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워커의 ‘컬러 퍼플(color purple)
작가 ; 앨리스 워커
초판 ; 1882
1983 퓰리처 상 수상
컬러 퍼플은 조지아의 고립된 시골에서 자란 젊은 흑인여서 셀리의 정신적 고통과, 그녀를지배하는 이들에 의해 강요된 무기력에 저항하여 마침내 승리를 거두는과정을 기록한 소설 작품이다.
14살에 의붓아버지의 욕정으로 두 번씩이나 아이를 낳아야 했던 소녀 씰리의 이야기. 힘없는 흑인 여성이 삶에 눈 떠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저자는 세상의 온갖 추악함 앞에 놓여진 한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인내와 생존, 진실한 사랑에 대해 들려준다. 간결한 문장과 군더더기 없는 산뜻한 전개, 원작의 묘미를 잘 살린 충실한 번역이 돋보이는 책.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화 한 <컬러 퍼플>의 원작이자, 퓰리처상 수상 작품이다.
착한 샐리는 복종밖에 할줄 몰라 의붓아버지에게 몸을 빼앗기고 아이를 둘이나 낳았지만, 의붓아버지는 그 아이들마저 새뮤엘 목사와 코린 부부에게 데려다 줘 버린다. 그런 샐리에게 두 살 아래인 여동생 네티와 서로 의지하며 다정하게 살아가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다. 그러나 의붓 아버지는 이제 어린 네티마저 건드리려 하고, 그러는 중에 40대 초반의 미스터라는 남자가 네티를 자기 아내로 줄 것을 요청하나 의붓 아버지는 네티는 너무 어리다며 대신 셀리를 데려가라고 한다. 이에 미스터는 어린 셀리를 아내로 맞아 데려간다. 그후 셀리의 삶은 노예보다 더 참혹하지만, 그녀는 타고난 착한 성품으로 오히려 모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안아준다.
우울함과 고귀함의 상징인 퍼플! 컬러, 퍼플은 셀리의 인생에 스며든 빛깔이다. 죽음보다 못했던 날들을 이겨내고 고귀함을 되찾는 여성의 일대기는 보랏빛 향기를 은은하게 풍긴다. 의붓아버지에 의해 아이를 둘이나 낳은 셀리는 동생 네티와 함께 살기를 원하지만 알버트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아버지만큼이나 그녀를 괴롭히는 알버트 때문에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암흑기가 이어지고 마침내 인생의 제 3막을 연다. 셀리는 20세기 초 동시대를 살아간 여성의 대표 상으로 단순한 여성이 아닌 흑인 여성이라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컬러 퍼플>에서 셀리만 두고 본다면 셀리의 억압 주체는 백인보다는 흑인에게 있다. 백인의 억압을 받는 흑인에게 한 번 더 차별받는 존재. 즉 여성이라는 성적 주체성을 잃어버린 채 단지 남성이 아닌 생물체로 가려진다.
셀리에게 남성은 아버지 혹은 선생님이다. 그녀는 이들 앞에서 성노리개와 가정부로서 하나의 인격체를 상실하고 만다. 남성에게 받는 성적 수치심과 인격 모독은 자아 정체성의 결여로까지 이어진다. 그녀는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으며 참아낸다. 심지어 ‘저들이 내 우위에 있잖아.’와 같은 대사는 서열구조를 바꿀 생각도, 의지도 없는 소극적 태도를 비춘다. 또한 알버트의 아들 하퍼가 자신을 좌지우지하는 소피아를 감당하지 못하자 ‘때려.’라고 말한다. 이는 남성의 폭력행위조차 이겨낼 수 없는 여성의 하위존재 의식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밑바닥을 벗어나려는 기존의 영화, 드라마 주인공들과 다르게 시종일관 수동적인 모습으로 일관하는 셈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셀리의 태도가 충분히 답답할 수 있겠으나 현실에 대한 순응은 즉 맞지 않기 위한 복종은 억압상태에 놓인 그 당시 여성들에게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셀리의 소극적 태도 묘사에 긴 시간을 할애한 것이 억압받는 여성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한 감독의 의도였음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 줄거리는
씰리는 14살에 아버지에게 강간 당해 두 번씩이나 아이를 낳는다. 아이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어머니가 죽고, 씰리는 앨버트 에게 팔려가듯 시집 간다. 앨버트는 사실 씰리의 여동생 네티를 원했지만 아버지가 네티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씰리를 암소 한마리와 함께 내준 것이다. 씰리는 앨버트의 전 아내가 낳은 아이들을 기르며 짐승처럼 학대받는다. 씰리는 네티 역시 자신과 같은 꼴을 당할 것을 염려해 네티를 불러들인다. 이번에는 앨버트가 네티를 집적인다. 뜻을 이루지 못한 앨버트가 네티를 쫓아낸다. 씰리는 네티에게 마을에서 유일하게 돈을 가진 흑인 목사를 찾아가라고 한다. 씰리의 사라진 두 아 이들은 목사의 양자로 들어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슈그 에이버리라는 가수가 마을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 앨버트는 갖은 치장을 다하고 슈그 에이버리의 공연을 보러 간다. 얼마 후 슈그 에이버리가 못된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자 앨버트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온다. 앨버트는 슈그와연인 사이였으나 결혼이 집안의 반대로 무산되자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었다. 결혼한 후에도 둘은 불륜 관계를 가졌었고, 이제는 씰리가 있는 집으로 슈그를 들인 것이다. 씰리는 슈그에게 질투심을 느끼기 보다는 그녀를 동경한다. 처음에는 씰리를 하녀처럼 대하던 슈그도씰리의 헌신적인 태도에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학대받는 그녀의 편에 선다. 몸이 다 낳은 슈그는 씰리에게 성적인 쾌락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둘은앨버트가 감추어 둔 네티의 편지를발견한다.
네티는 목사 부부와 함께 아프리카의 세네갈로 선교 활동을 떠났고, 그곳에서 씰리의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 네티는 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편지에 담아 보내왔었는데 앨버트가 편지를 숨겨두고 전해주지 않은 것이다. 씰리는 앨버트에 대한 격한 살의를 느낀다. 그녀는 앨버트를 버리고 슈그를 따라나선다.
씰리가 취미삼아 만든 바지가 인기를 얻어 공장을 차리기에 이른다. 얼마 후아버지가죽는다. 아버지라 부르던 사람이 사실은의붓아버지였고, 집은 원래부터 씰리와 네티의 소유였음이 밝혀진다.
집을 얻은 기쁨도 잠시, 슈그가 나이어린 남자를 좋아하게 되어 씰리를 떠난다. 그리고 네티와 아이들이 탄 배가 독일군의 어뢰에 침몰당했다는 전보를 받는다. 하지만 네티의 편지는 계속 전해져왔고, 씰리 역시 계속 답장을 한다.
앨버트는 씰리가 떠난 후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그는 전보다 사려 깊고, 전보다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된다. 앨버트는 씰리와 다시 합하기를 원하지만 씰리가 원치 않는다.
슈그가 돌아온다. 그리고, 네티와 아이들 역시 돌아온다. 아이들은 씰리들을 늙었다고 생각하지만, 씰리는 자신들이 그렇게 젊은 기분을 느꼈던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더 컬러 퍼플>은 사회적 지위로 따지자면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흑인 여성을 다루고 있다. 씰리의 아버지는 단지 백인보다 돈을 많이 버는 가게를 가졌다는 이유로 백인들에게 팔다리가 잘린 채 화형당한다. 어머니는 그때문에 미쳐버린다. 씰리는 겨우 열네살에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당했으며, 남편에게는 상시적인 구타에 시달렸고, 성적인 면에서는남편 욕구의 분출을 받아 내는 직업여성 수준 이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성들과의 연대의식 속에서 씰리는 차츰삶의 성찰을 하나씩 얻게 되고 마침내 독립적인 삶을 꾸려나가기에 이른다. 그 과정이 부단한 투쟁의 과정은아니었지만, 그런 이유로독자에게는 오히려설득력 있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앨리스 워커(Alice Malsenior Walker, 1944년 2월 9일 ~ )는 미국의 작가, 시인, 운동가이다. 그녀는 인종과 성과 관련해 소설과 에세이를 썼다. 그녀는 소설 The Color Purpl(1982) 로 잘 알려져 있다.
워커는 Eatonton, Georgia에서, Willie Lee Walker 와 Minnie Lou Tallulah Grant의 여덟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 말에 따르면 그녀의 아버지는, "수학에는 능하지만 끔찍한 농부"였다. 그는 낙농 농장에서 일 년에 단 300 달러를 받았습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하녀로 일을 하여 가족 소득 보충하였다. Jim Crow 법에 따라 생활할 때 워커의 부모님들은 흑인의 아이들은 일찍부터 농장에서 일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지주의 생각에 따르지 않았다. 백인 지주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흑인들은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녀의 자식들이 읽고 쓰는 것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거면 다시는 집 근처에 얼씬도 하지마라고 말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4살 때 입학을 시켰다. 1952년에 Walker는 그녀의 오빠가 쏜 BB탄 총에 오른쪽 눈을 잃는다. 그녀의 가족은 차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를 즉시 치료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그녀의 오른쪽 눈은 회복 되지 못했다. 눈을 잃고 난 후 그녀는 내성적으로 바뀌었지만 그녀의 상처가 아물어 가면서 그녀의 내성적인 성격은 가장 인기 있는 아이로 뽑힐 정도로 바뀌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Walker는 Spelman College에 진학하여 1961년 졸업하였다. 그 후 뉴욕시 근처에 있는 Sarah Lawrence College로 옮겨 1965년에 졸업하였다.
그녀는 그녀의 교수중의 한명인 Howard Zinn의 영향을 받아 미국 민권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급진적 역사가인 하워드 진과 스토튼 린든의 영향을 받아 60년대 흑인 민권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11967년 함께 민권운동을 하던 유대인 법률가 멜빈 로즈벤 리벤톨과 결혼했다. 이들은 미시시피 주 잭슨에서 다른 인종끼리 합법적으로 결혼한 첫 부부였다.
1968년 첫 시집 <언젠가 (Once)>를 출간했고, 1970년 첫번째 장편소설 <그랜지 코플랜드의 제3의 길 (The Third Life of Grange Copeland)> 출간 이후, 웨슬리 대학과 메사추세츠 대학에서 문학 강의를 시작했다. 1980년대 이르러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함께 페미니스트 저널 「미즈 Ms.」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백인 중산계층 중심의 서구 페미니즘의 한계를 지적, 흑인 및 유색인종 페미니스트를 의미하는 '우머니스트'란 단어를 만들어냈다.
지은책으로 1973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혁명하는 페튜니아>, 1983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컬러 퍼플>을 비롯해 <메디리안>, <여인들의 신전>, <은밀한 기쁨을 간직하며> 등이 있다. 1965년에 그녀는 Melvyn Roseman Leventhal를 만났고 1967년 3월 17일 뉴욕에서 결혼하였다. 1969년 그녀는 딸 Rebecca를 낳는다. 그 후 그녀는 많은 저서를 남긴다.
비평가 피터 S. 프레스코트는 뉴스위크에서 《더 컬러 퍼플》은 “미국 문학에서 영구한 중요성을 지니는 작품”이라고 했다. 《더 컬러 퍼플》은 전국 도서 비평인 상(National Book Critics Award) 후보작으로 올랐으며 미국 도서상 (American Book Award)과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 목록에 25주나 올랐다. 워너 브라더스에서는 이 작품의 제작권을 35만 달러에 사들였고, 결국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손으로 영화화되었다.
1983년에는 1966년부터 1982년 사이에 쓴 앨리스 워커의 수필들을 모은 《어머니의 꽃밭을 찾아서(In Search Mothers Gardens)》가 출판되었다. 1984년에는 네 번째 시집 《말이 있으면 풍경이 더욱 아름다워진다(Horese Make a Landscape More Beautiful)》를 펴냈다.
《더 컬러 퍼플》 이후에 앨리스 워커는 비슷한 주제를 뒤집은 ‘여인들에 의한 남성 지배’를 다룬 훨씬 방대한 소설 《여인들의 신전(The Same River Twice)》, 소설 《기쁨의 비밀을 간직하기(Possessing the Secret of Joy)》 등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수필집 《우리가 사랑하여 소중한 모든 것(Anything We Love Can Be Saved)》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