에 따라 광인도 될 수 있고 성인도 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작광작성(作狂作聖), 의견이 서로 달라서 일을 결정하지 못함을 일컫는 말을 작사도방(作舍道傍), 의리로써 형제 관계를 맺음 또는 그 형제를 일컫는 말을 작의형제(作義兄弟), 마음 먹은 지 삼일이 못간다는 뜻으로 결심이 얼마 되지 않아 흐지부지 된다는 말을 작심삼일(作心三日), 끊임없이 힘써 함을 이르는 말을 작지불이(作之不已),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끈기 있게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음을 비유하는 말을 마부작침(磨斧作針), 자기가 저지른 일의 과보를 자기가 받음을 일컫는 말을 자작자수(自作自受), 낡은 것을 바꾸어 새 것으로 만듦을 일컫는 말을 환부작신(換腐作新),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게 뒤에서 일을 꾸밈을 일컫는 말을 이면공작(裏面工作), 옛일에 구애됨이 없이 모범이 될 만한 일을 자기부터 처음으로 만들어 냄을 이르는 말을 자아작고(自我作古), 남의 의견이나 주장을 제쳐놓고 제 마음대로 처리하거나 방자하게 행동함을 이르는 말을 회빈작주(回賓作主)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