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CG2Ai_ixwLw?si=OmDH43DZLV6gqUBf
Arnold Schönberg - Verklärte Nacht 정화된 밤 | Semyon Bychkov | WDR Sinfonieorchester
19세기 말 유럽은 세기말(世紀末)의 시대였다. 1848년의 3월 혁명에서 1914년의 1차 대전 사이 60여 년의 기간, '팍스 유로파(Pax Europa)'의 평화는 갈등과 분쟁의 잠복기였다. 혁명사상으로 인해 시대이념은 크게 고양되었으나,
구체제의 인물들은 그 변화를 인정하지 않았다. 제국주의의 마수는 식민지 백성들을 도탄(塗炭)에 빠트린 뒤 유럽 대륙으로 들어와 각축(角逐)의 형세를 이룩했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이 불안하게 지속되다 발칸반도에서 전쟁의 포성이 울렸고, 세계는 두 차례의 끔찍한 전쟁으로 줄달음쳤다.
이 시기에 비엔나에서 활약하던 후배 작곡가가 바로 쇤베르크(A. Sch nberg)였다. 쇤베르크는 현대음악에 있어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작곡가로, 이른바 <12음 기법>이라는 무조(無調性: Atonality)의 음악을 창안하여 종래의 음계와 조성의 체계를 파괴하였다. <정화된 밤>은 그가 아직 후기낭만적 경향의 곡을 쓰고 있던 1899년에 작곡되었다. 그러한 관계로 <정화된 밤>은 조성과 음계에 충실하며, 듣는 이의 귀를 크게 거스르지 않는다.
그는 이 작품을 스물 다섯 살 때 작곡했다. 곡은 단악장 형식인데, 크게 다섯 부분(Stanza)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는 원 시의 다섯 연을 상징한다. 실제 곡은 시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며 작곡되어있다. 때문에 이 곡은 현악 합주로 이루어진 최초의 표제 음악이다. 원 곡은 바이올린 두 대, 비올라 두 대, 첼로 두 대로 편성되어 있다. 1917년 쇤베르크는 이를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버전으로 편곡하고, 1943년 개정했다. 이 곡은 1902년 3월 18일 빈에서 초연되었다. 이 곡은 밤의 신비와 여인의 불안감을 담아낸 일종의 야상곡(녹턴)이라고 할 수 있다. 곡은 당대 독일 시인 리하르트 데멜(Richard Dehmel)의 동명의 시를 따르고 있다.
곡의 제목 <정화된 밤:Verkl rt Nacht>은 영어로 Transfigured Night로 번역이 되는데, 이 정화(淨化:Verkl rung)라는 말은 변용(變容)의 의미와 통용된다. 이 말의 본래 뜻은 "불순하거나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함"이나, 심리학에서는 "마음 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언어나 행동을 통해 외부에 표출함으로써 정신의 안정을 되찾는 일", 즉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의미하고, 문학에서는 "마음에 쌓여 있던 긴장감이 해소되고 마음의 평정심을 되찾는 일"이라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철학과 형이상학에서는 "비속(卑俗)한 상태를 신성한 상태로 바꾸는 일, 또는 그 경지"로 설명되고 있다. 이 악곡에서의 의미는 철학·형이상학의 의미를 따른다. 다시 말해 쇤베르크가 구현한 정화의 의미는 "부정(不淨)한 것을 없애고 순수함과 선함의 단계로 나아감"을 뜻하며, 이 의미가 "속세의 인간이 탈속(脫俗)의 경지로 전이(轉移)되는 경지", 즉 변용(變容)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쇤베르크가 지향하는 정화의 단계는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解脫), 도교에서 일컫는 득도(得道), 크리스트교에서 이야기하는 성화(聖化)의 단계와 유사하다고 하겠다.
이 악곡에서 여인은 부정(不淨)한 상태이며, 불륜(不倫)을 저질렀다. 그녀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정네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 그것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결과인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어난 비극인지는 악곡의 설명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여인이 심각한 죄책감과 절망에 빠져 있고, 누군가가 이 여인을 구원하지 않으면 그녀는 영원히 단죄(斷罪)되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여인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단계가 필요하다. 하나는 초월적 존재로부터의 구원이고, 또 하나는 세상의 인심과 화해하는 일이다. 신(神)을 통한 구원은 통회의 눈물과 신의 용서를 통해 이루어진다. 신은 너그러워 회개한 여인을 용서한다. 그러나 인간과의 관계를 예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어렵고 힘들다. 과연 남의 자식을 잉태한 아내를 쉽사리 용서해 줄 남자가 있겠는가? 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선뜻 남의 핏덩이를 품에 안고 기뻐해 줄 남편이 얼마나 있겠는가? 부정한 씨앗을 저지른 아내를 용서해 줄 남자는 거의 없다. 그것은 질투에 관한 문제도, 사랑이 부족한 탓도 아니다. 인륜을 저버리고 신의를 망각한 일이기에 남편과 주위 가족으로부터 용서를 받기가 어려운 것이다.
요셉이 약혼녀 마리아가 아기를 배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심정이 바로 그와 같았을 것이다. 신실하고 너그러운 심성의 그였지만 그 또한 갈등하고 분노했을 것이다. 심사숙고 끝에 그는 소문내지 않고 그녀와의 혼약을 파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그가 남자로서 해 줄 최선의 방책이었다. 그럴 즈음 천사가 꿈에 나타나 거룩한 성령이 그녀에게 내렸음을 알려 주었고, 약혼자 요셉은 신의 섭리를 확인하고 그녀와 살림을 차릴 수 있었다.
렌칭(Gut Wrenching) 작, <호세아의 부인>
요셉이 마리아를 맞이하기 훨씬 전인 기원전 3세기 페르시아 지배하의 이스라엘에서, 호세아(Hosea)라는 예언자가 있었다. 그는 아내를 맞이해 몇 년간 같이 살았으나, 아내는 변심하여 다른 남자를 따라갔다. 호세아는 그녀에게 성실하였고 그녀를 위해 헌신하였다. 그러나 무심한 그녀는 이민족 남자를 따라 도망쳤다. 일년 후 가출한 아내가 돌아왔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정신은 피폐해진 채 다시 집을 찾은 것이었다. 그런 그녀를 호세아는 달려가 안아주고 보살폈다. 그리고 그녀가 지난 세월 저질렀던 여러 일들을 묻지 않고 용서해 주었다. 호세아라고 어찌 괴롭고 분통을 터트리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이번에도 신이 개입한다. 신은 호세아에게 그녀를 받아들이라고 명령했다. "네 아내를 다시 사랑해 주어라!"
호세아는 신의 자비와 사랑을 느끼고 이해했다. 신에게 호세아도 그 아내도 가여운 피조물이었다. 아내가 돌아온 것은 남편을 믿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뉘우치면 신이 인간을 단죄하기 전에 인간 스스로 그 매듭을 풀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정화된 밤>의 플롯은 다음과 같다.
두 사람이 헐벗고, 추운 숲을 걸어가고 있었다. 달은 그들을 따라가며 비춘다. 높은 떡갈나무 사이로, 구름 한 점도 없는 하늘 위에, 검고 뾰족한 끝이 달을 찌른다. 여자가 말한다.
"나는 애를 배었어요, 당신 아이가 아닌, 나는 당신에게 죄를 지었어요. 나는 그로 말미암아 고통으로 살았어요. 나는 행복해할 수 없어요. 하지만 아직도 나는 갈망하고 있어요 삶의 풍요로움과, 어머니의 기쁨 그리고 의무를,
그러나 나는 죄를 저질렀어요, 그리고 이제 나는 떨면서 고백하고 있어요, 그동안 내 불륜을 환희를 맛보았으나. 이제 당신을 찾아왔어요."
그녀는 걷는다, 비틀거리며. 그녀는 하늘을 바라본다. 달은 계속 따라온다. 빛은 그
녀의 어두운 시선을 비춘다. 남자가 말한다. 주기중 작, <바람이 머문 곳>
"당신이 품은 아이를 영혼의 짐으로 삼지 마오. 보아요, 이 우주가 얼마나 밝게 빛나는지! 저 광채가 모두에게서 사라질지라도, 당신과 내가 차가운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은 뜨겁게 타오를 것이요, 당신이 나를, 내가 당신을. 이 열기가 그 낯선 이의 아이를 정화시킬 거요, 그리고 당신이 그 아이를 낳고, 내가 그 아이를 기를 거요. 당신은 나에게 빛을 주었소, 당신은 나에게 아이를 주었소."
그는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싸안는다. 그들의 숨결이 공중에서 섞여 들어간다. 두 사람은 환하고 밝은 밤을 걸어가고 있다.
이 곡은 5개의 단계로 되어 있다. 제 1, 제3, 제5 부분은 서정시 풍인데, 추운 달밤에 숲속을 거닐고 있는 두 남녀의 무거운 기분을 묘사했고, 제2 부분은 여자의 후회와 정열적인 고백을 묘사했으며, 제 4부분은 남자의 이해 깊은 이야기와 달빛에 상징되는 깨끗한 애정을 피력한 것이다.
1. Sehr langsam(매우 느리게)
첫 부분에는 두 연인의 걷는 모습을 묘사하는 하행 선율 동기가 나타난다. 이것은 곡의 중간과 끝 부분에 변화된 형태로 계속 반복되어 주 연인의 심리 상태를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2. Etwas bewegter(가끔 서성이며)
두 번째 부분은 여인의 후회와 안타까움을 나타내듯 급박한 리듬으로 시작되며, 계속되는 전조로 불안한 마음이 표현된다. 중간에 약음기를 낀 첼로의 부드러운 선율은 어머니가 되고 싶은 여인의 간절한 소망을 나타내는 듯하다.
변지현 작, <달꽃>
3. Schwer betont(긴장감에 힘들어하며)
세 번째 부분에는 여인의 걷는 모습이 묘사된다. 곡의 처음에 나타났던 걸음의 선율 동기가 여기서도 사용되지만 보다 빠른 템포로 진행되고 어두운 화음이 사용되어 절실한 감정을 드러낸다.
4. Sehr breit und langsam(매우 넓고 느리게)
폭넓은 D장조 화음으로 시작되는 네 번째 부분에서는 남자의 진실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아름다운 장면이 전개된다. 저음부의 풍부한 울림과 편안한 장조의 화음으로 이제까지의 긴장이 해소되면서 극적인 전환을 맞이한다. 여인의 절망적 고뇌는 이제 위로와 사랑으로 정화되고 그들의 사랑이 서정적인 노래로 타오르면서 극적인 클라이막스에 이른다.
5. Sehr ruhig(아주 조용히)
마지막 부분에는 두 연인이 다정하게 걸어가는 장면이 조용히 묘사된다. 나뭇잎의 살랑거림을 나타내듯 약음기를 낀 현이 물결치고, 두 사람은 달빛 속으로 사라진다.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은 남성이 여성을, 자유가 핍박을, 정의가 불의를, 현재가 과거를 치유하고 보듬는 진정(鎭靜)과 구령(救靈)의 드라마이다. 이 곡은 발레 작품으로 상연되어 더 유명해졌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처음에는 당혹감과 부담감이 엄습한다. 익숙하지 않은 화음과 암담한 분위기는 사람의 심성을 불편하게 만든다. 곡은 계속 어둠의 그늘 속으로 들어가며 듣는 이와 두 주인공을 검은 안개로 휘감아 버린다. 곡의 사무친 서정이 극에 달할 때, 마음 속에서 어떤 울혈(鬱血)이 끓어오르다가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어떤 정화와 치유의 북받치는 감정이 등장인물과 청중의 마음을 감싸안는다. 그래서 이 곡을 듣는다는 것은 어떤 걸작 영화나 소설 한 편을 접하는 것과 같은 감흥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글쓴이 : 이성준(청율아트홀을 사랑하는사람들의 모임)
https://youtu.be/U-pVz2LTakM?si=dLCZABXMutmrVvVs
Schoenberg: Verklärte Nacht, Op.4 - Boulez. Pierre Boulez: Membres de L'Ensemble Intercontemporain
Charles-André Linale: violin / violon. Maryvonne Le Dizès-Richard: violin / violon
Jean Sulem: viola / alto. Garth Knox: viola / alto. Philippe Muller: cello / violoncelle. Pieter Strauch: cello / violoncel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