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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 Maslow 욕구단계설 | 오욕 |
생리적 욕구 | 색 식 수 |
안전의 욕구 | 재 |
사회적 욕구 존경받으려는 욕구 | 명리 |
자아실현의 욕구 |
오욕의 색, 식, 수는 머슬로우 이론에서 생리적 욕구에 해당합니다. 기본적으로 이것이 없으면, 인간이 살 수 없어요. 필요합니다. 과하냐 아니냐가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목적이냐, 주인으로서 이것을 활용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머슬로우 이론에서 두 번째 욕구가 안전의 욕구입니다. 병, 전쟁, 사고 등으로부터 안전하고 싶다는 욕구입니다.
사람들은, 안전하려면 재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요. 그래서 돈에 욕심냅니다. 돈 때문에 사람 죽이고, 돈 때문에 그 고생하고, 돈 때문에 형제간에 소송하고, 돈 때문에 병 치료 못하고 죽어갑니다. 돈이 얼마나 힘이 큽니까. 이걸 몰라도 안 되고, 터부시해도 안 됩니다.
문제는 돈에 과욕을 내는 것입니다. 돈 때문에 인면수심이 되어 버리면 안 됩니다.
오욕에서 명리는 머슬로우 이론에서 사회적 욕구와 존경받으려는 욕구에 해당합니다. 사람들은 소속감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사람을 사귀고 싶어 합니다. 또 존경을 받고 싶어 합니다. 돈 희사하는 사람들이, 이름 없이 희사하지 않아요. 박수 받을 만한 자리에, 카메라 찍으라 하면서 돈 내잖아요. 이름이 드러나고 싶어 해요. 인정받고 싶어 해요. 존경받고 싶어 합니다.
머슬로우 이론에서 다섯 번째 욕구가 자아실현의 욕구입니다. 자아실현은 주로 신앙생활입니다. 오욕을 넘어선 가치를 향한 것입니다.
10-20대 때는 색욕, 식욕, 수면욕에, 30-40대 때는 재물욕에, 40-50대 때는 명예욕에 빠지기 쉽습니다.
대종사님께서, 이 총들 안 맞고 살기 어렵다고 표현하셨어요.
온전한 자기의 자아, ‘참 나’를 주인으로 하여,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자아실현을 위한, 자신의 서원을 이루기 위한 고귀한 삶의 방향을 선택한 것입니다.
‘참 나’에는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영육쌍전의 나이고, 무아의 나입니다. 그리고 중중무진(重重無盡), 인드라망 가운데 나입니다. 인드라망은 무수한 구슬들로 짜인 구슬그믈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인드라망 가운데 한 구슬입니다. 우주만유, 즉 사은 속에 연기(緣起)로 존재하는 나입니다.
‘사은 속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재색명리를 함께 하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재색명리가 주체가 아니라, 내가 주체로서 재색명리를 활용합니다.
2.입 과정
유인물 오른쪽 봅시다. 경계를 만나서, 식으로 들어가서, 7식 8식 9식으로 들어갑니다.
육신은 7식까지입니다.
8식은 잠재의식, 무의식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법회를 보고, 선을 하는 것도, 8식 잠재의식 때문입니다.
보통 범부들은 6식, 7식에서만 살아요.
하지만 말입니다. 치매 앓아보세요. 자기 딸도 못 알아봅니다. 몸 바꿔보세요. 자기 이름도 기억 못합니다. 몸 바꾸면, 8식 즉 내가 닦았던 수양력, 지혜, 인연, 업을 가지고 가는 겁니다.
지난 일요일에 육근문 개폐에 대해 이야기했었습니다. 육근 중에서는, 안·이·설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중 가장 큰 죄업이 구업입니다. 구업 짓는 사람들은, 구업인지도 모르고 죄를 지으면서 나중에 억울하다고 분하다고 그래요.
3. 순환
이렇게 순환합니다. 성품에서 육근으로 나오고, 외부 경계를 통해 들어옵니다.
이렇게 순환하는 가운데, 내가 선업을 쌓고 있는지 악업을 쌓고 있는지, 내가 8식에 잠재의식에 무엇을 저장하고 있는지, 7식의 세계에서 어떻게 놀아나고 있는지, 정신이 마음을 활용해서 쓰고 있는지, 아니면 정신수양에는 관심도 없고 마음만을 잘 쓰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잘 한 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III. 정신수양의 목적
"유정물(有情物)은 배우지 아니하되 근본적으로 알아지는 것과 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는데," |
유정물은 사생(四生=태란습화)을 말해요. 사생에는 여섯 가지 길이 있지요. 육도사생입니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들입니다.
유정물은 근본적으로 알아지는 것과 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고 합니다. 이때의 욕심은 첫 번째 욕심(浴)입니다. 여러분, 물에서 고기 잡으려 해보세요, 다 알고 도망 가려하죠.
"최령한 사람은 보고 듣고 배우고 하여 아는 것과 하고자 하는 것이 다른 동물의 몇 배 이상이 되므로" |
사람이 다른 동물들보다 욕심이 몇 배나 많다는 걸, 대종사님이 왜 말씀하셨을까요? 사람들은 그러니까 열심히 수양해서, 그 욕심의 노예로 살지 말고 그 욕심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대종사님이 돌아가시기, 최후법문 사흘 전인가, 구도실에서 시자에게 양말을 기워오라 말씀하시고는 커튼을 탁 치셨어요. 그 때가 밤 10시가 넘은 때였습니다. 시자가 아침에 들어가 보니, 연필 똥이 한 무더기에요. 대종사님께서 연필로 정전 손보신 겁니다. 그 때가 돌아가시기 3일 전이었어요.
대종사님 같이 새 부처님으로 오신 주세불이, 한 글자 한 글자 그렇게 정성들여서 쓰고 지우고 쓰고 지워서, 이 정전 하나를 남기고 가신 겁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하나 대종사님이 고민하신, 심인 자리가 그대로 묻어나온 것이 바로 이 정전입니다.
"그 아는 것과 하고자 하는 것을 취하자면 예의염치와 공정한 법칙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자기에게 있는 권리와 기능과 무력을 다하여 욕심만 채우려 하다가" |
여유는 수양입니다. 수양을 해야 여유가 생깁니다.
"결국은 가패 신망도 하며, 번민 망상과 분심 초려로 자포자기의 염세증도 나며, 혹은 신경 쇠약자도 되며, 혹은 실진자도 되며, 혹은 극도에 들어가 자살하는 사람까지도 있게 되나니," |
서원을 채우려 하지 않고 욕탐을 채우려다보면, 결국엔 가패신망하고 신경증도 걸리고 자살도 하게 됩니다.
제가 요즘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마음공부 한다는 사람들은 과학인 심리학을 공부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염세증은 우울증입니다. 이러한 신경증들도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한 겁니다.
실진자에서 진은 참 진(眞)자입니다. 실진자는 ‘참’을 잃어버렸다 즉 실성했다는 의미이지요. 실진도 욕심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욕심 때문에 정신 기운이 약해져서, 정신 기운이 버팀목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교무해보니까, 이런 걸 구분할 줄 알아야겠더라고요. 이 사람이 기도원에 가야할 사람인지, 약을 먹으면 될 사람인지, 정신병원에 가야할 사람인지, 운동을 해야 할 사람인지, 기도를 해야 할 사람인지. 아프면, 제일 먼저 중요한 게 진단이잖아요.
"그런 고로 천지만엽으로 벌여가는 이 욕심을 제거하고 온전한 정신을 얻어 자주력(自主力)을 양성하기 위하여 수양을 하자는 것이니라." |
제가 출가할 때, 3일간 날을 샜어요. 무엇이 나를 잠 못 들게 했는가, 돌이켜보니, 그 또한 욕심 때문이더라.
기본적인 욕심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과한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욕심을 챙기느라고, 그 욕심의 노예로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참 주인인 나’ 즉 ‘진공묘유의 나’가 주인으로 살아야합니다. 그 진공자리에 가기 위하여 수양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편해지려고 자유로워지려고 돈 버는데 욕심을 내요. 하지만 진짜 편안하고 진짜 돈이 나오고 진짜 자유를 주는 것은 진공의 자리인데, 사람들이 그 진공의 자리에는 관심이 없더라.
IV. 수양의 결과
우리가 정신 수양 공부를 오래오래 계속하면 정신이 철석 같이 견고하여, 천만 경계를 응용할 때에 마음에 자주(自主)의 힘이 생겨 결국 수양력(修養力)을 얻을 것이니라. |
“오래오래”가 중요합니다.
갑자기 발심해서, 아침좌선을 나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교당 근처로 집도 옮기고요. 길면 1년, 조금 길면 6개월, 3주, 어떤 사람은 하루 오고 안 나옵니다. 쉬운 일이 아니지요.
제가 어저께 총부에서, 융산 김법종 원로교무님과 이야기를 했는데요. 융산님이 원불교학과 다니실 때, 부전공으로 교직이수가 있었나 봐요. 그 때, 사람들이 어차피 빈 시간인데, 교직 따두면 교화에 활용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교직을 땄단 말예요. 그런데 그 때 당시에 원불교가 초기교단이다보니, 남자교무들이 경제적으로 넉넉했겠어요? 교무들도 사가에 별별 일들이 다 생기잖아요. 나중에는, 교직 딴 사람들이 거의 다 나가버렸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경계를 만납니다. 그래서 울타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울타리가 무형식으로는 서원입니다.
형식으로는 출가 또는 재가라고 못을 박는 것입니다. 무형식으로서 서원은 외서내원입니다. 밖으로 스승과 진리전에 맹세하고 (외서), 안으로 내가 스스로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내원).
형식을 잡아놔도, 경계에 따라 도망 나가기 쉽습니다. 원불교학과 보면 똘똘한 사람들이 다 나가더라고. 나가도 해먹고 살 것이 있으니까요. 나가서 해먹고 살 것이 없는, 배수진 치고 있는 사람들은 안 나가지요. 끝까지 버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재주가 있는 것이 좋은 것이여 아닌 것이여? 좋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 재주를 교단을 위해 써먹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제가 노래 부르길 좋아하잖아요. 제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만약 출가를 안 했으면, 미사리에서 노래를 했을 수도 있겠다고요.(웃음) 그런데, 제가 노래를 씨디로 만들어서 교화에 써먹잖아요? 노래를 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사람의 서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어쭙잖게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경계가 왔을 때, 나에게 힘이 없으면, 이용당해버립니다. 그래서 대종사님께서 재주가 있는 사람 보다,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있는 사람 하근기인 사람이 더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종사님이 영광 땅에 오셨어요. 여러분들은 복과 혜가 많아서, 어디 태어날지 정할 수 있으면, 어디 태어나시겠어요? 여러분들 좋은 데서 태어나면 이 공부할 것 같아요? 상산님은 그러셨어요. 상산님은 남원에서 99칸짜리 집에 사셨거든요. 경성 법학전문학교(서울대 법대의 전신) 나오셨고요. 이미 사업을 해서 돈을 엄청나게 번 사람인데, 출가하셨지요. 대종사님이 학식 있고 재물 있는 사람은 신심내기 어려운데, 이 사람은 냈다 하면서, 바로 부장 자리 주셨잖아요. 하지만, 상산님처럼 하기 어렵습니다. 어쭙잖게 돈 있고 명예 있으면, 오히려 그것의 노예로 살더라.
살다보면 별놈의 경계가 다 있어요. 출가한 사람은 아프지도 않아요? 부모형제 없어요? 똑같아요. 그것도 극복하는 것이 힘이지요.
수양이 부족하면, 내가 내를 속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내가 나를 합리화해버립니다. 원불교 안 나오다보면, 처음에는 미안해합니다. 나중에는 뻔뻔해집니다. 왜? 자기가 자기를 속여 버리거든. 온전한 정신이 욕심에 가려버렸어.
그러니까 정기적으로 훈련 나가고, 정기적으로 법회를 나오라 하는 것입니다. 몇 주만 교당 안 나와 보세요. 처음에는 미안해하다가, 나중에는 뻔뻔해진다니까요. 온전한 정신이 아닌 겁니다. 욕심에 가려버린 겁니다. 욕심, 자존심, 습관, 업력에 의해, 정신이 가린 것입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일이, 젊었을 때 정신이 가려진 채 저질렀던 일들을 땜방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인생 마쳐요. 제생의세 사업하는데 급해야지. 땜방하는 데 급하다가 가버리면, 쭉정이 인생이지 않겠어요.
우리가 정신 수양하는 것은, 내 본래 자리를 잃지 않고, 온전한 나로 살아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신수양입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에 기도도 있고, 선도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 어떠세요? 주인으로 사세요? 주인으로 살 때도 있고, 안 살 때도 있겠지요. 여러분들 마음에 뜻이, 서원과 신심이, 딱 박혀 있으면, 그로써 보태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얼마나 뻔뻔해지는지 몰라요. 훈련가보면 그동안 내가 너무나 나태하게 살았구나 반성이 되지요? 훈련을 통해, 온전한 정신이 돌아와서 그래요.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제대로 들었으면, 온전한 정신이 돌아왔을 거예요. 그러면 아, 내가 그동안 어땠구나, 진심으로 참회하실 겁니다.
이건 교무가 하라마라 하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내 인생의 문제예요. 나를 나답게 살고, 나를 가장 행복하게 사는 데 관련한 문제예요.
일생동안, 그놈의 육신 (지수화풍으로 흩어질 것, 생로병사 하는 것), 아니면 그놈의 마음(수상행식, 고통) 속에 살다가 허망하게 죽으면, 얼마나 서운하겠어요.
질문 있으면 하십시오.
[문]
재가(在家)교도들이, 아상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답]
수양의 출발은 진공입니다. 수행문을 진공묘유의 수행문이라 하잖아요.
국선도라든지, 단학선원이라든지, 수많은 수행단체가 있어요. 거기서는 성리(性理)는 대체로 빼 버립니다. 수행이 건강에 좋다느니 등의 이야기만 합니다. 그런데, 건강이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건강 좋아서 뻘짓거리하면, 더 곤란하거든요. 골치 아픈 사람들이 오래 살면 더 골치 아파요.
수행의 방법보다는, 삶의 방향과 나에 대한 인식이 더 중요합니다.
견성은 꾸어서라도 하라고 합니다. 먼저 믿으라는 말입니다. 진공묘유를 화두로 가지라는 말입니다.
서양의 종교는 불교와 너무 달라요. 서양종교는 유아로 출발해요. 내 영혼과 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에요. 진공입니다. 진공 속의 묘유입니다. 수행은 공적영지를 단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렵지요. 현실 속에서.
경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게 불교입니다.
둘째 아들이 형과 어머니를 토막살인 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돈 때문입니다. 황금보기를 돌 같이 보라는 사람 있어요? 천하 멍청이에요. 돈이 얼마나 위력적인데요. 문제는 돈에 내가 마음을 뺏길 것인가 그래서 내가 돈의 노예로 살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그 돈을 선용할 것인가 서원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인가 입니다.
어떤 원불교인이 한의사인데, ‘마음공부 해야 하니까 환자 조금 오게 해주세요’라고 빌었다고 해요. 그 사람 교무님한테 뒤지게 혼났잖아요. 원불교 공부 제대로 한 거 아니라고요.
강연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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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엄청난 정리네요~ 그림에 중요부분 표시부분까지 한눈에 쏙 들어옵니다 감사합니다~ 성해교우님~
감사합니다 성해 교우님^^
우와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