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세기 가격혁명에 관하여서는 J.해밀턴 백작(Earl J. Hamilton)의 학설이 유명하다. 그는 아메키라 대륙의 금은유입이 유럽에서의 물가에 영향력을 끼쳐 가격혁명을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하였는데, 구체적으로 1503~1597년 안달루시아의 물가상승은 금은 수입량이 급증한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 그리고 1600년 이후에 가격하락은 금은유입량 감소기와 일치한다는 점을 실증사례로 지적하였다.
이론적으로 해밀턴은 피셔의 화폐수량설에 입각하여 이론을 전개했다. 피셔의 화폐수량설 도식은 아래와 같다.
PQ = MV
p는 Price 즉 가격, Q는 Quantity 즉 재화와 용역의 양, M은 Money 화폐의 양, V는 Velocity로 화폐유통속도를 나타낸다. 이식을 다시 설명하면, 재화와 용역의 양에 가격을 곱한 값은 화폐의 유통속도와 화폐의 양을 곱한것과 같다는 것을 나타낸다. 해밀턴은 여기서 V와 Q는 일정한 가운데 신대륙에서 금은의 유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M(화폐량)이 변화하여 P(가격)가 증가하였음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잉그리드 함마르스트룀(Docent Ingrid Hammarstrom)은 M보다는 경제활동의 증가에 해당하는 Q와 V의 변화가 가격 상승을 초래하였다고 주장했다. 즉, 이 시기 인구의 증가 및 상공업 발전을 비롯한 경제성장에 의해 Q와 V가 변화 하였으므로 Q와 V를 고정적인 것으로 본 해밀턴의 주장은 재고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었다. 또한 실증적으로 Y.S. 브레너(Y.S. Brenner)는 이미 아메리카 금은이 유입되기 전에 이미 물가가 상승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여 함마르스트룀의 주장을 뒷받침 하였다.
그밖에 호르헤 나달(Nadal)은 해밀턴이 자기의 주장에 부합하는 수치자료들만 편중적으로 취사선택하였다는 점을 비판하였고, 존 네프(John U. Nef)는 실물로 표시된 가격의 변화추이가 금은으로 표시된 가격의 상승폭보다 적다는 점을 발견하여 금은표시 가격지표만을 활용한 해밀턴의 주장은 가격상승을 과장하였음을 밝혔다.
그렇다면 신대륙으로부터의 금은 유입이 낳은 진정한 경제적 영향은 무엇인가? 카를로 치폴라(Carlo M. Cipolla)는 금은의 유입이 실질가격의 상승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니라 이자율을 하락시켰다고 주장하였다. 중세 말기에 이자율은 4~5%, 1520-70년에는 5.5%였으나 신대륙으로부터 금은이 급격히 유입되던 1570-1620년에는 평균 2%로 2배이상 급격히 떨어져 금은이 화폐의 가치를 하락시켰다는 것이다.
※. 본문은 아래 출처의 책을 요약하였음.
Immanuel Wallerstein 지음 & 나종일 외 옮김,「근대세계체제Ⅰ」, 까치, 1999, pp.114-127
첫댓글 흠.. 여기 있는 내용 만으로는 어떤 논지에서 그리 주장하는지 정확히 이해가 안되는데요. 반대자들도 화폐수량에 대한 공식은 부정하지 않은 거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재화와 용역(Q)의 증가는 당연히 P의 하락을 의미하는게 아닌가요? 여기서 문제는 Price의 값이 증가했다는건데, 그렇다면 총재화는 늘어났지만 그 이상으로 유통속도가 가속화되었다는 말이 되는데(그도 아니면 아예 총재화가 줄어들었거나) 여기서는 그에 대해 잘 지적이 안된거 같군요.
위에 제시한 책에서 재화(Q)의 증가보다 수요증대로 인한 유통속도(V)의 증가폭이 더 넓었다는 이유를 각주와 본문에 부분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재화와 유통속도에 대한 이와 같은 문제는 '식량' 특히 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인구증가 및 식량수요의 증가로 유통속도(V)가 급격히 증가하였는데 비해 농업생산량은 비교적 완만한 상승세여서 재화의 상대적 감소가 일어났고 이것이 가격혁명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상공업의 발달로 운송수단으로써 필요한 말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 말을 공급할 목초지확보를 위해 곡물경작지 확대를 지체 및 저지시켜서 곡물생산량 증가가 수요 및 유통속도증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체 및 하락하였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