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려타곤(懶驢駞坤)-37
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쪽이 향후 백여년 간의 무림의 판도를 결
정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무림원로들의 생각이었다. 그만큼 등봉현에
있는 꼬마의 재능이 놀라운 것이라는 말이 성립하는 것이다. 향후 백년의 무림
판도를 좌지우지 할 정도로---.
악종진은 현재의 등봉현에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의 인명에 대해 하나하나
따져보기 시작했다. 최근 석달 사이 등봉현의 안에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사람
에 대한 기록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악종진은 두루마리를 펼치고 꼼꼼하게 다시 한번 살펴보기 시작했다. 최근
석달 사이 등봉현에 들어온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었고, 대부분 붉은 색으로 X
자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붉은 색으로 그어진 자들은 이미 생을 마감한 사람
들이니 붉은 색으로 X자 표시가 그려져 있지 않은 사람만 살피면 되는 일이었
지만 그래도 꽤나 많은 사람이었다. 정파라고 불리는 구환맹에서 함부로 사람
을 죽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림인이라 불리면서 마교와 관계 있다는 확증이
있어야만 죽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증거를 찾지 못한 사람들도 꽤나 많이
등봉현에서 활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암전이라는 자를 찾아야만 할 것
이다.
악종진은 기록을 찾아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일단 그 첩자를 찾아내야만
해야 하는 것이다.
" 아아, 모두 일렬로 정렬!"
관아의 너른 연무장에는 타지방에서 이곳 등봉현으로 오게 된 병졸들이 끼리
끼리 모여서 자신들에게 내려질 보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잔뜩 거만한 모습으로 연무장의 정면 위에 있는 단상 위에 서 있는
것은 등봉현 포졸들 중 최고참인 정수라는 이름의 포졸이었다.
노름으로 패가망신하고 마누라하고 딸과 아들까지 잃어버린 정수였지만 지금
의 모습은 바로 한달 전까지의 다 죽어가던 모습이 아니었다. 잃어버렸던 집과
아내와 딸과 아들을 바로 며칠 전 다 되찾은 것이다.
모든 것이 등소군이라는 등봉현 건달패들의 두목이 옥에 갇히면서 벌어진 일
이었다. 멀리 팔려갈 예정이었던 마누라도 아들도 딸도 모두 아직 건달패들의
건물 안에 남아 있었기에 정수는 건달들을 위해 꽤나 많은 일을 해 주고 집과
가족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일렬로 늘어서서 포졸의 옷을 지급 받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키는
다섯자가 될까말까하고 얼굴에는 곰보자국이 가득한 중년인이 하나 서 있었다.
'등봉현에는 이제 무사히 모두의 눈을 속이고 들어왔고---, 다음엔 어떻게
꼬마의 곁에 붙어 있느냐는 건데----.'
살막 최후의 살수인 칠호는 장씨네 셋째아들이라는 의미인 장삼이라는 평범
한 이름의 군졸이 되어 등봉현으로 들어온 것이다.
칠호가 무림인들의 눈을 속이고 무사히 등봉현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포졸이 되는 방법뿐이었다. 현재 보이지 않는 그물이 등봉현 전체에 펼쳐져 있
는 상태라는 것을 모르고 들어오는 무림인은 무조건 구환맹의 살수조직인 암천
혈혼대의 살수에 유명을 달리하고 있었다. 은밀하게 무림인들 사이에 등봉현에
서 벌어지고 있는 혈사에 대해 소문이 퍼지고 있었고, 칠호는 그 소문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병사들 사이에 섞이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칠호는 장삼이라는
이름으로 병사가 되었고, 등봉현으로 오게 된 것이다.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교
관에게 뇌물을 쥐어지고 등봉현으로 오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조
정도 썩었고 병영도 예외 없이 썩어서 뇌물이면 안돼는 일이 없었다. 자신은
죽은 것으로 처리되어 있었고 이 장삼이라는 인물도 실재하는 인물이었다. 구
환맹이나 마교라 해도 결코 칠호를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이, 이봐. 자네 차례라구!"
뒤에서 어깨를 치며 하는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 칠호는 앞으로 걸어나가
자신에게 주어진 새 군복을 받아들고 옆으로 섰다.
"관아의 오른쪽에 세워져 있는 것이 앞으로 너희들이 머물 숙소다!"
정수라는 이름의 마른 얼굴에 어딘지 모르게 얍삽하게 보이는 포교가 손가락
으로 옆 건물을 가리키며 소리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칠호는 그 꼬마의 곁에 다
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즉시 옷을 갈아입고 이곳으로 일각 이내에 집합하도록!"
포졸들의 두목 격인 포교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는 정수는 새로 온 포졸들이
옷을 갈아 입고오기를 기다리며 연무장에서 기다렸다.
'흐흐, 오늘부터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겠구만--.'
연일 살인사건이 끊이지 않는 등봉현이었고, 포졸들은 시신을 수습하고 사건
을 덮어버리기 위해 안달이 나 있었다. 예로부터 관과 무림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관계였다.
그러니 살인사건이 났다해도 조사를 할 이유는 없었지만, 연일 벌어지는 살
인사건으로 생긴 수많은 시신만은 건사하고 어디 출신의 누구인지는 조사해 놓
아야만 했던 것이다. 범인을 잡기는 애초에 그른 일이었고 나중에 가족이 찾아
오면 시신을 건네주는 절차는 남아 있는 것이다.
정수는 등봉현에 오느라 누더기로 변한 옷을 갈아입고 연무장으로 모여드는
포졸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십명의 포졸들은 도착한 그날 정수를 따라 시신이 안치되어 있
는 한 건물로 안내되었다.
수 십 개의 관들이 늘어서 있는 건물 앞에 서서 정수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놓인 시신들을 염하는 작업을 해야하니까, 모두들 관 하나를 맡도
록!"
대부분의 포졸들은 관 뚜껑을 여는 순간 기겁을 하며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
로 넘어졌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구역질을 해대는 포졸들---.
흐뭇한 얼굴로 그런 포졸들을 바라보며 정수는 소리쳤다.
" 오늘 저녁은 맛 좋은 돼지구이가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서둘러서 염을 하
도록!"
그 말을 끝으로 정수는 그 건물을 나가버리고 남겨진 이십명의 포졸들은 울
상을 지은 채 관 안을 들여다 볼 생각도 못한 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
다.
"내 살다 살다 이렇게 흉한 시신은 처음 봐!"
변방의 병영에서 꽤나 오랫동안 병졸로 있어야 했던 한 늙은 포졸이 한숨 섞
인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라가 어지러워지니 국경도 오랑캐들의 발호
가 극심해지고 크고 작은 수 많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지옥을 탈출했
다고 좋아하던 그 늙은 병졸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그럼 그렇지. 내 복에 좋은 일이 있을 리 만무하지---, 후방으로
배치 돼서 좋아했더니--- ."
늙은 포졸은 한숨을 내쉬면서 관 옆에 놓여 있는 실과 바늘을 집어들고 관으
로 다가갔다.
도착한 첫날부터 이런 일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목 따로 팔 다리 따로 따로 놀고 있구만---, 누군지 몰라도 어지간히 재수
없게 죽었는걸---."
"이보게들, 도대체 등봉현에 전쟁이라도 났는가?"
"자넨 소문도 못 들었나?"
"무슨 소문?"
"이 등봉현에 무림인들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던데----."
"맞아, 나도 그 소문 들었어. 그럼 여기 있는 시신들이 모두 무림인이라는
---."
거기 모여 있는 포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머리가 하얗게 센 포졸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시체조각이나 꿰매!"
그렇게 등봉현에 새로 온 포졸들의 일은 첫날부터 시체들을 꿰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양평은 자신을 찾아온 소림의 한 속가제자를 쳐다보았다.
"마교의 암전이 쏘아졌다? 이게 다냐?"
"네. 그 말만 사숙께 전하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마교의 암전이 뭐야?"
"모르죠. 전 그만 가보겠습니다. 대장간 양 노인이 화내기 전에 전 빨리 가
봐야 되요. 하실 말씀 있으면 빨리 하세요. 저녁 때 산에 올라갈 예정이니
---."
"으--, 달랑 그 말 하나만 전해주면 나보고 어쩌라고 하는 거야?!"
양평은 분통을 터트리며 소리치고 소림의 속가제자이면서 대장간에서 허드렛
일을 하면서 생활하는 소진연은 잔뜩 기가 죽어서 물었다.
"사숙님, 저 그만 가봐도 되죠?"
양평은 이 소진연이라는 얼뜨기한테 화를 내 봤자 자신만 추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가봐라. 그리고 소림에 가거든 도대체 마교의 암전이 무엇인지 자세히 좀
알아서 알려달라고 한다고 말 좀 전해라."
"예, 그 말만 전하면 되는 거죠? 전 그만 가보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진연이라는 열 여덟 살 된 청년은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달려갔다.
" 암전? 도대체 암전이 뭐냐고?!"
방소구라는 꼬마는 지금 신나게 나무 그늘 아래 선선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낮잠을 즐기고 있을 때, 그 옆에서 양평은 분통을 터트리며 이빨만 갈고 있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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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즐감하고 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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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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