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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인가(시 24:1-10)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설 명절 연휴, 언제 가도 설레는 고향 방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명절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운 그리운 고향을 찾아 길을 나설 것입니다. 이미 고향에 도착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지금 열심히 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가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평상시보다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림에도 불구하고,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발걸음일 것입니다. 물론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평상시처럼 일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설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영적인 고향인 천국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우리의 발걸음도,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발걸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랜 시간이 걸림에도 불구하고, 설레임과 기쁨을 가지고, 보고픈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고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그리운 고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이 계시는 여호와의 산을, 설레는 마음을 안고, 올라가고자 하는데, 누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시편 15편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께,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시 15:1)라고 물었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 24편에 나오는 “여호와의 산”, “거룩한 곳”이라는 말과 시편 15편에 나오는 “주의 장막”, “주의 성산”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라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었던 다윗의 가장 큰 관심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 27:4)라고 말했습니다. 그를 따르는 신하들과 많은 백성들에게 호령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여호와의 집인 성전을 사모했습니다.
다윗 시대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들었던 성막이 있었습니다. 육적인 눈으로 볼 때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천막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볼 때에는 바로 그곳이,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다윗은 바로 그 초라한 성막을 생각하면서,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시 65:4)라고 말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아주 초라한 천막이었지만,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었기에, 다윗에게는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그 아름다운 성전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행복해졌습니다.
다윗은 초라한 성막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짓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의 아들인 솔로몬에게 허락해 주셔서,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수 있었습니다. 훗날,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예루살렘 성전에 대하여,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대하 7: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눈길과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성전에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눈길도, 언제나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몸이 하나님이 계시는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야 합니다.
여러분! 여호와의 산, 그 거룩한 곳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의 장소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입니까? 어떤 자격을 가지고 있어야, 그 거룩한 곳에 오를 수가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까?
4절 말씀입니다.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여호와의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이 있어야 할까요?
첫째, 손이 깨끗해야 합니다.
“손 씻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나쁜 짓을 하면서 살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잘못된 삶을 살지 않는다. 나쁜 짓 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고 있다.”라는 말입니다.
“손이 깨끗해야 한다”라고 하는 말은 단지 육신의 손이 깨끗해야,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죄가 없어야,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나아갈 수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이사야 6장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 이사야 선지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웃시야 왕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죽음 이후의 평가를 보면, 긍정적일 때도 있고, 부정적일 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잘한 일도 있고, 잘못한 일도 있기 때문입니다. 웃시야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웃시야가 매우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더라”(대하 26:8)라는 말로 미루어 볼 때, 웃시야 왕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많은 일들을 한 훌륭한 왕이었지만, 너무 교만해진 탓에, 제사장이 할 일을 자기가 하겠다고 하다가, 그만 나병에 걸려, 어쩔 수 없이,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기는 별궁에 거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웃시야 왕을 바라보았습니다. 믿고 의지했습니다.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대하 26:4)라는 기록으로 볼 때, 많은 사람들이 웃시야 왕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런데, 웃시야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자기가 향을 직접 피우겠다고 소란을 피우다가, 나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철썩같이 믿었던 웃시야 왕의 갑작스러운 행동과 죽음으로, 그를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이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그도, 웃시야 왕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웃시야 왕의 죽음으로 절망하게 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보좌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섯 날개를 가진 스랍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찬양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스랍 중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의 숯불을 가져다가, 이사야 선지자의 입술에 대며,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동산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마찬가지로, 범죄한 죄인이 어찌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손이 깨끗해야 합니다. “손이 깨끗해야 한다”라는 말은 “죄가 없어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는 떨기나무가 활활 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불붙은 떨기나무가 재가 되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너무나도 신기하고 이상했습니다.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불타고 있는 떨기나무가 재가 되어 사라지지 않는 그 놀라운 광경을 보려고,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때, 떨기나무 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모세야 모세야”라고,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하는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거룩한 곳입니다. 그곳에 더러움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육체 가운데 가장 더럽다고 생각하는 곳이 있다면, 아마도 발일 것입니다. 그리고, 사방팔방 돌아다니기 때문에, 신발이 가장 더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신을 벗어야 합니다. “신을 벗으라”라는 말은 “깨끗해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더러움을 버리고, 깨끗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곳은 미디안 광야입니다. 한 마디로, 이방 땅입니다. 그 땅이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이, 이방 땅이든, 이스라엘 땅이든, 하나님이 계신 곳이, 바로 거룩한 곳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거룩해야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생활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그들이 마주한 것은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그 성을 무너뜨려야 했습니다. 지도자인 여호수아는 혼자, 여리고 성을 정탐하려 갔습니다. 40년 전, 모세의 명을 따라, 가나안 구석구석을 정탐했던 여호수아였지만, 그 당시에, 아마, 여리고 성도 정탐하여, 어느 정도, 여리고 성이 어떤 성인가에 대하여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이미 40년의 세월이 흘렀기에,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늦은 밤, 캄캄한 밤에 여리고 성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바로 그때, 칼을 빼어든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놀라,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라고 대답하자, 여호수아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수 5:15)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만난 곳은 여리고 성 앞입니다. 한 마디로, 적진 바로 앞입니다. 그런데, 그곳이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계신 곳, 바로 그곳이 거룩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거룩해야 합니다.
어부인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실망을 가득 안고,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를 따라온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는데, 잡은 것이 너무 많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습니다. 그것을 본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베드로는 자기 앞에 계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을,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죄가 없이 깨끗해야 한다고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죄를 씻음 받아야 합니다.
손이 깨끗해야 합니다. 발이 깨끗해야 합니다. 온 몸과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깨끗하게 씻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2:14-16)라고 말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우리는 거룩해야 합니다.
바울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라고 말했습니다.
손과 발, 그리고, 온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빌라도는 “십자가에 못박으라”라는 군중들의 외침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내어주고서,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자신의 손을 씻으면서,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 27:24)라고 말했습니다.
빌라도는 자기의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기 위하여, 손을 씻었지만, 그것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아닌, 그 어떤 물로도, 그 어떤 피로도 우리의 죄악을 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둘째, 마음이 청결하고,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 15:18-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악한 것들은 마음속에서 싹이 터서, 악의 행위로 나타납니다. 이와 같은 악한 마음은 우리의 마음을 썩게 하고, 병들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하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는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라고 말했습니다.
두 마음을 품으면, 마음이 성결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는 두 마음을 가지지 않아야 합니다. 언제나 허탄한 데, 뜻을 두지 말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마음과 말과 행실에 있어서, 거룩해야 합니다. 속과 겉이 달라서는 안됩니다. 일치해야 합니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도에게,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1-13)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경건하지 않는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을 기다리면서, 오직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의 만족과 순간적인 쾌감에 도취되어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일편단심,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던 둘째 아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가진 것은 하나도 없지만,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께서 입혀 주시는 새 옷을 입은, 돌아온 둘째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9-10)라고 말했습니다.
죄악을 품고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죄악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더러움을 깨끗이 씻겨내야 합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셋째, 거짓 맹세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마 5:34-3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거짓 맹세하지 않아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위선자의 감언이설에 속아서도 안되고, 다른 사람을 속여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나 진실해야 합니다.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9-10절 말씀입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는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야 합니다.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적이 아니라, 바로 그곳에서, 영광의 왕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모시고, 찬양하고, 예배드려야 합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입니까? 손이 깨끗한 사람, 마음이 정결하고,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않는 사람, 거짓 맹세하지 않는 사람이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깨끗함과 청결한 마음과 진실함으로, 여호와의 산에 올라, 여호와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예배하며, 마음속에 오직 영광의 왕이신 하나님만을 모시고 살아감으로,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이 세상이 아무리 악하더라도, 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정결하기를 원합니다. 헛된 것에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두지 않게 하시고, 늘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며 거룩하신 영광의 하나님만 생각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