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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오메가 FC 선수단은 부도로 문을 닫은 시멘트 공장을 임대해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사진 이상혁) |
걱정스런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너희가 이길 수 있겠냐. 괜히 망신만 당하는 거 아니냐”고 속으로 물으면서. 그러나 서로들 '아니다'라고 소리 없이 외치고 있다. 이기든 지든 경기결과에는 관심 없다. 최고로 불리는 팀과 그냥 겨뤄보고 싶다. 선수로서 본능일까. 아무튼 자신은 있다. "그래 한 번 부딪쳐 보자." 그들은 그렇게 수원전을 맞고 있었다.
“달걀로 바위 치는 격이죠.” 서산 오메가 FC의 서포터스 ‘딥 블루 시(Deep Blue Sea)’의 조한준(30) 회장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만 아프고 ‘왜 하필’이라는 푸념만 나올 뿐이다.
수원 삼성. 안정환, 김남일, 이관우, 백지훈, 이운재 등 국내 최고의 기량을 갖춘 스타 선수들이 즐비한 팀으로 올시즌 K리그 우승 후보다. K리그 최근 10경기에서 8승1무1패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런 수원을 상대로 서산은 6월 14일 서산종합운동장에서 경기를 갖게 됐다.
서산과 수원은 5월 31일 대한축구협회 주관 아래 진행된 2007시즌 하나은행 FA컵전국축구선수권대회 26강 대진 추첨에서 제11경기에 속했다. 내셔널리그 최약체로 꼽히는 서산에게는 벅찰 수밖에 없는 대진이었다. FA컵 첫 승의 꿈도 가물가물해 졌다. 2002년 창단한 서산은 그동안 FA컵에 2차례 출전했으나 모두 졌다. 2003년 부천 SK(현 제주)에 0-2로 패했고 지난해에는 대전 시티즌에 무기력한 경기 끝에 1-4로 완패했다.
K리그 부자 구단과 내셔널리그 가난한 구단의 얄궂은 만남이었다. 웬만한 수원의 스타 선수 2명 몸값이 서산의 1년 운영 예산이다. 재정 악화로 서산의 팀 분위기는 썩 좋지 않다. 지난해 9월 구단을 인수한 IT기업 오메가텐더가 사전 약속과 달리 선수단 지원에 손을 끊었다.
11개월째 통장에는 급여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 오메가텐더의 구단 인수 후 희망을 품었던 선수들로서는 힘이 절로 빠질 수밖에 없다. 출전수당, 승리수당은 고사하고 밀린 급여라도 나왔으면 하는 게 선수들의 바람이다. 승리수당만 해도 2천만 원에 이르는 수원 선수들이 부러울 뿐이다.
서산의 최종덕(53) 감독은 “우리에겐 커다란 도전이다. 우리 형편상 수원에 이기는 건 꿈도 꾸지 못한다. 한 수 배운다는 자세일 뿐”이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수원이 서산을 찾아 축구붐을 일으켰으면 좋겠다는 게 진실한 소원이었다.
축구 열기가 사그라진 서산에 수원은 ‘축구 홍보대사’로 제격이란 것이다. 싸우기도 전부터 뒤로 빠진다는 건 겸손이 아닌 무기력일 수도 있다. 최감독은 “솔직히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경기를 펼치지 않겠냐. 낮경기에 이골이 난 만큼 햇빛이라도 쨍쨍 내리쬐면 좋겠다”며 내심 승리를 바라는 눈치였다. 가능성은 1%도 안 되지만 그 1%의 희망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듯했다.
악바리 정신
최감독의 바람대로 서산은 6월 들어 물이 올랐다. 내셔널리그 8라운드까지 2무6패로 순위표 맨 아래에서 맴돌던 서산은 6월 2일 이천 험멜을 2-1로 꺾고 올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일주일 뒤인 6월 9일에는 지난 시즌 후기리그 우승팀인 안산 할렐루야를 3-1로 누르고 2연승의 휘파람을 불었다. 안산 와~스타디움에 있는 내셔널리그연맹의 한 관계자는 서산 선수들을 보며 “원래 이런 애들이 아닌데”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서산은 달라졌다. 놀라운 발전이다. 8라운드까지 서산은 단 1골도 넣지 못했다.
서산은 안산전에서 전반 1분 만에 상대 수비수의 패스 미스를 가로채 김영종(21)이 선제골을 터뜨렸다. 안산 선수들로서는 허를 완전히 찔렸다. 안산이 경기 주도권을 쥐고 서산을 몰아붙였지만 전반 36분 터진 두 번째 골도 서산의 몫이었다. 안산의 백패스를 가로챈 김영종이 전방으로 패스를 넣어줬고 이익훈(23)이 이를 침착하게 골로 연결했다. 첫 골 상황과 똑같았다. 상대 실수를 놓치지 않은 집중력이 돋보였다.
악바리 정신으로 똘똘 뭉친 집중력과 정신력은 후반 들어서도 빛났다. 체력이 약해 후반 중반 이후 무너졌던 평소 경기내용과 달리 후반 5분 이성길에게 실점을 허용했으나 추가 실점은 없었다. 오히려 후반 25분 김영종이 팀의 세 번째 골을 넣으며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FA컵을 앞두고 치른 최종 리허설에서 승리한 선수들은 수원을 꺾은 듯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최감독은 경기 후 침착한 자세를 잃지 않았으나 그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만족한다는 표시였다. 최감독은 “수원전에 대비해 주전 선수들을 쉬게 하려 했는데 선수들이 스스로 흐름을 타야 한다며 앞장 서서 뛰겠다고 했다”며 흐뭇해 했다.
그러나 전술상의 문제점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4-4-2 전형을 썼으나 90분 내내 압박이 이뤄지는 현대 축구와 달리 압박 플레이가 없었고 지역방어에 주력하다 보니 1대1 패스에 쉽게 뚫렸다. 경기의 흐름을 상대에게 내주는 등 소극적인 경기 운영 방식도 문제였다. 이를 ‘적장’이 놓칠 리 없었다. 수원의 차범근 감독은 관중석 한 켠에 앉아 서산 선수들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은 차감독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위)서산 오메가 FC 최종덕 감독은 사재를 털고 지인의 도움을 받아 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아래)수원 삼성의 조직적인 패스에 서산 오메가 FC 선수들은 쩔쩔맸다.(사진 이상혁) |
최종덕 감독의 고민
안산을 잡으며 오름세를 탄 선수단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앞선 두 경기에서 했던 것처럼 하면 수원도 잡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일어났다. 사흘 앞으로 다가온 수원전이 내심 기대됐다. 그러나 최감독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안산전 이후 3일 만에 FA컵을 치러야 해 선수단에게 휴식을 지시했다. 선수가 부족한 서산으로서는 빡빡한 강일정이었다. 불만은 가득하나 어쩔 수 없었다.
협회는 6월 안에 FA컵 26강전을 치러야 했으나 국가대표 친선경기,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지역 2차예선, K리그, 컵대회 플레이오프 등 일정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6월 13일에는 A3챔피언스컵 2007이 열려 부득이하게 FA컵 일정을 하루 앞당길 수밖에 없었다. 볼멘소리는 입 안에서 맴돌 뿐이었다.
선수들의 체력문제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주력 선수인 박민근(23)이 부상으로 수원전에 뛸 수 없게 됐다. 박민근은 안산전에서 상대 수비와 부딪쳐 왼쪽 허벅지 뒷근육이 찢어졌다. 아픔을 참고 뛸 수 있으나 최감독은 쉴 것을 권유했다. 최감독은 “다른 좋은 선수들이 있는 만큼 괜찮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속은 시커멓게 타 들어갔다. 선수 1명이라도 아쉬운 상황이었다. 지난해 K리그 제주에서 뛰었던 박민근은 현재 팀 내에서 유일한 K리그 출신으로 활동량이 많고 골 결정력이 뛰어나다. ‘선수비 후공격’ 전술로 나서는 서산에게는 박민근의 결장이 뼈아팠다.
이번에는 훈련장 문제가 최감독을 괴롭혔다. 다른 내셔널리그 팀들처럼 클럽하우스가 없는 서산은 부도로 문을 닫은 시멘트 공장을 임대해 숙소로 쓰고 있다. 폐허가 된 공장 안에 연습구장이 있을 리 만무하다. 샤워기, 화장실 등 기본 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많은 것을 바랄 순 없다. 서산시 주변에 있는 잔디구장은 서산종합운동장과 보조경기장 두 곳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서산시청의 허락 없이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내셔널리그 홈경기를 하루 앞두고 할 수 있는 잔디 적응 훈련 외에는 서산에서 축구부가 있는 2곳인 해미중학교와 서산농업고등학교로 이동해 연습을 해야 한다. 두 곳 모두 맨땅인 데다 해미중학교의 경우 학생들의 수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 훈련해야 한다. 한 선수는 “다들 맨땅에 익숙해져 아무런 내색은 안 해도 잔디구장에서 차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다”고 했다.
종합운동장 사용 신청에 대해 서산시청의 반응은 차가웠다. 6월 16일 아이엔지넥스 FC와의 내셔널리그 경기가 예정된 데다 6월 15일에는 KBS 전국노래자랑이 열려 잔디 보호를 위해 서산의 경기장 훈련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최감독이 시청을 찾아가 관계자들에게 호소한 끝에서야 ‘사용 허가’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종합운동장을 사용할 때마다 겪는 이런 과정에 어느덧 익숙해 졌다. 최감독은 “지난 4월 재보선을 통해 당선된 유상곤 시장이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된장찌개의 힘으로
서산의 궁핍한 재정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유용철 전 구단주가 운영하던 기업이 부도가 나면서 자금난에 시달렸다. 2005년 이후 최감독은 사재를 털고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구단을 운영했다. 지난해 오메가텐더가 구단을 인수해 체불 임금 지급, 클럽하우스 건립 등 100억 원이 넘는 지원을 약속했으나 장밋빛 꿈은 오래지 않아 산산조각 났다. 첫 달 5천만 원을 지원한 뒤 아무런 지원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
최감독의 개인 빚은 늘어만 갔고 아파트를 판 지도 오래다. 선수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서울, 부산 등 전국 각지를 돌며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국가대표 출신인 최감독에게 코치, 감독직 제의를 한 프로팀들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모두 거절했다. 자신이 떠나면 구단이 와해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최감독의 가족은 “더 이상 못 참겠다. 서울로 올라가겠다”며 불평했으나 최감독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현실은 냉혹했다. 전국에서 최감독과 서산을 돕기 위해 쌀, 휴지 등 생필품이 공급됐으나 한계가 있었다. 모든 게 부족했고 허리를 졸라매고 지내야 했다. 지은 지 오래돼 부식이 심한 숙소는 문제투성이였다. 샤워기가 6개여서 30명의 선수들이 사용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며 세면대에는 물이 나오지 않아 시커먼 먼지로 덮여 있다. 2층 구조의 숙소에 화장실이 단 1곳뿐이어서 매일 아침 ‘전쟁’이 일어난다.
한경성(23)은 “숙소에선 할 게 아무 것도 없다. 거미줄이 걸쳐 있는 등 지저분하고 주변에 풀이 많이 자라 뱀까지 다녀 함부로 돌아다닐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제초 작업과 보수 공사를 해야 하나 그런 데 쓸 돈이 없다. 더구나 이 숙소도 고속도로 확장 공사 때문에 헐릴 예정이다. 내년에는 또 다른 숙소를 찾아 헤매야 한다.
딱딱한 방바닥에 누워 잠을 청한 한 선수는 좀처럼 잠을 잘 수 없었다. 힘든 생활에 마음은 무겁고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우리가 수원전에서 승리한다면 축구단에 관심을 보인 시장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줘 더 나은 지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와 불안이 가득한 가운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경기 당일인 6월 12일 잠을 푹 자지 못한 선수들이 숙소 식당을 찾았다. 든든하게 먹어야 수원 선수들보다 더 열심히 뛰어다닐 수 있다. 그러나 이날 메뉴는 된장찌개였다. 고기 반찬이나 영양가 많은 음식을 기대하긴 어렵다. 수원처럼 호텔에서 영양사가 짜준 식단의 음식을 먹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위)수원 삼성의 서포터 ‘그랑 블루’ 150여 명은 버스와 개인 차량을 이용해 경기장을 찾았다. (아래)서산 오메가 FC의 서포터 ‘딥 블루 시’는 빨간 막대 풍선을 이용해 서산 시민들과 함께 열띤 응원을 펼쳤다.(사진 이상혁) |
선수들의 식사는 인근 해미에 사는 아주머니가 매일 숙소를 찾아와 만들어 준다. 혼자 30인분의 식사를 짓는 건 노동에 가깝다. 아주머니 역시 선수들처럼 1년 가까이 돈도 받지 못한 채 밥을 지어주고 있다. 노동에 대한 대가도 받지 못하는데 계속 일한다는 건 일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선수들은 아주머니에게 매번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오히려 선수들에게 미안해 했다. 아주머니 김신자 씨는 “음식 재료가 적어 식단을 꾸리는 것조차 버겁지만 제대로 된 맛난 음식을 먹이지도 못해 내가 더 미안하다”고 했다. 이를 잘 알기에 선수들의 숟가락이 바쁘게 된장찌개 위를 오갔다. 한 선수는 “그 어느 때보다 된장찌개가 더 맛있고 힘이 난다”고 말했다.
찬물을 끼얹은 불청객
서산종합운동장은 고요했다. 아직 경기 시작까지 2시간이 남았기에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본부석에 최감독이 얼굴을 내밀었다. 선수단과 떨어져 시청에 들렀다 오는 바람에 일찌감치 경기장에 도착한 것. 그러나 예정된 시간이 지나도록 서산 선수들이 보이지 않았다.
수원 선수단을 태운 버스가 서산보다 앞서 도착했다. 김대의, 안정환, 김남일 등 선수들의 표정에서 웃음을 찾기 어려웠다. 김대의는 “약체라고 여유를 부리지 않는다. 방심하다가 발목을 잡힐 수 있다”며 조심스러워 했다. 2주일 만에 경기를 치러 실전 감각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차감독은 신중을 기했다. 낮경기에 대비해 건국대와 한낮에 연습경기를 갖기도 했다. 안효연을 빼고는 선수 전원이 쾌조의 컨디션을 유지했다. 믿을 구석은 충분했다.
수원 관계자들은 서산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실력 차가 워낙 컸기 때문에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들 6월 16일 갖는 경남 FC와의 K리그 13라운드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한 관계자는 “우리야 경기만 하고 가면 된다. 오늘 경기를 통해 서산에 축구붐이 조성됐으면 좋겠다”며 “K리그가 재개되는 만큼 부상 선수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후 3시가 다 돼서야 서산 선수단 버스가 경기장에 나타났다. 숙소에서 경기장까지 20k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였으나 오래된 버스가 말썽이었다. 시동이 꺼지기 일쑤다. 운전기사의 실력도 한 원인일지 모른다. 서산에는 운전기사가 없다. 임금이 체불되면서 구단을 떠난 지 오래다. 때문에 최감독의 친구이자 선수 김태엽(27)의 아버지가 버스를 운전하고 있다. 개인사업을 하고 있지만 당장 경기에 뛰어야 하는 선수들을 위해 운전대를 잡고 있다. 그는 “버스를 몰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경기장 라커룸은 30명의 선수들이 들어가기에 비좁았다. 대중목욕탕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사물함과 간이 마루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각자 의자에 앉아 준비해 온 유니폼으로 갈아 입었다. 평소보다 속도가 더뎠다. “껌 좀 씹어라”라는 주장 신현준(24)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선수들이 몰려 들었다. 다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아도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던 최감독이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후회 없는 경기를 하라”고 선수들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경기 시작을 앞두고 불청객이 왔다. 밀린 쌀값 120만 원을 달라는 방앗간 할머니였다. 큰소리를 지르며 최감독에게 “돈 내놓으라”고 독촉했다. 얼마 전 오메가텐더 관계자가 서산에 왔을 때 구입한 한 달 치 쌀값이었다. 오메가텐더 관계자와 연락이 닿지 않으니 경기장을 찾아 최감독에게 매달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 어느 정도 이골이 난 최감독도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됐다. 전쟁터로 막 나서려는 장수는 맥이 풀릴 수밖에 없었다. 신현준은 “기분이 좋을 리 없지 않느냐”며 고개를 숙였다.
첫 골 소원 성취
경기장은 수원의 홈구장을 방불케 했다. 버스 2대와 개인 차량을 이용해 서산을 찾은 수원 서포터스 ‘그랑 블루’ 150여 명은 본부석 오른편에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변함없는 열광적인 응원을 펼쳤다. 서산 시민들은 이 장면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주인과 손님도 바뀌었다. 수원 선수들은 홈경기마냥 킥 오프 전 사인볼을 관중들에게 나눠줬다. 이를 받기 위해 관중들은 몸싸움을 벌였다. 서산 선수들은 그런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연습공도 모자란 서산 선수들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최감독은 경기 전 “수원 선수들이 스타 선수들을 많이 내보냈으면 좋겠다. 지더라도 최고의 팀을 상대로 멋지게 패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기대대로 수원은 김남일, 이관우, 백지훈 등 주축 선수들을 전원 선발 명단에 포함했다. 화려한 수원에 비해 서산 선수들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볼보이로 나선 방일(14, 해미중)은 “더도 말고 1골만 넣었으면 좋겠어요”라고 기도했다.
서산 선수들은 경기 초반부터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뛰었다. 적극적인 태클로 공격을 차단하고 몸을 날리며 수원의 슈팅을 막았다. 잃을 게 없다 보니 못할 것도 없었다. 전반 2분 몸을 풀 때부터 날카로운 슈팅을 선보인 차수권(25)이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날렸다. 골키퍼 박호진의 가슴에 안겼으나 기선을 제압하기에 충분했다. 예상치 못한 서산의 기세에 수원도 잠시 주춤했다.
분위기를 탄 서산은 전반 7분 찾아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곽희주의 핸드볼 반칙으로 아크 서클 정면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골문과의 거리는 20여m에 불과했다. 심호흡을 하던 신현준이 오른발로 감아 찬 볼은 큰 포물선을 그리며 수원 골문 왼쪽 상단으로 빨려 들어갔다.
(위)김신자 씨는 혼자 30인분의 식사를 만들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돈도 받지 못했으나 음식 재료가 부족해 맛난 음식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게 더 마음에 걸린단다.(아래)숙소 내 세면대는 물이 나오지 않아 시커먼 먼지로 덮여 있다.(사진 이상혁) |
골키퍼 박호진이 도저히 손 쓸 수 없는 곳이었다. 신현준은 경기 뒤 “평소에 프리킥 연습을 많이 했다. 차는 순간 느낌이 좋았다”고 했다. 차감독도 “어떤 팀을 상대로도 넣을 수 있는 슈팅이었다”고 칭찬했다. 서산 선수들은 마치 경기에서 승리한 것처럼 하프 라인에 모여 기쁨을 만끽했다. 관중석에서도 이변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그러나 벤치에 앉은 최감독은 웃지 않았다.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뒤따라 올 수원의 파상 공세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또 이른 시간 골이 터진 경기에서 늘 마무리가 좋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차감독 역시 그라운드에 눈길을 고정했다. 이해할 수 있다는 실점이었다. 크게 부담되지 않았기에 뒤지고 있어도 여유가 묻어났다.
두 감독의 계산대로 수원은 이후 경기의 주도권을 쥐고 서산 골문을 향해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서산의 골키퍼 김민진(23)이 멋진 다이빙으로 선방을 펼쳤으나 수원의 공세에 서산 수비진은 점점 흔들렸다. 언젠가 무너질 오래된 성곽 같았다.
프로의 힘
“전술이 쉽다. 다른 팀은 수시로 2,3개의 전술을 주문해 혼동하기 쉬운데 서산에서는 편안하고 빠르게 전술을 익힐 수 있다.” 한 베테랑 선수는 서산의 장점으로 복잡하지 않은 전술을 들었다. 그러나 이는 내셔널리그에서나 통하는 소리다. 최감독은 “기본 전술만 가르친다. 선수들의 전술 이해도가 떨어져 많은 걸 주문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서산의 전술은 유리창처럼 투명했다. 속이 그대로 보였다. 일렬로 늘어선 선수들은 자신이 맡은 지역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으나 간단한 1대1 패스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중앙과 측면을 활용한 수원의 빠른 침투에 속절없이 당했다. 전반 20분 골키퍼의 판단 착오로 김대의에게 허무하게 동점골을 허용하더니 5분 뒤 집중력이 떨어지며 마토에게 역전골을 내줬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골키퍼 김민진은 저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자책감이었다.
김영종은 경기 전 “프로나 실업이나 별 차이 없을 것 같다. 종이 한 장 차이다. 요즘 컨디션이 좋아 찬스만 오면 모두 골로 연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김영종에게 좀처럼 기회는 오지 않았다. 좌우 측면에서 활발하게 뛰어 다녔으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수원의 양상민에게 꽁꽁 묶였다. 김영종은 “한 번만 걸리면 되는데”라고 되새겼으나 90분 내내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는 게 프로의 힘이다. 서산 선수들은 좀처럼 공간을 차지하지 못하며 이렇다 할 반격을 펼치지 못했다.
“한 발만 더 뛰자”는 최감독의 격려도 개인 기량 차가 확연히 드러난 선수들에게는 큰 힘이 되지 못했다. 후반 3분 만에 에두에게 세 번째 골을 내줬다. 수비진의 대인 마크 능력 부족과 골키퍼의 실수였다. 좀처럼 뚫기 힘든 두꺼운 종이 한 장 차이였다. 김영종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경기를 뒤집기 힘들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후반 13분 서동현에게 또 다시 실점하자 서산 선수들은 하나둘씩 주저앉기 시작했다. 승자는 이미 결정됐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몸은 무겁고 슈팅은 골문과는 어이없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코치 2명도 떠나 홀로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던 최감독의 뒷모습은 더욱 쓸쓸했다.
그대로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어떻게 보면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이다. 한경성은 “수원의 패스 게임에 우리가 말려 들었다. 운동량이 더 많다 보니 빨리 체력이 소진됐다”며 “역시 프로는 다르더라. 질 건 예상했다. 많은 걸 배웠지만 아쉬움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고 경기 소감을 밝혔다.
우린 패배자가 아니다
1-4 패배였으나 그 누구도 서산을 패배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도전자였기에 울지 않았다. 오히려 웃었다. 최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최선을 다했기에 (결과를)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다음에 또 기회가 주어지면 4골이 아니라 3골을 허용하겠다”고 말했다. 또 차감독에게 다가가 “1군 선수들을 모두 내보내 고맙다. 서산 시민들에게 좋은 선물이 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애초 서산이나 수원이나 기대했던 것은 승패가 아닌 서산의 축구 열기 조성이었다. 그런 면에서는 만족스러운 결실을 맺었다.
서산의 재정난과 함께 서산시의 축구 열기도 가라 앉았다. 이날 FA컵 경기가 있는 것도 잘 몰랐던 시민들은 “김남일, 이관우가 여기 왜 오냐?”며 의아해 했다. 시내 곳곳에 경기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육쪽마늘축제와 전국노래자랑에 더 큰 관심을 나타냈다. "서산에서 축구는 별로"라는 말과 함께.
그러나 경기장에서만큼은 축구 열기가 뜨거웠다. 경기장을 찾은 서산 시민 400여 명은 ‘내 고향’ 서산을 응원했다. 평일 낮경기에 이만한 관중이 온 것 자체가 대단했다. 경기 초반 이관우, 안정환, 송종국 등 수원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환호와 박수를 치던 서산 시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산시청이 나눠 준 빨간 막대 풍선을 들고 열띤 응원을 펼쳤다. ‘그랑 블루’ 못지 않은 조직적인 응원이었다.
점수차가 크게 벌어졌어도 실망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 넣었다. 어이없는 슈팅을 날려도 “괜찮다” “잘했다”고 외쳤다. 김남일을 보기 위해 친구들과 경기장을 찾은 장솔지(17, 서산여고)는 “서산이 생각보다 잘 한다. 우리 팀이니까 이젠 자주 경기장에 와 서산을 응원하겠다”며 서산 선수들의 이름을 연호했다.
홈구장인 서산종합운동장의 라커룸은 30명의 선수들이 들어가기에 비좁다. 볼품없는 사물함과 간이 마루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사진 이상혁) |
서산 선수들도 힘이 났다. 미래에 대한 희망도 봤다. 박민근은 “오랜만에 많은 관중이 찾아와 기분이 좋았다. 경기력이 좋으면 입소문이 나는 만큼 앞으로 좋은 성적을 거둬 관심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서산의 꿈
경기 종료 휘슬과 함께 꿈만 같았던 수원전은 끝났다. 오로지 축구로 승부했던 서산 선수들도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그라운드에서는 같은 축구 선수였으나 경기장을 빠져 나가는 순간 K리그 최강과 내셔널리그 약체로 나뉘었다.
안정환 등 수원의 스타 선수들을 보기 위해 수원 선수단 버스 앞은 장사진을 이뤘다. K리그 최고 인기 구단답게 서산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언제 또 서산에 올지 모르니 관중이 몰려드는 건 당연했다. ‘그랑 블루’가 인간 띠를 만들어 몰려드는 사람들을 통제한 끝에 수원 선수단 버스가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서산 선수들 주위는 썰렁했다. 선수들 가족만 있었다. 한 선수는 “수원이니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도 빨리 재정이 좋아져 좋은 선수들을 데려오면 나아질 것”이라고 애써 태연해 했으나 그의 두 눈에는 촉촉한 물이 고였다. 이를 눈치챈 부모가 “우리가 먼저 골 넣었잖아. 그게 어디냐”는 위로와 함께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아들의 호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선수들은 서산 시내 목욕탕에서 몸을 씻은 뒤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는 샤워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단체로 씻는 게 불가능했다. 늘 보는 것이지만 경기에 진 뒤 보는 숙소 주위의 건물들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컴퓨터조차 없어 생활은 답답하다. 그래도 오갈 데 없는 그들에게는 정든 집이다.
윤근호(30) 코치가 저녁식사 후 “내일 훈련은 서산농업고에서 한다”고 알렸다. 언제나 그렇듯이 맨땅에서 볼을 차야 하지만 선수 생활을 계속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서산 선수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는 오직 경기장뿐이다. 그 창구는 그들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이다. 열심히 경기를 하다 보면 더 나은 내셔널리그 팀이나 K리그 팀으로 이적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수원전에서 골을 넣은 신현준도 서산을 떠나 프로무대를 누비고 싶다. K리그는 축구선수로서 한 번쯤 가고 싶은 곳이다. 선수단 분위기가 화기애애해 생활하기 편하지만 언제까지 서산에만 있을 수는 없다. 월급을 못 받은 지 1년이 다 돼 간다. 신현준은 “재정적으로 여유만 있다면 서산에 남고 싶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떠날 수밖에 없다. 나나 다른 선수들이나 수원전은 분명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감독 역시 이런 선수들을 나무라기 어렵다. 오히려 없는 지원 속에 뛰어주는 것만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좋은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온다면 서슴없이 보내줄 수밖에 없다. 최감독이 선수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도움이다.
이들이 가장 바라는 일은 서산의 재정 상태가 회복돼 지금처럼 다같이 한 팀에서 뛰는 것이다. 일단 오메가텐더의 지원 문제는 마무리 지은 상태다. 밀린 월급을 지급하는 대신 이르면 이달, 늦어도 연말까지 오메가텐더와 계약을 끝내기로 합의했다. 최감독은 “그동안 지인들을 통해 클럽시스템 전환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 왔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기업들을 상대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재정의 안정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최감독은 이어 “5년 후에는 내셔널리그에서 우승해 K리그로 승격하고 싶다”는 희망을 덧붙였다. 선수들도 “가능하면 최감독 밑에서 함께 (축구를)하겠다”고 말했다. 열악한 현실에 놓여 있으나 서산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꺼져가는 불씨가 더 강한 법이다. 많은 사람이 서산의 어려운 형편을 이해해 도움의 손길을 뻗기를 꿈꾸며 선수들은 오늘도 변함없이 구슬땀을 흘리며 먼지 나는 그라운드를 달리고 있다.
SPORTS2.0 제 56호(발행일 06월 18일) 기사
서산=이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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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메가텐더....... 저거 뭐하는기업이냐.........이제 밀린월급지급한다니 다행이네요. .어서 계약해지하고 다른 제대로된후원업체와 계약하기를..
팀이름에서 오메가나 빼세요~~책임도 안지는데 자기네 회사 이름은 왜넣어~~
오메가 나쁜놈들,,,,,,,,,,,,,,,서산 나중에 케이리그에서 봤으면ㅜㅜ
정말 서산보면 눈물이 난다. 비상2의 주인공은 서산으로...
ㅠㅠ ㅅㅂ 오메가 개쉐이들
오메가 개자식들.... 아 이런구단을 인수해주지 ㅠㅠ
정말 팀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힘내세요...^^
예전 경기후에도 보고 되게 씁쓸했었는데 이렇게 자세하게 선수들 심정까지 쓴거 보니까 정말 눈물이 찔끔나옴..ㅜㅜ 서산 힘내라!! 화이팅~!!!
내고향 서산 ㅜㅜ 미안할따름. 꼭 5년후에 !! 서산에서 대전과의 충청 더비를 볼수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