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땠어? 잘 봤어?”
또 다시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어 보는 이소련.
시험도 끝났는데 이게 뭔 소리냐고?
중간 고사로 어느 정도 공부가 됐다고 생각한 이소련은 좀 더 심화 학습으로 한 달 정도 간 맹훈련을 가한 다음에 전학을 감행했다. 보통 애들 잡아 놓고 하면 이소련 녀석은 워낙 잘 가르치는 데다가 아무리 어렵다 해도 초등 3학년 기준이므로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우리야 워낙 꼴통이었다 보니 기초도 부실하고 심화 쪽으론 들어가 본 적도 없고 해서 말 그대로 공부를 숨 쉬듯이 했다.(박수현네 부모님이 그 모습을 보고 뭔가 무진장 뿌듯해하던 것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아……)
“나야 뭐, 어려웠긴 해도 일단 잘 봤지. 초등학교 시험을 그 정도 뒤지도록 공부하고도 못 보면 그건 진짜 꼴통, 대가리가 단세포로 이루어진 새끼다.”
“친구, 그럼 난 뭐란 말인가?”
안쓰러울 정도로 검은 오오라를 뿜어대는 박수현.
지금쯤이면 알겠지만, 이 녀석은 생긴 건 장래 서울 대 생을 꿈꾸는 녀석 같이 생겨가지고, 머리는 좋긴 해도 생긴 것만큼은 좋진 못 하고 성적은 이소련이 가르치기 전까진 바닥을 기었다.
저번 시험이야 아무래도 일반 초등학교, 그것도 겨우 3학년 문제밖에 안 되는데 진짜 뒤지도록―사실이다. 하는 동안 진짜 죽을 뻔했다―공부해서 잘 보았지만, 이번 시험은 상당히 어려웠다.
“……에……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야. 그래도 학교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시험을 90점 정도까지 맞거나 그럴 필요는 없어, 시험 수준이 워낙 높다 보니까.”
“그럼 나도 희망이 있는 거야?”
이번엔 안 어울리게 박수현이 눈을 빛낸다.
“응, 확신할게. 수현이 수준 정도면 끝 반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와하하하하하하하! 그 정도 공부해 가지고 끝 반까지밖에 못 드냐! 병신! 꼴통! 머저리!”
“우, 우와아아아앗! 저기 입학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모범생인 걸로 알고 있다네 친구! 자네 뭔 견(犬)소리를 짓거리는겐가!”
그러니까 초등학교 문제를 그 정도 뒤지도록 공부하고서 끝 반에 드는 게 꼴통이라니까?
면접까지 끝마치고, 암울하게도 나와 이소련은 일등반인 A반으로 떨어지고 박수현은 혼자 꼴등반인 G반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그야말로 박수현 혼자 제일 먼 반이 되었다.
뭐, 그래도 고등학교에 가면 이 걱정이 줄어드는 게, 성아 고등학교도 반 수준을 나누긴 하지만 과, 그러니까 무슨 무슨 계, 이런 식으로 있다 보니 과 하나 당 반이 두 개에서 세 개, 심하면 한 개까지밖에 없는 고로 반이 멀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그건 성아 고등학교까지 붙을 수 있을 때 이야기이지만.
내일은 등교일이다. 글쎄, 막상 대가리 터지도록 공부해서 붙고나니 별 다른 감흥이 없다. 오히려 당연한 거 아니냐는 건방진 생각 정도가 전부다.
오늘도 밤 산책을 한다. 박수현 녀석은 공부를 너무 많이해서 일주일 동안 취침으로 뇌의 에너지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며칠째 퍼질러 자고 있기 때문에 나 혼자다.
아아, 어째 만사가 너무 쉽게 돌아간다. 전에 내가 말한 적 있나?
하나가 쉽게 되면, 다른 하나는 지랄 맞게도 더럽게 된다고.
이상해 이상해.
요즘 들어 너무 일이 쉽게 돌아간다. 내 성격이 드럽다 보니 따돌림을 받는 건지 이쪽을 겁내서 못 오고 무시하는 건지 모를 정도여서 따돌림을 받던 말던 상관도 없고, 시험은 완전 상위권에 명문 사립 학교 입학까지, 이건 어딘가 이상해.
뭔가 좋은 일이 터질 수록 안 좋은 건 지랄 맞게도 더럽게 된다는 내 원칙에 따르면, 이때쯤이면 개 그지 같은 일 하나 터져 줘야 하는데?
“여, 이유리.”
갑자기 날 부르는 소리. 거기에 반응해 돌아 보니 우리 학교, 아니, 얼마 전까지 우리 학교의 날라리 패거리.(물론 여자만)
확실히, 저 녀석들을 산책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개 그지 같은 일이군.
근데…… 어쩐지 개체수가 는 것 같다?
뭐랄까,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잔뜩 있는 게…… 아아, 불길해라.
“왠지 개체수가 는 것 같다? 거기 있는 생물체들은 뉘슈? 적어도 중학생은 되어 보이는데?”
“야, 소문대로 좆나게 건방지네.”
“따라와 개새끼야.”
씨발, 이번엔 진짜 좆 됐네.
“이 씨발 새끼가!”
퍽!
팔에 야구 방망이를 제대로 맞았다.
이걸로 몇 대나 맞았는지 모르겠다. 죽도록 엊어 터지다 보니 정신조차 혼미해진다.
아아, 그렇다. 전부터 날 제대로 패려고 어디 아는 선배들이란 선배들은 죄다 불러 모은 거다. 어째 조용하다 했다. 싸움 한 번도 안 하고 너무 조용하다 했다.
하필, 오늘이 그 날일 줄이야.
이런 녀석들한테 내가 맨날 밤 산책을 즐겨 한다는 걸 알게 한 게 실수였다.
“아하하하하, 개 썅!”
떨어졌던 나이프를 다시 주워 상대의 팔에 박는다.
“아아아아아아악!”
“미친 새끼! 야 괜찮아?”
”가만히 쳐 맞으란 말야 씹창년아!”
다시 또 야구 배트가 날아들고 나이프는 손을 벗어난다.
아파.
이런 건 싫어.
내가 뭘 잘못한 건데?
내가 왜 맞아야 하는 거지?
분해.
이대로 계속 당하기만 할 거야?
언제까지 찌그러져 살 거야?
이게 다야?
이게 고작 나의 전부야?
전부냐고!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퍽!
“후와아아아아아앙! 미안! 미안해!”
지금, 이 집에 와서 울고 있는 건 이소련.
말하지 말라고 했더니만 박수현이 전화를 했나 보다.
학교는 병결 처리했고, 부상은 단순한 타박상 정도가 다여서 입원까지는 가지 않았다. 의도한 건지 뽀록인지는 몰라도 개 패듯이 팼는데 뼈 하나 안 부러지다니, 정말 대단하긴 대단하다.
뭐,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옛날 아범이 살아 있을 때 진짜 맨날 개 패듯이 맞아서 이런 덴 이골이 날 정도로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뼈 하나 부러졌다고 호들갑 떨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단 신고는 해 놓았지만 선배라 부를 수 있는 측은 얼굴도 모르고, 나머지는 너무 어려서 법 처리도 제대로 안 되다 보니 이거 뭐, 비록 나중에 사회 생활 하는데 지장은 있겠지만 막상 가해자는 유치장도 안 들어 갈 거다.
그나저나, 그렇게 죽을 고생해서 입학했는데 입학 날 학교 구경도 못 하다니, 쩝.
“어이, 왜 울고 그래.”
“흑, 그래도, 흑, 나 때문이잖아, 후에에에에에에엥!”
나 참, 정말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다.
상황 같아선 조금이라도 원망을 해 줘야 할 것 같은데,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다.
아마 내가 녀석이 맘에 든 이유는, 이 순수한 마음 때문이 아닐까?
아아, 유치해라. 이건 뭐 초딩 만화도 아니고.
아, 나 초딩이었지.
“야, 왜 울고 그래.”
이소련이 울리는 걸 억지로 말리는 박수현. 입을 틀어막는 둥 말리는 건지 고문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소련은 눈물을 멈추었다.
“그나저나 너, 아무리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지만, 어쨌든 이걸로 날라리들과의 관계가 완결되었으니 어찌 보면 잘 된 건데 또 그쪽에 발을 들일 셈이야?”
아, 지금 뭐하고 있느냐면 싸이월드 같은 곳에서 온갖 일진들의 홈피를 전부 뒤져 보고 있다. 이 중에서 제일 제대로 된 녀석이랑 일촌을 하고 서서히 접근해야 하는데, 누구로 정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 설마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냐? 저번 게 좀 더 심한 것뿐이지, 폭행이라면 계속될걸? 그걸 막으려면 뿌리부터 통째로 뽑아야지.”
“그, 그런가?”
“하지만 유리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어이, 그럼 무슨 방법이 있는지 어디 둘이서 상의해서 나한테 알려 줘 봐.”
“…….”
“…….”
나 참, 별 다른 방법도 없으면서.
휴, 일단 중요한 건 한 사람만 집중 공략해야 한다는 거다. 괜히 많은 사람에게 접근했다가 적대시하는 관계에 얽힐 경우 친분이 쌓이긴 어렵다. 무엇보다 일진이란 것의 특성상, 짱 먹는 인간 한 사람이랑만 친해지면 주위 패거리들과도 친해지고, 서로 친한 다른 짱과도 친해지기 때문에 충분히 관계는 성립된다.
아, 왜 구지 일진을 고집하냐고?
생각을 해 봐라. 주변 선배 녀석들은 다 그쪽 편인데 거기서 뭘 구한단 말인가?
그 수준에서 구할 수 없다면, 더 윗 물에서 놀아 줘야지.
딸깍.
이걸로 몇 번째더라.
기억도 안 난다. 홈피란 홈피는 죄다 들어가 보고……
어?
정동현…….
홈피를 누르자마자 뜨는 건 거의 숭배시하는 듯한 방문글들.
다른 곳을 들어가 봐도 일진 짱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거의 조직 보스나 신이라도 대하는 듯한 태도다.
어쨌든 이 일진의 힘이나 영향력이라면 전혀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여기 있는 이 짱이랑만 적당히 친해지면 그 다음부터는 쾌속 행진이다. 이런 일진일 경우는 말 그대로 대장 말이 곧 법률일 것이다.
“찾았다, 이용 가치 있는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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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유리야. 너 초등학생 맞니?
아, 유리는 원래 어머니는 바람 피다 집 나가고, 집에서 술에 찌들어 맨날 자기를 개 패듯이 패는 아버지와 같이 지냈기 때문에 남들보다 정신적 성장이 좀 빠른 캐릭터입니다.
아무래도 반항아적 성향이 강하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