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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차 문화답사 (4-2); 湖林博物館 新沙分館(3-2)
제2전시실(박물관 3층)
(42) 백자 호[白磁 壺] -朝鮮 15세기
(43) 백자 호[白磁 壺] -조선 15~16세기
(44) 백자청화 국화조충문「수복강령」명호[白瓷靑華 菊花鳥蟲文「壽福康寧」銘壺]
-조선 18세기 (*蟲: 벌레 충)
(45) 백자청화 운봉문호[白瓷靑華 雲鳳文壺] -조선 18세기
(46) 백자청화 죽문호[白瓷靑華 竹文壺] -조선 18세기
(47) 백자 철화 운룡문 호[白磁 鐵畵 雲龍文 壺] -조선 17세기
(48) 백자 호[白磁 壺] -조선 18세기(왼쪽) - 백자 호[白磁 壺] -조선 19세기
(49) 백자 호[白磁 壺] -조선 18세기
(50) 나전매죽문 안경집과 안경[螺鈿 梅竹文 眼鏡匣, 眼鏡](앞 왼쪽) - 나전매죽문 연갑[螺鈿
梅竹文 硯匣](앞 오른쪽) – 나전편복 매죽수문함[螺鈿蝙蝠 梅竹壽文函](뒤) -조선 19세기
=나전매죽문 안경집과 안경[螺鈿 梅竹文 眼鏡匣, 眼鏡] -조선 19세기
(*螺: 소라 나 *鈿: 비녀 전 *匣: 갑 갑)
=나전매죽문 연갑[螺鈿 梅竹文 硯匣] -조선 19세기
=나전편복 매죽수문함[螺鈿蝙蝠 梅竹壽文函] -조선 19세기
(*蝙: 박쥐 편 *蝠: 박쥐 복 *函: 함 함)
나전으로 문양을 간결하게 표현한 함으로 앞면에는 ‘壽’字를 변형시긴 문양을,
좌측면에는 대나무를, 우측면에는 매화나무에 앉아 있는 한 쌍의 새를, 天板에는
커다란 박쥐 한 마리를 배치했는데 각 문양의 세부는 毛彫法을 이용하였으며 黑漆과
반짝이는 나전의 대비 효과를 잘 살린 작품이다. (*彫: 새길 조)
(51) 어피 운룡문합[魚皮 雲龍文盒] -近代 20세기
둥근 형태의 뚜껑이 있는 합으로 나무를 깎아 몸통을 만들어 그 위에 검붉은 칠을 한 후,
魚皮를 이용해 장식했으며 뚜껑 가운데에 둥글게 꼰 구리선을 돌리고 그 안에 三太極무늬의
如意珠를 어피로 장식했다. (*盒: 합 합)
如意珠를 탐하는 龍 두 마리를 그릇 전체에 걸쳐 장식했는데 두 마리의 용은 꼰 구리선으로
몸통의 윤곽을 돌린 후 비늘과 갈퀴 등 몸통과 머리는 어피를 이용해 표현했으며 구름은
구리선을 붙여 표현한 것으로, 이 합처럼 어피를 나전처럼 이용해 화려하게 장식한 합은
매우 귀한 것이다.
(52) 나전 매죽조문 상자[螺鈿 梅竹鳥文 箱子] -조선 18세기
평면이 정사각형인 함으로 뚜껑을 위로 들어 열 수 있도록 했으며, 주로 소나무를 사용했는데
몸체는 맞짜임으로 結構하고 모서리마다 花形거멀잡이를 부착했으며 내부에는 내부상자가
있다.
뚜껑의 네 모서리는 완만한 斜線으로 처리했으며 뚜껑 측면에는 대나무, 매화, 국화, 草花를,
天板에는 매화와 대나무를 배경으로 노니는 한 쌍의 새가 섬세하게 묘사된 것으로 이러한
文樣構成은 이 시기에 유행한 螺鈿漆器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나전을 망치로 깨트려
빛의 亂反射 효과를 유도하는 打擦法이 적절하게 구사되어 더욱 화려하게 보이는데 전해지는
사례가 매우 적은 작품으로 섬세하고 우아한 느낌을 자아낸다. (*擦: 문지를 찰)
*打擦法: 자개를 漆面에 붙인 뒤, 人爲的으로 龜裂시키는 技法
(53) 화각 영수문 함[華角 靈獸文 函] -조선 19세기 말~20세기 초
귀중품을 보관하던 것으로 보이는 華角函으로 앞면에는 둥근 자물쇠 앞 바탕과 비교적
긴 뻗침대를 달고, 뒷면 두 곳에는 원형 경첩을 달았는데 앞면은 백색 뼈를 가늘게 잘라
세 부분으로 구획하고 구획된 각 면에는 백색, 황색, 녹색, 적색, 분홍색을 칠한 소뿔을
이용하여 탐스러운 牡丹과 祥瑞로운 거북과 鳳凰을 나타냈다.
옆면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花鳥와 사슴, 호랑이 등을 배치하고 몸체의 아랫부분에는 玳瑁를
붙이고 天板도 여섯 면으로 분할하여 각 면에 鳳凰, 鶴, 天桃, 龍, 거북이, 사슴 등의 동물을
그린 것으로 모서리에도 대모를 붙였으며 뚜껑의 측면에는 학, 박쥐, 모란을 볼 수 있는데
화려한 色感과 筆致가 같은 시기에 그린 民畵를 聯想케 하는 작품이다.
(*玳: 대모 대 *瑁: 대모 모)
*玳瑁(대모):
① 바다거북과의 하나. 몸길이는 60cm 정도이며, 등딱지는 노란색에 구름 모양의
어두운 갈색 무늬가 있다
② 대모의 등과 배를 싸고 있는 껍데기
(54) 대모상자[玳瑁箱子] -조선 19세기
대모는 바다거북의 등껍질이며 이를 얇게 갈아 사용한 작품으로 대모용 거북은 亞熱帶
바다에서 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잘 잡히지 않아 재료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朝鮮時代에는 그 쓰임새가 많지 않았으며, 이 함은 뚜껑과 몸체에 비교적 두꺼운 대모를
입혀 장식했다. 주로 삼각형으로 만들어 잇댔는데 대모 사이는 구리선을 사용해 區劃하고
몸체는 연귀짜임으로 結構했으며 내부는 朱漆로 마감하여 面 分割이 간결하고 대모의 색과
文樣이 어우러져 抽象的이면서도 現代的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연귀짜임: 기둥과 기둥, 板材와 판재의 이음 부분에서 서로 45도 각도로 맞붙이는 짜임.
(55) 노근란도[露根蘭圖] -芸楣 閔泳翊 작 -20세기 초반
芸楣 閔泳翊(1860~1914)은 高宗 때 閔氏 勢道 출신의 政治家이자 蘭과
대나무 그림으로 一世를 풍미했던 文人畵家로 특히 그의 蘭 그림은 雅號를
따 ‘芸楣蘭’이라고 칭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그의 蘭 그림은
이후의 近代畵家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閔泳翊은 특히 땅 내릴 곳이
없어 뿌리가 드러난 蘭, 즉 露根蘭으로 유명하며 이는 몽골족이 中國大陸을
統一하고 세운 元나라 統治期間에 이들에 대한 抗拒意識을 露根蘭으로 표현한
漢族出身 宋나라의 遺民畫家 所南 鄭思肖(1241~1328)의 墨蘭圖에 起源을
둔 것이다. (*芸: 평지 운 *楣: 문미 미 *翊: 도울 익)
芸楣 閔泳翊의 [露根蘭圖] 역시 당시 나라를 잃은 悲痛한 심정이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 작품은 화면을 크게 上·下段으로 구분하여 上段에는 짙은 먹으로
그린 露根蘭 두 포기를, 下段에는 옅은 먹으로 그린 怪石을 중심에 두고 그 옆에서
기어코 땅 위로 비집고 올라온 生命力 넘치는 蘭을 배치했다.
(56)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 -吾園 張承業 작 -19세기 후반
吾園 張承業(1843~1897)은 山水, 人物, 花鳥, 翎毛(새나 짐승을 그린 그림) 등
모든 分野의 繪畵에 能했던 인물로, 丹靑監督에서 시작하여 圖畵署 畵員의
實官 자리까지 올랐던 畵員畵家로 1870년대부터 본격적인 畵家活動을 시
작한 것으로 傳하는데 畫譜를 통해 繪畵製作의 基盤을 다진 후, 당시 조선에서
유행한 淸 代 四王系列의 畵風을 수용하고 이를 통해 後代에 ‘吾園畵風’으로
불리는 自家畵法을 완성했다. (*皿: 그릇 명 *枝: 가지 지 *翎: 기 영)
항아리나 古代靑銅器를 花草, 채소, 게, 생선 같은 것과 조합하여 그린 그림을
[器皿折枝圖]라고 하며, 이런 그림은 張承業 이후 하나의 畵目으로 성립되어
크게 유행했으며, 이 작품은 吾園의 器皿折枝圖 중 하나로 계산적인
西洋靜物畵와는 다르게 一筆로 소반 등의 다리를 그려 언뜻 不安定하게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生動感 넘치는 畵面으로 구축해낸 것이 주목된다.
*四王: 淸 初期의 王氏 姓을 가진 네 명의 畵家. 王時敏, 王鑑, 王翚, 王原祁.
(*鑑: 거울 감 *翚: 훨훨 날 휘 *祁: 성할 기)
(57) 추경산수도[秋景山水圖] -心田 安中植 작 -1910년경
心田 安中植(1861~1919)은 조선의 마지막 畵員이자 近代畵壇의 스승으로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며, 心田의 山水畵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淸 代 婁東畵派와 같은 四王系列 畵風을 根幹으로
형성되었는데 四王畵風 山水畵의 基本構圖는 近景에 畵面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의 큰 나무들을 배치하고, 中景에서 시작하는 산은 重疊되면서 遠景까지
올라가 塊量感이 돋보이는 산맥을 형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같은 특징은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吾園 張承業의 繪畵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吾園의 弟子이며 중국에 여러 차례 다녀온 心田 安中植 역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四王畵風의 構圖를 충실하게 驅使하여
壯大한 화면을 구성하면서 산의 輪廓線은 날카롭고 각진 형태로 그렸는데
安中植은 1910년 前後에 이런 構圖를 이용하되 자신만의 장식적인 山水畵를
그리기 시작했다. (*婁: 끌 누 *疊: 겹쳐질 첩 *塊: 덩어리 괴)
(58) 산수도[山水圖] -小琳 趙錫晉 작 -20세기 초반
小琳 趙錫晉(1853~1920)은 19세기에 畵家로 이름 높았던 祖父
琳田 趙廷奎에게서 繪畵를 배웠으며 30代에 圖畵署 畵員으로 활약하고,
그 후 1910年代에는 書畵美術會 講習所의 敎授로서 後學들을 지도했다.
그는 山水, 動物, 花草를 비롯한 다양한 화목에 능하였으나 山水畵는
대부분 晩年作으로 畵風의 변화과정을 살펴보는데 어려움이 있다.
이 山水圖는 宮中의 畵員畵家로서 체득한 장식적인 畵員畵風에 기초하여
그린 것으로 짐작되며 淸雅한 옅은 먹의 먹빛이 담채와 함께 잘 어우러지며
차분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琳: 옥 림)
(59) 무이구곡도 십폭병풍[武夷九曲圖 十幅屛風](前半 五幅) -石芝 蔡龍臣 작 -1904년
石芝 蔡龍臣(1850~1941)이 朝鮮時代 全般에 걸쳐 愛好 받은 [武夷九曲圖]를 병풍 형식으로
그린 것으로 武夷九曲圖는 중국 南宋 代 性理學을 集大成한 朱子가 1183년 武夷山의 5번째
계곡에 武夷精舍를 짓고 隱居하며 이듬해에 지은 ‘武夷櫂歌’를 그림으로 묘사한 山水畵이다.
(*夷: 오랑캐 이 *芝: 지초 지 *隱: 숨을 은 *櫂: 노 도)
전체 10폭으로 1폭에서 9폭까지는 武夷九曲圖가 전개되고 마지막 10폭은 이를 종합한
總圖形式으로 그린 것으로 각 景物마다 ‘武夷櫂歌’에서 언급된 地名을 써 넣었으며
石芝 蔡龍臣의 산수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옅은 파란색으로 水面을 칠하고, 산과 바위는
잘게 쪼개져 塊體感이 강하게 드러나게 했는데 마지막 10폭 상단에는 ‘光武 八年’이라고
적혀있어 製作 年度(1904년)를 알 수 있다.
(60) 무이구곡도 십폭병풍[武夷九曲圖 十幅屛風](後半 五幅) -石芝 蔡龍臣 작 -1904년
(61) 군봉추색[群峰秋色] -靑田 李象範 작 -1939년
靑田 李象範(1897~1972)은 中國과 日本畵風에서 벗어나 韓國的인 風景을 찾고자 했으며,
이 때 완만한 산과 초가집, 그리고 나무꾼을 발견하면서 가장 적합한 畵法으로 米點皴을
떠올렸다고 하는데 이 작품은 당시 靑田이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고민하며 완성한 것으로
전통적인 近景, 中景, 遠景의 構圖에서 벗어나 視線이 오른쪽 하단에서 왼쪽 상단으로
이어지며 아득한 空間感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皴: 틀 준)
가로로 긴 화면에 오른쪽에 있는 산 중턱을 과감하게 클로즈업 하고 왼쪽에는 이와 반대로
완만하고 표면이 부드러운 土山들을 遠近法을 적용하여 아득하게 펼쳐낸 것으로 이 작품은
가장 韓國的인 山水라고 평가 받는 李象範 繪畵完成의 前兆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未點皴(미점준): 붓을 옆으로 뉘어 橫으로 쌀 모양의 點을 찍는 技法이다.
北宋의 畵家 米芾이 創案하여 그의 姓을 따른 것으로, 주로 안개가
끼어있거나 멀리 있는 山을 그릴 때 사용했다. (*芾: 우거질 불)
(62) 소경인물도[小景人物圖] -駱坡 李慶胤 작 -조선 16세기
駱坡 李慶胤(1545~1611)의 작품으로 전체가 21면으로 된 한 畵帖에 실려 있으며 이 9폭은
山水畵 2폭과 小景人物圖 7폭으로 구성되었는데 簡易 崔岦(1539~1612)의 讚辭와 跋文을
기록했으며 발문에서 槐陰 洪遵(1557~1616)이 모아 놓은 駱坡 李慶胤의 그림에 詩文을
쓴다고 기록했다.
(*駱: 낙타 낙 *胤: 자손 윤 *岦: 산 우뚝할 립 *跋: 밟을 발 *槐: 회화나무 괴 *遵: 좇을 준)
=왼쪽 그림은 ‘高士讀書’로 의자에 앉아 책을 들고 있는 高士 주위에 여러 器物들을 함께
그렸는데 탁자 위에 놓인 香爐와 꽃이 있는 花甁 그리고 의자 뒤에 웅크린 사슴 등은
不老長生을 뜻하는 道家的 의미를 상징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오른쪽 그림은 ‘路中相逢’으로 侍童과 나귀를 帶同한 두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정겹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며, 좌측 상단에 斜線方向으로 배치한 바위는 墨色의 黑白對比를
강조한 것으로 중국에서 傳來된 浙派畵風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浙: 강 이름 절)
*浙派畵風: 중국 明나라 末期에 浙江省 출신의 戴進을 始祖로, 그와 그의 追從者들과
浙江地方 樣式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의 화풍을 유행한, 筆墨이 雄健하고
거친 山水畵 畵風. (*戴: 일 대)
(63) 사계산수도[四季山水圖] -謙齋 鄭 敾 작 -조선 1719년경
謙齋 鄭 敾(1676~1759)은 우리나라 實際景致를 素材로 한 眞景山水畵의 創始者로 그의
眞景山水畵는 우리나라의 山川을 직접 對面하면서 旣存의 畵法과는 다른 독창적인 畵法으로
그려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이 畵帖은 謙齋 鄭 敾이 南宗畵風을 습득하기 위해 倣作하던
시기의 그림으로 매우 주목되는 작품이다. (*敾: 기울 선 *倣: 본뜰 방)
=왼쪽 그림은 ‘夏景山水圖’로 산의 중반부와 윗부분만을 클로즈업한 장면인데 畵風으로 보아
元末 四大家 중의 한 사람인 黃公望(1269~1354)의 山水畵를 모방한 작품으로 짐작된다.
=오른쪽 그림은 ‘冬景山水圖’로 前景의 家屋과 나지막한 언덕을 중심으로 한 畵面 中央에는
원형으로 멀어져 가는 空間을 설정한 작품인데 謙齋의 完熟美가 돋보이는 짙은 먹의
米點들이 이 그림에서는 아직 부분적이고 소극적으로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米點: 동양화에서 樹木이나 山水 등을 그릴 때 가로로 찍는 작은 점. 중국 宋나라의
米芾 父子가 시작했다. (*芾: 우거질 불)
(64) 감지금니 대방광불 화엄경 입불사의 해탈경계 보현행원품[紺紙金泥 大方廣佛華嚴經
入不思議 解脫境界 普賢行願品] -보물 제752호 -고려 1334년
[大方廣佛 華嚴經]은 줄여서 ‘華嚴經’이라고도 하며 부처와 衆生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中心思想으로 하고 있는데 華嚴宗의 根本經典으로 法華經과 함께 韓國佛敎思想 確立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經典이다. (*紺: 감색 감 *泥: 진흙 니)
唐나라 般若가 번역한 <華嚴經> ‘貞元本’ 40卷 가운데 ‘卷 34’에 해당되는 것으로 普賢菩薩이
善財童子에게 부처님의 功德을 얻기 위해 닦아야 할 10가지 戒律을 說法한 ‘普賢行願品’의
내용이 들어있으며, 검푸른 종이에 금가루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쓴 것으로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4㎝, 가로 11.5㎝이다.
(*若: 반야 야 *菩: 보살 보 *薩: 보살 살)
高麗 忠肅王 復位 3년(1334)에 간행된 것으로 說法한 내용을 요약하여 그린 變相圖를 금
색으로 세밀하게 그렸으며, 그 뒤에는 本文 역시 金色으로 썼는데, 元나라의 資善大夫
將作院使 安賽罕이 부모의 訓育恩功을 기리기 위해 寫經한 것으로 개인의 뜻에 의해
만든 것이기는 하나 그 품격이 精巧하고 고려시대 佛經의 格式을 제대로 갖추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賽: 굿할 새 *罕: 드물 한)
*變相圖: 불교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을 視覺的으로 形象化한 그림.
(65) 감지금니대방광불 화엄경 입불사의 해탈경계 보현행원품
[紺紙金泥 大方廣佛華嚴經 入不思議 解脫境界 普賢行願品] (標題)
*선재동자[善財童子]
<華嚴經>중 [入法界品]에 나오는 佛敎信仰의 모범적인 求道者이다. 일체의 眞相을 알기
위해 天下를 돌아다니며 善知識을 두루 만나다가 마지막으로 十大願을 들은 뒤 入法界의
큰 뜻을 이루었다고 한다.
(66) 감지금니대방광불 화엄경 입불사의 해탈경계 보현행원품
[紺紙金泥大方廣佛 華嚴經 入不思議 解脫境界 普賢行願品] (중간부 1)
(67) 감지금니대방광불 화엄경 입불사의 해탈경계 보현행원품
[紺紙金泥 大方廣佛華嚴經 入不思議 解脫境界 普賢行願品] (중간부 2)
(68) 감지금니대방광불 화엄경 입불사의 해탈경계 보현행원품
[紺紙金泥大方廣佛 華嚴經 入不思議 解脫境界 普賢行願品] (末尾)
(69) 고려 수월관음보살도[高麗 水月觀音菩薩圖]
-보물 제1903호 -고려 14세기
水月觀音圖의 圖說내용은 <大方廣佛華嚴經>의 [入法戒品]에 근거하여
善財童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한 南方巡禮 중 28번째 관음보살을 방문하는
모습이며, 半跏坐한 觀音菩薩의 자세와 선재동자를 중심으로 한 景物의 표현과
배치는 고려시대 水月觀音菩薩圖의 전형적인 圖像이다. (*跏: 책상다리할 가)
화면의 중 심에 半跏坐한 觀音菩薩을 압도적인 크기로 배치하고 우측 하단에는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合掌하며 공손히 菩薩道를 묻는 善財童子를 조그맣게
배치했으며, 굵고 가는 선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는데 화려하고 복잡한 文樣을
全身에 施紋했는데도 고귀한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이 佛畵는 비록 剝落되고 손상된 부위를 後代에 修理했으나 국내에 몇 점
남아있지 않는 水月觀音菩薩道 중의 하나로 高麗時代 後期의 水準 높은
佛敎繪畵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剝: 벗길 박)
(70) 백지묵서 묘법연화경[白紙墨書 妙法蓮華經] –국보 제211호 -고려 1377년
<妙法蓮華經>은 줄여서 [法華經]이라고도 하는데 大韓佛敎 天台宗의 根本經典으로,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基本思想으로 하고 있으며, [華嚴經]과 함께 우리나라
佛敎思想 確立에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三國時代 以來 가장 많이 유통된 佛敎經典이다.
後秦의 鳩摩羅什(구라마습)이 번역한 <妙法蓮華經> 7권을 高麗 禑王 3년(1377) 河德蘭이
죽은 어머니의 冥福과 아버지의 長壽를 빌기 위해 정성스럽게 옮겨 적은 것으로 하얀
닥종이에 먹으로 썼으며 각 권은 병풍처럼 펼쳐 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는데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1.8㎝, 가로 10.9㎝로 각 권의 表紙에는 금, 은색의 화려한 꽃무늬가 장식되고
금색으로 제목을 썼으며, 각 권의 첫머리에는 책의 내용을 요약하여 묘사한 變相圖를
금색으로 세밀하게 그렸다. (*鳩: 비둘기 구 *摩: 문지를 마 *什: 세간 집, 여기서는 ‘습’으로
읽는다. *禑: 복 우)
世宗 25년(1443) 日本으로 流出되었던 것을 최근에 다시 찾아온 것으로, 7권 모두 本文과
變相圖가 갖추어져 있고, 製作時期와 經緯 등을 알려주는 기록도 있는 완전한 寫經으로,
高麗時代 寫經 및 變相圖의 製作傾向과 樣式 등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71) 금동 탄생불 입상[金銅 誕生佛 立像] -보물 제808호 -三國時代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내려서 땅을 가리키며 臺座 위에 곧은 자세로
서 있는 높이 23.4cm의 아기부처로 釋迦牟尼가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은 후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내려 땅을 가리키며
"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외쳐 인간의 존엄성을 說破했다는 釋迦誕生 모습을
形象化 한 것이다.
비교적 큰 얼굴과 微笑 띤 천진한 표정 그리고 短軀의 身體는 아기의 모습을
띠고 있으며 굴곡진 가슴과 배, 유난히 긴 팔 등이 특징으로 윗몸은 裸體이고
下腹部 밑으로 무릎까지 오는 치마는 좌우가 마치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뻗친
형상에 늘어진 치마 끝단을 맞잡아 對稱을 이루는데 이는 허리에 묶어 띠 매듭을
새끼줄 모양으로 길게 늘어뜨린 형상과 더불어 장식성을 극대화시키고 있으며,
臺座는 원형으로 위와 아래를 향하고 있는 연꽃 잎을 맞붙어 새겼는데 이것은
後代에 만든 듯한 또 하나의 臺座에 붙어있어 매우 독특한 모습을 이루고 있다.
6세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특이한 臺座 形式과 함께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좋고 造形美가 뛰어나 우리나라에 있는 誕生佛 가운데 유일하게 指定文化財로
등록된 귀중한 작품이다.
(72) 금동 대세지보살 좌상[金銅 大勢至菩薩 坐像]
-보물 제1047호 -고려 14세기
智慧로 衆生의 어리석음을 없애준다는 大勢至菩薩로 높이 16cm이며,
연꽃臺座 위에 앉아있는 작은 金銅像으로 머리에는 꽃무늬와 갖가지 보배로
화려하게 장식된 寶冠을 쓰고, 정수리에는 肉髻를 큼직하게 표현했다. (*髻: 상투 계)
작은 얼굴에는 은은한 微笑를 띠고 있으며 신체는 매우 탄력적으로 가슴은
量感있게 표현했으나 허리와 배는 거의 구별되지 않아 날씬한 모습이며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자락은 등에 짧은 스카프로 표현하고 가슴까지 바싹 치켜 입은 치마는
정면에서 주름지게 하여 띠를 매고 있는데 퍼지는 치마를 매기 위해 허리에
또 하나의 띠를 묶은 것이 특징으로 온몸에는 크고 화려한 구슬 장식을 휘감고
있으며 대좌는 연잎이 3겹으로 중첩된 연꽃대좌이다.
佛像의 얼굴표정, 날씬한 허리, 치마의 주름단과 허리띠, 全身의 구슬장식,
연꽃무늬 등으로 보아 14세기 말 또는 15세기 초의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73) 청자 유개항아리[靑磁 有蓋壺] -보물 제1071호 -조선 17세기
朝鮮時代의 靑磁 항아리로 높이 23.4㎝, 아가리 지름 10.8㎝, 밑지름 12.3㎝이다.
항아리는 아가리부분을 둥글게 말아 붙였으며, 어깨 부위가 급격히 벌어졌다가 서서히
좁아진 형태이다. 높이에 비해 몸통이 넓어 量感이 느껴진다. 뚜껑은 꽃봉오리 모양의
꼭지에 낮게 층진 모양을 하고 있고, 아가리부분이 도톰하게 되어있다. 전면에 청자유약을
발랐는데, 고르지 않아 색이 약간 얼룩져있다. 이 청자 항아리는 항아리나 뚜껑의 형태가
朝鮮前期의 白磁 항아리와 같다.
(74) 청자상감 유로연죽운학문 표형주자[靑磁象嵌 柳蘆蓮竹雲鶴文
瓢形注子] -고려 13세기 (*蘆: 갈대 로 *瓢: 바가지 표)
(75) 청자 철화화문 매병(靑磁 鐵畵花文 梅甁) -고려 12세기
(76) 청자철채상감 연당초문 장고(靑磁鐵彩象嵌 蓮唐草文 杖鼓) -고려 12세기 (*鼓: 북 고)
(77) 청자 철채백화 국당초문 매병(靑磁 鐵彩白畵 菊唐草文 梅甁)
-고려 12세기
입이 약간 벌어진 盤口形으로 목은 짧고 어깨는 공처럼 둥글며 몸통은
아래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좁아지다가 굽 부분에서 살짝 벌어졌으며,
그릇 전면에 鐵砂顔料를 칠한 후 鐵彩(쇳가루로 만든 칠) 바탕에 白土로
세 송이의 국화와 이것을 연결한 당초문을 主文樣으로 꽉 차게 그려 넣었다.
(*彩: 채색 채)
살짝 밖으로 벌어진 굽 위쪽에는 陰刻으로 菊瓣文을 간략하게 표현하고 당당한
생김새와 거칠 것 없이 경쾌한 文樣, 검은색 바탕 위에 그린 白色文樣의 對比가
극명하게 드러나 剛健하고 남성적인 분위기가 보는 이를 압도하는 梅甁이다.
(*瓣: 외씨 판)
(78) 청자철화 모란당초문 호(靑磁鐵畵 牧丹唐草文 壺) -고려 12세기
(79) 청자철화 모란문 대반(靑磁鐵畵 牧丹文 大盤) -고려 12세기
안으로 약간 말린 입술부분과 거의 수평을 이루는 전 부분, 그리고 완만하게 좁아지는
몸통을 가진 크고 단정한 형태의 盤으로 전의 네 곳에는 唐草文을, 안쪽 바닥 중앙에는
커다란 牡丹文을 鐵砂顔料로 활달하게 그려 넣었으며 작은 氣泡가 있는 녹청색 계통의
靑磁釉藥을 전면에 입혔는데 가는 氷裂이 있으며 광택도 좋은 편으로 이같은 靑磁鐵畵
大盤은 여러 例가 보고된 바 있으나 器形이나 文樣, 釉色 등에서 단연 壓卷인 作品이다.
(*盤: 소반 반)
日本繪畵의 巨匠들
(80) 백납도 병풍[百衲圖 屛風] -가노파 외[狩野派 外] -日本 에도[江戶]時代 (*衲: 기울 납)
詩·書·畵를 다채롭게 장식한 8폭 병풍으로, 장식된 작품들은 曼茶羅, 歌仙人, 단풍, 花鳥,
소 등 다양한 主題의 水墨 및 彩色畵와 扇面 또는 方形에 쓴 와카[일본어: 和歌] 및 서
예작품으로 구성되었다. 繪畵는 裝飾性이 강한 작품을 驅使하던 職業畵家들의 작품이 많다.
이중에서 주목할만한 작품은 흰쥐 세 마리를 그린 린파[琳波]의 사카이 호이츠[酒井捕一
(1761~1828)], 날아가는 白鷺를 그린 마루야마 시조파[圓山 四條派]의 마루야마 오쿄
[円山応挙(1733~1795)]가 있으며, 작가는 알 수 없으나 17세기에 유행한 카라코[
唐子; 중국인 아이]들을 그린 가노파[狩野派] 화가들의 그림을 꼽을 수 있다.
金箔 종이에 신나게 놀고 있는 唐子들을 그린 작품은 중국에서 유입된 主題를 가노파의
大成者인 가노 탄유[狩野探幽(1602~1674)]가 祝賀作品으로 성격이 정착된 후 17세기에
크게 유행했다. 이처럼 에도[江戶]時代의 작품들이 많으나, 이 중에서 메이지[明治]時代에
활동한 가와바타 교쿠쇼[川端玉章(1842~1913)]도 있어 이 병풍은 近代에
粧䌙(裝潢)한 것으로 보인다. 모두 金箔 종이바탕에 붙여 더욱 화려한 분위기를 나타낸다.
(*曼: 길게 끌 만 *扇: 부채 선 *驅: 몰 구 *䌙: 동일 황 * 潢): 웅덩이 황)
*에도시대[江戶時代]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세이이 다이쇼군[征夷大將軍]에 임명되어 幕府를
개설한 1603년부터 15대 쇼군[將軍] 요시노부[慶喜]가 정권을 조정에 반환한
1867년까지의 封建時代로, 정권의 본거지가 에도[江戶: 현 東京]에 있어
‘에도시대[江戶時代]라고 한다.
(81) 미나모토 요시쓰네의 무술연마도[源牛若丸僧 正坊隨 武術覺圖]
-우타가와 구니요시[歌川国芳(1798~1861)] -1851년
우타가와 구니요시[歌川国芳]는 江戶時代 末期를 장식한 우키요에[版畵] 畵家로 15~16세
무렵 우타가와 도요쿠니[歌川豊國]의 門下에 들어가 繪畵를 학습했다. 歌川豊國 門下에서
版畵의 주요 장르인 야쿠샤에[役者會]와 美人圖를 배웠으나 以後 가츠시카 후쿠사이[
葛飾北斎]의 대담한 筆法과 構成을 학습해 자신만의 幻想的인 繪畵世界를 완성했다.
1827년경 <水滸傳>을 소재로 版畵를 그리며 大衆의 人氣를 얻었으며,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더욱 강렬한 畵風을 구사했다. 人物描寫는 강하고 사나워 보이고 잔인하고
加虐的이기도 했다. 우키요에 3장을 이어 붙인 이 작품은 헤이안[平安]時代의 유명한
武士 미나모토 요시쓰네[源 義経(1159~1189)가 구라마데리]鞍馬寺]에서 보낸 幼年時節을
主題로 한 것이다.
*平安時代: 794년 간무왕[桓武王]이 헤이안쿄[平安京: 京都]로 遷都한 때부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가마쿠라[鎌倉]幕府를 개설한 1185년까지의 時期.
(82) 은하축제도[銀河祭り圖]
-이토 신스이[伊東深水(1898~1972)] -1946년경
옛날부터 七月 七夕날 밤에 대야에 담은 물에 밤하늘을 비친 후, 별빛에 의지해
바늘귀에 실을 꿰면 바느질이 잘된다고 전한다. 日本에서는 ‘銀河祝祭’라고
부르며 七夕날 밤을 즐기는 現代의 風習이 있다. 어스름한 밤하늘 아래
대야 옆에 앉아 바늘귀에 실을 꿰고 있는 女人의 모습이 사뭇 진지해 보인다.
胡粉을 칠한 얼굴과 손의 하얀 피부가 밤과 對照를 이루며 환하게 빛난다.
이토 신스이[伊東深水]에게 美人畵는 그의 藝術을 상징한다고 할 정도로
대표적인 主題인데, 이 작품에서 보듯 淸新한 彩色과 優雅한 姿態의 理想的인
美人像을 잘 俱現하고 있다.
(83) 닌토쿠덴노도[仁德天皇圖] -다나카 도스겐[田中訥言] -19세기 初
다나카 도스겐[田中訥言(1767~1823)]이 日本 제16대 덴노[天皇]인
닌토쿠 덴노[仁德天皇(재위; 313~399)]에 관한 故事를 主題로 그렸다.
仁德天皇은 在位 당시 百姓이 사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마을에서 밥짓는
煙氣가 잘 나는지 살펴 백성들의 安危를 판단했다고 한다. 畵面 오른쪽의
樓閣에 서있는 仁德天皇의 모습과 煙氣 나는 마을모습이 克明한 遠近의
對照와 함께 視線을 집중시키고 있다. 소나무와 樓閣의 세밀한 묘사와 진한
彩色, 畵面 全般을 안개처럼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褐色의 背景色에서
야마토에[大和繪]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端整한 彩色感覺을 보여주어
다나카 도스겐[田中訥言]의 代表作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제86차 문화답사 (4-3); 湖林博物館 新沙分館(3-3)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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