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김어준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97년 가을 대선 정국에서였습니다.
당시 천리안 전체 자유게시판을 '워드방'이라고 불렀지요.(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시절...)
내로라하는 논객들이 천리안 워드방에서 놀았습니다. 저는 주로 읽기만 했구요.
그때 김어준은 유일하게 닉네임을 쓰지 않고 실명으로 글을 올렸지요.
1997년 12월 18일 저녁 일고여덟 명의 지인들이 저희 집에 모여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개표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밤11 조금 넘어, 김대중 후보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일제히 일어서서 환호성을 질렀지요.(저는 경상도 토박이, 군대생활 3년 빼고 줄곧 경상도에서만 살았고, 당시 저희 집은 포항이었습니다.) 우리는 시내로 진출해서 새벽까지 축배를 들면서 행복해 했습니다. (이상 끼어들기였습니다^^ 부끄럽구요~)
술이 취해서 새벽에 혼자 집으로 돌아온 저는 컴퓨터를 켜고 천리안 워드방에 로그인을 했지요. 아마 당시 저처럼 잠들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을 겁니다.
그 때 조회수 1위를 달리던 글이 있었으니, 그것은 김어준이 그 새벽에 올린
"경상도 문둥이가 전라도 깽깽이에게"라는 글이었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곧 저의 이야기이기도 했으니까요.
다음날부터 김어준의 그 글은 도하 각신문에 소개되기 시작했고 김어준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당시 그는 아마 조그마한 여행사를 하고 있었을 겁니다. 이후 IMF 때문에 그는 여행사의 문을 닫게 됩니다. 대학 다닐 때 배낭 여행을 수도없이 다녔는데, 그 경험을 살려 여행사를 만들었고 한 때는 엄청 잘 나갔답니다.)
1998년 3월말인가 4월초쯤에 서울 종로2가의 어느 호프집에서 '천리안 워드방' 번개가 있었고, 저는 포항에서 달려갔습니다.(다른 용무를 겸해서요.)
거기서 김어준을 처음 만났고, 거기서 저는 '경상도 문둥이가 전라도 깽깽이에게'라는 글이 실린 책을 두 권 그에게 전달한 적이 있구요... 그때 그는 여행사 문을 닫고 아이디어 호떡 장사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IMF 시대에는 그런 게 돈 벌수 있다면서요.(그 때 뭐 아이디어 호떡 장사로 돈 엄청 벌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었답니다. 호떡은 그 사람이 만들고 자기는 홍보를 맡으면 대박일 거라고 했지요.)
그해 7월 초 김어준은 호떡 장사의 꿈을 접고
'딴지일보'라는 인터넷 신문을 만들었고, 당시 딴지일보의 인기는 지금 '나꼼수'의 인기를 능가할 정도였지요.
김어준을 세상에 처음 알린 글 "경상도 문둥이가 전라도 깽깽이에게"를 올려봅니다.
(지금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까 다행히 그 글이 뜨는군요. '김동현'이라는 분이 퍼올린 글인데, 저장시간이 1997년 12월 19일 새벽 5시 23분으로 되어 있네요. http://blog.paran.com/il11/1216987 참조)
***
경상도 문둥이가 전라도 깽깽이에게
김어준
1997년 12월 19일 새벽
우선 이 말부터 하고 싶습니다.
" 이 전라도 깽깽이들아, 공산당도 아닌 것이 90% 몰표를 한 인물에 던져대는 이 3류 국민들아, 오늘 하루는 이제 드러내 놓고, 맘 놓고 짖고 떠들고 까불고 좋아하거라. 세상이 다 네것처럼 들뜨고 외쳐대거라. 오늘 하루는 그렇게 감격해하거라 "
아주 오래 전부터 전 꼭 이 말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전 정말 당신들을 "에이 씨팔 3류 국민 전라도 깽깽이들아" 하고 맘놓고 욕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 한번도 드러 내놓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들을 그런 3류 국민으로 만든 또 다른 3류 경상도가 제 고향이었거든요...
50년만의 정권교체도 좋고, 능력있는 놈이 대통령되는 것도 희망 차고, 책임을 묻는 국민의 소리를 확인하는 것도 참으로 즐겁습니다. 그런데 그런 오늘, 주제넘게도 당신들에게 꼭 들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품고 왔던 17년짜리 응어리가 이제 막 녹아내리기 시작할 오늘, 전 당신들에게서 꼭 다짐 받고, 듣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제 이야기부터 먼저 하지요.
저는 경상남도 진해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산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서울로 이사를 왔지요. 저희 친척들은 지금도 대부분 경상도에 기반을 두고 살고 있습니다. 일부는 충청도에도 살고 있고, 나머진 서울에서들 살고 있지요. 그래도 다들 경상도 문둥이들이지요.
얼마전이 저희 할아버님 생신이었답니다. 흩어져 살던 친척들 대부분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지요. 투표권을 가진 성인들만 20명이 넘게 모였답니다. 선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20명 중 대중이를 찍겠단 놈은 저 하나였지요. 친척 한 분이 무섭게 노려보더니 제게 그랬었죠. "니 미쳤나..." 그 다음엔 사방에서 저를 성토하는 목소리들이 튀어 나왔습니다. "점마가 요새 일이 잘 안되니깐에 돌아삔는갑다..."
어차피 논리로 당해낼 일이 아닌 줄 알면서도, 열심히 떠들어 봤습니다. "아이다... 이젠 바까야 될 역사적 당위성이 있는기라... IMF 체제에선 어쩌고 저쩌고... 외교적 사고의 필요성이 이러쿵저러쿵... "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논리를 총동원해 기를 써 봤지요.
"대중이 검마는 치매라 안카나, 그 새끼는 빨갱이 아이가 임마, 경상도에 통반장도 전부 전라도 아들이 다 한다카더라, 전라도 깽깨이들이 지랄하는 꼬라지를 우째 보노, 다리 저는 빙신새끼가 되모 세계적으로 쪽팔린 일인기라..." 당장에 무더기 반격이 돌아 온 건 당연했지요.
스스로 하고 있는 말들이 사실이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그들은 경상도를 이용해 자기 배만 채우며 정권을 잡아온 자들이 만들어 준 핑계거리를 그렇게 열심히 되뇌이고 있었습니다. 서로 서로 한마디씩 던져놓고 그 말들을 서로 서로 확인해 주며 그렇게 공범이 되어가고 있었던거지요. 서민들은 원래부터 가져본 적도 없는 기득권을, 그런 있지도 않은 기득권을 잃을 것이란 불안감을그렇게 토해내고 있었던거지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저희 할아버님은 몇 년전 후두암을 앓은 신 후 발성기능을 상실하셨습니다. 성대가 없으셔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말수가 아주 적어지셨지요. 30분을 친척들끼리 떠들고 있을 때 당신께서 갑자기 입을 여셨어요. 다들 조용해 졌죠. 조용하지 않으면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까요.
"고마치 해묵었으모 됐다... 부끄러운기라... 이제 마 대중이가 해라케라..."
아... 평생 1번만 찍으셨던 할아버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전 가슴이 아팠습니다. 잘못하는 것보다 더 나쁜 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 제게 가르쳐 주진 80대 경상도 노인네 입에서 나온 그 말 속에 숨어있는 경상도의 부끄러움과 자조가 저를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정권욕에 사로 잡힌 자들이 경상도의 가슴에 심어놓은, 아무도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원죄의식이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더 이상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 분들 대부분은 그래도 대중이를 찍지는 않았을 겝니다. 저희 어머님이 평생 처음 기권하신게 그나마 그 말이 우리 가족에 미친 영향의 전부일 겝니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걸로는 말입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대결이 끝날 날이 이제 머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우리끼리 통일이 되는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IMF도 이렇게 함께 풀자구요. 그래야 우리 모두가 삽니다.
김어준이었습니다.
*
첫댓글 근데 김총재 수염은 노무현 대통령 3년 상 중이라 깍지 않고 있는 건가요?
3년 상으로 검은 넥타이는 계속한다고 들었습니다~수염이랑 머리는 원래 그런게 아닌지..ㅎㅎ;;
1998년 첨 만났을 때는 수염이 없었어요. 동안이었구요. 김어준 총수 수염 깍으면 썬그라스 벗은 박완규입니다 ㅎ 수염은 일종의 위장술이라고 봐요~ㅎ
감동입니다 ㅠㅠ 난 저시절 어른들의 말에 동화된 고딩이었는데~ 반성합니다.
1997년 대선 끝나자마자 바로 김어준은 천리안 워드방에서 다음 대통령은 '노무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2년전(노무현 대통령 영결식 직후)부터 김어준은 2012년 대선은 문재인 이사장님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더군요. 선견지명이라고 봅니다^^
와우...진짜 역술 지식인 맞군요..문이사장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노대통령까지 그리 일찍 예언한지는 몰랐네요^^;
저하고 같은 예언 ㅋ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설득 많이도 했는데요. 한화갑이 되어야하다고 하기에 말도 안된다고 정권 재창출할 사람은 노무현 밖에 없다고. 강력하게 동교동계 어떤 사람에게도 강력히 주장했는데요.문재인 발굴 한것도 똑 같아요. ㅋ 그래서 졸라 김어준 존경 한다요 .
이미 그 때 득도를 하셨네요
그때 천리안에 워드방 말고 '자게방'이라고 있었어요. 아무나 가입할 수 없는 논객들의 동호회였는데, 독설 배틀이 장난 아니였죠. 그때 자게방 논객 중 한명이 서프라이즈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김동렬입니다. 저도 자게방 번개에 한번 가봤는데, 포스들이 장난 아니어서 기가 팍 죽어서 왔지요(부끄럽네요^^)
추천때리고 갑니다..^^
감동 ㅇㅇ
씨-발^^ 그때부터도, 이후로 쭈욱 김총수 정신이 제대로 박혀있었구만! 졸라 멋있어~
요즘은 그 정신을 바탕으로 연애상담까지 하드라구요 ㅎ 많이 컸어요^^
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몰랐던 김어준 총수의 면모를 알게되었네요.
저도 추천때리고 갑니다. 멋져~ 시발~ ^^
역술 지식인..ㅋㅋ
어머 이글 저도 읽은거 같은데요 딴지일보에 있었던 글인데 김어준씨 처음 글 쓸때는 뭔가 지금 모습과 매치가 안돼는 것이 문체가 부드럽네요 ㅎㅎㅎ
ㅋㅋ 딴지일보 만들면서부터 말이 거칠어졌지요. 졸라체(일명 딴지체)라고 ㅎㅎ
이 때 김 유식 이라는 어설픈 보수는 어땠나요?
김유식은 잘 모르겠어요. 당시는 뭐 천리안 게시판은 좌파(?!)들이 다 점령하고 있었으니까요^^
저때 김유식은 하이텔의 대표 논객 이었습니다 논객은 아니고 뭐...특이사항으론 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때 플라자란에 글올렸다가 긴급구속되기도 했었죠ㅎㅎ
김 고촌이란 필명은 지금은 정사갤 찌질이들이 점령한 dc밀리터리 갤에서 많이 보던 이름인데 궁금합니다.
그때 저는 하이텔은 거의 안 들어가봐서 잘 모르겠네요.(하이텔은 왠지 정이 안 들었어요, 조금 있다가 나우누리 나왔을 때 거기는 천리안 다음으로 자주 들어갔죠. '나'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 가는 '누리'(세상)... 나우누리... 괜찮았지요.
아, 고촌님 글 보니까 기억나네요. 천리안은 워드방, 하이텔은 플라자... 근데 전 플라자는 거의 안 들어갔어요
김고촌은 김성모만화작가님의 만화중 주요 캐릭터중 하나입니다 만화방에서 자주읽다가 닉네임 으로 한거에요 ㅎㅎ dc는 요즘 김유식때매 졸라싫어서 안간지 3년 넘었습니다^^
아, 김유식이 DC의 그 김유식었군요. 그때 하이텔에 김완섭이라고 서울대 나온 사이코도 있었지요. 창녀론 쓰고, 친일파 옹호하던 넘.
김어준 총수 정말 멋잇는 사람입니다. 저는 생활에 치여서 많이 타협하며 사는데 이 사람은 소신을 지키며 사는군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딴지일보 팬이라 시사대담부터 꼼수까지 다 듣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분의 대인의 풍모는 닮지 못하는군요.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ㅎ 인생 별거 있나욤? ㅋ
나도 읽은 기억납니다.
이 글을 직원들, 친구들에게 복사해서 돌렸던 기억납니다.
근데 김어준 총수인 것은 이제야 알았네요.
참고로 당시 저는 경상도 출신 40%, 전라도 출신 20% 정도로 구성된 20명 규모의 전라도 출신 사장이 운영하는 회사에 다녔었네요.
암튼 엄청 감동 먹었던 글 다시 보니 반가워서...
크아~ 동지를 만난 기분 ㅎ 반갑습니다. 천리안 워드방 동지님 ㅋㅋ
경상도는 정치적 금치산 또라이들이 대부분이고 극히 일부분, 노무현, 문재인, 유시민, 김어준 같은 별종(?)들이 있는 게 희안하기만 합니다
너무 모라카지는 마세요. 제게는 다 형님이고 삼촌이고... 이웃이고...
근데 한가지 재미있는 건.. 제가 사는 고향(경상북도 성주군 **면)에서 1997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 표가 8표 나왔는데(사실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고향가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 표가 전부 전라도에서 시집온 여자들표다... 이런 소문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어느 동네 누가 전라도에서 시집왔다카드라... 어느 동네 누구도... 이런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때(1997 대선 당시) 저희 형님도 김대중 찍고 어머님도 아무것도 모르고 제 말만 듣고 김대중 찍었는데, 경로당이나 절에 가면 입도 뻥긋 못하시고... 항상 기죽어 사셨대요.. 그 말 듣고 어머니한테 죄지은 거 같아서 엄청 죄스러웠어요.
아입니더 와이랍니꺼 저두 갱상도 사람이지만 총수땜에 이렇케 요기와서 응원하고 있지 않습니꺼~ 이상한 놈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랴도 좋은사람들도 많십니더~
대부분이기는;;; 저번 부산시장선거때 민주당이 45%?정도였어요. 지역으로 편가르지마쎄요
추천 꾸욱 눌렀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길지 않은 글이지만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척박한 땅에서조차 멸종되지 않는 끈질긴 양심의 생명력을 느낍니다.
이런글 올리기초차도 쉽지 않은 일인데...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군요.
저도 미력한 몸이나 국가의 내부분열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ㅎ 그땐 그랬어요^^
먼저, 김총수의 지식인의 혜안에 경의를 표합니다. 동시에 아울러 많은 정치인들중에
그의 눈에 비친 미래의 지도자가 한 눈에 보였다는것은 다른 많은 정치인이 반성해야할 부분인듯하군요.
저사람이다.... 이런 예측보다 누가 해도 상식의 선에서 세상이 돌아간다는 믿음을 가질수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식인의 혜안이 아니더라도 일반의 눈으로
누군가를 선택해도 후회없는 세상...
"고마치 해묵었으모 됐다... 부끄러운기라... 이제 마 대중이가 해라케라..."
아...진짜 눈물이 납니다.ㅠㅠ
멋지네요...김어준 총수...~!!
깨어있다는 거.......... 참 어렵지요....
그 시절에는 깨어있다가도...또 세상이라는 생활에 익숙해져...잊혀진 사실을..
아직도 실천하는 김총수가....부럽다 못해서 질투납니다...ㅎㅎㅎ
김총수 감사합니다......다시 깨어나게 해주어서....ㅎㅎㅎ
노짱을 보내고도 몰래울수 밖에 없었던...저를 다시 깨어주어서....꾸벅...ㅎㅎㅎ
글 올려주신분도 감사합니다...꾸벅..
역시 김어준 총수 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