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고향 飛川 마을
동해시에서 백봉령을 향하다가 동해시 수원지 달방댐을 지나고 신흥마을 지나기 전, 우축으로 향하면, 비천마을이다.
부근에 쌍용 시멘트가 있어 석회암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비천 마을은 물이 마르지 않는다.
비천 마을의 물이 마르면 동해시는 가믐에 허덕인다.
할아버지가 비천 마을에 살다가, 일제 강점기 일본놈들을 피해 도망을 간 곳이 옥계면 낙풍리다.
낙풍리 역시 석회암 지역이라 불이 풍부했다.
동네 빨래터에는 항상 물이 넘처 흘렀다.
할아버지의 마을 신흥 비천 마을에는 아직도 울진 장씨들이 살고 있다.
어릴 때 집안 전사가 있으면 비천 마을에 아버지와 가곤 했었다.
할아버지가 비천 마을을 떠난 이유를 아버지에게 들은 적이 있다.
성질이 벼락 같았던 할아버지가 일본 순사와 싸우다가 죽여 버리고 만주로 도망 가다가 옥계면 금진항에서 할머니를 만나서 포기 하고 낙풍리에 눌러 앉았다고 한다.
낙풍리는 물이 풍부해서 벼농사에 제격이었다.
할아버지는 장대한 체격에 힘이 좋아서 열심히 농사를 지어 낙풍리 앞 벌판의 농토를 전부 사들였다.
그래서, 삼형제 막내인 아버지는 대학을 보냈고, 아버지의 두 형들은 전부 농고에 보냈고, 고모 둘은 강릉의 여중을 마칠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되고 나서, 굶주렸던 시골에서 다섯 자식을 전부 공부를 시킨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그것도 홀홀단신 고향을 떠나서.
낙풍리 앞 벌판의 벼를 수확해서 직접 방앗간까지 지어서 마을에서 생산되는 쌀을 전부 탈곡을 하고 건조하고 마무리 지었다.
아주 어릴 때 기억은, 할아버지는 아침에 머릿맡에 막걸리 한 사발을 드시고 일을 시작하셨다.
내가 그래서 할아버지를 닮아 막걸리를 좋아하나 보다.
아버지 이야기도 내가 할아버지를 꼭 닮았다고 한다.
내가 할아버지를 닮지 않은 것은 부지런함이다. 나는 무척 게으르다.
가능한 몸으로 하는 일은 피한다.
어떻게 하면 쉽게 편하게 하려고 애를 쓴다.
할아버지의 육체적 부지런함 대신에 나는 정신적 부지런함이 몸에 베었다.
그것도 유전이라면 유전일수도 있겠다.
나는, 할아버지의 고향 飛川에서 川을 버리고 대신에 天을 넣어 飛天 이라고 내 원룸 이름을 지었다.
飛天 은 내가 사는 원룸 즉 나의 절 이름이다.
川 과 天 의 차이는 할아버지의 육체적 부지런함이 川 이고 나의 정신적 부지런함이 天이다.
하여간 나는 할아버지의 손자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