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ᆞ12사태 때 허삼수는 총을 쏘았고
나는 택시운전하고 있었다
한남동에서 이태원 거쳐 잠수대교를 건너는데
헌병이 카빈총 들고 한 가운데서 가로 막고 있다
서빙고동에 갇힌 정승화총장의 구출 위한
진압군 진입을 막기 위한 바리게이트였다
저녁 9시 쯤에서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잠수교에
갇혀있었다
정말 재수 더럽게 없다고 자탄했다
잠수대교만 건넜으면 반포에 택시손님 득시글해서 일당은 편하게 벌 수 있었을텐데, 간발의
시간에 갇혀있으니 신세 한탄은 절로 나온다
나는 택시 하면서 합승 못하고 승차거부 못하니
항상 수입이 남의 절반이었다
남들이 하루 만원 이상 벌 때,난 5천원 벌었다
생활이 말이 아니다
그래서 세월 지나도 그 12.12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꼭 10년 후에 허삼수를 만난다
정치만화로 유명세 탄 내게 민정당 사무국에서
연락이 왔다
당시 나는 만화 그리기 너무 바빠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판에 민정당 사무총장이 보자 한다
,심화백 허삼수 만화 그려 주시오 고료는 후하게 주겠소,였다
허삼수는 5공 출발의 1등 공신이다
그러나 총질한 건맨이기에 아무 요직도 맡지 못
하고 미국에 은둔해 있다가, 노태우가 대통령 당선되면서 다시 전면에 나서고자 함이다
숨어 있었기에 그는 ,신비한 인물,이었다
신비를 노출시킬 참이었다
그가 당선되면 당 사무총장을 맡길 참이었다
노태우의 총애를 받고있는 그를 무조건 당선시켜야 하는 특명이 내려져 있었다
그 첫째가 만화로 통하여 허삼수의 총잡이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오, 그몫이 내게 떨어졌다
,원고료는 후하게 주겠소,
10년 전에 택시운전 일당을 뺏긴 내게 거액의
고료를 주겠다는 것이다
비행기 타고 김해공항 거쳐 허삼수를 만났다
차돌같았다 아주 단단해 보인다
,불같은 성격이다, 이건 그의 아내 말이다
허삼수의 아내는 지성석적이고 참하게 보인다
난 속으로
,저런 자가 마누라는 잘 얻는다,고 생각했다
허삼수와 하룻밤 보내고 머릿 속에 구상을 짠다
1주일 작업으로 작품을 끝냈다
당에선 대만족이다
,역시 심화백이야!,
내게 보너스까지 줬다
그러나 허삼수는 떨어졌다
노무현에게 떨어졌다
김영삼의 장풍이 있었다
부산 바닥에 김영삼이 한 번 스쳐가면 민정당이
아무리 돈을 퍼부어도 무용지물이다
88년 총선에서의 김영삼의 장풍은 태풍이었다
허삼수가 쓴 돈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맥없이 떨어졌다
고료 많이 받은 나만 겸연쩍다
첫댓글 ㅎㅎㅎ
선금 받았지요?
후불이면 뻘얼쭘 했을뻔 ㅎ
다행입니다.
만화만 보면 대성공 같은데 상대가 너무 쎈거죠.
노무현도 무명 재야인사였는데,
김영삼 바람이 워낙 강해서 당선됐습니다
그옛날 역사를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주시니선생님은 돈많이 받아도 괜찮아요, 뻘얼쭘은
그들 몫인 듯~~^^ㅎㅎ
렐라 렐라 렐라. ...
이상 흥겨운 운률이었습니다
허삼수,허화평 양허씨 유명했지요.
그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군요.
예, 당시엔 허삼수 보고싶어하는 사람
참 많았습니다
12 12 사태 때 저는 군에서 재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심 선생님 처럼 공병대 근무 하였습니다.
재대 후 첫 직장을 잡으면서 5 공이 돌아 가는 것을 곁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공병대시절,
저는 서울공항 작업에 자주 동원 됐습니다
삼허라 했지요
허삼수 허화평 허문도
허삼수는
중앙초등학교 선배였어요
정의화 국회의장도
선배입지요
그러하시군요
88총선때는 부산 바닥 취재하느라
살다시피했습니다
허트리오 중의 한사람
허삼수
당시엔 진짜루 신비의 사나이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거 이래도 되나 하고 울분이라도 토햇 으나 이젠 허 참 허 참 하곤 웃네요
당시 동구에서 투표한 일인입니다.
그 당시에는 03이면 안되는것이 없었지요.
저 역시 열팬이었구요...ㅎㅎ
군사 쿠데타.
그 역사의 시간에
무려 5시간을
잠수대교 갇혀 있으셨군요.
10년이 흐른 후,
그 사건의 ㅈ 역 중 한 사람의
만화를 그려 경제적 (?) 보상을 받으신 아이러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마지막 두 문장.
압권입니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