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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중순 어느날, 출근길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 행님. 요새 머하요? " 다산초당이다. 순간 떠오르는게 두가지였다. 막걸리나 한잔, 아니면 산에 가자는 이야기 일건데..다행히? 후자였다. 가을산은 뭐라해도 단풍산행이 백미인데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 보니 설악산으로 한번 추진해 보자 였다. 안그래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악산으로 산행 간다고 생각하니 입가에 절로 웃음이 배어났다. 언제 어떻게 가느냐?의 문제로 머리가 아파질려고 하는데 갑자기 떠오르는 우리 능선산악회 설악전문 산악인이 있었으니 이름하야 함날자 !(작년 설악산 동계산행을 추진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 나의 손은 현란하게 함날자에게 문자질을 해대고 있었다.
이후 함날자의 노력으로 산행일정,차편,인원 등의 문제를 수습하고 우여곡절 끝에 12명의 회원이
단풍철이 지난 설악산으로 가게 된다.
그것도 남한내에서 개방된 등반로중 둘째 가라면 서로울 정도의 험로인 설악공룡능선으로 말이다.
10월29일 밤 10시를 조금 넘어 25인승 버스에 몸을 싣고 늘 가슴 한켠에 두고 있던 설악공룡능선으로 출발한다. 모두 편안한 안색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큰 부담이 될수 있는 산행일 수 있는데 표정으로 봐선 도무지 알길이 없다. 모두 자신감에 충만해서 일까?
차안이라 흔들린 사진이 있어 못올리는게 아쉽지만 위 산제비행님 술잔 밑부분엔 문어숙회가 있었다.늘 산행때 신랑만? 드시라고 형수님이 챙겨주는 특별안주가 있는데 이날도 여지없이 그 안주는 12명의 회원의 입으로 바쁘게 들어갔고 덩달아 늘어나는 빈 플라스틱 쐬주병의 빠스락거리는 소리가 일시적으로나마 차 소음보다 크게 들리고 있었다.
이른새벽 산행을 위해서는 차안에서 좀 자야하는건 당연지사일건데 맨 뒤 바람처럼님, 다산초당님은 무슨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지 싱글벙글 이었고 대조적으로 매표원님, 바람도리님는 완전 숙면상태였다. 그런데 바람도리님는 쐬주일잔 걸치지 않고 차에 타자마자 하차할때까지 저상태로 유지하는 걸 보면서 아..정말 어떠한 상태에서도 밤에 잘 잘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복인가 깨달은 순간이었다. 불면증에 자주 시달리는 나로서는 저건 거의 신의 경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ㅠㅠ
집!념! (최후의 한방울 까지~),
생각보다 일찍 속초에 도착했다. 작년 설악산행은 노포터미널에서 심야리무진을 타고 왔었는데 휴게소, 터미널 몇군데를 거치고 오다 보니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대절버스는 그러한 제약없이 바로 달려오는 장점이 있어 좋았다. 덕분에 거의 30일 새벽 3시경에 해물전복순두부로 아침?아닌 아침을 먹었고 여기서 빈도시락통에 밥을 채워 산행 출발지인 설악동 소공원으로 출발한다. 여담이지만 위 지리개굴님 사진에 희미하게 오승환선수의 유니폼이 보이는데 오승환선수가 이 식당주인 조카라고 했다. 아..이대호라면 좋았을걸..하고 생각이 든건 우리가 부산에서 왔고 롯데팬이고 이대호는 정말 더 좋아한다라고 알랑방구를 좀 떨었으면 잘해줄것 같아서 였다. 만약 이것저것 써비스 받았다면..보라..저 처절하게 마지막 한방울까지 집념을 보이고 있는 산제비형님은 사진에 없었을 것이다.
설악동 소공원 입구에서 새벽 4시쯤 설악동 소공원에 도착했다. 정말 깜깜했다. 빛이라곤 가로등 몇 개와 매표소에서 새어나오는 불빛,,그리고 각자 착용한 등산복장에서 형광색들이 반짝거렸고 하늘에는 얼핏 검은 구름 사이로 셀 수 있을 만큼의 별빛만 보일 뿐이었다. 채비를 갖추고 출발 직전 불현듯 작년 겨울설악산행이 생각 난건 왜일까? 작년 12월에는 겨울설악의 진면목을 보기위하여 희운각대피소에서 일박을 하는 일정이었다. 배낭에 짐도 많았을 뿐더러 눈이 얼어붙은 천불동 계곡을 치고 올라가는 터라 그 힘듬은 어지간한 산행에 비유할 바 못된다라고 스스로 위로하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공룡능선과 겨울설악산행을 비교하고 있었다. 아무리 공룡능선이라지만 겨울설악보다야 더할까? 머리속에서 계속 두 산행을 싸움 붙이며 겨울설악의 손을 들어주기 몇번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발길은 비선대 휴게소 위 천불동계곡과 마등령 갈림길에 서있다.
천불동계곡과 마등령으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오기 전 차를 대절하는 과정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생각보다 대절료가 비쌌다. 어떻게 해서 함날자가 지인을 통해 대절료를 깍아서 빌렸는데 이제는 인원이 문제였다. 최소 10명 이상은 되어야 회비 부담을 덜 수 있었기에 산행일정방의 댓글에 노심초사 할 수 밖에 없었고 특히 금번 산행을 추진한 함날자 입장에선 신경이 더 쓰일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여 함날자가 내게 특명을 내렸으니, 체력되는 사람으로 무조건 2명 수배해서 모시고 오라는 것. 히야~ 체력되는 사람으로 2명이라? 이거 뭐 체력 좋은지 안좋은지 옆에서 지켜본 사람도 없는데 어디서 2명을 수배한단 말이고? 요즘 애들 말로 쩜쩜쩜 이었다. 생각도 자꾸 하다보니 2명이 생각났고 바로 전화를 해댔다. 오~ 2명 다 입질이 왔다. 내가 가보지도 못한 설악공룡에 대해 온갖 미사여구를, 속된말로 사탕발림을 넘어 개구라뻥을 쳐댔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못할것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 놀랐다. 나에게 이런 사기능력이 있다는것에 대해ㅠㅠ 언급한 2명에게 다음 날 답신이 왔다. 다음에... 이런 젠장..내가 뭐 포털싸이트 이름이나 듣자고 지랄발광을 하면써 까지 부탁했나? 나는 콜을 듣고 싶었다고 콜을 ㅠㅠ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절망이 엄습해 오는 가운데 함날자한테 전화가 왔다. 어찌돼 가는교? 어? 아,,잘 되고 있어( 잘되긴 뭐가 잘돼? 미칠 지경이구만;;)..이렇게 대충 얼버무리고 또다시 체력좋은 2명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폰저장번호를 휘리릭 까대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내 시선이 고정된 이가 있었으니.. 여기서 잠깐,.산행기엔 실명을 안쓰고 필명을 쓰는지라 이름을 밝힐 수 없지만 매표원이란 필명을 쓰는 이가 있는데 그 인줄은 그땐 몰랐었다. 내가 아는 매표원님은 일단 술에 대해서라면 뭐 모르는이 없을거고 체격좋고 성격좋고 평소 헬스도 다닌다고 알고 있었기에 딱이다 싶어서 지체없이 바로 전화를 했다. 매표원님 잘살제? 하고 툭 던지니 아 네 형님도 별일 없는교?..평소 자주 연락하지 못하다가 뜬금없이 연락한걸 보면 저쪽에서도 뭔가 냄새를 맡았을 수도 있었을 거 같아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설악산 함 가자. 공룡능선으로.,. 저기 위 2명에게는 온갖 지랄발광을 하면서 부탁했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 지면서 별 특별한 말 없이 산 좋으니 함 가자..당신 체력이면 충분하다..채 몇마디 안했었고 매표원도 가고 싶은데 맞벌이 상황이라 좀 힘들것같다라는 부정적 뉘앙스로 말했지만 정말 이상하리만큼 기대해도 좋겠다는 느낌이 퐉 왔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리 얼마되지않아 내폰에 그의 이름이로 벨이 울리는걸 보고 오,,,안된다면 아까 말한걸로도 충분한데 연락이 온걸 보면? 그래 이걸 두고 요즘 애들은 헐~ 대박~ 이라고들 한대나 어쩐대나 ㅋ 이렇게해서 2명은 수배 못했지만 절반의 수확을 거두어 매표원님과 함께 총 12명의 인원이 공룡능선으로 향하게 된다.
막걸리를 받고 있는 매표원님 소공원,신흥사를 거쳐 비선대까지는 거의 평지를 걸었지만 첫 급경사 오르막이 머지 않아 나타났다. 칠흙같은 어둠을 비추는 헤드랜턴에 설악은 최소한의 길만 내어주고 그 길을 앞 뒤사람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위로, 위로만 올라갔다. 공룡능선의 시종점인 마등령까지 가는 길에 금강굴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정표를 보고도 패스해 버리고 나중에야 어? 아직 금강굴 안왔나?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본등산로를 이탈하여 다녀와야 하는 곳이기에 누군가는 귀찮아서 말을 안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정말 너무 힘이들어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초입구간에서 몇번의 짧은 휴식타임 뒤 제대로 된 휴식타임이 있었는데 매표원님 배낭에서 막걸리가 쏟아져 나왔다. 산에서 막걸리는 꿀맛 아니 정말 생명수 같은 역할을 한다. 막걸리 한잔이면 갈증을 해소 하고 동시에 떨어진 체력을 끌어올리니 헐떡거리고 올라온 고통은 보상하고도 남으리라. 꿀맛 휴식을 뒤로 하고 또다시 걷기를 시작한다. 어둠은 여전히 우리를 감쌌고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설악은 우리에게 쉬이 수려한 자태를 드러내지 않는다. 동트기전 포토타임때~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덧 주위가 밝아 오면서 설악은 숨겨둔 비경을 하나 둘 내어 놓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산꾼들이 산에 오는 이유가 바로 이런 맛 때문일까? 눈에 담긴 절경을 카메라에 다 담지 못하는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마등령 오르기전 간식타임~ 동이 트면서 갑작스런 눈호강도 잠시, 본 산행의 목적지인 공룡능선의 시종점인 마등령으로 오르고 또 오르고..이거 이러다 마등령도 못가서 지치면 어쩌나 걱정이 밀려왔다. 간식으로 준비한 밤식빵을 주저없이 먹기 시작했다. 참고로 산행시 간식뿐만 아니라 식사대용으로도 밤식빵이 좋다고들 한다. 특히 여름철 마땅히 도시락이나 김밥 먹기가 걱정된다면 밤식빵을 준비해가는건 어떨까? 이날 먹은 밤식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내생애 최고의 밤식빵^^
여기가 공룡능선의 시종점인 마등령..차라리 이때가 좋았다 ㅠㅠ
사진을 보니 표정들이 좋다. 이쯤되면 공룡능선 유경험자들은 속마음으로 사진찍고 헤벌레 할때가 좋다, 좀 있어봐라..웃음이 나오는지..
그랬다. 이걸 깨닫는데는 채 얼마가지도 못가서였다.
공룡능선을 탈때 웃음은 거의 유경험자들의 전유물이었다.
특히 지리개굴님의 알듯 모를듯한 웃음은 오히려 내게 심리적으로 불안감만 가중시키기에 충분했고 겨울설악도 다녀온 난데 뭐 이정도 쯤이야 하는 생각을 반복하며 자위하는 동안 서서히 설악공룡앞에 가혹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사실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산에 대해 자만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속된말로 쫄지도 않았다. 어떤 계절에 어떠한 산이라도 늘 그러했다. 산은 내게 있어 권투로 치자면 좋은 스파링 파트너 같았다. 때로는 공세적으로 때로는 수세적으로 임했고 그러한 나를 한결같이 대해주면서 나의 장단점을 파악하게 해 주었다.
그랬던 산이..아니 그랬던 내가..설악공룡능선앞에서 이렇게 까지 쪼그라 들지 생각지도 못했다.
성경에 나오는 구절이던가? 교만하지 말지어다..
아..너무 내가 쉽게 생각한거 같았다. 돌이켜보니 언젠가 부터 산에 대해 서서히 겸손은 오간데 없고 교만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건 퍼진게 아니라 제대로 된 휴식^^(다산초당의 변)
오르고 내림을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서서히 지쳐 가기 시작했다. 다산초당은 걸으면서 자꾸 졸린다고 하더니 대놓고 드러 누워 버린다. 나름대로의 휴식방법을 터득한것 같았다. 이런 모습은 비단 공룡능선뿐만 아니라 여러 산행에서도 목격된 바 있으니 진정 휴식의 종결자로 인정하지 안할수 없었다. 나도 그 옆에 좀 누워서 쉬었더라면 그 후 그렇게 힘든 산행이 계속되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저 너머 울산바위가 펼쳐진다
전설에 따르면 조물주가 금강산의 경관을 빼어나게 빚으려고 잘생긴 바위는 모두 금강산에 모이도록 불렀다. 경상남도 울산에 있었던 큰바위도 그 말을 듣고 금강산으로 길을 떠났으나 워낙 덩치가 크고 몸이 무거워 느림보 걸음걸이다 보니 설악산에 이르렀을 때 이미 금강산은 모두 빚어지고 말았다. 울산바위는 그 한 많은 사연을 간직한 채 고향 울산으로 돌아갈 체면도 없어 설악산에 눌러앉고 말았다고 하던데. 그래..잘 눌러 앉았다..니가 여기서 안눌러 앉았으면 이 힘든 산행에 무슨 낙이 있었겠노? 정말 고맙다 울산바위야..
한참을 내려갔다 다시 그 깊이 만큼 올라가면 꼭 뭔가를 하나씩 우리에게 볼거리를 주더니 좀 먼 감은 있었지만 울산바위가 그렇게 좋아보였을 수 없었다. 빛을 받아 반짝거리기도 하는것이 tv에 나오던 외국 어느산 색감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첫눈을 공룡능선에서~~
얼마나 걸었을까? 뭔가 하얀게 날렸다. 아..눈이 구나..그래..공룡능선에 오니 올해 첫눈도 구경하고 힘들게 걷고 있는 보람이 있구나.. 라는 생각도 잠깐..어? 계속 이렇게 오면 곤란하다는 생각이 엄습해 왔다. 설악 오기전 낙남정맥 산행때 평소 잘 하지도 않던 배낭 정리를 한 게 화근이었다. 줄곧 배낭에 우의랑 배낭커버를 넣고 다니다 거추장스럽다고 빼 놓았다가 깜박 하고 챙겨 오지를 못했던 것이다. 차라리 배낭 정리 하지 말걸, 후회해 봐야 때는 늦었다. 기상청 일기예보는 정확했다. 평소 불신했던 나에게 복수를 하는듯 눈발은 계속 거세어지고 집 장롱속에 걸려있는 고어텍스자켓이 낄낄대는듯 했다. 완벽한 준비부족이었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의 환청까지 들렸다. 실패다 이새꺄~~
그나마 다행인건 휴식시간에 트러스트박님이 우의한장을 건네주었다. 자기는 배낭커버 있으니 우의는 나입으라고..너무 고마웠다. 고맙다는 표현을 뭘로 해야하나? 하트나 보내 드릴까?
행복한 점심시간~~
힘든 산행에 그나마 위안이 되는건 휴식시간..그 중에서도 점심시간이 아닐까 다들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계속 내리는 눈 때문에 마땅히 식사할 장소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희운각대피소 까지는 아직 멀었는데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그냥 밥상펴고 대충 먹고 가자는 것이었다. 그래..눈 좀 맞으면서 밥 먹으면 어떻노? 이것도 나중에 다 추억인기라~~추위와 허기진 배에는 역시 밥이다. 어느정도 밥을 먹다보니 지리개굴님이 가지고 온 도라지 위스키에 눈길이 간다. 한잔 쭈욱~ 독하다~금방 속이 데워지더니 몸이 풀린다. 아..그대로 여기서 주저 앉고 싶었다.
눈발은 그치지 않고 갈길은 멀고~
좀처럼 눈발이 가시질 않는다. 이거 진짜 하산때 까지 계속 오는건 아니겠지? 눈이 걱정되었던건 옷이 젖어 힘든거도 있었지만 사실 더 힘든건 걸을때 바닥이 미끄러워 넘어져 다칠까봐 걱정이었다.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지지 않을려고 용을 쓰다 보니 허벅지에 무리가 갔는지 다녀와서 근육통에 며칠을 고생했다. 산행초보때는 오르막이 정말 힘들어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올라가서 내리막을 접할때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내리막에서는 최소한 숨이 끊어질듯한 헉헉거림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힘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미끄러지지 않을려고 거의 기다시피 내려오는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난 영락없는 초보산꾼이다.
얼마를 더 걸어야 무너미고개가 나오나? 다왔다~ 다왔다~ 지리개굴님의 흰소리는 이제 자장가 처럼 들린다~
무너미고개 이정표
아~ 드디어 무너미고개까지 왔다. 그렇게 한 번 도전해 보자고 벼렸던 공룡능선을 다 타고야 말았다. 회원들은 일제히 스틱을 하늘로 치켜들고 화이팅을 외쳤다. 가슴벅찬 순간이었다. 서로 표현은 안했지만 각자 나름의 고통을 짊어지고 왔을터인데 힘든 기색없이 모두 늠름한 모습이 자랑스러울 뿐이었다.
이제부터는 천불동계곡으로 내려가서 소공원으로 가면 된다. 작년 겨울 희운각대피소에서 일박을 한 경험이 있어 다시 가보고 싶었지만 지척에 두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몸이 거부하는걸 보면 체력이 상당히 고갈되었던듯 싶었다.
천불동계곡 하산길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하는 길은 그야말로 한폭의 동양화 그 자체였다. 작년산행때 눈과 얼음으로 뒤덮힌 겨울산과는 또다른 정취를 느끼게 해주었다. 공룡능선에서 봐라본 쬬삣한 암봉들도 멋있었지만 나는 왠지 천불동계곡이 마음이 더 끌린다. 공룡능선에서의 머뭄은 힘에 겨워 쉬는 휴식이라면 천불동계곡에서의 머뭄은 신선놀음이라고나 할까?
이제 눈호강하면서 안전하게 하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긴장감이 풀렸다. 다리도 좀 풀리고 배낭의 무게도 느껴졌다. 그래~ 이제 다와간다~ 조금만 더 힘내자~..하면서 걷기를 계속했다.
얼마쯤 갔을까? 갑자기 배가 살살 아프더니 신호가 오는게 아닌가? 아~ 이러면 안되는데? 젠장~살면서 몇번 안온다는 급똥을 만난것이다. 하필 화장실도 없고 마땅히 해결할때도 없는 천불동계곡에서 말이다. 오 마이 갓~ 아직 비선대휴게소 까지는 갈길이 먼데 이걸 어떻게 하지? 정말 고민이 안될 수 없었다. 비선대휴게소까지 참고 가는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양폭대피소가 불난 지도 모르고 있다가 내려가다 보면 양폭대피소가 나오면 화장실에 갈려고 했던 것인데 바람처럼님이 아까 쉬었던 자리가 양폭대피소라 했다. 그렇다면 이건 정말 답이 없었다. 사력을 다해 앞사람들을 질러가며 괄약근 힘껏 쪼으며 갔지만 비선대휴게소는 막막하기만 했고 나의 인내는 한계에 다다랐다. 내 눈알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둘러 보아도 철계단 옆으로는 깍아지르는 급경사 아니면 계곡인데 어디서 해결을 해야 할까? 아...이대로 무너지는건가? 망할 놈의 급똥 ㅠㅠ
오로지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다. 산쪽으로 타고 올라가서 해결 하는 방법. 마침 등산객이 보이지 않는 곳을 발견하고는 잽싸게 산쪽위로 올라갔다. 내생애 최고 스피드의 해결. 군대서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정말 바람처럼님 말대로 빠름~빠름 이었다. 망봐주신 바람처럼님이 어? 벌써? ㅋㅋ
생각지도 못한 일을 만나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지만 그 또한 지나간 한편의 추억이 되어 버렸다.
신흥사에서~
하산길은 다분히 지루한 면이 있어 회원 모두 자유스럽게 흩어져 내려오다 보니 같이 기념사진을 촬영하지 못한게 아쉽다. 대신해 신흥사 통일대불을 배경으로 하산기념사진을 올려본다.
이후 속초에서 아바이순대로 저녁을 해결하고 무사히 부산에 도착했다. 총 12시간의 산행이었지만 모두 사고없이 안전하게 하산하여 설악공룡완주라는 이력들을 각자 남기게 된다.
개인적으로 준비부족으로 힘들었던 산행이었다. 정말 많은 교훈을 얻은 산행이었고 스스로 되돌아 보는 기회가 된것 같아 감사한 산행이라고 자평해 보면서 함께한 11명의 회원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끝으로 나를 결정적으로 공룡능선으로 이끌었던 글귀를 남기며 생애 첫 산행기에 필을 떼고자 한다.
산은 평평하지 않다. 오름은 힘겹고 내림은 까마득한것, 어떤 속도로 가야하느냐 묻지말자.
설악공룡능선에 들어가 자연의 속도로 걸어볼 일이다..
첫댓글 좋습니다!!! 새로운 작가의 능선등단이네요.~~^^
공룡능선보다 더 힘든 산행기ㅋㅋㅋ
담 산행기 기대함다.
잘 쓰네. 덕분에 설악을 되새김합니다~ 앞으로 쭈욱 부탁드려요~~
멋지네요~~
다시한번 설악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읽고 보는 내내 웃음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산행기는 산행 후의 허전함을 달래주는 소주 속의 사카린 맛. 리얼 300% 즐감.
동지.........산행기 쓰신다고 어젯밤 종일 로그-인 해 계셨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아참~~ 맨 마지막 대불 앞에서 찍은 사진, 제가 찍었는데 넘 못찍었다. 미안혀요. 꿀박.
아~~!!
멋집니다~~ 예전에 고생만 진탕했던 설악공룡능선 ~~~~
이리좋은 곳이 부산에서 넘 멀리 있는것 아쉽네요~~??
설악에 다시 다녀온 기분이네요..등단하심을 축하드립니다..서작가님.. 불은 지르지 마세요..ㅎㅎ
흠!! 숨은 인재가 많단 말이야~~ 굿~~
산행기 잘 봤네요~! 힘들어서 그냥 지나쳤던 설악의 풍광을 다시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서병장 글솜씨도 돋보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