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려타곤(懶驢駞坤)-34
"쓸만한 쫄다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구만---."
떨어지는 비로 인해 온몸이 홀딱 젖어버린 나이 사십대의 포졸 이휘는 원망
스러운 듯 검은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벌써 사흘째 집에는 돌아갈 꿈도 꾸지
못한 채 시체들을 찾아 등봉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했다. 한낮 포졸의 능
력으로 무림인들의 싸움에 끼어 들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싸움이 벌어
졌다는 말을 들어도 그곳에는 절대로 갈 수 없었다. 누구에게나 목숨은 하나뿐
인 것이다. 싸움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시체를 회수하는 일만 하면 그 자신의
일은 그만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부하가 하나 생겼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무림인들의 싸움이 그렇듯이 온전하게 죽어 있는 시체가 거의 없었던 것이
다.
팔 다리가 제 멋대로 몸에서 떨어져 나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것은 그래
도 양호한 것이었다. 얼굴이 완전히 피떡이 되어 뭉개진 시체도 있었고, 몸이
세로로 쪼개져 창자가 길바닥에 쏟아져 있는 것도 있었다. 또 어떤 것은 몸이
산산이 부서져서 여기저기 떨어져나간 살점들을 주어 모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
다.
처음에 그런 시체들을 보았을 때 대부분의 포졸들이 먹은 것을 모두 토해내
고 구역질을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살인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삼개월 전부터였다. 그리고 이제 포졸들은 온갖 형태로 죽어버린
시체들 옆에서 식사도 할 수 있는 상태로 변해 버린 상태였다. 하도 잔인하게
죽어버린 시체를 보는 통에 모두가 무감각해진 것이다. 그래도 이 일이 지겨운
일임에는 부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밤잠 설쳐가며 이렇게 장마비가 쏟아지는
거리를 넝마로 변해버린 시체를 들고 관아로 돌아가는 길의 포졸 이현은 자신
을 대신해서 시체를 줍고 관아로 옮길 부하가 필요했다.
등봉현의 무림인들의 전쟁터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이 일대의 불량배들 역시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모두가 몸을 사리고 있었다. 날마다 시체가 생기
는 일을 제외한다면 등봉현에서는 어떤 사건도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 이 포졸, 이번에 자네가 들어!"
한참 딴 생각을 하고 있던 이휘는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뒤로 고개를 돌렸
다. 왕발이 왕종이 자신에게 넝마 자루를 내밀고 있었다.
" 이봐, 이번 시체는 아주 가볍잖아? 이왕 자네가 들었으니 관아까지 들고
가지 그래? 옷을 피로 더럽히는 일은 자네 혼자만 족하지 않나? 지금 내 마누
라가 얼마나 으르렁거리는 지 알아? 옷이 모두 피로 물들어서 더 이상 갈아입
을 옷도 없단 말이세."
"자네만 그런 줄 아나? 나 역시 지긋지긋해서---, 젠장! 포졸 일도 때려치던
지 해야지 원! 나도 갈아입을 관복이 남아 있지 않다고!"
"이보게, 오늘은 자네가 나르고 다음엔 내가 나르고, 그렇게 번갈아 가며 나
르면 그래도 조금은 빨랫감을 줄일게 아닌가? 마누라 바가지 듣는 것도 우리
둘 다 줄 테고-----."
"그거 괜찮은 생각이로군. 우리가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괜찮은 생각이지? 하여튼, 지금 시체는 팔 하나하고 귀 한 짝만 건진 거니
엄청 가볍잖아? 자네가 땡 잡은 거지."
"어떤 무림인인지---, 하려면 제대로 할 것이지----. 화골산을 뿌려 시체를
녹여 없애려면 제대로 없애야 할 거 아냐?"
"그러게 말일세. 이 빗속에 이 밤중에 우리가 잠도 못 자게 하고 비를 이렇
게 움직이게 하다니----."
"다른 건 다 관두고 시체처리만이라도 제대로 하면 얼마나 좋은가? 무림인들
싸움에 우리가 끼어 들 일도 없고, 그저 시체가 어디서 발견됐다는 보고만 올
리기만 하면 되지만--."
"내 말이 그 말이야.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난리를 치는 것까지는 좋다구,
왜 사후처리는 우리가 해야 하냔 말이야? 자기들이 만든 시체도 자기들이 처리
해야지---."
두 포졸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부지런히 관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장마로 인해 장강(長江)의 물은 불어나고 거친 탁류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칠호는 우의를 입고 삿갓을 쓴 채 그런 장강을 쳐다보며 멍하니 언덕 위에
앉아있었다. 그러나 그의 머리는 맹렬하게 등봉현으로 들어갈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곳은 지금 용담호혈로 변해 있었고, 보통의 방법으로는 절대로 들어
갈 방법이 없는 것이다. 무턱대고 들어 갔다간 시체로 변해 버릴 뿐이라는 것
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무사히 그 안으로 잠입할 방법을 궁리해야만
했다.
염혼이 말한 그 꼬마에게 먹여야 할 사탕이 보통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
했다. 누구도 눈치 못 채게 사탕을 아이에게 먹여야 하는 것이다. 사탕을 먹이
라는 말만을 해주고 사탕은 받지도 못한 칠호였다. 일단은 아이에게 자신이 접
근해 있어야만 그 사탕이라는 것을 줄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귀한 것이 아니
라면 그 아이에게 먹이려 들지도 않을 테고, 자신에게 일을 맡기면서 주지 않
을 이유가 없었다.
칠호는 그 꼬마에 대한 것은 모조리 알게 된 상태였다. 마교에서 그 아이와
관계되는 것이라면 낱낱이 조사해서 그 자료를 칠호에게 전해 주었던 것이다.
칠호는 다시 한번 꼼꼼하게 자신이 취할 행동을 머리 속으로 하나하나 점검
해 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계획하는 것은 정파무림과 아이를 속이는 일에 국한
된 것이 아니었다. 마교까지도 속여야 하는 일이기에 무림 전체를 속여야 한다
고 봐도 좋을 일이었다. 때문에 손톱만큼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되었다.
'쓰레기---, 나 같은 삼류 인생도 결코 쓰레기만으로 머물고만 있지 않음을
보여주마----.'
모든 계획을 다시 점검한 칠호는 마음속으로 그런 중얼거림을 토해내며 언덕
에서 일어났다.
살인 사건이 끊이지 않고 벌어지고 있는 등봉현의 포졸들의 얼굴 위로 기쁨
에 찬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일 격무로 시달리고 있는 그들에게 희소식
이 날아온 것이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우리도 편해지겠구먼----."
"이번에 오는 인원이 몇이라고?"
"이 십 명이야. 말이 이 십 명이지, 지금 같은 때 이 십 명이라면---, 역시
방 대인은 능력 있는 현령이야."
"모두들 그 동안 고생 많았네. 이제 우리도 좀 편해지겠는걸---."
"변경의 수비대에서 오는 병졸들이니--, 무림인들도 함부로 날뛰지 못하겠
지?"
"그러게---, 무림인들이라고 해도 한 수 접어줄 정도의 실력을 지닌 병졸들
이라니까, 하지만 우리한테 또 다른 상전이 생기는 게 아닐까? 그 정도의 실력
을 갖춘 병졸들이라면 성격이 어떨지---?"
기대와 흥분으로 등봉현의 포졸들은 잔뜩 들떠 있었다. 어찌 되었건 그들이
온다면 지금보다는 일거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었기에, 포졸들
은 모두가 기대에 부풀어올라 있었다.
소년은 정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고 오늘도 또 전혀 모르는 이상한 노인네가
찾아와서 소년에게 단전이 어떻고 검이 어떻고 하는 말을 늘어놓고 있었지만
소년은 전혀 노인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열심히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은 소년의 누나인 방화련이었다.
" 검을 단지 손으로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검이든 도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발놀림으로 적을 막고 적을 피하고 적을 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검을 배움
에 있어서 보법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지. 소구야, 검은 팔의 동작이 둘이라
면 발이 여덟인 것이다."
화산파에서 소구를 찾아온 나이 지긋한 늙은 도사는 그런 말을 하면서 딴청
을 피고 있는 아이를 쳐다보았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가르치려는 아이는 멍하
니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아이가 무공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아무 말
도 들으려하지 않는 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은 상태인 풍호자였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딴청을 피운다해도 그 아이의 귀가 고장난 것이 아니고 아이의 귀로
지금 하는 이야기는 계속 들리고 있을 테니--. 이 아이의 암기력이 어느 정도
인지 들은 풍호자는 비록 아이가 딴청을 피우고 있다해도, 자신이 하는 이야기
는 아이의 머리 속에 모두 저장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이가 듣거나 말거나 풍호자는 계속 검의 대한 강론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
리고 그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는 것은 이 아이의 누나라는 방화련이라는 아
이였다.
풍호자는 어차피 한집안 식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개의치 않고 방화
련이라는 아이가 듣던지 말던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검과 함께 몸을 움직임에 있어 공격을 할 때는 반드시 날카롭고 세게 해야
하는 것이다. 공격을 피해 상대의 틈을 노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경우 검을 들고 있는 숙련된 검사라면 가능한 한 발을 지면에서 때려 하지 않
을 것이다. 발의 움직임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경쾌해야만 하는 것이지. 그럼
으로써 몸을 상대보다 항상 유리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저, 도사님 발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데요?"
방화련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꼬마 계집아이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풍호자는 여전히 침묵한 채 먼 하늘만 쳐다보는 소구를 쳐다보다 그 꼬마의
누나라는 아이를 쳐다보았다.
" 넌 검에 관심이 많은가보구나?"
"헤헤---."
방화련은 쑥스러운 듯 한 손으로 머리를 긁으며 웃으며 풍호자를 쳐다보았
다. 뒤통수를 향해 쏘아지는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지고 있었지만 방화련은 개
의치 않았다. 여기에 이 시간에 있게 된 것도 순전히 고집을 부려서 있게 된
방화련이었고 절대로 도사님을 귀찮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상태였다.
그러나 멀리서 정자를 지켜보는 오빠와 여동생의 못마땅한 시선이 계속 느껴지
고 있었지만 방화련은 개의치 않고 다시 물었다.
"그 발놀림은 어떻게 하는 건데요?"
"너도 검을 배우고 싶은 거니?"
"네--에."
옆에서 들려오는 누나의 목소리를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는 방소구의 얼굴을
참혹하다 말할 정도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소구는 자신의 속도 모르고 좋아라
하고 옆에 끼어 들어서 무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누나가 너무나 미웠
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싫은 이유는----.
첫댓글 즐독 입니다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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