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3일, 마광수 교수 고려대 강연 感想 / 안눈치껏
2010/11/03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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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보다 더 파격적이고, 더 야하고, 더 솔직하고, 그래서 더 흔들렸다. 아직 풀이 드러눕듯 팍팍 눕는 수준이다. 더 치열하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내 답을 내야겠다. 이제 그 흔적들을 하나씩 쌓아 올려야겠다. 집에 오는 길에 혜진이랑 목 쉬어라 얘기 했지만 아직도 성노동권 같은 개념에 대해서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말끝마다 씨발, 술주정하는 할배 마냥 두서 없었던 마광수 교수 강연의 몇 가지 화두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이 시대 탄압의 화두 : 음란
-- 판금, 경고 따위에 머물러 있던 마광수에게 상상을 뒤엎는 일이 일어났다. 긴급체포와 구속. 구속의 이유는 도주가 우려된다는 점,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점이었지만 이미 책은 시중에 나와 있었고 강의실 안에서, 그것도 수업 중에 도망갈 가능성은 없었다. 그런데도 문화부 산하의 '간행물윤리위원회'는 '미풍양속을 해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그를 고발, 검찰이 강의실 안에서 붙잡아 갔다. 집필 활동에 대한 국가의 이같은 처벌은 세계 최초였다. 그에게는 역대 정부가 하나같이 치를 떨었던 빨갱이 책들에게 내렸던 형량보다 훨씬 무거운 형량이 주어졌으며, 외려 이 사건은 <모택동 사상>을 쓴 김상협이 기세 등등했던 박정희 때도, 5공 때도 아닌 문민 정부 시절에 일어났다. 영화에 대해서는 이미 윤리의 문제를 넘어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19금이 찍힌 것도 버젓이 상영되는 이 시대에, 음란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북한을 찬양하는 것보다 더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민주국가에서 검열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벌써 전과 2범이 되어버려 연금이 몰수된다는 마광수에게 최고의 걱정거리는 노후다.
2. 시큰둥하게 하기
-- 변태왕국 일본보다 성범죄율이 딱 열 배 높은 나라가 우리 나라란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7배 정도 밖에 높지 않았는데 최근 더 올라 있었단다. '미풍양속을 해치는' 삐라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일본처럼 되지 않으려고 그렇게 열심히 단속해 왔는데 결과적으로 일본보다 못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마광수의 지론은 '시큰둥하게 하기'다. 초딩 중딩 때부터 하도 많이 보면 시시해져서 관심도 없어진다고.
3. 형평성 - 텐프로부터 잡아들이든지.
-- 노무현 정부 때 생긴 성매매특별법을 혐오하는 마광수에게, 집장촌은 없애면서 텐프로 룸살롱에는 손도 대지 않으려 하는 태도는 확실히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당장의 생계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해당 법이 발효되자 목숨을 끊었던 집장촌 여성들이 생겼고, 떼로 모여 여의도에서 시위를 하는 여성들도 있었지만, 다른 세상 이야기인 듯 텐프로에서는 여전히 검사 판사들이 가무를 즐기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의 인생에서 형평성은 늘 불만의 기제였다. 전술했던 영화와 소설도 그렇고, 같은 영화 장르 안에서도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란 이유는 조폭 영화에 더 크게 적용되어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음란 영화에 더 가혹하다. 미대에서 여성의 나체를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교육이지만 인사동 화랑에서 나체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경찰에 잡혀가야 하는 범죄로 취급된다.
4. 성노동권
-- 세상에 매매춘을 금지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역사적으로도 그래왔다. 유럽에서는 이미 매매춘을 비범죄로 취급한다. 아예 성노동권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성노동권옹호협회'를 만든 나라도 있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 조합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성병 검사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우리 나라처럼 언어 의미에 충실한 '매춘'이 이루어지는 곳은 없다. 심지어 미국에도 스트립쇼를 하는 여성들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그들에게 손 대는 행위만으로도 체포를 당한다.
5. 립스틱 페미니즘
-- 마광수에게 반기를 드는 집단에 페미니스트가 포함된다는 것은 우리 나라의 페미니즘이 얼마나 기형적인가를 보여준다. 마광수의 작품에 나타나는 여성들은 남성에게 의존적이거나 정숙하지 않다. <즐거운 사라>는 만나던 남자와 관계가 좌절되자 '이제 다른 먹잇감을 찾아야겠다.'는 여주인공의 대사로 끝나는데, 이 부분은 대법원 판결문의 화룡점정을 찍을 만한 기각의 이유를 제공했다. "여자가 반성을 하지 않는다."!!!! 과거 작품들에서는 자유로운 성 관계를 가졌었거나 혼전순결을 지키지 못했던 여성들이 자살하거나 반성하는 형식으로 끝나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이와 비교해 볼 때 마광수의 작품은 오히려 페미니스트들에게 반가운 결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성의 화장조차도 용납하지 못하는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작품을 실랄하게 비판했다. 전세계적으로 립스틱 페미니즘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시류에 역행하는 발상이다.
6. 교양 문학 vs 의도된 경박성
-- 한국에서 소설이 뜨려면 가족, 사랑, 이웃을 이야기해야 한다. 판타지? 추리소설? 스타 작가의 지름길 신춘 문예에 당선되려면 택도 없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우리 나라에는 점잔 빼는 소설들만 넘쳐나고 있고, 일본에 번역되어 판매되고 있는 소설은 마광수 책 하나 뿐이란다. 반대로 한국에서 새롭게 발간되어 유행을 타는 책들의 족히 반은 일본 판이다. 인기 있는 유명 일본 소설들 중에는 판타지도 있고 추리도 있고 다 있다. 또한 마광수에게도 어려운 이상 시는 그냥 알아먹을 수 없는 이상한 시지만 세간은 그를 천재라며 칭송한다. 그래서 마광수는 '의도된 경박성'을 가지고 소설을 쓴다. 더 쉽고 자극적으로. 그는 "교양 떨고 싶으면 인문서에서 찾으라고 ㅆㅂ" 이라는 명언을 남기며, 이렇게 계속 지루한 소설만 넘쳐나는 한 한국의 독서 인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한다. 소설은 맨 처음 귀족들의 영웅 문학의 반대편에서 중산층들의 유일한 오락거리로서 발생한 '인간적' 장르였다는 그 원초적 의미를 기억해야 한다.
7. 이육사의 시 <청포도>의 주제 : 청포도는 맛있다 !
-- 마광수는 현재의 한국 교육을 '수험 교육'이라고 정의했다. 수험 교육은 자유로운 생각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미리 범주화 해 놓은 생각의 틀을 제공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제한적이고 기계적인 학습만 가능하다. 이육사의 '청포도'의 주제는 그냥 '청포도는 맛있다'일 수도 있지만 수능을 쳐야 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 시에 '민족' 개념을 적용해야 한다. 같은 이유로 그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무시무시한 말은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가 되어야 한다며, 대한민국 사람들의 생각을 옥죄는 수많은 진리, 개념들에서 탈피할 것을, 자녀들을 위해서는 믿을 만한 대안 학교에 진학할 것을 권했다.
[출처] 마광수 강연|작성자 mvp