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무협작가중 한분인 좌백님의 작품 금강불괴(金剛不壞)를 보면 조연중 뇌공(雷公) 원굉도 라는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9대문파의 말석을 차지하는 형산파의 원로인데요 이 작품에서 보면 별로 특별할것도 없고 강하지도 않은 형산파가 낳은 최고의 고수로 십대고수의 상석을 차지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뇌공 이라는 별호가 붙은 이유가 그의 무공이 그냥 노력해서 얻어질수 있는게 아니라 특별한 기연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내공이 바탕이 되어야만 한다는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강해도 누구에게 가르쳐줄수가 없는거죠 하늘의 번개가 강한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는것입니다. 그러니까 뇌공 원굉도는 형산파를 대표하는 절정고수이긴 하지만 제자 누구에게도 가르쳐줄수 없다는것이죠 책에 있는 문장을 그대로 옮겨보자면 "사막에 홀로 우뚝 선 바위산처럼 멋은 있으나 쓸모는 없는 노인이 되어 홀로 늙어 가고 있었다."
서두를 이렇게 길게 주절거린 이유가 바로 어제 제가 시디장 앞에서 뭘 들어볼까 생각하다가 문득 시디장 이곳저곳에서 여러장의 원굉도를 발견했기때문입니다. 자주듣는 음반들 앞은 깨끗하지만 이녀석들 앞은 뽀얀 먼지가 앉아 있는것이 제가 청소를 게을리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에 앞서 나에게 무시당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들게 만들더군요
어느하나 공짜로 집어온것 없이 돈을 주고 가져온것들인데 잘 듣지도 않으면서 못내 아쉬운 미련에 어디로 처분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팔거나 누구 줘버려? 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래도 이런 시디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나중에 나도 음악좀 듣기 때문에 나역시 어런것도 듣소! 라고 말할 거리라도 있어야한다는 비겁한 이유로 지니고있게 되는데요 그래도 거짓말에 대한 나름대로의 면죄부는 있어야할것 같아서 이런 제 자신을 다만 내 귀가 아직 얇고 단전에 쌓인 내공이 부족하여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는것이겠지 라며 나름대로의 이유를 붙이고있는거 같습니다.
그중에는 쿠르탁이나 노노 같은 제가 아니라도 많은 분들이 동참하여 고개를 저을만한 작곡가의 작품도 있지만 쇼스타코비치의 레이디 멕베스나 카라얀의 브루크너 전집 그리고 듣지도 않으면서 사놓은 마태수난곡 시디들 뉴욕필의 말러전집 등등의 음반들도 시디위로 먼지가 몇센티나 쌓이나 내기하고있죠 이런이야기 하면 D모님 같은 경우 넘기라고 하시겠지만 앞서 말한바와 같이 체면유지상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
다른 것도 마찬 가지입니다만 음반도 역시 구입하다보면 잘못 사거나 자기 취향에 맞지않는걸 사게되는건 피할수 없습니다. 특히 시디라는것은 비닐포장으로 곱게 밀봉되어 있어서 직접 들어보기 전까지는 단맛인지 쓴맛인지 알수가 없죠 많이 맛을본 평론가 분들이 미리 맛보기로 가이드를 해주시지만 다른 분들이 저희집에 오셔서 식사하시면 국이 싱겁다는 말씀들을 항상 해주시는것 같이 그분들이 느끼는 짠맛과 제가 느끼는 짠맛은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물론 달게 느끼기도합니다) 확실할수는 없죠
다만 음식맛을 잘보며 맛없는건 입에 대지도 않는 미식가의 혀처럼 귀가 반응하기 보다는 여러가지 음의 조합을 즐기며 다양한 장르의 곡들에서도 재미를 느낄줄아는 귀가 되었으면 하는거죠 그렇게 되면 잠들어 있던 음반들도 가끔 먼지를 털어내줘야하는 일이 없을것 같습니다.
이제 곧 봄이지롱~ 하면서 며칠 거짓말하다가 요즘은 햇빛 한조각 내주지 않는 하늘때문인지 잘 듣지도 않던 쇼팽 녹턴을 들으며 몇자 중얼거려봤습니다. ^^
갑자기 카라얀님과 도리안님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나와서 생각난겁니다만 그 도리안이란 아이디가 설마 도리안 그레이의 도리안은 아니겠죠? (열대과일이 아니라니 나름대로의 추측)
첫댓글 설마 바로 그 도리안입니다^^;; 이상한가요? ㅋㅋㅋ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의 도리안이었단 말입니까? 전 음반회사 홍보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저처럼..^^
이상한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무척 재미없게 읽은 책이라서요 ^^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군요. 아마도 전 후말러님께서 재미없어했던 바로 그런 측면을 좋아했던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