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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 8월 (1596년 8월)
885
8월 초1일 (병신) 맑다. [양력 8월 24일]
886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충청우후 ∙ 금갑도만호 ∙ 목포만호 ∙ 사도 첨사 ∙ 녹도만호가 와서 참례했다.
887
저녁나절에 파지도권관 송세응(宋世應)이 돌아갔다.
888
오후에 활터로 가서 말을 달리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
889
부산에 갔던 곽언수(郭彦守)가 돌아와서 통신사의 회답 편지를 전했다.
890
어두울 무렵 비올 징후가 많았다. 그래서 비오기 전에 장만할 것들을 시켜놨다.
891
8월 초2일 (정유) 아침에 비가 몹시 왔다. [양력 8월 25일]
892
지이(智伊) 등에게 새로 만든 활을 폈다가 굽혔다가 하게 했다.
893
저녁나절에 광풍이 세게 일어 빗줄기는 삼대 같아서 대청 마루에 걸어 둔 바람막이가 날라가 방 마루 바람막이에 부딪쳐 한꺼번에 두 바람막이가 깨어져 조가조각 나버렸다. 아까웠다.
894
8월 초3일 (무술) 맑다가 이따금 비가 뿌렸다. [양력 8월 26일]
895
지이(智伊)에게 새로 만든 활을 펴게 했다. 조방장 ∙ 충청우후가 와서 보기에 그대로 나가 활을 쏘았다. 아들들이 육냥궁(六兩弓)을 쏘았다.
896
이 날 저녁나절에 송희립(宋希立)과 아들들이 이름이 적힌 황득중(黃得中) ∙ 김응겸(金應謙)의 통행을 허락하는 증명서를 써서 주게 했다.
897
초저녁에 비가 오다가 밤 두 시쯤에야 그쳤다.
898
8월 초4일 (기해) 맑다. [양력 8월 27일]
899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들 회 ∙ 면 ∙ 조카 완(莞) 등이 아내의 생일술을 올리려고 나갔다. 정선도 나갔다. 정사립(鄭思立)이 휴가를 받아서 갔다.
900
저녁나절에 수루에 앉아서 아이들을 보내는 것을 보느라고 술잔이 시어지는 줄도 몰랐다.
901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가 활 두어 순을 쏘았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활 쏘는 것을 멈추고 안으로 들어갔다.
902
몸은 얼어 터지는듯 떨려 곧 옷을 두껍게 입고 땀을 냈다. 저물 무렵 경상수사가 와서 문병하고 갔다. 밤에는 낮보다 갑절이나 아팠다. 끙끙 앓으며 밤을 지냈다.
903
8월 초5일 (경자) 맑다. [양력 8월 28일]
904
몸이 불편하여 나가지 않고 앉아 있었다. 이의득(李義得) 가리포첨사가 와서 봤다.
905
8월 초6일 (신축)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양력 8월 29일]
906
아침에 조방장 김완(金浣) ∙ 충청우후 ∙ 경상우후 등이 문병을 왔다. 당포만호는 그 어머니의 병환이 심하다고 와서 알렸다. 경상수사 및 우수사 등이 와서 봤다. 조방장 배흥립(裵興立)이 들어왔다. 날이 저물어서 돌아갔다.
907
밤에 비가 많이 왔다.
908
8월 초7일 (임인) 비오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양력 8월 30일]
909
몸이 불편하여 공무를 보지 않았다. 서울에 편지를 썼다.
910
이 날 밤 땀이 위 ∙ 아래 두 옷을 적셨다.
911
8월 초8일 (계묘)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양력 8월 31일]
912
박담동(朴淡同)이 서울로 올라가는데 혼수를 승지 서성(徐 )에게 보냈다.
913
저녁나절에 강희로(姜熙老)가 이곳에 와서 남해현령의 병이 차즘 나아진다고 했다. 그와 함께 밤이 되도록 이야기했다.
914
중 의능(宜能)이 날삼(生麻) 백스무 근을 가져와서 바쳤다.
915
8월 9일 (갑진)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양력 9월 1일]
916
아침에 중 수인(守仁)에게서 날삼(生麻) 삼백서른 근을 받아들였다.
917
하동현감이 종이를 다시 두드려 만든다고 도련지 스무 권, 주지 서른두 권, 장지 서른한 권을 김응겸(金應謙) ∙ 곽언수(郭彦守) 등에게 주어 보냈다.
918
마량첨사 김응황(金應璜)이 직무평가에서 하등급(居下)을 맞고 나갔다.
919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서 공문을 처리하여 나누어 주었다. 활 열 순을 쏘았다.
920
몸이 몹시 불편하다. 밤 열 시쯤 되니 땀이 흘렀다.
921
8월 초10일 (을사) 맑다. [양력 9월 2일]
922
아침에 충청우후가 문병을 왔다가 그대로 조방장과 함께 같이 아침식사를 했다.
923
아침에 송한련(宋漢連)에게 날삼(生麻) 마흔 근을 그물을 만들도록 주어서 보냈다.
924
몸이 몹시 불편하여 한참동안 이나 베개를 베고 누워 있었다.
925
저녁나절에 두 조방장 및 충청우후를 불러다가 상화(床花)를 만는데 이를 같이 했다.
926
저녁에 체 찰사에게 보낼 공문에 관인을 찍었다.
927
어두워지니 달빛은 비단같고, 나그네 회포는 만갈래여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밤 열 시쯤에 방에 들어갔다.
928
8월 11일 (병오) 맑으나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9월 3일]
929
아침에 체찰사에게 갈 여러 공문에 관인을 찍어 내보냈다.
930
조방장 배흥립(裵興立)과 함께 같이 아침 식사를 하고 저녁나절에 그와 같이 활터(射場)에 가서 말달리는 것을 구경하고서 저물 무렵에 영으로 돌아왔다.
931
초저녁에 거제현령이 달려와서 보고한 내용에,
932
"왜적서 한 척이 등산(登山: 마산시 합포구 진동면)에서 송미포(松未浦:거제시 장목면 송진포)로 들어온다."
933
고 했다. 밤 열 시쯤에 또 보고하기를,
934
"아자포(阿自浦)로 옮겨 대었다."
935
고 했다. 배를 정하여내어 보낼 즈음에 또 보고하여 말하기를,
936
"견내량을 넘어갔다."
937
고 했다. 그래서 복병장이 찾아서 잡았다.
938
8월 12일 (정미) 맑다. [양력 9월 4일]
939
샛바람이 세게 불어 동쪽으로 가는 배는 도저히 오갈 수가 없었다.
940
오랫동안 어머니의 안부를 알지를 못했으니, 몹시도 답답하다.
941
우수사가 와서 봤다.
942
땀이 두겹 옷을 적셨다.
943
8월 13일 (무신) 맑다가 흐리며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9월 5일]
944
충청우후와 함께 활을 쏘았다.
945
이 날 밤 땀이 흘러 등을 적시었다.
946
아침에 우(禹)씨가 곤장에 맞아 죽었다는 말을 듣고 장사지낼 물건을 약간 보냈다.
947
8월 14일 (기유)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9월 6일]
948
샛바람이 계속 불어 벼가 상했다고 한다. 조방장 배흥립(裵興立)과 충청우후와 같이 이야기를 중지시켰는데 땀나지는 않았다.
949
8월 15일 (경술) 새벽에 비가 내렸다. [양력 9월 7일]
950
망궐례를 못했다.
951
저녁나절에 우수사 ∙ 경상수사 및 두 조방장과 충청우후 ∙ 경상우후 ∙ 가리포첨사 ∙ 평산포만호 등 열아홉 명의 여러 장수들이 모여서 이야기했다.
952
비가 종일 그치지 않았다. 초저녁이 지나니 마파람이 불면서 비가 많이 왔다. 밤 두 시 쯤까지 세 번이나 땀을 흘렸다.
953
8월 16일 (신해) 잠깐 맑다가 마파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9월 8일]
954
강희로(姜熙老)가 남해로 돌아갔다.
955
몸이 불편하여 종일 누워 끙끙 앓았다.
956
저녁에 체찰사가 진주성(晉城)에 왔다는 공문이 왔다.
957
다시 비 갠 뒤의 달빛이 너무 밝아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밤 열 시쯤에 누워서 가랑비가 또 내리다가 잠시후에 그치는 걸 봤다. 땀이 흘렀다.
958
8월 17일 (임자) 맑고 흐림이 서로 섞여서 개기도 하고 비가 오기도 했다. [양력 9월 9일]
959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충청우후 ∙ 거제현령이 아울러 와서 봤다. 이 날 샛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960
체찰사 앞으로 사람을 찾으러 내보내었다.
961
8월 18일 (계축) 비가 오락가락 했다. [양력 9월 10일]
962
한밤 자정에 죄인에게 특사를 내리는 조칙문을 가지고 온 차사원 구례현감(이원춘)이 들어왔다.
963
땀을 흘리는게 예삿 일이 아니다.
964
8월 19일 (갑인) 흐리다가 맑다가 했다. [양력 9월 11일]
965
새벽에 우수사와 여러 장수들과 함께 죄인에게 특사내리는 조칙문에 숙배하고 그대로 그들과 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966
구례현감이 아뢰고 돌아갔다.
967
송의련(宋義連)이 본영에서 아들 울(蔚)의 편지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했다. 다행이다.
968
저녁나절에 거제현령과 금갑도만호가 이곳에 와서 이야기했다.
969
초저녁부터 한밤까지 땀에 젖었다.
970
어두울 무렵 자귀쟁이(耳匠) 옥지(玉只)가 재목에 치어서 중상을 입었다고 보고 받았다.
971
8월 20일 (을묘) 샛바람이 세게 불다. [양력 9월 12일]
972
새벽에 전선(戰船)을 만들 재목을 끌어내리는 일로 우도군사 삼 백 명, 경상도군사 백 명, 충청도군사 삼백 명, 전라좌도군사 삼 백아흔 명을 송희립(宋希立)이 거느리고 갔다.
973
늦은 아침에 조카 봉 ∙ 해와 아들 회 ∙ 면 ∙ 조카 완(莞)과 최대성(崔大晟) ∙ 윤덕종(尹德種) ∙ 정선 등이 들어왔다.
974
8월 21일 (병진) 맑다. [양력 9월 13일]
975
식사를 한 뒤에 활터 정자에 가서 아들들에게 화살 쏘는 연습 과 말달리며 활을 쏘는 것을 시켰다.
976
조방장 배흥립(裵興立) ∙ 조 방장 김완(金浣)과 충청우후가 아울러 왔다. 같이 점심을 먹고 저물어서 돌아갔다.
977
8월 22일 (정사) 맑다. [양력 9월 14일]
978
외조모의 제삿날이라 나가지 않았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979
8월 23일 (무오) 맑다. [양력 9월 15일]
980
활터에 가 보았다. 경상수사도 와서 같이 보았다.
981
8월 24일 (기미) 맑다. [양력 9월 16일]
982
8월 25일 (경신) 맑다. [양력 9월 17일]
983
우수사 ∙ 경상수사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984
8월 26일 (신유) 맑다. [양력 9월 18일]
985
새벽에 출항하여 사천에 이르러 머물러 잤다. 충청우후와 함께 종일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986
8월 27일 (임술) 맑다. [양력 9월 19일]
987
일찍 길을 떠나 사천현에 이르렀다. 점심을 먹은 뒤에 그대로 진주성(晉城)으로 가서 체찰사(이원익)를 뵙고 종일 의논했다. 저물 무렵에 진주목사(나정언)의 처소로 돌아와서 잤다. 김응서도 왔다가 곧 돌아갔다.
988
이 날 어두울 무렵 이용제(李用濟)가 들어왔는데, 역적 도당의 편지를 지녔었다.
989
8월 28일 (계해) 맑다. [양력 9월 20일]
990
이른 아침에 체찰사 앞으로 가서 종일 여쭙고 의논하여 결정하고, 초저녁이 지나서 진주목사의 처소로 돌아왔다. 진주목사와 함 께 밤이 깊도록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991
청생(靑生)도 왔다.
992
8월 29일 (갑자) 맑다. [양력 9월 21일]
993
일찍 떠나 사천현에 이르러 아침밥을 먹은 뒤에 그대로 가서 선소리(사천시 용남면 선진리)에 이르렀다.
994
고성현령(조응도)도 왔다. 삼천포권관과 이곤변(李鯤變)이 술을 가지고 뒤따라 도착했다. 밤들도록 같이 이야기하고 구라량(仇羅梁)에서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