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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벨 소리가 잦아지더니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한산하던 대기실은 이제 서있는 자리조차 마땅치 않을 정도로 꽉찼다. 자리를 못잡은 이들은 계단으로 밀려났다.
어떻게든 빨리 일자리를 구해 뜨고 싶은 사람들은 앞쪽으로 몰려들어 직원들을 재촉해보기도 하고 자기의 등록증을 잘보이는 쪽으로 옮겨 놓아보기도 했다.
"최용식(가명)씨, 박영춘(가명)씨, 김기동(가명)씨 나오세요!",
"안전화 없는 사람들은 가면 안돼!", "김씨는 팔힘 좋아?
리어카 끌 사람이 필요하다는데 가봐."
호명된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남겨진 이들의 얼굴엔 초조한 기색이 역력해진다.
잠시 후 직원의 "시멘트 일 할 수 있는 사람 없어요?" 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세명이
동시에 번쩍 손을 들었다. 하지만 한 명 만이 일거리를 얻어 나갔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책상위에 가득 널려있던 인력 송출표가 어느새 모두 없어지고
대기실에는 20여명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이들은 이제
언제 올지 모르는 인력요청 전화를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다.
건설경기침체로 일용직 노동자들의 생계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국내 건설 수주액은 17조 5844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7.2%가 감소했으며 1분기도 14.2%가 감소했다.
삼성인력개발 박판준 대표는 "경기 침체로 일자리는 줄었는데, 일용직을 찾는 사람들은
오히려 늘었다"며 "우리나라 사람 일당의 반밖에 받지 않는 외국인 노동자들 때문에
국내 노동자들이 일용직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박대표는 이어 "일자리를 수주를 받기 위한 경쟁도 매우 심해졌다"며 "작년까지만 해도 안전장비를 현장에서 마련해 주었고, 또 그것이 원칙이지만 지금은 일하는 사람이 알아서
들고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같은 시간 서울 종로구 창신2동 창신약국 앞에는 100 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노점상에서 산 커피를 한 잔씩 들고 붉은 가로등 밑에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하면서도 초초한듯 연신 시계를 봤다. 일부 사람들은 인근 대포집에 들어가 안주도 없이 막걸리를 들이키고 있었다.
30여분이 지나자 모여 있던 사람들 중 '오야지'(일본에서 유래한 은어로 건설현장에서
인부를 모으는 책임자란 뜻)로 불리는 몇 사람이 몇몇 근로자들을 데리고 나갔다.
남아 있던 사람들은 일 나가는 동료들에게 "잘 나가네"하며 부러움 어린 시선을 보냈다.
18 년간 '공구리공’(공사 현장에서 콘크리트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 일했다는 김모(40)씨는 기자가 다가가자 “일 없으니 다른데 가서 알아보라"며 손사레를 쳤다.
김씨는 “그 힘들었던 IMF외환위기 시기도 잘 극복하고 견뎠는데 '노가다'생활 18년만에
이렇게 일이 없어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며 “전날 인력 책임자로부터 연락을 받지 않는
이상 당일 인력시장에서 일을 나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예전에는 한달에 20일 이상 일을 할 수 있어 근근히 먹고 살만했는데 지난 8월부터는 경력자인 나도 한 달에 열흘 밖에 일을 못 나간다"며 "애들 학원도 보내고 비수기인
겨울을 대비해 저축도 해야 되는데 벌이가 없으니 카드빚을 져 신용불량자가 되기 직전"이라며 한숨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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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가 되자 선택을 받지 못해 남아있는 사람들은 십여 명. 이들은 시장 근처 건물 옆에 모여 앉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35년간 창신동 인력시장을 찾았다는
강모(59)씨는 "혹시 눈먼 사람이라도 있으면 날 데려가주지 않을까 기다리는 것"이라며
"자식 놈이 대학생인데 대출받은 학자금 갚을 생각에 막막하다"고 말했다.
강씨는 또 "예전에는 이렇게 남은 사람들끼리 막걸리도 한잔 하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막걸리 사먹을 돈도 없어 그냥 집에 들어가 벽만 바라보는 일이 많다"며 "정말 능력 좋고
기술 좋은 사람도 일하기 힘든 요즘에 나 같이 나이 먹은 사람에게는 일도 잘 안돌아오니
제발 경제 좋아지게 내가 한말 좀 청와대에 전해달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또다시 10여분이 지나자 남은 이들도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큰 가방을 어깨에 버겁게 메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이들이 떠난 자리에는 담뱃재와 빈 종이컵만 쓸쓸히 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