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보리의 꿈
김 선 구
오월은 신록의 계절이다. 하늘이 푸르고, 산이 푸르고, 들판이 푸르다. 산과들에서 생명체들이 존재감을 연출하고, 나뭇가지에서 연초록 잎 새들이 부드러운 자태를 드러낸다. 신록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헝클어진 마음을 정돈시키고, 안온한 보금자리가 되어준다. 또한 뭣 모를 그리움을 손짓하게 한다.
오늘 아침이다.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다보니, 길가 양 옆에 늘어선 나무들이 활짝 꽃을 피운 모습이 더욱 정감으로 다가왔다. 푸른 잎 새 위에서 바람결에 살랑거리는 꽃잎의 흔들림이 철모른 어린애들의 귀염 상처럼 보였다. 마치 손위 언니에게 지기 싫다고 재롱떠는 너 댓살 손녀의 모습과도 같았다.
신록과 꽃들의 향연을 보노라니 나의 의식 속에 잠자고 있던 환상이 고개를 내밀었다. 이맘 때 쯤 고향 들판을 가득 메웠던 청 보리에 대한 연민이다. 청 보리밭에는 이양하님의 글 “신록예찬“ 못지않게 정겨운 풍경과 어린 시절 그 속에서 보냈던 일들이 그리움으로 포장되어있다.
내가 낳고 자라난 곳은 제주의 해변 마을이었다. 늘 보이는 것이 널 푸른 바다였다. 집 가까이에는 이렇다 할 나무숲은 없었고 농경지가 산재한 넓은 들판만이 널려 있었다. 밭이 대부분인 지역이어서 가꿀 수 있는 유일한 동 작물이 보리였다. 그래서 청 보리 생육이 왕성한 시기가 오면 하늘이 맑고, 바다가 푸르고, 보리밭이 푸르다는 생각뿐이었다.
보리는 우리들에게 생명 줄이었다. 가을에 파종하면 한겨울 추위를 견뎌 낸 후 봄과 함께 자라기 시작 했다. 이른 봄 김 메기가 끝나면 보리들은 무럭무럭 자라 온 들판을 파랗게 물들였다. 이삭을 펴고 누렇게 익을 때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때 나는 소를 이끌고 보리밭 사이 길을 누비며 소에게 풀을 뜯게 해야 했다. 소위 소테우리 노릇이었다. 소가 보리를 먹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그래도 한 눈 파는 사이에 소는 날름 청 보리를 한 잎을 잘라먹고 시치미를 떼었다. 보리밭 주인에게 꾸중이라도 들으면 서운한 마음에 소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이제 생각해보니 소는 참으로 미련한 동물이었다. 쪼그만 꼬마에게 매질을 당하면서도 그저 피하기만 했었으니. 때로 청 보리를 훔쳐 먹은 소가 껄끄러운 보리이삭 때문에 하늘을 향해 기침을 해대는 모습을 보며 고소해 하기도 했다.
소와 함께 종일 밭두둑 길을 누비는 일은 지겹고 짜증이 났다. 그런 중에도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소가 되새김질을 할 때다. 소를 들판 한구석에 메어 놓고, 또래들끼리 어울려 보리밭 사이에서 메뚜기를 잡아 구워먹기도 하고, 주인 몰래 보리이삭을 훔쳐 구워먹기도 했다. 그리고 들판에 누워 먼 하늘을 쳐다보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하늘 높이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새들의 소리가 정겨웠고, 가벼운 바람살이 지나가며 보리밭에 파문을 그리는 모습이 좋았다.
청 보리가 그득한 들판에 서면 하늘 높은 곳에서 종달새 소리가 들리고,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보리밭에 물결을 일으켰다. 특히 바람결에 휩쓸려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군대의 열병식처럼 보이기도 하고,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연주 같기도 했다. 청 보리밭을 꿈의 낙원처럼 느끼게 하는 이유이다.
보리가 자라는 모습 속에서는 생명이 약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보리이삭 끝에 까시락이 힘차게 벋쳐오를 때가 보리의 최 전성기이다. 껄끄러운 까시락은 마치 창을 든 병사들처럼 힘을 과시했다. 벼나 조는 익을 때 고개를 숙이지만 보리는 이삭을 곳곳이 세운 채 색깔만 누렇게 변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의지의 표현인 듯 남성적 기상을 보여주었다. 청 보리의 이러한 모습을 나는 좋아 했었다.
지난 해 고향에 갔었다. 허나 보리가 무성했던 들판에는 비닐하우스가 즐비해했고, 팬션과 호텔 등 거대한 건물들이 띄엄띄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보리밭의 존재는 까마득한 옛 기억 속에나 존재할까! 도시로 탈 바뀜 하는 모습이 경제적으로는 삶이 나아진다는 의미이니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지난날의 추억이 허물어져 버렸으니 허전한 일이기도 했다. 동생에게 청 보리밭의 추억을 얘기했더니 봄철이 되면 가파도에서 만나볼 수 있다고 했다. 매년 봄 청 보리 축제가 그 곳에서 열린단다.
제주도 서쪽 끝 모슬포 앞바다에서 남쪽으로 나란히 서 있는 두 개의 섬. 하나는 가파도, 또 하나는 마라도이다. “은혜를 갚아도 좋고 마라도 좋고, 원수도 갚아도 좋고 마라도 좋고.” 어린 시절에 섬 이름을 따라 마음대로 말을 만들어 지껄였었다. 이름이 주는 뉘앙스 때문에 섬들이 친숙해 있었다.
기회에 섬들을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가파도는 청 보리 축제가 열리는 시기에 찾기로 하고 마라도 쪽을 택했다. 우리나라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는 길쭉한 고구마 모양의 섬이다. 오랜 세월 해풍에 시달려 형성 된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었고, 한국 최남단을 알리는 기념비가 서 있는 곳이다.
모슬포 항에서 배를 타고 마라도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가파도 옆을 스쳐 지나갔다. 가파도는 생김새가 넓적한 가오리 모양으로 평평한 들판이었다. 크기도 마라도 보다 훨씬 커 보였다. 청 보리가 자라는 모습을 상상하며 지나쳤다.
마라도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가파도와 마주했다. 내년 청 보리 축제에 다시 찾을 것을 기약하며 돌아왔었다. 허나 그것은 그저 희망사항 일 뿐 이 봄을 그냥 보내고 있다. “약속을 지켜도 좋고 마라도 좋고”가 되 버렸다. 그래도 가파도에 심은 청 보리의 꿈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새겨두고 있다. 금년은 그냥 넘기지만 내년에는 꼭 가 볼 것임을 다짐해본다.
첫댓글 가파도와 마라도, 섬 이름에 얽힌 얘기가 재미있네요.
바닷가 마을이든 산골 마을이든 우리들 어린 시절은 모두 비슷한 삶이었나 봅니다.
옛날을 회상하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유체꽃, 메밀꽃과 더불어 청보리 들판은 경관이 훌륭하고 귀중한 식량을 얻습니다. 요즘 보리차, 보리건빵 정도인데 밀 이상으로 활용도가 높으면 좋겠습니다. 청보리가 가득 찬 들판을 그려봅니다.
청보리 밭하면 고향과 어린시절이 회상됩니다. 이국적인 제주도에서 꿈을꾼 시절이 눈에 선합니다. 가파도와 마라도에 가고싶은 생각이듭니다. 요즘 청보리밭 보기가 어렵습니다. 고향에서 어릴적 일상이 우리와 비슷합니다. 그 때가 좋은 시절인것 같습니다.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