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근무한지 반년이 지나고,이듬해 3월 새학기가 되면서 중학교 1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담임을 맡는다는 것은 수업을 제외한 업무가 몇 배로 가중됨을 의미합니다.
아침 저녁 조회와 종례는 물론이고,내 반 아이들 출석부,수업일지,성적표 작성과 학생기록부 작성,기타등등... 많은 업무가 주어지는데,학교행정에 관한 실무는 대학교에서도 전혀 배운바가 없어 하나씩 물어보고 배워가면서 하던 때였습니다.
학생증 발급하라며 사환 아이가 교무실 책상위에 학생증 60장을 갖다 놓았습니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 학생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옆반 선생님이 이미 만들어 놓은 학생증을 견본으로 설정하고,자세히 살펴본 후에 그대로 따라서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타원형으로 길죽하게 생긴 도장이 반쯤만 찍힌 학생증 견본을 보고 또 그대로 따라서 반쯤만 나오도록 찍었습니다.왜 도장을 반쯤만 나오게 찍을까?라는 의구심을 순간적으로 잠시 하면서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우리 반 학생들에게 학생증을 다 나눠주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입니다.
교무주임 선생님이 부르셨습니다.
"김선생님,학생증 발급을 아직 안하셨습니까?"
"벌써 다 해서 나눠줬습니다."
"아니,나눠줬다고요?발급대장에 1학년 6반만 한 명도 간인이 안찍혔는데요."
발급대장을 펴보이는데,우리반 아이들 이름옆에 도장이 하나도 안찍혀 있는 겁니다.
도장이 찍혀있을 리가 없습니다.
나는 발급대장이 있는줄도 몰랐고,발급대장위에 학생증을 놓고 길죽한 도장을 걸쳐서 간인으로 찍어야 한다는 사실도 몰랐던 것입니다.이 거 정말 큰 일 났습니다.
"다시 새로 만들어야 합니까?"
너무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되어 쩔쩔 매는 나를 보신 교무주임께선 사건의 전말을 다 아신듯한 표정으로,
"너무 걱정 마세요,중1 학생증으로는 크게 말썽 일으킬 일이 없을테니까요,허허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모르는 것은 경험이 많은 선생님께 물어 배워가면서 했는데,이 학생증 발급은 묻지도 않고 한 결과가 이런 엄청난 실수로 나타난 것입니다.
학생증 진위여부를 원본과 대조할 때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발급대장에 찍힌 간인입니다.
학교 근무 6개월된 신참 교사가 처음 담임을 맡아 저지른 실수입니다.
9월에 발령 받아 한 학기 동안은 수업만 했기에 이런저런 행정적인 실무를 익힐 기회가 없었습니다.
수업을 위한 교안작성해서 결재 받는 일이 가장 큰 일일 정도로, 잡다한 업무가 많은 담임교사와는 달리 편하게근무했습니다.
6개월 동안,실수없이 맡은 바 임무에 충실했기에,교무실에서는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는 편이었습니다.
담임을 맡기전, 입학시험 시험지 채점을 할 때였습니다.
그 당시는 평준화 전이어서 입학시험에 합격해야 입학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입학시험지 채점은 공정성과 정확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한 뭉치의 시험지를 수험번호와 이름을 표기한 윗부분은 나무 판자를 앞뒤로 덧대어 단단히 묶어 아무도 볼 수 없게 한 후에 채점을 하게 됩니다.
교무실에 모든 선생님이 다 모여서 시험지 한 뭉치씩 맡아 채점을 하고는 채점자 성명란에 이름을 쓰고는 다음 선생님께 넘깁니다.
정답과 일일이 대조하면서 혹시 잘못 채점한 것과 잘못한 점수계산을 찾아내는 재검작업이 몇 차례 더 반복해서 이뤄지고 나서야 채점이 끝나는 것입니다.
물론 재검자의 이름도 차례대로 다 기록합니다.
잘 못 채점한 것이 하나라도 나오면 바로 앞 선생님의 책임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사람인지라 채점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여러 번 반복해서 재검 하는 것입니다.
퇴근시간이 지났어도 채점이 끝나야만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요즘이야 컴퓨터가 단시간에 하는 일을 그 당시엔 많은 시간동안 일일이 수작업을 거쳐야했습니다.
전설같은 이야기가 된지 오래되었습니다.
목소리 크고 떠들기 좋아하시던 체육선생님이 갑자기 큰 소리로,
"김ㅇㅇ선생이 채점한 것은 다시 재검 안해도 틀림없을 기라..."
내가 채점한 시험지를 받은 체육선생님이 조용하던 교무실에 정적을 깨뜨린 것입니다.
채점에 골몰하던 선생님들이 이 김밥 옆구리 터지는듯한 느닷없는 소리에 모두 한 번씩 나를 쳐다 보는데,얼마나 당황스럽던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빈틈없이 잘한다는 칭찬이지만,그 땐 왜그리 부끄럽고 민망하던지요.
이런 이미지의 내가 어이없는 실수를 한 것입니다.
큰 잘못을 웃음으로 감싸 주시던 교무주임선생님,몹씨 당황하게 만들었던 체육선생님도 지나고 보니 모두 좋은 인연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분 선생님은 그 당시에도 중년을 넘은 연세셨는데,딸같은 신참교사에게 넉넉하게 베풀어 주셨지만,3년 후에 학교를 떠나온 후로는 전혀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건재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첫댓글 힘든 첫 직장생활에서 성실한 옥덕씨지만 경험이 없으니 이런 실수도 했군요.
실력을 인정받고 더 오래 근무했으면 모범선생님이 되었을 텐데 좋은 경험우로
멋진 학부모 노릇 잘 했읍니다.
책임감 하나는 타의 추을 불허한 저인지라,알았다면 절대로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속담을 지키지 않아서 한 실수였지요.
옆 반 선생님 책상위의 실물만 보고는 그대로 한다는 것이 그만 불량 위조품을 만든 결과가 되었지요.
흘러간 옛날 얘기가 왜이리 재미있는지요? ㅎㅎㅎ 아마도 그시대를 같이 살아서인것 같읍니다.
학생증도 요즈음은 전자로 바로 나올거라 도장찍을 필요도 없겠지요? 참 학생증이 있기는 있을까요?
맞습니다. 피우던 시대라 할 걸요.
지금 아이들에겐 전혀 이해가 안되는 것들이지요.
호랑이
실수<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이렇게 안 해 본 사람은 없습니다
신참교사들에게 당사자의 실수담은 간담이 서늘하겠지만,남들에겐 코미디처럼 재미있잖아요.
저도 다른 교사들의 실수담엔 웃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근무하셨는지 눈에 보여요. 지금은 또 이리 편하고 눈에 보이는 것 만을 쫓을까요 곰곰 생각할 거리를 주욱 풀으시면 훌륭한 소설이 뚝딱
이런 추억거리가 많은 선배님은 잘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감히 말씀드리면요
그 때는 왜 그리 형식을 존중했을까요
누기 그러데요 그게 인생이여
형식적인 것이 많았어요.
교사는 수업이 주업무인데도...
더구나 가정과 연구학교로 지정되어 가정과 교사들의 업무는 몇 배로 늘어난 상태였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잘 풀어놓으면 단편소설 소재는 될까요
글쓰기의 기초가 없어 불가능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