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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
2023년 8월 14일 월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2-27
제자들이 22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24 그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25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는 집에 들어갔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셨다.
26 베드로가 “남들에게서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랍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기뻐도 하고 노여워도 하고 슬퍼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희노애락’(喜怒哀樂)이라고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감정의 표현들입니다. 어떤 일에 대하여 걱정도 하면서 잠도 이루지 못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고, 변덕이나 고집도 부립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아양도 떨고, 뽐내기도 하고, 자만심으로 건방지게도 굴고, 무시하는 태도도 보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인간의 감정에서 온 것들입니다.
이러한 감정들의 원천은 어디일까 생각해봅니다. 인간 감정의 원천은 하느님이시니 하느님께서도 희노애락 안에서 사람들과 같이 느끼시며, 감정의 흔들림에 같이 흔들리실까 생각해봅니다. 우리네 감정의 기복에 큰 것처럼 그분께서도 그러하실까 생각해 봅니다. 성경을 보면 불같이 화를 내시며, 뜨겁게 사랑하시며, 노심초사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지만 과연 그러하실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나와 같은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주님께서 보여주신 것과 같이 그 감정의 폭 안에서 주님을 느낄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감정의 기복에 전혀 흔들리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당신의 감정으로 천지만물을 지으셨다면 천지 만물의 운행질서와 모든 법칙들이 아주 뒤엉켜 엉망진창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희노애락을 아주 자연스럽게 표출하셨습니다. 그분은 감정을 아주 자연스럽게 표현하시며 당신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주셨지만 감정으로 혼란스럽지 않으셨습니다. 냉정하게 판단하시고, 기쁨과 즐거움과 슬픔과 화내심을 적절하게 분위기에 맞게 표현하셨습니다. 물론 하느님이시니 그러실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되기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전세를 내 달라는 사람들의 얘기에 “비위를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며 물고기에서 돈을 꺼내 성전세를 납부하십니다. 아무 것도 내실 필요가 없는 분임에도 감정적으로 싸우거나 베드로를 무안하게 하시지도 않으시고 모든 일을 순리로 처리하십니다.
당신이 하느님이기 때문에 당신의 감정을 조금도 숨김이 없이 비굴함이 없이, 아부를 하거나 이상하게 감정을 속이지 않으시는 주님이십니다. 성전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성전세를 납부하시는 것은 모순됩니다. 자신이 자신에게 세금을 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비위를 건드릴 필요가 없고, 또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성전세를 내신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처럼 성전세를 내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전세를 내는 것은 성전의 유지 관리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도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성전세를 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서만 성전세를 받는 것은 또한 옳지 않다는 것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로 주님께서 ‘성전세도 내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말썽을 일으키시거나 베드로나 제자들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비난을 마음으로 참아내고 계십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글로 기도를 대신합니다.
마음으로 참아내기
사람들에게서 어떤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을 때
계속 "누가 그런 말을 했을까?"
궁리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자신에게 유익한 약으로 삼고
오히려 겸허하게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반드시 기쁨이 따른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씀바귀를 먹을 수 있어야 그 후에 오는 단맛도 알지요!
꼭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가까운 이가 외면하는 쓸쓸함,
결국 인간은 홀로 된 섬이라는 생각이 새롭습니다.
다른 이들이 나에게 잘해 주었던 부분들을 더 자주 되새김하고,
누군가에게 내 쪽에서 못 마땅한 일이 있을 때는
다른 이들이 그동안 말없이 인내해준 나의 약점과 허물들을 기억하고
좋은 마음으로 참아내기로 해요.
언제나 눈길은 온유하게,
마음은 겸허하게 지니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요.
오늘 내 마음은 비 오는 날의 바다를 닮았네.
그래도 고해성사를 보고 나니 한결 가뿐한 마음입니다.
<이해인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산문집에서>
<너희 마음에 할례를 행하여라. 너희는 이방인을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10,12-22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2 “이제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모든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을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섬기는 것,
13 그리고 너희가 잘되도록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님의 계명과 규정들을 지키는 것이다.
14 보라, 하늘과 하늘 위의 하늘, 그리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주 너희 하느님의 것이다.
15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너희 조상들에게만 마음을 주시어 그들을 사랑하셨으며,
오늘 이처럼 모든 백성 가운데에서도 그들의 자손들인 너희만을 선택하셨다.
16 그러므로 너희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더 이상 목을 뻣뻣하게 하지 마라.
17 주 너희 하느님은 신들의 신이시고 주님들의 주님이시며,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으시고 뇌물도 받지 않으시는, 위대하고 힘세며 경외로우신 하느님이시다.
18 또한 그분은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되찾아 주시고, 이방인을 사랑하시어 그에게 음식과 옷을 주시는 분이시다.
19 너희는 이방인을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20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께만 매달리고 그분의 이름으로만 맹세해야 한다.
21 그분은 너희가 찬양을 드려야 할 분이시고, 너희가 두 눈으로 본 대로, 너희를 위하여
이렇게 크고 두려운 일을 하신 너희 하느님이시다.
22 너희 조상들이 이집트로 내려갈 때에는 일흔 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해 주셨다.”
축일8월 14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Maximilian Mary Kolbe)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 연도 : 1894-1941년
같은 이름 : 꼴베, 막시밀리아누스, 막시밀리안, 막씨밀리아노, 막씨밀리아누스, 맥시밀리안, 맥시밀리언
1894년 1월 7일 폴란드의 즈둔스카볼라(Zdunska Wola)에서 태어난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Maximilianus-Maria Kolbe, 또는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는 라이문두스(Raimund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신심 깊은 부모의 신앙교육 덕분에 강한 성모 신심을 갖고 성장한 그는 1907년 10월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레오폴리의 소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3년 뒤인 1910년 9월 4일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면서 막시밀리아누스라는 수도명을 택했다. 이곳에서는 그는 중등 교육과 수련을 받고 1911년 9월 5일 첫서원을 하고 1912년 12월 로마로 가서 공부를 계속했다. 그는 로마의 프란치스코회 국제 신학원에 머물면서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보나벤투라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무렵 23세였던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는 여섯 명의 동료와 함께 신학원장 신부의 허락하에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회’(Militia Immaculatae)라는 모임을 결성했다(1917년 10월 16일). 이 모임은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을 철저히 봉헌하고, 세계의 복음화를 위해서 활동하는 일종의 신심 단체이다.
1914년 11월 1일 종신서원을 하고, 1918년 4월 28일 사제품을 받은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는 1919년에 고국인 폴란드로 돌아왔다. 귀국 직후 크라쿠프(Krakow)의 프란치스코회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동료 수사들은 물론 대학생들과 군종신부들 안에서 기사회 조직을 만들었다. 그러나 귀국할 때부터 폐결핵을 앓고 있던 그는 1년 6개월을 요양소에서 생활했고, 1921년부터는 한쪽 폐로만 살아야 했다. 1922년부터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Rycerz Niepokalanje)라는 잡지를 발행하면서 매스 미디어를 통한 사도직을 시작했다. 이 잡지는 초기에 그로드노(Grodno)에서 발행되다가, 1927년에는 ‘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Miepokalanow)이라는 수도 생활 공동체에서 발행하였다. 이 마을은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 신부가 바르샤바(Warszawa)에서 40km 떨어진 방대한 지역에 설립한 공동체이다. 그리고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나가사키 근처에 ‘원죄 없으신 성모의 뜰’이라는 작은 수도 마을을 세우고,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를 일본어로 번역해 발행했다. 6년 동안 일본 선교를 위해 노력한 그는 중국 · 한국 · 인도에도 공동체를 세우려고 했으나 외부적인 이유로 실현하지 못했다.
1936년 ‘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 총책임자로 임명된 그는 전 세계에 분원을 세우는데 큰 공을 들였다. 1938년 무렵 ‘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 분원이 전 세계에 762개나 되었다. 폴란드 내에서 유명해진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 신부는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동료 수도자들과 함께 나치에게 체포되어 수용소에 갇혔다가 곧 풀려났다. 이후 그는 가난한 이들과 박해받는 유대인들을 ‘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에 거주토록 하면서, 이들을 보호하고 돕기 위해 노력했다. 1941년 그가 “자유”라는 기고문을 발표하자, 나치는 유대인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2월 17일 그를 체포하여 바르샤바의 파비악 형무소에 감금했다가 2월 28일 ‘죽음의 수용소’라고 불리는 아우슈비츠로 옮겼다.
이곳에서 그는 저명한 가톨릭 신부라는 이유로 더욱 혹독한 매질과 고문을 받으면서도, 동료 수감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끊임없이 격려하였다. 그러던 중 1941년 7월 말경, 한 수감자가 수용소를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치는 한 명이 탈출하면 그 벌로 열 명을 처형했다. 나치에 의해 지목된 열 명의 처형 대상자 중 한 폴란드 사람이 자기에게는 가족과 아이들이 있다고 울부짖자 이를 본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 신부는 자원해서 대신 죽겠다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치의 허락을 받고 다른 아홉 명과 함께 지하 감옥에 갇힌 그는 아사형에 처해졌다. 다른 동료들이 모두 굶어 죽을 때까지 2주 이상을 물과 음식 없이 생존한 그에게 나치는 결국 독극물을 주사했고, 그는 1941년 8월 14일 성모 승천 대축일 전날 아우슈비츠의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다음 날 그의 시신은 아우슈비츠의 시신 소각장에서 불태워지고 말았다.
오늘날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 신부가 죽음을 맞이한 감옥은 수많은 순례자가 찾는 장소가 되었다. 1948년 그에 대한 시복 절차가 파도바(Padova)에서 시작되어 마침내 1971년 10월 17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나치 희생자들 가운데 처음으로 복자품에 올랐다. 1982년 10월 10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그에게 ‘자비의 순교자’(Martyr of Charity)라는 칭호를 부여하며 시성식을 거행했다.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 신부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매우 깊었으며, 성모 마리아에게 특별한 공경을 바친 성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수감자들의 주보성인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마리아 콜베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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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