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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백년 8월 22일 토요법회
信 = 定
초벌: 임도운
완성: 김인의
오늘 배성해 교우님 강연 잘 들으셨죠? 저도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제가 출가해서 교무를 하면서 특히 더 기쁠 때가 있습니다. 여러 번 있는데 그 중에, 제 방에 한번 오겠다고 연락이 와서 찾아와서 교무님 저 교무님 할래요.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다 오케이 안합니다. 1년 기다려라 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 바로 원서 쓰자고 하는 사람도 있고 더 지켜보자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제가 참 기쁩니다. 또 기쁜 것 중에 하나는 이 법에 신심이나 서원이 딱 뿌리박은 때가 있습니다.
신이라는 것은 믿음인데 그 믿음은 정해버리는 것입니다. 아 이 법 정말 좋구나 정해버리는 것이 신심이 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정해버리는 사람이 있어요. 정해버리면 정해지고 편안해지고 맑아지고 맑아지니까 밝아지고 밝아지니까 통해져 버린 것입니다.
信 = 定 = 靜 = 安 = 淨 = 明 = 通
신이라는 것이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을 정해버리는 순간 그 요란함이 탁 없어집니다. 신만 정해도 번뇌의 60~70프로 사라집니다. 신을 정한 그 마음의 내용이 서원이에요. 그래서 그 서원이 욕심 없는 마음이라고 이야기하죠. 보통 왜 번뇌가 많을까요? 욕심이 많아서 그렇죠. 욕심이 많은 만큼 비례해서 머릿속이 복잡한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욕망이라는 것을 추구하는데 끝없는 갈증, 그것은 채울 수 없습니다. 그 욕망을 건전한 욕망으로, 더 은혜로운 욕망으로, 더 큰 욕망으로, 사적인 욕망이 아니라 공적인 욕망으로 확대해서 키워버린다면 그 때 마음은 정말로 편안하고 밝은 생각이 나고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낸 사람을 볼 때 참 기뻐요. 그리고 그런 마음을 낸 사람들은 생활을 바꾸게 됩니다. 이 중에 술 먹는 사람들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자주 하려고 하는 사람 거의 없어요. 그래도 지키려고 하는 것이죠.
-신심과 실행의 중요성-
제가 전남 수련원에 근무할 때 전남대 의대를 나와서 완도군 의료원 원장으로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의료원에 무료 봉사를 하려고 의료 세트를 빌리러 갔다가 같이 이야기 한 적이 있어요. 나중에 의료원장이랑 이야기해보니까 낚시를 참 좋아하더라고요. 의대 나온 사람이 공무원하면 4급 공무원이 되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데 두 장의 종이를 가지고 왔어요. 질문 한 장, 메모 한 장 이렇게 해서 질문을 아주 많이 가지고 왔죠. 그 사람이 질문을 하면 의료 사태, 국가 정책문제, 아버지와의 갈등 등 여러 가지 질문들을 해요. 그러면 정전 한 대목씩 제가 공부를 시켜주죠. 하루는 그 사람이 낚시를 매우 좋아하기에 낚시하면 다음 생에 언청이 되는데 낚시하고 싶냐고 말했어요. 그 고기가 낚이면 고기는 얼마나 아프겠냐고 고기도 다 영혼이 있다고 했어요. 불교는 인과라는 이치가 있는데 그런 것을 즐겨하면 언청이가 될 수 있는데 알아서 하라고 했는데 결국 낚시 용품들을 다른 사람에게 다 줬더라고요. 그 사람이 낚시를 다 끊어 버렸습니다. 종교라는 것은 믿음이지만 그 믿음이 지혜와 연결이 되고 깨침과 연결이 되고 더 나아가서는 실생활에 응용, 활용 및 적용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원불교 계문이 있잖아요.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는 것이 신심 있는 사람이고 술을 연고 없이 마시지 말라고 하면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신심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원불교 다니는데 실지 생활에 있어서는 계문을 지키지 못하고 실생활에 응용하고 적용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가 자신감이 없어질 것입니다. 성해교우님이 술을 끊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술맛 모르는 사람은 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술맛 아는 사람은 어렵습니다. 힘들면 술 먹고 느끼는 쾌감 생각이 나죠. 술도 준 아편 입니다. 그것을 과감히 끊는다? 쉽지 않습니다. 뚝방이 무너질 때 보면 조그마한 틈으로 무너집니다. 우리가 왜 성자가 되지 못하느냐? 그것은 조그마한 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조그마한 틈을 쉽게 생각하고 그것을 우습게 생각하고 그것을 간과하면 순식간에 무너질 것입니다. 생각날 때 한잔만 하고 더 이상 안 마시면 되죠? 그러나 그것이 됩니까? 확실히 마음의 자유를 얻기 전까지는 먼저 피경, 금하는 것이 좋습니다.
-좋은 인연-
성해교우의 강연을 들으면서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이 사람은 이 법을 쉽게 알아보는구나, 근기가 높구나, 그리고 알아보고 그것을 실생활에 적용해나가는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돈을 벌어요? 명예가 있어요? 제가 무슨 재미로 살겠어요? 저는 다른 사람이 기쁘게 살 때 제일 기뻐요. 이것은 봉사자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제일 행복할 때가 여러 가지 있는데 내가 보은 할 때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나누고 베풀 때 행복하고 가장 힘이 쌓입니다. 가장 복 있는 사람도 그 때 복 있는 것이고, 그 때 좋은 인연이 생기는 것입니다. 황원공 교우가 성해교우를 데려 오기 전에 참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를 해요. 본인이 그렇게 열심히 해서 단장도 하고 도자부 좋은 아이디어도 내고 영상 올라가고 자료 올라가고 타이핑까지 다 올라가는 그런 공덕을 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임도운 교우와 대구 동창인데 임도운 교우가 와서 지금 중앙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연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아는 것’의 중요성-
성해교우는 연원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가장 철이 든 사람은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신의, 대의가 있다는 것은 은혜를 느끼고 신의를 보은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 은혜를 느끼지 못하고 배은하고 배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철든 사람이 아니죠. 철학에서는 스승을 넘어서라고 그럽니다. 청출어람이 철학의 핵심입니다. 그런 것은 괜찮습니다. 스승을 딛고 일어서는 것은 스승이 바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 자신보다 잘 나면 좋아하지 싫어하겠습니까? 스승의 심경이 아닐 것입니다.
-원리를 깨쳐 나중에 응용하기 위해 필요한, ‘질문’의 중요성-
성해 교우가 처음에 왔는데 질문을 잘하더라고요. 성해교우님 덕분에 공부방도 마찬가지로 법회도 풍요로웠던 같습니다. 대종사님 사위의 아들 송천 교수가 있습니다. 교무이면서 원불교학과 교수였습니다. 그 분은 평상시 강의 잘 안합니다. 썰렁해요. 그러다가 누군가가 질문을 잘하면 그 날은 엑기스의 내용들이 나옵니다. 지난 주 수행법회에서 질문이 잘 나오더라고요. 끝나고 잘 생각해보니까 오늘 법회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질문이 나오면 그것이 내가 알고자 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 주변 동료들에게도 큰 은혜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까닭이 있다는 것이고 깨어있다는 것이고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있다는 것이고 발전하고 배우겠다는 것입니다. 질문이 없다는 것은 두렵다는 것이고 까닭이 없다는 것이요, 주변을 너무 의식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은 전혀 창피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나가는 것이 정말 창피한 일이죠. 원불교는 문답법이 큽니다. 유대인들의 도서관을 가보면 시장과 같이 시끌벅적 합니다. 계속 문답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원불교도 대종사님 문답시간이 있습니다. 교당 내왕 시 주의사항 첫째도 문답이죠. 사람이 까닭이 있고 알고자하는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질문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한사람을 놓고 하루 종일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좌산상사님은 학부시절에 정산종사님께 얼마나 질문을 많이 했는가 하면 주변에서 전세 냈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질문한 사람을 구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질문하지 않는다고 미워하지 않습니다. 저도 학교다닐 때 구박도 받아보고 그것도 질문이냐는 소리도 들어보았습니다. 특히 원불교라는 종교는 의심을 해결해야하고 현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현상의 이면 원리, 이치, 성리를 바라보기 때문에 반드시 질문과 까닭 있는 의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원리를 알게 되고 응용할 수 있고 창의적인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형식과 어떤 행동 어떤 사례 자체를 닮아가려고 하면 안돼요. 형식의 원리를 보고 나중에 응용할 수 있는 것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질문이 많이 필요합니다. 대종사님은 한 주 살고 나면 왜 질문이 없냐는 것입니다. 경전을 보다가 책을 보다가 티비를 보다가 꽃한송이를 보고 질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에게 질문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철학분야는 기본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겠지만 보통의 큰 예술가나 큰 사업가는 문명의 혜택 속에서 더 큰 대가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명의 혜택을 받으면 어느 정도 성장은 하지만 넘어서기 위해서는 문명의 혜택 속에서 까닭이 있어야 합니다. 자율적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지 넘어설 수 있습니다.
-구도심-
제가 이번 원광에서 인터뷰가 와서 한 말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 여기 앉아있는 것은 뭐냐? 이 시간에 얼마든지 친구와 술 한잔 할 수도 있고 놀러가도 되고 티비에 재밌는 것도 많이 하는데 교당에 온 것은 여러분 안에 맑은 영혼을 추구하고 정말로 잘 살아보겠다! 행복하겠다! 여러분의 답답함을 해소하고 정말로 구도심, 정말로 잘 살고 싶다, 온전한 나로 살고 싶다 그리고 이 세상이 정말로 좋아졌으면 좋겠다. 그런 구도적 열정이 여러분들 안에 다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 여러분들 안에는 구도심이 있어요. 저는 서점에서 발견했습니다. 종교가 서적을 사람들이 뒤적이는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나름대로 도에 대한 관심 행복, 존재에 대한 관심, 어떻게 하면 내가 잘 살고 이 세상이 함께 잘 살 수 있을까 이런 것에 대한 관심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구나. 그리고 죽음에 대한 문제, 이 문제를 잘 승화시키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한 것 인가하는 관심이 왜 없냐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있는 이런 구도적 열정을 감추지 말고 불씨를 살려 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까 이야기 했죠? 성해 교우님은 불교 철학의 지적 호기심으로 왔지만 그 내면에는 내가 진짜 영원한 행복, 함께하는 영원한 행복을 원했죠. 저도 그 행복을 찾아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도 편안한 것이 좋고 그래요. 저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사자를 잡으러 간 포수는 토끼를 보고 총을 쏘지 않습니다. 종교라고 하는 것은 철학과 유사합니다. 철학은 과학적 측면이 많고요. 밝혀지고 증명된 것만을 수용합니다. 그러나 종교는 과학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에 신비적인 과학으로 밝힐 수 없는 그런 차원의 세계가 있습니다. 또 그것을 깨쳐서 안 성자들이 있습니다.
-부지런히 하는 종교생활-
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 몰라서, 둘째 욕심이 많아서. 그런데 그것은 작은 욕심이죠. 큰 욕심이면 종교에 달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태한 사람이 종교를 멀리합니다. 멋 내는 것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시험공부를 덜할 것입니까? 직업생활을 포기합니까? 하면서 해야하기 때문에 부지런 해야 합니다. 게으른 사람이 더 힘든 것이죠.
-인과와 영생-
종교가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만 보면 나태심과 부정적 생각들이 얽혀서 종교는 믿을게 못 된다는 쉽게 생각이 들게 되죠. 내가 모르고 내 눈에 안보이면 없다고 해요? 너무 웃깁니다. 지금 뉴욕이 없어요? 동경이 없어요? 베이징이 없습니까? 다 있어요. 그대로 있어요. 안가보고 안보이면 없는 것입니까? 왜 인과에 대해서 영생에 대해서 부정합니까? 일단 인과와 영생을 보류해야 합니다. 내가 모르면 아니라고 하지 않고 그것을 판단하기보다 보류 하는 것이죠.
-국한 틔우기-
아까 운동권이야기 했죠. 운동권 사람들이 아쉬운 것이 많죠. 한편으로는 대단한 사람들이죠. 종교인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안에는 적개심을 품고 있습니다. 은혜를 품고 그 은혜 속에서 권력욕에 탐한 사람들이 그것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해요. 영국은 민주의회제도가 800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1987년도에 처음으로 직접선거했습니다. 얼마 안 되었습니다. 불과 30년도 안되었습니다. 800년 된 영국도 때로는 난투극이 일어납니다. 그게 쉽게 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해교우가 아까 그런 측면으로 가더라도 욕속심을 내지 말았으면 합니다. 내 한 몸 바쳐서 보다 건강하게 하는 것에 일조하는 것이지 본인이 이상으로 생각하는 사회는 이생에는 어려울 것이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결국은 제도, 구조, 현대 철학이 구조주의로 와서 그 구조에 대한 것들이 많죠.
여러분 나라는 존재는 나만이 아닙니다. 나라는 것은 각개의 개별적인 나들이 있죠. 또 하늘이 있고 땅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이 있습니다. 가정에는 부모, 형제, 친척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가 있죠. 그 안에는 수많은 동포들, 법률과 제도 수많은 법조계 사람들 등등이 있습니다. 국가, 세계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통틀어서 나와 둘이 아닙니다. 왜? 이것이 직접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히말라야의 눈이 여러분과 전혀 관계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생의세를 한다는 것은 모든 생령을 다시 살리고 세상을 보다 은혜롭게 세상의 병을 고치겠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분야에서 나의 존재를 어디까지 인식하고 어떻게 생각하는 지도 정말로 중요합니다. 겨우 나라고 하는 것을 개인, 가정까지가 포함된 것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시계가 (시는 시간, 계는 공간을 말합니다.) 일체 전체가 모두 하나인 것입니다. 그것이 일원상의 진리입니다. 내가 정말 행복 한다는 것은 절대 나 혼자만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공식은 나부터 행복해야 합니다. 근데 그 행복이 나만 행복하다고 해서 행복할 수도 없는 것이죠. 이 세상과 둘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까 운동권하는 사람들이 국한이라는 것이 겨우 국가 내에서만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 내에서 작은 국한을 가지고 살면 안되죠. 대종사님께서는 일본 순사도 내 가족으로 본 것입니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안중근, 안창호같이 하는 방법도 있겠죠. 또 대종사님같은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1 운동 만세삼창이 일어 났을 때 대종사님께서는 우리는 세상을 건지는 큰 일이 있다고 기도한 것이 법인절이었습니다. 여러분 국한을 크게 틔우세요. 자기도 모르게 커져버립니다. 사람이. 눈도 커집니다. 국한을 넓히세요. 아까 정치적으로나 권력을 통해서 이기적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원수와 적으로 대할 것인지 혹은 구제할 가족으로 생각할 것인지 어떻게든 품어서 철이 들게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시간 있을 때, 초반에 열심히 하기, 방심하지 않기 -
성해 교우님은 지금 공익 법무관이죠. 이 때보면 마이너스 통장 만들고 놀러 다니고 휴가 다니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교당의 전문직들은 그렇게 안했죠. 서도안 교우는 공익 군의관이었는데 장소를 바꿔서 청년회 부회장도 했습니다. 이현도 교우는 공익 군의관이면서 안산에서 다니고 청년 회장도 했습니다. 김호겸 교우는 충주에 살면서 공익 군의관 했습니다. 거의 교당 빠지지 않았습니다. 방학 때 어떤 사람은 강급하고 어떤 사람은 진급합니다. 프로 야구 선수들도 비시즌 기간을 어떻게 보내냐에 따라서 성적이 다를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공익 법무관 기간 동안 강급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저는 운동을 되게 좋아합니다. 탁구하면 박원허 교우랑 같은 한 조입니다. 전성욱 교무님과 송종원 교우가 상대팀입니다. 전성욱 교무님이 잘 칩니다. 그런데 저번에 이겼습니다. 어떻게 이겼냐면 초반에 방심하지 않고, 잡고 가서 이겼습니다. 그러면 뒤에 쫓아와도 이길 가능성이 많고 여유가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 인생에 적용하고 싶습니다. 젊은 시절 초반에 법무관이라고 놀고 방학했다고 놀고 직장 안다닌다고 놀면 나중에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초반에 하면 내가 한 것 결국 절대 남 주지 않습니다. 왜 초반에 하는 것 그것이 내 것입니다. 초반에 하면 여유가 있습니다. 시험도 1년만에 붙지 왜 2년만에 왜 붙어요. 할 때 하면 훨씬 여유가 있습니다. 오히려 너무 잘 풀려서 걱정일 것입니다. 초반에 할 때 방심하지 않고 조그마한 그 틈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술의 한 예죠. 술 한 잔 그것 가능합니까? 아마 성해교우가 첫 직장이니까 사회생활이니까 한 잔 정도는 받자고 생각했다면 아마 끊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 잔 받으면 나중에 또 권할 것입니다. 저도 신혼여행을 겨울에 설악산으로 갔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데 같이 간 신혼부부와 함께 동반했습니다. 며칠간 가까워졌죠. 같이 술자리가 있었는데 동반한 신혼부부가 제 소주잔에 사이다인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교무인 줄 모르고 있는데, 그깟 술 한 잔 먹어도 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도 조금한 방심이 우리의 심층심리에는 생을 마감해서 내생에 몸을 받아 나올 때는 표층심리는 다 사라집니다. 그래서 습관, 인연, 수행의 깊이 성품단련한 것 그것은 가지고 가고 심층심리는 가지고 오고 표층심리는 없어집니다. 배푸는 습관이나 착한 성품은 가지고 옵니다. 그래서 현실 표층 의식으로 하냐 안하냐 판단하지 마시고 영생을 보고 항상 판단해야 합니다. 하나가 모여서 둘이 되고 이소성대가 되어서 내 인생을 좌지우지 하는 것입니다. 결국 성자들은 조그마한 방심을 하지 않는 불방심 한 사람들입니다. 그 분들이 성자가 됩니다. 그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뛰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그 순간 그 경계에서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경계에서 욕심으로, 습관으로, 무명으로, 업력으로 그것을 집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겨낼 때 마음의 자유를 얻게 되고 비로소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나 성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지식 유무 상관없습니다. 그 한 마음 경계에서 평상시 단련한 힘이 있어야 되겠지만 그 조금한 틈에서도 방심하지 않고 갈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살다보면 물론 넘어지고 집니다. 그것을 채우고 매우고 하면 서서히 달라집니다. 그 때 내가 예뻐 보이고, 주위에서 구박해도 내가 예뻐 보입니다. 남들에게 너무 웃어줄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나에게 충실하면 기쁨이 따라 오게 됩니다. 지금 술, 담배하는 사람 있습니까? 몸에 이로운 것이 뭐가 있습니까? 그것을 끊으면 경제적 이득이 있고 저축을 해라 헌공도 해라는 것입니다. 그런 돈을 아껴서 장학금도 내고 유지비도 내고 어려운 사람들 내가 도와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담배 얼마 안 되지만 모아보면 엄청납니다. 담배 하나뿐이겠습니까? 참 신기합니다. 후배들에게 술은 팍팍 사주지만 기도비 낼 때는 손이 떨려서 못내요.
-연구력 기르기, 노는 시간에 이 세상의 일과 이치 공부하며 성자와 기운을 함께하기-
아까 연구력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기본서 이야기를 했죠. 대종사님은 당대 훈타원 양도심 젊은 어린 여자 학생이 일본을 가겠다고, 유학을 가겠다고 계획을 다 세우고 대종사님께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말씀을 드리니까 대종사님께서 잘 들어주셨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얼굴이 변하시더니 주산종사님을 불러서 일본으로 간단다, 불법연구회에서 나가라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은 일과 이치로 돌아갑니다. 이치에 바탕에서 일로 굴러가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리고 철학, 경제, 경영 이 모든 것이 그것을 바탕해서 다 있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과 이치의 기본적인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 경전이고 이것을 하면 이 세상이 하나로 보이고 원리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내가 어떤 존재이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의 원리를 알면 됩니다. 그래서 대종사님은 상시응용주의사항에 노는 시간이 있고 보면, 경전법규 연습하기를 주의해라고 하셨습니다. 노는 시간에 이 세상의 일과 이치를 공부해라 그 말입니다. 성자와 기운을 함께하라는 것입니다.
-수양력 기르기, 훈련!-
수양력 이야기 하셨습니다. 수양의 맛을 여러분들이 집에서 살면서 느끼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대게 훈련갔을 때 수양의 맛을 느끼게 됩니다. 1월 달에 출가여행을 간 사람들은 거의 수양의 70%는 수양의 맛을 느끼고 옵니다. 제가 원불교에 와서 출가여행이 가장 자신 있게 내어놓은 프로그램입니다. 그 중에 핵심은 스승의 기운을 받으면서 정말 수양의 진경의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맛을 봐야죠. 그 다음부터는 본인이 알아서 찾아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체험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훈련을 가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과를 지키기 위한 과학적인 법, ‘일기 기재’하기-
마지막으로 진짜 큰 공부는 일과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매일 내가 시간을 정해서 규칙적으로 시간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법이 있습니다. 바로 일기입니다. 일기를 적으면 일과를 지키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대종사님의 법을 만나서 스승을 만났을 때 정말로 여러분들 안에 숨어있는 구도심이 불씨가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올라서 이 세상을 밝게 비추고 그 불빛으로 모든 것을 해내고 어둠도 밝히고 눈도 다 녹여내는 역할을 하는 여러분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인의교우님~! 소제목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