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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속 상사를 감동 시키는 테크닉"
저우언라이는 어떻게 무려 27년 동안 총리직을 맡을 수 있었을까?
중국, 공산당 주석 마오쩌둥(모택동) 치하에서는
어느 누구도 권력 암투와 숙청의 공포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었다.
오늘의 2인자의 의자가 하루아침에 빠지거나 '하방'이라는 이름으로
정치 권력의 중심 베이징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변방으로 귀향 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무자비한 권력 투쟁에서 빗겨난 유일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저우언라이(주은래)이다.
그렇다고 그가 권력 중심부에서 벗어난
하급관리이거나 변방의 인물은 결코 아니다.
소신대로 말하라. 단, 상대를 알고 있다면
마오쩌둥보다 다섯 살 연하의 저우언라이는 무려 27년
간 총리로 재임하며
권력의 중심에서 부침 없이 마오쩌둥을 보좌했던 인물이다.
수많은 인물들이 2인자로 오르내리며 권력의 쓴맛, 단맛을 겪는 동안
저우언라이는 단 한 번의 자리 변동도 없었다.
한때 마오쩌둥을 능가하는 권세를 누린
린뱌오(임표)의 쿠데타 실패로 인한 비행기 사고사,
특히 1100만 홍위병의 광풍이 중국 대륙을 휘감던 1966년 이후의 문화대혁명 당시
국가주석 류샤오치(유소기), 덩샤오핑(등소평) 등은
죽거나 온갖 박해를 받았지만 저우언라이만은 무사할 수 있었다.
이를 두고 후세 사람들은
저우언라이가
'무색무취의 공무원 신조'로 무조건 마오쩌둥에게 아부하며,
조직의 그늘에 숨어 생존했을 것이라 상상하지만
실제 저우언라이는 현재의 중국을 기초한 명재상이다.
그런 그가 최고 권력자의 귀를 간질이는 달콤한 언행으로만
그 자리를 보존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도 아니다.
그렇다면 저우언라이의 처세의 기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가 상사의 의도와 지시의 방향을 정확히 파악하는데
탁월한 실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일화가 있다.
당시 마오쩌둥의 부인은 장칭(강청).
그녀는 마오쩌둥과는 고난의 연안대장정 시절부터
함께 했던 부인이자 정치적 동지.
그래서인지 장칭은 국가 현안부터 사적인 문제까지도
마오쩌둥에게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했다.
목소리 큰 부인은 동서고금을 통해 남편에게는 불편한 존재.
중국의 1인자로 군림하던 마오쩌둥도 장칭에게만은
한 수 접는 일이 가끔은 벌어졌다고 한다.
또한 여느 부부처럼 부부싸움도 잦았는데 부부싸움 후 언짢은 기분으로
당 정치국 회의를 주도했던 마오쩌둥은
회의 말미에 이런 이야기를 슬쩍 했다고 한다.
"동지들, 내가 장칭과 이혼을 생각 중인데
동지들 생각은 어떻소?"
그러면 누구나 예외 없이 마오쩌둥의 의견에 동조하는 발언들을 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주석."
그 순간 고개를 끄떡이는 마오쩌둥에게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피력하는 이가 바로 저우언라이였다.
"주석,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지요.
장칭 동지는 주석의 정치적 동반자입니다."
회의가 끝나고 무리지어 나오면서 사람들은
저우언라이를 눈치 없는 사람 취급하며
'큰일이군. 저우언라이의 앞날도 이젠 끝이야'라며 혀를 찼지만
결과는 항상 저우언라이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그렇다면 모두가 '예스'라 할 때 절대 권력자
면전에서
저우언라이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저우언라이가 이미 마오쩌둥의 발언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했기 때문이다.
저우언라이는 부부싸움은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 되고 마는 만고의 진리를 바탕으로
마오쩌둥이 이혼을 얘기하는 자체가 그 자리에서 '
노' 소리를 듣고 싶은 속마음을 읽은 것이다.
오랜 시간 마오쩌둥을 보좌하며 마오쩌둥의
의견 개진 방식과 업무 지시 형태를 파악한 것이다.
"아니, 말려야지, 이혼하라고 오히려
부추겨. 이 사람들이 참."
마오쩌둥은 오히려 이혼에 찬성한 간부들을 언짢게 생각하고
저우언라이에 대한 신임은 더욱 깊게 했다.
책상
앞에 오래 있다고 능력 있는 사원은 아니다
그렇다. 직장에서 가장 기본은 상사가 내리는
지시의 의도와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부분이 정확치 않으면 '일은 죽도록 열심히 하면서도
결과는 별 볼일 없는' 직원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매출상사의
김열심 대리는 누가 보아도 성실한 직장인이다.
출퇴근을 비롯해 근태 항상 정확하고 야근도 밥 먹듯이 하지만
직장 내 평가는 항상 B등급을 넘지 못해 승진에서 누락되기 일쑤다.
고민을 거듭하던 김열심 대리는 동기지만
지금은 자신의 상사가 된 박정확 과장에게 SOS를 보냈다.
술자리에 마주앉은 두 사람. 고개를 떨구고 앉아있는 동기 김열심 대리의 모습에
안쓰러움을 느낀 박정확 과장은 친구에게 자신의 비법을 전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진단
박정확 과장이 본 김열심 대리의 최대 문제점은
바로 부장의 업무 지시를 정확하게 파악치 못하는 것.
회사에서 에이스로 손꼽히는 이야심 부장. 지금은 영업 1부의 부장이지만
이사 승진 서열 1순위로 그의 관심은 영업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사, 자재, 기획 등 회사 업무에 전방위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지시는 항상 영업부를 넘어서는 부분도 있었던 것.
"김 대리, 이번
상반기 영업 매출 분석하고 보고하세요."
눈치 빠른 박 과장은 부장의 지시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 영업 매출 분석은 물론
기획과 자재, 회계 그리고 인사까지 연관된 영업부의
대응 논리를 만드는 것은 물론 향후 계획까지도 면밀히 작성했다.
물론 각 부서의 현안과 부장의 잠재적 라이벌인
타부서 부장들의 동향 파악까지 팁으로 말이다.
하지만 고지식한 김 대리는 숫자만 가득한 엑셀로 정리된
영업 매출표만 부장 책상에 놓은 것.
이야심 부장 입장에서는 영양 만점 박 과장의 보고서가
더욱 손길이 가는 것이 당연지사.
이처럼 상사의 관심과 그가 처한 위치에 따라 보고서의
내용은 달라져야 한다.
야심 있는 능력자 상사와 정년을 눈 앞에 둔 무기력한 상사는
회사 일에 대한 관심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승진을 눈 앞에 둔 야심가 상사라면 단순히 자신의 부서 업무만이 아닌
회사의 모든 일에 촉이 서 있을 수 밖에 없다.
위로는 사장님의 심기뿐 아니라 라이벌 부서의 현황부터
회사 외부의 동종업계의 정보까지
모든 것이 부장에게는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그야말로 영양만점 정보인 것이다.
그렇다고
업무는 제쳐놓고 동네방네 귀동냥이나 하고 다니는 것은 당연 오버다.
귀동냥으로 들을 수 있는 정보는 진짜 정보가 아니다.
업무와 연관된 살아있는 정보 즉 부장의 현재와 미래에
가장 필요한 것을 골라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그 밑바탕은 실적이다.
실적이 미미한 부서의 장이 승진하는 케이스는 그야말로 조상 묘터가 좋던가
아니면 사장이 낙상할 때 밑에서 몸을 던져 받아낸 경우밖에 없다.
탁월한 실적이 뒷받침된 가운데 부장이 알고 싶어 하는 것들,
즉 타 부서의 실적, 회사의 전략적인 방향, 회사가 당면한 현안 등이
망라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다면 김 대리가
부장의 신임을 얻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이다.
#How To
그렇다면 상사의 속마음을 읽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상사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라.
회사 돌아가는 사정에 눈 감고 있지 않는 한
회사 내 상사의 업무 비중과 비전은 파악할 수 있다.
만약 부장이 근무 시간에 요리학원이나 다니고
부동사 중개사 시험문제집을 끼고 있다면
그 부장에게는 엑셀 파일로 된 숫자 가득한 보고서만 제출해도 된다.
둘째, 타 부서의
동기를 잘 활용하라.
입사 동기의 끈끈함은 대개 대리, 과장급까지는 유지된다.
각 부서에 속속 박혀 있는 동기와의 모임을 통한
정보 교류는 서로에게 윈윈 게임이다.
셋째, 상사의 강함과 취약점을 파악하라.
재무통 상사는 기획과 영업에 취약점을 보일 수 있다.
그 경우 기획과 영업부의 정보와 현안 파악 보고서는
상사에게 그야말로 보석같은 존재가 된다.
이도저도 귀찮다. 그냥 이대로 대충 시간
때우는
직장생활하겠다고 마음먹지 않은 이상,
직속 상사의 거취는 나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한 상사의 의중을 파악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나 역시 직장의 모든 부서 업무에 관한 공부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자, 직장인들이여, 상사의 질문에 답하기 전 잠깐 동안 그 속마음을 파악하라.
눈치가 빠르면 절간에서도 새우젓을 얻을 수 있다는 옛말을 잊지 말자.
곰같은 부하보다는 여우같은 부하를 원하는 상사가 많다는 점도 함께 기억하자.
"늙어서 쓸모 없다던 클로제, 전설을 쓰다"
오늘 아침 독일對 브라질 월드컵 4강전에서
우리 나이로 37세의 백전노장이 결국 일을 냈다.
독일 축구 대표팀의 스트라이커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월드컵 통산 16번째 골을 터트리며 새로운 전설로 등극했다.
이 대회전까지 기록을 갖고 있던 브라질의 호나우두는
관중석에서 그의 골 장면과 브라질의 대패를 묵묵히 지켜봤다.
펠레, 호나우두도 넘었다
클로제는
9일 오전 5시(한국 시각)브라질 벨루오리존치에 위치한
에스타디오 미네이랑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 자신의 월드컵 통산 16번째 골을 넣었다.
그의 뒤에 브라질의 호나우두(15골), 독일의 게르트 뮐러(14골), 프랑스의 주스트폰테인(13골),
브라질의 펠레(12골) 등 과거의 슈퍼스타들이 자리해 있다.
일부 축구 전문가들은 그의 기용을 놓고 갑론을박을 펼치기도 했다.
그가 지난 2011년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서 쫓기듯
이탈리아 라치오로 이적할 때부터 기량 하락에 대한 논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탄탄한 수비수를 벗겨 낼 정도의 힘이 없는 노장을
굳이 주전으로 기용할 필요가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러나 독일의 요하임 뢰브 감독은 지금껏 월드컵서
꾸준한 활약을 보인 클로제의 ‘경험’을 믿었다.
그의 힘은 줄어들었지만, 높이와 위치선정 등은 그대로라고 믿었다.
선수들을 지탱해 줄 노장이 필요하다는 판단도 했다.
클로제는 이에 보답하듯 지난달 아르메니와의 평가전에서도
69번째 골을 기록, 게르트 뮐러가 갖고 있던 독일 국가대표 최다 골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사실 이날 7:1이란 충격적인
스코어를 만든 시발점 역시 클로제의 골이었다.
토니 크로스의 패스가 페널티 지역까지 이어졌고,
뮐러가 파고들자 수비수는 우왕좌왕 그를 뒤쫓았다.
밀러는 힐 패스로 클로제에 완벽한 기회를 만들어줬다.
세자르 골키퍼가 한 차례 슈팅을 막아냈으나, 또 한 번의 슈팅은 손 쓸 도리가 없었다.
ESPN은 “6골차란 결과로 클로제
골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나,
이 날 경기의 승패의 추는 클로제의 발끝에서 갈렸다”고 했다.
경기 후 뢰브 감독 역시 “클로제의 골 이후, 브라질이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실제 2:0이 된 이후, 브라질은
간결한 독일의 패스와 좌우 돌파 등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클로제와 토니 크로스, 뮐러의 연결을 브라질 수비수들은 한발짝 뒤에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티아고 실바가 빠지긴 했지만, 역시 세계적인 수비수인 다비드 루이스와
단테의 조합이 이들을 전혀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클로제의 골 행진은 경이로울 정도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5골을 넣은 것을 시작으로, 2006년 독일 월드컵 5골,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4골을 넣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2골을 넣었다.
이 기록을 깨기 위해선, 최소 3번의 월드컵에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나서
매 대회 5골 이상씩을 넣어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 기록 경신은 어려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목수에서 골잡이로, 대기만성 클로제
클로제는 폴란드 출신이다. 폴란드에서 태어나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에서 자랐다. 그
의 아버지 요세프 클로제 역시 축구 선수로,
1978년부터 프랑스 2부리그의 AJ옥세르에서 뛰었다.
클로제는 어릴 때부터 폴란드인이란 이유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많이
당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독일로 건너왔을 때는 독일어도 못했다.
오로지 축구를 할 때만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릴 적 실력이 뛰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19살 때까진 프로리그에서 뛸 실력이 안 돼 목수 일을 병행하며
독일 7부리그의 아마추어 팀인 블라우바흐에서 뛰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축구를 계속했고,
지난 2000년 우리 나이로 스물 네살이 되던 해에 결국 분데스리가에 입성했다.
그는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다섯 시즌 동안
57골을 넣은 후,
베르더 브레멘으로 이적 세 시즌 간 63골을 넣었다.
그리고 독일 최강이라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 네 시즌을 보냈다.
이 기간 대표팀에서도 승승장구했다.
2002년 한ㆍ일 월드컵에서는 헤딩골로만 5골을 넣었고,
2006년 독일에서도 5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크지 않은 키(182㎝)지만 탁월한 점프력과 헤딩 감각으로, ‘
헤딩=클로제’라는 등식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클로제는 이날 경기 후 “우리는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연습을 지켜봤다면 벌써 눈치 챌 수 있었을 것”이라며
“노력에 대한 결과물이 나와 기쁘다”고 했다.
‘골을 넣을 줄 아는 공격수’ 클로제는 자신이 아직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격수 중 한 명임을 이날 여실히 증명했다.
최다골 기록 보다 빛난 '노장' 클로제의 품격
미로슬라프 클로제(36, 라치오)가 결국 월드컵 역사상 최다골 신기록을 경신했다.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자신의 대회 통산 16호골을 작렬하며 독일의 7-1 대승에 기여했다.
만 36세의 노장 클로제의 선발은
적지 않은 뒷이야기를 남겼다.
독일축구가 꾸준히 젊은 재능을 배출하고 있는 가운데 월드컵 신기록 달성을 위한
무리한 선발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이 있었다.
클로제는 논란에 경기력으로 답했다.
만 36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활동량과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득점 기록 외에 독일 대표팀이 공격수에게 요구한 모든 임무를 완수했다.
클로제는 후반 13분에 안드레 쉬를레와 교체 되며
그라운드에서 내려왔다.
58분 6.698km의 거리를 뛰었다. 일반적인 공격수의 활동량 이상이다.
게다가 FIFA 공식 홈페이지가 공개한 활동 분포 자료를 보면
그가 단순히 골을 넣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니라
팀이 요구하는 전술적인 역할을 120% 수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클로제는 전반 23분 독일의 두 번째 골을 기록하며
승부에 쐐기를 박는 릴레이 골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
클로제의 골 이후 2~3분 간격으로 추가골이 나왔다.
클로제의 마무리는 명불허전이었지만,
그 보다 인상적인 것은 브라질 골키퍼 줄리우 세자르를 끝까지 압박하고,
브라질 공수 전환의 기점 역할을 한 수비수 다비드 루이즈의 마크맨으로
전방 압박 뿐 아니라 후방 수비 커버까지 나선 점이다.
클로제는 브라질 공격수 호나우두가 달성한 통산
15골 기록을 넘어 월드컵사의 불멸의 영웅이 됐다.
그러나 그가 이날 보여준 모습은 기록 보다 중요한 헌신의 가치다.
클로제는 경기가 끝난 뒤 홈팬들에게 야유를 받은
브라질 공격수 프레드를 껴안고 위로를 전하기도 했다.
진정한 노장의 품격을 보여줬다.
"허세를 버릴 줄 아는 리더"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2001년 기자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말했다.
"신제품을 보여 드리러 나왔는데 조금 뜸을 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고
한참을 만지작거리다가 팔을
치켜들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아이팟'은 그렇게
공개됐다.
자유로운 스타일을 추구하는 스티브 잡스는
검은색 터틀넥 티셔츠와 청바지를 즐겨 입으며
모든 크기의 주머니와 지갑에 맞는 아이팟을 내놓았는데,
이때도 역시
청바지차림이었다.
"내 청바지에 이 조그만 주머니가 왜 있는지
늘 궁금했는데, 이제야 그 쓰임새를 알게
됐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자유로운 옷차림은 애플의 새로운
도전과 무관하지 않다.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쫓겨난 후 11년 만에
귀환했을 때 애플은 고사 직전 상태였다.
그는 살아 남기 위해 딱딱한
하드웨어 회사 이미지를 벗고
신세대의 자유와 개성에 부합하는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해야 함을
통감했다.
정장을 입고 떠났던 그가 청바지를 입고 돌아온 것은 그런
변화의 암시였다.
당시 'Think different'라는 광고 카피도
고정관념을 깨려는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청소년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단순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컴퓨터 '아이맥',
패션을 엮은 마케팅은 정장을 벗어 던지고
캐주얼로 신세대 고객층과
소통한 잡스의 역작들이다.
1980년 여름, 빌 게이츠는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사무실에서
연구에 몰두하던 중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는
정장으로 말끔하게 갈아 입었다.
IBM 직원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작은 벤처였던 마이크로소프트(MS)가 IBM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 정도 중대한 일이 아니라면 빌 게이츠가 정장을 입는 일은 없다.
그는 주로 파란색 셔츠에 꽉 끼는 면바지를 입고 가벼운 단화를 신고
다닌다.
그의 옷차림에는 직원에게 자유롭고 창의적인 기업 문화를
제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부회장까지 오를 정도로 빌 게이츠와 잘 통했다.
하지만 성공의
반열에 오르자, 가즈히코는 사치스러원지기 시작했다.
급하지도 않은 출장을
가면서 값비싼 헬리콥터를 임대해 타고 가는가 하면,
걸림돌이 될 것을 직감하고 8년 넘게 쌓아 온 우정을 깨고 헤어졌다.
그렇다고 그가 직원에게도 검소한 삶을 강요한 것은 아니다.
MS 직원은 다른 기업보다 월등한 복지를 누리고 있으며
빌 게이츠는 인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스카우트 제의에 망설이는 사람이 있으면 그 회사를 통째로 사 버릴 때도
있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직원들의 존경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위기에도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직원의 창조성을 이끌어 내야
하며,
그 창조성이란 명령과 지시에서 나오는 것이 나이라 자유롭고 친근한
리더의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샘솟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만의 차별화된 모드로 명품 인생을 만들어라"
그는 남들과 차별화된 자신만의 컬러와 창의력만이 성공을 담보한다고 했다.
시장에서 뛰어난 브랜드만 살아남듯이 이제 개인도
자기만의 상징을 구축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데이비드 베컴이나 마리아 샤라포바 역시
자신만의 상징을 구축한 대표적인 스포츠 스타이다.
이들은 단순한 운동선수가 아니라 멋진 것, 도회적인 것의 상징이다.
데이비드 베컴과 샤라포바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패션을 자신에게 접목시킴으로써 새로운 상징으로 성장하는데 성공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색깔과 향기가 있다.
다른 사람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개성이나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자기만의 모드를 잘 가꾸어 멋스럽개 표현해낼 줄 아는 사람은
주변의 관삼과 호감을 끌게 되어 있다.
주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내면에 감추어진 정신세계일 수도 있고,
겉으로 드러나는 패션 감각이나 준수한 외모일 수도 있다.
이제는 외모도 경쟁력인 시대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의 진가를
지속적으로 발휘하려면 내적으로도 탄탄한 실력을 갖추어야 함은 물론
시데 흐름에 민감한 우처(TREND WATCHER)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티가 나게 되어 있다.
그들은 누구와 만나 대화를 나눠도 언제나 유쾌하며 신선하다.
그런가 하면 최신 트렌드에 따라 자신을 포장하는 센스도 남달라서
굳이 한 가지 스타일만을을 고집하지 않는다.
직장인의 고루함을 탈피하기 위해 기꺼이 카멜레온과 같은 변신에 주저하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런 진리를 알고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늘 새로움을 추구하며 변화의 능력이 탁월한 그들의 면모는
자신의 가치나 이미지의 유효기간을 연장한다.
무엇보다 그 사람의 차별화된 영역, 곧 그만의 모드는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다른 사람들은 자석과 같이 끌어 당기는 힘이 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런 만큼 내가 상대방을, 상대방이 나를 잊어버리는 것은 시간 문제다.
조금이라도 자신을 상대에게 기억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호감을 살만한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
이 때 바로 당신이 평소 구축해 둔 자기만의 ‘차별화된 모드’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차별화된 자기만의 모드를 갖는 것은
이제 우리 삶 전반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다.
나는 강사라는 직업상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데 명함을 주고받고 인사를 나누는 숱한 사람 중에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름과 얼굴들이 있다.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이들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비록 짧은 만남이었을지라도 자기 자신을 아주 독특하고
인상 깊게 표현 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사는 연예인들이야말로
자신만의 차별점을 갖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독특한 몸짓, 튀는 의상, 세련된 무대 매너 등은
바로 유행을 불러 일으키고, 구사하는 언어와 차별화된 모드는
곧 연예인으로서 인기(브랜드 가치)와 직결된다.
커뮤니케이션에 관해 강의하는 필자 역시 나만의 차별화된 모드를 개발하기 위해
지금은 ㄲㄶ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나에게는 이런 수식어가 따라 붙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큰절하는 강사, 어깨에 별 다섯 개와 가슴에 명찰을 달고 다니는 강사,
엄지손가락을 쭉 펴 올리며 만나는 모든 이에게
‘당신 멋져, 원어풀!’을 외치는 강사,
‘먼저 다가가 악수를 청하는 강사’ 등이 그것이다.
내가 강의를 시작하면서 청중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것은
청중과의 만남에 대한 반가움의 표현이고,
나보다 경험이 많고 훌륭한 분들이 내 강의를 들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의 전달 방식이다.
또 내 어깨에 달린 별 다섯 개는 위엄과 권위를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5천 번의 명품 강의를 실현하겠다는 나의 인생 목표와 포부가 담겨 있다.
게다가 강의 복장에 항상 부착하고 다니는 명찰은
필자인 "서필환"을 개인 브랜드로 알리고 홍보하기 위해서다.
결과적으로 자신만의 차별화된 모드를 갖는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을 튀어 보이게 하는 차원을 넘는다.
남의 호기심이 어린 시선이나 끌어 모으는 얄팍한 몸짓은 더욱 아니다.
물건에도 명품이 있듯이 자기 자신의 장점과 가치를 찾아
자꾸 표현하고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은
스스로 ‘명품 인생’을을 만들어 가는 노력의 과정이다.
당신은 자신을 스스로
업그레이드시켜 나갈 수 있는
당신만의 ‘차별화된 모드’를 갖고
있는가?
(가난뱅이와 부자의 차이점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옛말 하나도 안 틀린다.
작은 일 이라도 세심하게 정성컷하라.
큰 일 따로 있는거 아니다.
작은 일이 모여 큰 일 되는법.
가난뱅이는 헛소리에 변명이 많고
부자는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이다.
가난뱅이는 한평생을 어영부영하고
부자는 한순간 이라도 정성을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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