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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 입이 즐거워지는 제철 여행!
대한민국 구석구석 숨겨진 계절의 맛『계절 밥상 여행』. 여행 작가이자 와인 칼럼니스트,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제철 음식과 정이 묻어나는 사람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저자는 2년 이상 취재 여행을 다니면서 싱싱한 제철 자료를 사용하고 주인의 음식 철학이 담긴 장소들을 선별했으며, 지역 특산물에서부터 지역 먹거리, 뱃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준 시장 국수, 지역에서 생산되는 생물로만 만드는 젓갈 등 재료에서부터 음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의 전통과 역사 이야기 뿐만 아니라 계절을 맞추어 가야만 만날 수 있는 특색 있는 자연 경관도 소개했으며, 직접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주방을 훔쳐보고, 기업을 잇는 다음 세대의 이야기를 듣는 등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풀어냈다. 지역의 풍속과 역사 인심, 전통,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정겨운 사람 이야기를 풍성히 담아낸 여행책이다.
저자 손현주
경향신문 기자. 좋은 테루아에서 자란 포도가 향기로운 포도주로 익어가듯, 건강한 흙과 맑은 바람과 푸른 나무 속으로 돌아가 그윽하게 익어가는 사람이기를 소망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준다는 점에서 여행과 와인을 똑같이 사랑하는 와인 칼럼니스트이자 숲 해설가.《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사람이 그리운 날》을 썼다.
들어가는 말 * 단 하나의 음식
1 | 혼절하는 봄
가볍고 날래게, 꿈꾸는 섬진강 : 전라남도 구례 + 뽀얗고 담백한 재첩국수
동박새는 울었고, 동백은 두 번 핀다더라 : 전라남도 여수 + 새콤달콤 서대회
코 휭휭 풀며 짬뽕 삼매 : 전라북도 김제 + 걸쭉하고 진한 고기짬뽕
꽃버선 닮은 교방음식 : 경상남도 진주 + 고슬고슬 진주비빔밥
속을 콰르르 밀던 밀면, 모진 모슬포야 : 제주특별자치도 + 훌훌 마시는 몸국
* 4월의 천리포수목원 _ 충청남도 태안군
2 | 탄성 터지는 여름
사랑은 숨죽이고 민어는 날뛰어 : 전라남도 신안 증도 + 아삭아삭 꼬들꼬들 민어회
죽도록 그리워 : 경상남도 소매물도 + 쌉싸래한 해삼 요리
장어 뒤집는 느린 네 박자 : 전라북도 고창 + 소금 솔솔 뿌려 고소한 풍천장어
방문 열어보니 선비는 없고 슴슴한 이북냉면 제대로구나 : 경상북도 영주 + 이북냉면의 원형
장미와 똥국 : 전라남도 곡성 + 속 풀리는 다슬기탕
* 태안사에서 띄우는 편지 _ 전라남도 곡성군
3 | 고소한 가을
소곡주 빚는 모정 : 충청남도 서천 + 안 일어나려다 못 일어나는 달큰한 소곡주
분홍 대하는 몸을 뒤틀어 : 충청남도 안면도 + 탁탁 튀어오르는 대하
쏘가리 조림에 말을 잊고 : 충청북도 괴산 + 아는 사람만 찾는 쏘가리찜
매창아 매창아…… 여인처럼 ‘앵기는' 닭볶음탕 : 전라북도 부안 + 달콤 칼칼 닭볶음탕
짜장면은 낭만이다 : 제주특별자치도 마라도 + 땅끝마을 짜장면
* 커피 향은 그윽하여라 _ 서울 인왕스카이웨이
4 | 희고 푸르른 겨울
초승달이 바다 위로 떠오르면 너 돌아온 줄 여길게 : 충청남도 간월도 + 고슬고슬 굴밥과 밥도둑 어리굴젓
술독 제대로 빼는 황태해장국 : 강원도 대관령 + 뜨끈뜨끈 곤드레밥과 황태해장국
과메기 한 점, 춥고 쓸쓸해라 : 경상북도 포항 + 쫀득쫀득 과메기
달디 단 대게의 유혹 : 경상북도 영덕 + 달큰한 대게찜
숨어서 먹는 졸복 : 경상남도 통영 + 시원하고 칼칼한 졸복탕
* 네가 외로울까 봐, 우음도의 노래 _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난 먹기 위해 떠난다!”
떠나서 즐겁고 맛있어서 행복한 방방곡곡 제철 여행
여행 작가이자 와인 칼럼니스트,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활발히 활동하는 지은이가 전국을 휘돌며 맛있는 제철 음식과 정이 뚝뚝 묻어나는 사람 이야기를 담았다. 지은이가 소개하는 밥상에는 지역의 풍속과 역사, 인심, 전통,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정겨운 사람 이야기가 든든히 담겨 있다. 밥상 위에 여행의 진미가 들어 있는 셈이다. 계절마다 지은이가 짚어내는 맛의 동선을 따라가면 몸과 마음, 입이 즐거워지는 세 박자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음식 철학이 담긴 밥상을 찾아가는 맛깔난 여행 에세이
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 마음마저 분주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보고 와야 기억에 남을지, 어디서 무엇을 먹어야 든든할지 계속 궁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현지에서 일어나는 돌발 상황은 순식간에 여행의 분위기를 바꾸고, 여행자를 당황하게 만들기 일쑤다. 큰맘 먹고 찾아간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휴무일이었다든가, 잔뜩 기대하고 갔더니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든가, 식당 주인이 바뀌며 손끝 맛이 달라져 기대에 못 미치는 음식 맛 때문에 즐겁게 시작한 여행이 씁쓸한 기억으로 남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기에 지은이도 여행지와 맛집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신중하게 접근한다.
육중한 카메라를 들이밀고, 뭔가를 수첩에 써대면 주인들은 살짝 긴장하여 조금 더 친절을 베풉니다. 하지만 아무리 유명한 집도 제 기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외면했습니다. 그 기준이 큰 것은 아닙니다. 불친절해도 맛에 깊이나 의미가 있고 정성이 들어간 집은 ‘곱습니다’. 그러나 장사가 잘돼 상업적인 면이 부각되고 주인의 철학이 보이지 않을 때는 펜을 놓았습니다. 물론 보편적으로 거론하려고 노력은 했습니다. 맛을 글로 쓴다는 것은 절대적인 감성 작업입니다. 내 오감이 살아나고, 충실해지고, 머릿속에 각인돼야 합니다. 아직도 갈 길은 멉니다. 다시 들러 포옹하고 맛있는 성찬을 떠벌려야 할 집이 많습니다. _「들어가는 말」에서
그러기에 지은이는 지역에서 나는 싱싱한 제철 재료를 사용하고 주인의 음식 철학이 담긴 장소들을 고르고자 고심했고, 그렇게 2년 이상 취재 여행을 다니면서 매 계절이면 자꾸 기억에 남아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장소를 선별했다. 지은이가 소개하는 음식에는 장어나 대게처럼 지역 특산물로 이미 유명해진 것들도 있고, 30년 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정아분식 도넛이나 수복빵집 같은 지역 먹거리, 뱃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준 시장 국수, 지역에서 생산되는 생물로만 만드는 젓갈, 맛의 근간이 되어주는 소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지은이의 맛깔나는 이야기는 재료에서 음식 사이를 종횡무진 넘나든다.
역사와 풍경, 그리고 사람 냄새
그렇다고 이야기가 음식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는 놓치지 말아야 할 우리의 전통과 역사 이야기가 담겨 있다. 300년 고택의 은은함이 현대까지 잘 이어지는 쌍산재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가 있던 상원사, 백제인들의 마지막 꿈이 남아 있는 개암사, 구한말 지어진 한옥 교회인 금산교회, 운보 김기창 화백의 생가까지 역사적 장소를 두루두루 아우른다.
또한 계절을 맞추어 가야만 만날 수 있는 특색 있는 자연 경관도 소개한다. 끝없이 푸르른 김제의 청보리밭, 땅에 떨어져 한 번 더 핀다는 오동도의 동백꽃, 매년 불칸 목련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있는 천리포수목원, 우리나라 4대 갈밭 중 하나인 서천 갈대밭, 콧속이 달라붙을 정도로 추울 때 탄생한다는 명품 황태를 말리는 덕장까지 대한민국의 사계절 표정도 꼼꼼히 담았다.
그러나 역시 여행에는 사람이 남기 마련이다. 지은이는 직접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주방을 훔쳐보고, 가업을 잇는 다음 세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계절 밥상 여행’ 이야기를 풀어낸다. 때로는 더위 식히는 동네 촌로들 사이에 끼어 농사 걱정, 자식 걱정, 태풍 걱정을 들어주고, 우연히 만난 시골 할아버지 옆에서 함께 깨를 털기도 한다. 염전에선 농부들에게 소금 만드는 이야기를 듣고, 1,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술 소곡주 맛을 이어가는 종갓집 며느리와 한담을 나누기도 한다. 이처럼 이 책에는 사람 냄새 또한 가득하다.
계절마다 만나는 고장의 맛집 + 이야기
1장 ‘혼절하는 봄’ 편에서는 막 땅을 밀고 나오는 새순처럼 풋풋하고 향긋한 음식 이야기가 버무려진다. 섬진강 여행에서는 강에서 나는 재첩을 국수에 말아먹고, 강굴이라 불리는 벚굴을 구우며, 시골장터에서 만난 육회비빔밥 집에서 정성 가득한 집 비빔밥을 먹는다. 사시사철 제철 해산물로 넘치는 여수에서는 오동도를 바라보며 장어탕 훌훌 마시고 서대회에 쑥막걸리를 한잔 걸치는 여유를 느낄 수 있다. 평야가 끝없이 펼쳐지는 김제에서는 돼지고기로 육수를 우려낸 진한 고기짬뽕을 소개하고 있고, 임진왜란 최후의 기억을 가진 도시 진주에서는 교방음식의 진수로 불리는 칠보화반과 진주냉면을 소개한다. 제주에서는 올레길을 걸으며 만난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와 제주도산 흑돼지, 몸국, 물회, 제주간식인 빙떡까지 올레길 이야기와 먹을거리를 촘촘하게 담았다.
2장 ‘탄성 터지는 여름’ 편에서는 전라남도 증도에서 경상북도 영주까지 맛길을 천천히 짚으며 여름 풍경을 따라간다. 대한민국 최대의 젓갈 경매장이기도 한 느린 섬, 신안에서는 민어 예찬론을 펼친다. 꼬들꼬들하고 아삭아삭한 식감으로 최고 인기를 누리는 껍질부터 씹을수록 고소한 부레, 쫄깃한 꼬리, 살집 퉁퉁한 몸통까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놓칠 수 없는 민어 이야기가 펼쳐진다. 둘레길을 걸으며 섬 생태를 확인할 수 있는 소매물도에서는 해녀들이 직접 잡아 올린 해삼에 버무려진 낭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풍천장어와 복분자주, 선운사, 보리밭으로 대표되는 네 가지 코드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고창에선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전통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양반 문화의 원형이 곱게 남아 있는 영주에서 서원답사와 함께, 이제는 흔적으로만 남은 우리나라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의 모습도 둘러볼 수 있다. 전라남도 곡성에서는 섬진강 기차마을과 장미원, 한 그릇 먹고 가야 다섯 밤이 든든하다는 돼지 곱창국을 소개한다.
3장 ‘고소한 가을’ 편에서는 천고마비의 계절답게 풍부한 먹을거리와 풍광 좋은 장소들을 함께 짚어간다. 안 일어나려다 못 일어나는 달큰한 소곡주 이야기가 담겨 있고, 가을이면 미식가들을 부려내는 안면도에는 안 먹으면 한 해가 섭섭한 대하와 안면도의 숨은 명소들이 차근차근 모습을 드러낸다. 안면도는 사람들의 손을 덜 타 모습을 유지하는 해송숲길부터 갈대 우거진 외길까지 모습을 바꿔가며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이기도 하다. 괴산에서는 맛을 아는 사람들만 찾는다는 구수하고 들큰한 쏘가리조림에 얽힌 이야기와 주말 걷기 좋은 산막이 옛길까지 도시 사람들의 팍팍한 일상을 치유하는 등산로를 소개한다. 먹을 것 많기로 소문난 부안에선 절경을 자랑하는 채석강을 바라보며 명물 닭볶음탕과 전라도 밥상, 전복죽을 마주하며 조선시대 명기인 매창의 사랑 이야기가 술잔 너머로 이어진다. 겨울 직전에 만난 마라도에서는 땅끝마을에서 먹는다는 각별한 느낌으로 만나는 짜장면 이야기가 섬 탐험과 함께 펼쳐진다.
4장 ‘희고 푸르른 겨울’ 편에서는 눈발 날리는 강원도부터 포항까지 겨울바다와 겨울 먹을거리를 소개한다. 세종대왕도 즐기셨다는 간월도 어리굴젓을 맛봐야 하고, 추운 겨울, 뜨끈한 국물이 생각날 땐 강원도 황태해장국도 놓칠 수 없다. 포항 사람들의 겨울 별미인 과메기와 구룡포 이야기가 펼쳐지고, 이어지는 영덕에서는 도시 전체에 퍼진 달달한 냄새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대게 찜을 맛봐야 한다. 봄부터 겨울까지 사시사철 맛있는 먹을거리 가득한 통영에서는 ‘다찌집’을 놓치면 후회한다. 통영의 독특한 술 문화인 다찌집에서는 술과 안주를 따로 시키는 것이 아니라 술을 시키면 안주가 따라 나온다. 동네 술꾼들의 아지트인 다찌집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하루이틀로는 부족한 동네기도 하다. 또, 이제는 통영의 대표 간식으로 자리잡은 오사미 꿀빵도 별미다.
각 지역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놓치면 아까운 밥집’ 리스트를 짚어 주며 각 식당이 자랑으로 내놓는 음식을 소개한다. 사진 찍기 좋은 장소와 시간까지 콕 짚어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특히 제주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해, 2박 3일, 4박 5일, 일주일 구성의 걷기 코스를 안내하고 있으며, 머물 곳과 안내책자에 대한 이야기, 걷기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까지 지은이의 경험을 꼭꼭 눌러 담았다. 지역 특산물과 먹을거리, 지역 특색이 잘 살아 있는 공예품, 할머니가 동네 어귀에서 파는 푸성귀까지 그 지역에서 놓치면 서운할 작은 선물 이야기도 담았다. 이런 선물들은 돌아와서 다시 한 번, 여행지의 즐거움과 기억을 온전하게 만들어준다.
추천사
그녀는 소문난 미식가이자 쭉 짜면 푸른 물이 나올 듯한 낭만가다. 나와 죽이 잘 맞았다고 해야 하나. 돌이켜 보니 함께 젓가락 다툼을 한 것이 제법 오래다. 순대며 족발, 과메기, 낙지 등을 함께 맛보며 그녀의 해박한 지식과 정보력에 감탄하곤 했다. 제철 식재료나 주방까지 넘보며 콕 짚어내는 음식과 사람 이야기는 갓 버무린 서대회처럼 기막히게 달다. 그녀의 글 저변에는 뭔가 울컥 그리운 것이 숨어 있다. 읽고 있자면 어디선가 나도 그녀와 마주앉아 국수를 훌훌 마시며 수육 한 접시를 외치고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울렁증이 인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떠나야 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있자면 사계절 어디로 어떻게 떠나야 할지 지도가 그려진다. _허영만(만화가)
언론계 후배 손현주는 어느 날 불현듯 제주올레길을 걸으러 와서 술 한잔 사달라고 떼를 쓰더니 회사일이 재미없어 죽겠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와인에 관한 한 최고의 글쟁이라는 걸 알고 있는지라, “재미없으면 때려치워. 더 멋진 일이 기다릴 거야”라고 주저 없이 사표를 권했다. 그로부터 2년, 미친 듯이 놀러 다니는 것 같더니 음식과 여행을 기막히게 버무린 맛깔나는 책을 출산했다. 사표를 고무하고, 지지하고, 찬동한 내 판단이 맞았던 것 같아서 무척 기쁘다. 이 책에서 언급한 지역의 맛난 음식을 죄다 먹어봐야지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입안 가득 군침이 돈다. _서명숙(여행 작가·(사) 제주올레 이사장)
밥 먹기 전 노란 주전자 하나가 식탁에 놓였다. 몸통을 만져보니 뜨끈하다. 대접에 물처럼 따랐다. 건더기는 하나도 없는 마른 돌새우를 우린 다시물이다. 새우 냄새가 진하지만 국물 맛은 꽤 담백하다. 물처럼 훌훌 마시니 제법 좋다. 비빔밥은 그야말로 돌쇠처럼 우직하고 순박했다. 콩나물, 숙주나물, 배추숙지 등 몇 가지 나물에 숭덩숭덩 썬 육회 몇 점, 그리고 계란 프라이가 곱게 올라 앉았다. 고추장은 달지 않고 구수했다. 누룽지가루와 찹쌀가루를 섞어 주인이 한 달에도 몇 번씩 담그는 고추장은 이 집 맛의 핵심이다. 그러니 이 소박한 재료와 맵지 않은 고추장이 들들 섞여 정말 촌스러운 육회비빔밥이 완성된 것이다. 똑 떨어지게 맵고 고소한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뭐 이런 밋밋한 비빔밥이 다 있나 수저를 의심하게 된다. 기교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퍼 먹을수록 담백하니 좋다. 진정 어머니가 비벼 내오는 비빔밥이 이런 맛 아니었나 싶다. 이 집 육회비빔밥은 특, 곱배기, 보통으로 나뉜다. 나중에 새우 다시가 자꾸 떠오르는 것을 보니 단연 중독성이 높다. _가볍고 날래게, 꿈꾸는 섬진강
진주에 들렀다면 진주냉면을 맛봐야 한다. 평양냉면이 메밀가루 면에 꿩이나 쇠고기 육수, 동치미 국물을 담박하게 쓰는 반면 진주냉면은 해물 육수를 쓴다. 마른멸치, 홍합, 표고버섯, 바지락 등을 우려내 깊고 시원하다.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간이 좀 센 것이 아쉬운데 그럼에도 자꾸만 그릇째 들고 육수를 들이켜게 된다. 여기에 교방문화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화려한 꾸미가 장점이다. 쇠고기 육전, 계란 노른자 지단, 배, 오이 등이 올라간다. 마치 잔칫집 음식처럼 푸근한 냄새가 인상적이며 격식과 색, 정성이 배어 있다.
_꽃버선 닮은 교방음식
미식가들이 즐기는 민어의 정석은 따로 있다. 껍질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다음 바로 찬물에 헹궈 기름장에 찍어 먹는다. 아삭아삭 꼬들꼬들한 식감이 낯설고 통쾌하다. 하지만 이곳 뱃사람들은 배진대기를 제일로 친다. 다음 부위는 쫄깃한 꼬리. 살집이 많은 몸통은 숭덩숭덩 썰어 마지막까지 뒹굴리며 즐기다가 밀가루와 계란을 씌워 전을 부친다. 민어전은 살집이 많고 흰살생선 특유의 감칠맛이 돌아 전 중의 전이다. 찜과 조림, 양념구이 그 어느 하나 뒤떨어지지 않는다. 푹 고아내듯 끓여낸 탕은 아예 고문관이라고 해두자. 이미 내 위장은 더 이상 음식을 허용하지 않는데 뽀얀 국물 위에 동동 뜬 기름의 유혹은 살인적이다. 슬그머니 숟가락이 올라간다. 신음소리 내듯 후루룩 소리를 내며 떠먹으면 뜨거운 국물이 아찔하게 위를 훑고 내려가는데, 이처럼 끝까지 종횡무진 맛있는 것이 민어다. _사랑은 숨죽이고 민어는 날뛰어
숲이 트이고, 회룡대라는 팔각정 전망대가 눈앞에 나타난다. 여기까지 올라가지 않으면 회룡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동그랗게 곡선의 미를 보여주는 회룡포가 누군가 한 획에 휘두른 날랜 붓 자국 같다. 풍수 길지로 회자된다고 하니 그 풍모를 훑어보는 재미가 크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예천은 태백산과 소백산의 남쪽에 위치한 복된 지역”이라고 했다지 않은가. 그렇다면 마을 주변을 서성거리는 산은 태백산이다. 대지를 지휘하듯 구석구석 눈길을 주다 보니 내가 마치 그 시절 풍수를 짚는 도인이라도 된 것처럼 거만함마저 생긴다. 가슴이 쾌청하다. 한때는 귀양처였고 전쟁 통에는 피난처였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외졌다. 고립이다. 산이 둘러싸고, 은어가 지천이라는 냇물은 낙동강 지류 내성천이다. 내성천과 마을을 잇는 구멍 숭숭 뚫린 뿅뿅다리가 실금처럼 보인다. 이 산과 강은 태극 모양으로 조화를 이룬다. 지금은 신록이지만 눈이 내리면,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면 회룡포의 감회는 또 다를 것이다. 노랗게 드러난 모래사장과 물이 어우러져 시각적 대비가 선연하다.
_방문 열어보니 선비는 없고 슴슴한 이북냉면 제대로구나
부안 토박이 작가에게 아무도 모르는 부안의 특별한 맛을 요청했더니 뜬금없이 개암사 아래에 있는 닭볶음탕 집을 가란다. 난감했다. 아무리 맛있기로서니 바다가 인접한 부안까지 와서 그 흔한 닭볶음탕을 먹긴 좀 그렇지 않은가. 그쪽을 여행하면 으레 백합죽이나 바지락죽을 먹어야 하고 전라도권이니 한 상 정식도 있거니와 아니면 해물칼국수라도 권해야 옳은 것 아닌가. 하다못해 양파김치도 오삼불고기도 생각나는데 말이다. 게다가 하필 산사 바로 아래에 그 집이 있다는 것이다. 동행자는 비 맞은 처사 담 모퉁이 돌아가는 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왜 하필 맛있는 고깃집들은 모두 절집 아래 몰려 있는 거야?”
_매창아 매창아…… 여인처럼 ‘앵기는' 닭볶음탕
첫댓글 손현주 지음 / 출판사 앨리스 | 2012.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